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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12 22:45
연재수 :
2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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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38
추천수 :
130
글자수 :
1,5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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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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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21화 전야제

DUMMY

21화 <전야제>



샴스핀 추기경의 시야가 빠르게 점멸했다.

이윽고 그의 눈에 닿은 건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과 노을 진 하늘. 입구가 무너져 내린 모험가 길드의 외관이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쿨럭.”

“여, 열한 번째 날개여!”


샴스핀이 당황하여 외쳤다.

금 등급 모험가와 필적하는 바솔루트의 정예 성기사. 그 성기사들을 이끄는 성기사단장이 피를 토하였다.


“샴스핀 님, 퇴각 명령을······. 저건 상대해서는 안 될 괴물입니다.”


단 한 번의 공격 이후로 퇴각을 요청했다.

바솔루트 왕국에서 한 명뿐인, 셀레브리디 교단의 열한 명의 팔라딘 중 한 명이 말이다.


-빠그작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이 사고가 멈춘 그때였다.

그들과 거리가 있는 곳에서 나무 조각이 밟혔다.

조금 전에 무너진 길드의 문에서는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음? 더 약하게 하라고?”


구릿빛 피부와 일렁이는 붉은 안광.

가더는 뒤쪽의 누군가와 대화하며 밖으로 나왔다.


“괴물 같은 놈······!”


열한 번째 날개가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의 곁으로 두 성기사가 나타나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실수로 이런······.”


열한 번째 날개는 손바닥을 보였다. 붉은 머리 여기사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너희를 탓하지 않는다. 저건 괴물이다. 신성력이 깃든 검을 간단히 부수고, 주먹 한 번에 이 나를 여기까지 날려 보낸 놈이다.”


두 성기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 괴물 같은 남자에 대해서 바솔루트 왕국의 최고 전력이 내린 평가였다.


“우리의 사명은 추기경님을 수호하는 것. 너희들은 이곳에 남아서 끝까지 본분을 다하라.”

“존명!”


두 성기사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곧바로 붉은 머리 여기사는 전투 태세를 갖추고. 노란 머리 남기사도 검을 빼내 들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의 신을 향한 의심은 없나니!”

“······너희의 희생을 기꺼이 여겨 여신의 보금자리로 갈지어다.”

“가십시오! 셀레브리디 님의 위대하신 날개여!”


열한 번째 날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에 추기경의 팔을 두른 뒤, 바닥을 박차고 모습을 감췄다.


“캣니스. 뒤쫓을까?”


그 모습을 지켜본 가더가 말하였다.

그들이 줄행랑쳤음에도 팔짱을 낀 채 여유를 부렸다.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어느새 가더의 등 뒤에서 나타난 캣니스가 말하였다.

그녀는 항상 착용하던 망토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제가 뒤쫓을게요. 문지기님은 남은 두 사람을 상대해주세요.”

“내가 저 둘을? 그래도 괜찮겠어?”

“네, 여기는 문지기님께 맡길게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부디 조심해서 싸워주세요.”

“노력해 볼게···.”


캣니스는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현장을 벗어났다.


“하아, 저놈들 때문에 또 꾸중 들었잖아.”


가더는 캣니스의 부탁을 떠올리며 머리를 긁었다.

많은 사람이 가상의 원 바깥에서 그들을 지켜봤다.


“야, 안 덤비냐?”


그가 속절없이 지나가던 시간을 못 견디고 말했다.

움찔 몸을 떤 붉은 머리 여기사가 외쳤다.


“나는 바솔루트의 제 일 성기사단 서열 34위. 여신의 뒤를 따르는 발자취이다. 감히 우리의 신성을 모욕한 그대에게 신의 이름으로 벌을 주겠다!”

“그놈의 신성, 신성. 지겹지도 않나?”


가더는 귀를 후벼 파며 귓밥을 날렸다.

두 명의 성기사를 향해서 손가락을 까딱 움직였다.


“선공 주마. 어디 한번 들어와 봐.”

“이 건방진 놈이!”


붉은 머리 여기사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동시에 노란 머리 남기사는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봐, 쟤는 어디에···.”


