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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22 20:57
연재수 :
2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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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08
추천수 :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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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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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2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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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23화 전야제

DUMMY

23화 <전야제>



마법진이 빛을 잃고 위에 놓인 모든 게 사라졌다.

골목의 끝에 남은 건 흙먼지와 움직이지 않는 사내가 전부였다.

캣니스가 뒤늦게 도착했다.

그녀가 왔을 때는 상황이 끝나있었다.


“그게 기사님의 선택인가요?”


어두운 골목길에 달빛이 들어왔다.

바솔루트 추기경이 사라진 골목을 보았다.

피로 얼룩진 마법진과 벽에 박힌 성검.

마법진과 가장 가까운 사내는 주먹을 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됐어요. 성전의 종료를 알리면 기사님의 상처를 치료할게요. 죄는 이후에 청산하면······”


푹.


그때 열한 번째 날개가 벽에 박힌 성검을 뽑았다.

뒤 돌은 얼굴에서 서글프다 못해 공허한 감정이 감돌았다.

캣니스는 그가 가진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또한 감정의 흐름이 어디로 흘러갈지도 눈치챘다.


“어째서 싸우려는 거죠?”


그래서 물었다.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하다.

그런데도 다시 검을 잡는다. 바보 같이 싸우려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 가졌다.


“마지막이다. 이번이야말로 마지막 임무다.”


열한 번째 날개는 성검을 백의에 갖다 댔다.

새하얀 백의로 검에 묻은 혈액을 닦았다.

검붉은 혈액이 옷에 스며들고. 옷은 얼룩져서 본래의 색을 잃었다. 신성력으로 피를 지울 수 있는데도 더러운 상태를 유지하였다.


“전부 잃고 나서야 여신의 뜻을 헤아리다니. 정말 잔혹하기도 하지.”


피투성이가 된 백의를 잡고 갈기갈기 찢었다.

찢어진 붉은 천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싸울 준비를 해라. 여신의 창이면서 용사였던 자여.”


그가 뽑은 검이 새하얀 광채를 내뿜었다.

날개가 되어 선사 받은 성검을 뻗었다. 검 끝으로 캣니스를 가리켰다.

이에 맞선 캣니스의 두 눈에는 슬픔이 드리웠다.


“어째서 이런 결단을 내린 건가요?”

“내 신성이 말하고 있어. 분명 그만하라는 거겠지.”

“신성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말인가요?”

“그래. 하지만 이것도 분명한 내 의지야.”


열한 번째 날개가 말과 함께 미소 지었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상상 못 할 모습이었다. 미소 지은 얼굴이 굉장히 지쳐있었다.

캣니스는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두 손바닥을 맞댔다.


“알겠어요. 하지만 이유는 들어야겠어요.”


두 손으로 신성력을 응축하였다.

벌어지는 손바닥 사이로 황금빛 기둥이 이어졌다.

155의 신장이 훌쩍 넘는 황금빛 창을 손에 쥐었다.

창끝을 한 바퀴 돌린 뒤 그에게 향하였다.


“어째서 죽으려고 하는 건가요?”


슬퍼서 붉어진 눈가로 그에게 물었다.

이번 일의 근원인 추기경이 죽은 이상, 더 이상 그가 싸울 이유는 없다.

그러니 이제 다 함께 돌아갈 일만 남았다. 평범한 사제로 돌아가 속죄하는 삶만 살면 되었다.

그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지금의 대치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런데도 대체 왜···.”


캣니스는 그가 싸움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끝난 싸움에 집착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거듭 물었다.

계속 자신과 싸울 것이냐고.


“캣니스.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편할 때가 있는 거야.”


열한 번째 날개가 따뜻한 말투로 말했다.

끝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자기만족을 위함인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싸움에 임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나 셀레브리디 여신을 모시는 열한 번째 날개. 캣니스 센츄어리와 겨루는 성전의 끝을 보겠다.”


검을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검 끝이 향한 대상은 눈가가 붉은 여사제였다.

그러나 여사제라는 모습은 겉모습에 불과하다. 그녀의 실체는 사람의 길을 포기한 이가 두려워하는 신전의 집행자이다


‘너는 기억하고 있을까?’