가더가 등을 돌린 남기사를 향해 손가락질한 그때였다.


“비겁하다 생각하지 마라! 신성을 모독한 자는 모두 즉결 처분이다!”


여기사가 여러 분신과 함께 단검을 내리꽂았다.

하나하나가 진짜 같은 형상을 가진 분신 속에서 정확히 본체의 손목이 붙잡혔다.


“어딜-!”


첫 번째 공격이 소용없자 다리를 움직였다.

땅을 박찬 여기사의 신발 끝에서 예리한 칼날이 나왔다.


"죽어!"


신성력으로 육체를 강화하고, 칼을 빼낸 발을 힘껏 밀어 찼다.

그러자 가더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더니 건물 안쪽으로 처박혔다.


“꺄악!”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한 번 무너졌던 모험가 건물 일부가 또다시 무너져내렸다.

자욱하게 가려진 먼지가 걷히자. 조금 전에 날아간 모험가가 잔해더미 아래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끄, 끝난 거야?"


지켜보던 모험가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그러나 안색이 나쁜 건 그들의 적 또한 그러했다.


‘이건 대체······.’


붉은 머리 여기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온 힘을 다해 걷어차긴 했지만 이렇게 날아갈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녀는 걷어찬 발의 칼날을 확인했다. 분명히 감촉이 있었고 혈액 또한 묻어났다.

그런데도 가슴 한구석에 피어난 이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의문은 몇 가지 가설을 가져왔다.


“으, 으윽. 너, 너무 강해.”


가더가 기적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비틀비틀 일어서는 그를 보며 걱정했다.


“망할.”


하지만 여기사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닿지 않는다.’


무의미한 발버둥, 인형극 안의 꼭두각시 인형,

그녀가 상정한 몇 가지 가설 중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었다.


“으. 으아악! 역시 성기사! 너무 강해! 하지만 도망치면 죽는다!”


도망치면 죽는다니. 여기사는 그가 겁먹은 말투와 다르게 살기조차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허무한 촌극에 헛웃음을 지었다.

이 순간 그녀는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뒷골목 인생에서 성기사가 됐거늘. 마지막 순간에는 성기사의 운명이 그녀를 벼랑 끝으로 떠밀었다.


“으아아아-!”


여기사는 단검을 움켜쥐고 원래의 싸움방식도 잊어버린 채 달려들었다.

당장 머리가 날아갈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살을 파고드는 감촉이 생생히 느껴졌다.


“하. 하하하하하···.”


단검이 복부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어갔다. 가더의 품 안에 온전히 들어갔다.

하지만 이 성과에 기뻐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반쯤 실성한 채 고개를 들었다.


“아, 아프다···!”


검에 찔린 몸이 비틀비틀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품 안에서 안겨야만 볼 수 있는, 무감정한 붉은 눈동자가 있었다.


“윽. 으윽···. 제, 제법이구나.”


이내 툭하고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여기사의 턱에 강한 충격이 들어갔다.

붉은 머리 여기사는 다리가 꺾이는 것을 느끼며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그 와중에 가더는 새삼 무감정한 목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마, 만세! 겨우 이겼어!”


마치 운이 좋아서 이긴 거 같은 외침.

아직 의식이 남은 여기사는 마지막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내 처분은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네 녀석 또한 좋은 꼴은 보지 못하겠구나.”


만세. 가더는 환호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분명 졌음에도 그녀는 이긴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시간 끌기···. 지금 즈음 그 여사제는······.”


더 이상 말을 끝내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그녀가 남긴 말은 모험가 길드를 술렁이게 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 아가씨가 보이지 않아요!”


당장 여사제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과 루나와 여기사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수많은 말들이 오가는 상황 속에서 정작 여사제의 동료는 문밖으로 나왔다.


“후우······.”


가더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어둠이 드리우는 시간이었다.


“캣니스···. 나 잘한 거지?”


그가 무슨 말을 한 건지는. 누구도 듣지 못하였다.

한 여름일 텐데도 베인지역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한없이 차가웠다.



*****



“제기랄!”


골목길에서 샴스핀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운동을 질색하는 그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달리고 있었다.

그가 이토록 바쁘게 움직이는 이유는 오직 하나. 조금이라도 빨리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젠장. 젠장! 야만인 놈들이! 이 야만인 놈들이!”


샴스핀은 제 일을 완료하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을 터트렸다.


“마음에 안 들었어! 처음 어깨를 부딪쳤을 때부터 재수 없는 놈인 줄 알고 있었다고!”


그는 조금 전의 벌어진 일을 떠올렸다.

자신의 성기사들을 무시하고 눈앞까지 다가온 남자. 앱솔루트 여사제에게서 문지기라 불린 그는 벌레 보기보다 못한 눈으로 주먹을 휘둘렀었다.


“제기랄! 제기랄-!”


샴스핀은 그때를 떠올리고 가랑이를 움켜쥐었다.

축축해진 바지에 대한 수치심을 떠올리며, 일을 망치게 된 방해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다.


“문지기라 불린 놈! 반드시! 반드시 네 놈만큼은 곱게 보내주지 않겠다!”

“추기경님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혀 주십시오. 화가 난 추격대가 쫓아올지 모르니 지금은 목소리를 낮춰야 할 때입니다.”


샴스핀은 고개를 휙 돌렸다.

부하를 희생하면서까지 자신을 구해준 이에게도 여지없는 분노를 드러냈다.


“한심한 놈! 그깟 놈 하나 못 막는 게 말이 되느냐? 제기랄! 그 건방진 놈은 사형이다! 추기경인 나를 폭행하고 성기사 둘을 죽이지 않았던가! 그것도 모자라서 신에 대한 경외심은 손톱만큼도 없으니. 그런 못된 놈도, 그런 몹쓸 자를 거느린 가람왕국도 숙청 대상이다!”

“···모든 것은 여신의 뜻대로.”

“그렇다! 우리의 정의 대로다! 오늘 이날을 기점으로 가람왕국은, 여신의 분노를 재우기 위해서 매일매일 봉사해야 할 거다-!”


샴스핀은 악랄하게 웃었다.

은밀하게 새겨둔 대륙 간 이동 마법진이 멀지 않았다.

그는 건방지게 행동한 놈들을 어떻게 다룰지 생각하며 기분을 달랬다.


“버릇없는 문지기 놈의 목을 성문에 매달고. 건방진 브레드 머슬릿도 같이 매달아주마. 그리고 그래. 나에게 반항했던 종업원 계집과 사제 년은 밤새도록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해주마.”


군침을 다시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반드시 그렇게 이뤄지리라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본국에······’


신성에 몸을 담근 자가, 성직자답지 않은 사악한 미소가 얼굴에 담던 그때였다.

마법진과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은 골목에서였다.


“추기경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열한 번째 날개가 갑작스레 발을 멈췄다.

한참을 달려온 몸을 멈추자 폐가 게걸스럽게 공기를 탐했다.


“헉··· 헉······. 뭐냐 무슨 일이냐?”


샴스핀은 앞을 가로막은 팔라딘의 어깨를 밀었다.

그 너머에서 셀레브리디 교단의 사제복이 보였다.


“오호, 기특하게도 기다리고 있었구나. 이제 우리가 왔으니 어서 마법진까지 안내를····.”


본국의 사자에게 다가서던 그때였다.

열한 번째 날개가 칼을 빼내 들고 그 앞을 막아섰다.


“뭐, 뭐냐. 왜 그러는 거냐?”


샴스핀은 돌발 행동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어째서 같은 편에게 검을 거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또 뭐 하는 짓이냐. 어째서 같은 동족에게 검을 겨누는······."


그 눈길이 다시 상대방을 살핀 그때였다.

두 눈이 가늘게 뜨였다.


“뭐냐······.”


본국의 사자에게서 교단의 문양이 그려진 검은 장갑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이 왕국에 함께 찾아온 노란머리 성기사의 장갑이었다.


“너, 너··· 칼이냐?”


당황하여 물었지만, 동일인일 리 없었다.