열한 번째 날개는 다리 간격을 좁혔다.


과거, 폭주한 숲의 주인과 수하와 있던 일을 기억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바솔루트 국왕이 토벌대를 꾸려 토벌했다지만. 실상은 눈에 거슬리는 성기사와 거슬리는 여사제를 치우려 했을 뿐이었다.


‘그때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랬어,’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의 상황을 조금도 잊지 않았다.

비록 그가 교황의 술수에 넘어가 기억을 잃고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지만. 여전히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가던 소녀를 기억했다.


-다 괜찮아요.


하얀 광채가 반월을 그렸다.


지금도 부서져 내리는 금빛 눈송이가 기억에 생생했다.

그 안에 숨 쉬던 소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정처 없이 헤매던 삶 속에서 처음으로 광명을 좇는 날이.

공허하기만 하던 삶에서 길을 제시받았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따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미안하다. 분명 너의 기사가 되어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언젠가 슬퍼하지 않게, 의지할 수 있게 되고 싶었다.

그녀와 헤어질 때, 같은 의지를 관철하겠다고 꿈꿨다.

언젠가 당당히 그녀 앞에 서겠다고. 하루도 쉬지 않고 단련하며 그녀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는데···.


-너는 내 종복이다.


모든 게 후회스러운 과거가 되었다.

이제는 적대자가 되어서 여사제와 마주하였다.

그리고 이 인연의 끝은 단순한 만남과 이별로는 해결되지 못한다.

설명하기 힘든 강제성이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그에게 이만 쉬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렇게 돼서 미안하다. 그리고 많이 예뻐졌구나, 캣니스 센츄어리.”


검 끝이 하늘을 향하게 들었다.


그는 과거에도 캣니스가 훌륭한 미녀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멋지게 성장한 일에 안심했다.

물론 누군가에게 꼬맹이라고 듣지 않으려면 더 자라야 하는 건 여전하다. 어쩌면 오랜만에 봐서 더 자랐다고 착각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과거와 다르게 자신감이 붙은 얼굴을 보며 안심했다.


“간다. 봐줄 생각하지 마라.”


시답잖은 감정은 여기까지였다.

정에 취해서 제 할 일을 잊어버려서는 안 됐다.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렸다.

숨이 다하기 전에 싸움을 끝낼 심산이었다.


“흐읍!”


열한 번째 날개는 검을 휘둘렀다.

서른한 살의 사내는 전성기 못지않은 검을 선보였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리라 연마하던. 반드시 자랑하고 싶었던 사람에게 달려갔다.


쐐액-


검의 경로를 따라서 은빛 궤적이 그려졌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쾌검이 공기를 가른다.


쩡-


하지만 그뿐이다.

검의 날이 어떠한 기운에 막히자 부서졌다. 흩어지는 파편 너머로 황홀한 금발이 다가왔다.

그녀가 쥔 황금빛 창이 몸을 관통하였다.


“쿨럭···.”


그는 각혈하였다.

쏟아지는 피를 받아냈다. 피에 젖은 손을 바라보았다. 이내 힘없이 어깨를 내렸다.

지금 상황을 감당하듯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역시 너에게는 이길 수 없는 모양이야.”


성전에서 패배하였다. 그래도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후련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캣니스 센츄어리.”


열한 번째 날개가 캣니스를 불렀다.

떨리는 손을 캣니스의 머리 위로 올렸다.

두 사람만이 아는 과거가 이곳에 존재하였다. 언젠가 꼭 해주고 싶었던 행동을 지금 하였다.

어색한 움직임으로 금색 머리를 쓰다듬는다.

평생 이런 걸 해본 적 없는 사람의 서투른 움직임이었다.


“캣니스. 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음이 여리구나.”


자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에 답변하듯 흐느끼는 소리가 있었다.

이윽고 그의 몸 일부가 금빛 알갱이가 되어 산화하였다.

그러자 죽음마저 담담히 감당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네 번째 칼이 말하기를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던데···.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네.”


제 소멸을 앞에 두고도 담담하였다.