상대방은 얼핏 봐도 남자의 체구라 보기에 무리가 있었다.


“대, 대체 너는 누구냐!”


샴스핀 추기경이 위화감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그에 반해 앞의 호위는 빠득, 이를 가는 소리를 냈다.


“나, 열한 번째 날개가 그대에게 명한다. 망토를 벗고 얼굴을 보여라 변절자여."


열한 번째 날개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음성은 차분했지만. 격한 감정을 짓누르고 있는 고요함이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같은 교단을 해한 자여! 얼굴을 보이고 두 눈으로 여신의 날개를 마주해라!”


천둥 같은 음성이 퍼지자. 그제야 상대방은 망토의 모자를 벗었다.

그런데 후드 밑에 드러난 얼굴은 의외의 존재였다.


“너는······.”


열한 번째 날개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샴스핀 추기경도 두 눈을 크게 떴다.

샴스핀은 냉혹한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을 손가락질했다.


“어이가 없군. 고작 사제가 팔라딘과 추기경의 앞길을 막는 것이냐?”


망토를 벗고 정체를 드러낸 인물.

상대는 자신들과 대적하였다 말하기도 하찮은. 가증스럽고 연약한 여사제였다.


“하, 하하하! 어이가 없군! 그 괴물 같은 놈이 우리에게 이걸 보여주라 하더냐? 아니면 장갑 하나로 우리의 발목을 잡을 줄 알았더냐? 그깟 것이 무엇을 증명한다고!”


샴스핀은 흥분하였다.

고작해야 신전의 얼굴 자리나 할 법한 계집이, 그들 앞에서 무얼 할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하하하, 나는 너 때문에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잖냐!”


추기경은 열한 번째 날개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에 열한 번째 날개도 검을 집어넣었다.

그는 샴스핀 못지않게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캣니스를 바라봤다.


"아직 어린 나이에 실수했다고 생각하마. 지금이라도 장갑을 내놓으면 순순히 보내주겠다."


상대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였고. 어린아이 보듯이 여겼다.

열한 번째 날개가 손을 뻗어서 예의 물건을 요구했다.


-툭


그런데 캣니스는 장갑을 떨어트렸다.

그 행동에서 이어진 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성전에서 도망가는 건가요.”


꿈틀. 추기경의 눈썹이 불편하게 움직였다.

열한 번째 날개도 이마에 핏줄을 세웠다.


“말조심해라 변절자여. 우리의 성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시간을 가지고 다시 돌아올 뿐. 당장 너를 죽이지 않는 것은 네가 내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드는군요. 신앙의 증명은 겉모습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돌아오길 기다릴 바에야 차라리 여기서 끝을 보는 쪽을 택하겠어요.”

“끝? 들었느냐 열한 번째 날개여? 한낱 사제가 위대한 팔라딘을 눈앞에 두고도 잘도 지껄이는구나.”


추기경은 비죽거리며 웃었다.

열한 번째 날개는 한숨을 내쉬고 검을 빼내 들었다.


“마지막 경고다. 지금 당장 여기서 모습을 감추어라.”


바닥을 향한 검의 날에서 수많은 금빛 알갱이가 떠올랐다.

황금빛으로 강화된 예리함이 검을 둘러쌌다.


"날개여 괜히 봐줄 것 없다! 당장 저 계집의 목을 쳐라!"


추기경은 명령이라며 외쳤다.

열한 번째 날개는 그를 흘겨보고는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이라도 장갑을 주우면 봐주도록 하겠다.”


망설임 없는 움직임으로 캣니스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한없이 매정한 목소리가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회는 길지 않다.”


검 끝을 조금 더 밀어붙이자, 하얀 피부에 한줄기 선혈이 흘렀다.

캣니스는 그를 눈앞에 두고 차분히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다.”


열한 번째 날개는 그녀의 목에서 검을 회수했다.

다시 추기경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라고 제 일 성기사단 서열 2위인 분이 그러셨어요.”


-꿈틀


열한 번째의 눈가에 핏줄이 솟았다.

눈동자에 살기 어린 이채가 띠었다.