일생에 어떠한 미련도 두지 않은 채 홀가분 해하였다.


“미안해요···.”


그때, 캣니스가 말하였다.

상대와 더 적대하기를 멈췄다. 울음을 억지로 참는 일로 갈라진 목소리가 나온다.


“제가 신전으로 돌아가 자리를 지켰다면. 열한 번째 날개님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됐는데요······.”


그의 끝을 가엾이 여겨 눈물 흘렸다.

한 사람을 보호하지 못한 슬픔에 가슴이 먹먹하였다.

열한 번째 날개는 그녀의 한탄에 답변하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캣니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은 따스하였다.

그래서 더욱 서글펐다. 그의 죄는 나쁘되, 사람은 올곧았다.


-힘들지는 않습니까?

-아직 어린데 장하군요.

-싫으면 도망가도 됩니다.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녀를 기억하듯, 그녀 또한 그를 기억했다.

평소에는 무표정하다가도 시원하게 웃는 이가 그다.

겉모습과 다르게 다정한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마음이 사무쳤다.


“제가 돌아가지 않아서 기사님이 이런 일을···”

“쉿. 캣니스. 내 마지막에 그런 말만 하지 말아줘.”


열한 번째 날개가 캣니스의 말을 끊었다.

가슴 아픈 이야기만 하지 말자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정말로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끝나가는 삶에도, 그녀와의 관계에도.

캣니스의 눈시울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더 늦기 전에 너와 만나서 다행이었어.”


말하며, 그의 소년 시절이 연상되게 웃는다.

캣니스는 슬픔을 억누르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입술 사이로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게 괜히 미안하지 마. 이게 내 책무고 내 신앙의 증명이야. 교황이 아니라 나의 여신. 너에 대한 증명 말이야.”


또다시 캣니스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녀는 그의 말을 부정하듯 강하게 고개 저었다.


“아니에요. 당신은 도망쳤을 뿐이에요. 죄에서 도망치는 쉬운 길을 선택했어요. 정말로 신앙을 증명하고 싶었다면 살아야죠. 살아서 잘못했다고 말해야죠. 어째서 최악의 선택을 하는 거예요···.”

“캣니스. 그러면 내가 아니게 될 거야. 죄도 사랑도 모두 버린 채 여신의 품에서 어린아이로 남게 되겠지. 물론 내 죄가 이런다고 사라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내가 감당하고 떠날게."


떠난다는 말과 함께 그의 신체 일부가 산화했다.

다리가 사라지자, 중심 잃고 쓰러진다.

캣니스는 힘없이 무너지는 그를 끌어안았다.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냥 어린아이로 남으면 안 됐던 건가요? 당신의 고집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어야 해요? 저와의 약속은 어떻게 하게요? 이대로 떠나면 기사님이 떠나면 저는 평생 미워할 거예요.”


작은 원망을 담아 말했다.

원망이 담긴 목소리는 물기로 젖었다.

그런 원망에도 불구하고 열한 번째 날개는 하늘을 올려보았다.

초연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었다.


“그렇겠지··· 그런 삶도 있는 거겠지······.”


무슨 말을 전하고 싶은지 이해한다. 하지만 그가 이 선택을 후회하는 일은 없었다.

말 한마디면 삶을 이어갈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았다.


“캣니스 센츄어리. 나는 이제 곧 숨을 다 할 거야. 못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만. 꾹 참고 내 말을 들어주겠니?”


캣니스는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이별할 때이지만, 조금도 그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역시 잘 못 됐어요. 왜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기사님인 거예요··.”

“캣니스···.”

“제발. 제발 여신님께 용서를 구하세요. 지금이라도 치료하면 돌아갈 수 있으니까···!”

“캣니스. 내가 원하지 않는 한 치료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 내가 계속 말하잖아. 나는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이 순간이 와서 행복하다고.”


열한 번째 날개는 한 팔을 들었다.

여사제의 뺨에 손을 얹었다.

이내 활기가 사라지는 얼굴로 세상 따뜻한 미소를 보여줬다.

한 번 두 번 얼굴을 쓰다듬던 손길은 금빛 알갱이가 되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기사님, 제발··· 제발요······.”