용서할 수 없는 말을 한 여사제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히-!”


열한 번째 날개의 눈동자에 깊은 분노가 자리하였다.

부하를 죽인 것도 모자라 그 죽음을 모욕하는 행위를 저지르다니!

검에서 신성력이 방출되고 바람이 잘릴 정도의 예리함을 보였다.

뒤에 서 지켜보던 샴스핀 추기경은 압박감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기회는 충분히 주었다-!”


열한 번째 날개가 고성을 토해내며 검을 위로 들었다.

사선으로 베는 그 순간, 여사제의 몸이 검을 휘두른 길을 따라서 갈라졌다.


-털썩


열한 번째 날개는 한 번 휘두른 검을 바닥에 꽂았다.

분노를 참느라 짓씹던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칼······!”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의 장갑을 향하여 손을 뻗었다.


“너는 내가 아는 자 중 최고로 명예로운 기사였다. 이딴 죽음으로 모욕받을 존재가 아니다!”


목의 울대가 슬픔을 삼키듯 움직였다.

그는 사라진 온기를 쫓아서 장갑을 이마에 갖다 댔다.


“분명 괴로운 고문을 당했겠지.”


열한 번째 날개는 장갑에 영혼이라도 남은 것처럼 속삭였다.

자신을 능욕하기 위해 여사제를 보낼 정도이니, 본체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알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잠들어라. 네 놈을 죽인 녀석들 전부, 편히 보내지 않겠다.”


그는 장갑을 움켜쥐었다.

두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는 분노가 자리하였다.


“가시죠 샴스핀 님. 이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슬픔과 함께 장갑을 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하를 이렇게 만든 자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하며 눈물을 닦은 그때였다.


“애도는 끝나셨나요?”


그 순간, 열한 번째 날개의 눈이 크게 뜨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자 입을 벌렸다.

앱솔루트 왕국의 대장장이가 5년 동안 신성력을 담아서 제작한 성검-아스칼론. 그 예리함이 몸을 갈랐을 텐데도 여사제는 말을 하고 있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날개의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고?!”


옷이 갈라져 하얀 피부가 드러났음에도 여사제의 몸은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팔라딘의 검을 맞았으면서 이렇게 멀쩡한 모습이라니.

사특한 요술을 부린 게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사님. 혹시 싶지만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캣니스는 잘린 사제복 밑단을 붙잡아 매듭지었다.

이윽고 여신의 날개를 바라보는 푸른 안광은 차분하게 일렁였다.


“죄송하다는 말은 기사님이 아니라 저에게 한 말이었으니까요.”


경악에 물들어있던 열한 번째 날개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작가의 TMI: 셀레브리디 여신의 날개는 날개로 임명 받을 때 한 가지 요청을 할 수 있다. 성검 아스칼론은 그때 받은 물건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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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7화 전야제 22.11.14 92 0 15쪽
17 16화 전야제 22.11.13 94 0 14쪽
16 15화 전야제 22.11.12 116 0 12쪽
15 14화 전야제 22.11.11 123 2 14쪽
14 13화 모험가의 활동 22.11.10 125 2 16쪽
13 12화 모험가의 활동 22.11.09 142 2 11쪽
12 11화 모험가의 활동 22.11.08 161 3 11쪽
11 10화 모험가의 활동 22.11.07 185 2 11쪽
10 9화 모험가 길드 + 외전 22.11.06 200 2 13쪽
9 8화. 모험가 길드 22.11.05 214 3 12쪽
8 7화. 모험가 길드. 22.11.04 231 4 13쪽
7 6화 모험가 길드 +1 22.11.04 264 4 14쪽
6 5화. 모험가 길드 22.11.03 308 5 18쪽
5 4화. 길 +1 22.11.02 398 7 13쪽
4 3화. 마왕성 문지기 22.11.02 577 6 24쪽
3 2화. 마왕성 문지기 +4 22.11.01 670 24 16쪽
2 1화 마왕성 문지기 +5 22.11.01 880 23 19쪽
1 프롤로그 +7 22.11.01 996 35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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