끝이 눈앞에 다가온다,

그럼에도 그만이 차분히 미소 짓는다.

열한 번째 날개는 입을 열었다. 자신을 위해 눈물 흘려주는 이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였다.


“캣니스 센츄어리. 너는 이 시대 누구보다도 축복받은 아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분명 많은 운명을 짊어지겠지.”

“기사님 안 돼요. 제발······!”

“앞으로도 고될 거야. 나와 같은 지독한 인연이 끊임없이 찾아올 거야. 그래도 끝까지 잃지 말아줘. 옛날도 훗날도 아닌 지금 모습을-”

“카마인 님···!”


‘고마워, 내 이름을 기억해 줘서.’


열한 번째 날개는 입 모양을 만들었다.

금빛 알갱이가 그의 몸을 감싸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부디 너만큼은 행복해주렴.’


캣니스의 품에서 그가 사라졌다.

더 이상 품 안에는 생명의 기척이 남지 않았다.


“아아··· 아아아······!”


캣니스는 식어버린 갑옷을 잡았다. 그의 온기를 찾아보려고 품에 끌어안았다.


-너 정말로 아무런 느끼는 바가 없어?

-역겨워. 그 손으로 건들 생각하지도 마.


용사 일행으로 살았던 나날들.

용사는 자신을 두려워했고 마법사는 벌레 미만의 존재로 보았다.

마왕 토벌이라는 대의 아래서 자신은 하루하루가 고되고 정신적으로 몰려 있었다.


-이제 가는구나?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거겠지?


그런 시절에 유일하게 그녀 그대로 봐주었던 유일한 이해자였다.

유일하게 안식이 되어준 인물이 지금 여정의 끝을 맺었다.


“왜··· 왜 카마인 님이······!”


캣니스는 울부짖었다.

진즉에 망가진 줄 알았던 마법진이 빛을 내자, 은빛 갑옷마저 모습을 감추었다.

사라진 존재를 찾아서 바닥을 더듬었다.

곧 그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직시하고 스스로 몸을 감싸 안았다.


“왜··· 대체 왜··· 전부 가져가 버리는 건가요···.”


밤의 냉기보다 텅 빈 마음이 추웠다.

채울 수 없는 공허함으로 가슴 한편이 구멍 난 듯 아팠다.

더 크게 울부짖었다.

목이 아플수록 가슴의 통증 덜했기에 그만 둘 수 없었다.


“왜! 왜! 어째서 나만···!”

“캣니스.”


그림자가 드리우고 어깨에 담요가 얹어졌다.

담요를 덮어준 이가 어깨를 잡았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캣니스!”


가더가 움직였다.

쓰러지는 캣니스를 품에 안았다. 가슴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괴로워하는 그녀를 끌어안는다. 등을 토닥였다. 조금은 진정되었다.


“캣니스. 무서워할 필요 없어. 나 가더 타나토스가 언제나 너를 지켜줄게.”


한 번 한 맹세를 거듭 강조했다.

이에 캣니스는 감정이 바닥날 때까지 울었다. 기억과 감정이 무감각해질 때까지 눈물 흘렸다.


“다시는··· 더 이상······.”


이윽고 쏟아부은 감정과 함께 기력이 다하였다.

가더는 기절한 캣니스를 단단히 잡았다.

몸을 감싼 담요를 더욱 조였다. 한쪽 팔로 그녀의 등을 받쳤다. 누운 자세가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었다.


“고생했어. 캣니스.”


작은 몸을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잘 자, 캣니스.”


가더가 쓰러진 그녀를 안은 채 골목을 떠났다.

밤하늘의 별 하나가 생애 처음 밝은 빛을 내며 떨어졌다.



*****



<외전- 교황의 접견실>



바솔루트 왕국의 교황이 사는 궁전.

궁전 내부의 접견실에는 두 남자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오랜 시간 알아 온 두 사람이 대화 나누는 모습이다.

하지만 웃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서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믿지 않았다.


“교황님 큰일입니다!


한창 겉으로만 정다운 대화가 무르익던 그때였다.

백의를 입은 남자가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었다.


“콜록. 콜록-”


이에 접견실에 있던 남자는 차를 뿜었다.

체통을 지킬 새도 없이 사레들린 기침을 하였다.

다듬어진 노란 수염과 노란 머리카락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가진 중년이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하여간에 골머리 앓게-”


바솔루트 왕국의 교황 된 자는 마른기침을 멈추었다.

이 사단을 만든 남자를 노려봤다.


“이봐! 칼리언 추기경! 대체 언제 즈음 되어야 예의라는 것을 지킬 텐가!”


기다란 흰 수염과 길게 자란 머리카락 그리고 성스러운 성직자의 로브를 입고 들어온 노인이 가쁘게 숨 쉬었다.

그는 바솔루트 추기경 중에서 가장 연로한 64세의 나이로, 제일 오랫동안 교황의 곁에 머무른 자였다.

그런데 이런 평판과 비교되게 칼리언 추기경은-


“이이잉. 그런 거 지켜봤자 손톱만큼도 도움 안 된다니까? 자꾸 그렇게 엄한 소리 하니까 애들에게서 뒷담화나 먹는 거라니까?”

“이 영감탱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칼리언 추기경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철이 들지 않았다.

그 덕분에 교황은 오늘도 진절머리 쳤다.


“크하하하. 이거 참 독특한 개성이군요? 다시 보았습니다, 칼리언 추기경님.”


호탕한 목소리가 접견실을 가득 채웠다.

그제야 칼리언 추기경은 교황과 접견하는 이를 알아보았다.


“아, 이거 참 죄송합니다. 귀한 분께 그만 추태를 보이고 말았군요.”


칼리언 추기경은 고개를 숙였다.

추기경이라는 직위는 상관 없었다.

군인처럼 짧게 자른 백금발 머리카락과 하얀빛이 머무른 동그란 안경.

곰 같은 풍채의 남자가 교황과 접견 중이었으니 고개 숙이는 게 당연했다.


“크하하! 괜찮습니다.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지 않았습니까?”


남자는 호탕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에 칼리언 추기경은 머쓱하여 웃었다. 동시에 곤혹스러운 노란 눈동자를 숨기지 못하였다.


“크흠, 죄송하지만 오늘의 만남은 여기까지 해야 할 듯싶습니다. 먼 길 오셨는데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교황이 헛기침하고 오늘의 만남에 점을 찍었다.

추기경과 교황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크하하! 괜찮습니다! 이미 은퇴한 몸이니 예의 차려주실 것 없습니다!”

“하하, 아닙니다. 어찌 저희가 여신의 종복을 함부로 대하겠습니까. 그래도 다음에 뵐 때는 미리 연락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다음번에는 더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기대하도록 하죠.”


교황은 사람 좋게 말하며 문밖의 성기사에게 눈짓했다.

성기사는 추기경에게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아유, 아닙니다. 알아서 돌아갈 테니 괜히 사람 붙여주실 필요 없습니다.”


남자가 다급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손사래 쳤다.

교황의 배웅을 극구 사양하였다.


“···바라는 대로 해주어라. 그러면 알렉산드로스 님. 원하는 만큼 머물다가 돌아가시죠.”


교황도 재차 권유하지 않았다.

몸을 돌리고, 앞장선 추기경을 따라갔다.

교황이 나간 접견실에는 곰 같은 풍채의 남자만이 남았다.


“무얼 저리 꽁지 빠지게 도망가는지-”


그 뒷모습을 보며 한마디 했다.

다 식어버린 찻잔에 입술을 대고, 한동안의 정적을 음미하였다.


“선생님, 돌아가실 시간입니다.”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모험가처럼 가벼운 옷차림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남자는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렸다. 굵은 손목 위에 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읏차. 자 돌아가자.”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긴 흰색 코트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는 접견실을 나와서 궁전의 정원을 거닐었다.

그 뒤로 수많은 성직자가 뒤따랐다.

바솔루트가 아닌, 앱솔루트 왕국의 셀레브리디 교단 성직자들.

남자의 곁을 걷던 여성은, 그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작게 말하였다.


“선생님. 바솔루트의 추기경 한 명이 죽은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우뚝. 남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유롭게 정원을 구경하던 모습과 다를 게 없이 몸 돌렸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이미 정원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건 참 큰일이구나. 그래, 무언가 다른 거는 없었고?”


여성은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말하기를 망설이다가 작게 입을 열었다.


“호위를 함께 한 열한 번째 날개 님도······. 갑옷만 돌아왔다고 합니다.”

“큿···· 크핫!”


남자는 짧게 웃었다.

무언가 생각하듯이 턱을 어루만졌다. 그러다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는 구경이라도 본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하! 그건 참 신기한 일이구나! 누구에게 당했는지 알아봤느냐?”

“그게··· 두 사람 모두 마법진의 텔레포트를 이용한 거 같습니다. 변방의 프로텐시아. 가람왕국에서 일어난 일이란 것만 알고 있습니다.”

“설마 날개를 꺾은 자가 그런 장소에 있을 줄이야. 왕국이 힘을 숨기고 있던 건가? 아니면 상상을 초월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거기가 마계와 제일 가까운 곳이었지 아마···.”


남자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였다. 곧, 몸에 걸친 긴 코트를 펄럭이며 움직였다.

코트 밑으로 드러난 바위같이 단단하고 굵은 팔에는 열한 장의 날개와 네 자루의 검이 그려져 있었다.


“가자, 여기는 볼일이 끝났다. 신전에 돌아가기 전에 젊은 친구가 신세 졌다는 녀석을 보러 가자꾸나.”


남자의 뒤를 따라서 성직자 무리가 이동했다.

목적지는 프로텐시아 가람왕국이었다.

열한 번째 날개의 부고에 대한 일을 조사할 생각이었다


“엣취-”


변방의 도시에서는 작은 기침 소리가 났다.

열병을 앓고 있는 그녀의 곁에는, 한 문지기가 밤새도록 자리를 지켰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이걸로 전야제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작가는 지금 허리가 삔 것과 동시에 감기가 걸렸는데. 여러분은 저 같은 일 생기지 않게 강해지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주세요.

언제나 제 작품을 봐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디 건강한 인생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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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뒤풀이 22.11.26 73 0 14쪽
29 28화 뒤풀이 22.11.25 76 0 11쪽
28 27화 뒤풀이 22.11.24 78 0 9쪽
27 26화 뒤풀이 22.11.23 77 0 10쪽
26 25화 뒤풀이 22.11.22 85 0 12쪽
25 24화 뒤풀이 22.11.21 92 0 10쪽
» 23화 전야제 22.11.20 89 0 21쪽
23 22화 전야제 22.11.19 96 0 18쪽
22 21화 전야제 22.11.18 93 0 18쪽
21 20화 전야제 22.11.17 94 0 16쪽
20 19화 전야제 22.11.16 96 0 14쪽
19 18화 전야제 22.11.15 97 0 22쪽
18 17화 전야제 22.11.14 94 0 15쪽
17 16화 전야제 22.11.13 94 0 14쪽
16 15화 전야제 22.11.12 116 0 12쪽
15 14화 전야제 22.11.11 123 2 14쪽
14 13화 모험가의 활동 22.11.10 125 2 16쪽
13 12화 모험가의 활동 22.11.09 142 2 11쪽
12 11화 모험가의 활동 22.11.08 161 3 11쪽
11 10화 모험가의 활동 22.11.07 185 2 11쪽
10 9화 모험가 길드 + 외전 22.11.06 201 2 13쪽
9 8화. 모험가 길드 22.11.05 214 3 12쪽
8 7화. 모험가 길드. 22.11.04 231 4 13쪽
7 6화 모험가 길드 +1 22.11.04 264 4 14쪽
6 5화. 모험가 길드 22.11.03 308 5 18쪽
5 4화. 길 +1 22.11.02 398 7 13쪽
4 3화. 마왕성 문지기 22.11.02 578 6 24쪽
3 2화. 마왕성 문지기 +4 22.11.01 671 24 16쪽
2 1화 마왕성 문지기 +5 22.11.01 884 2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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