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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22 20:57
연재수 :
20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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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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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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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3화. 마왕성 문지기

DUMMY

3화. <마왕성 문지기>



잠시 현실을 자각한 시간을 가지고. 성직자는 마왕성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자폭?”


가더는 이야기를 재차 확인했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두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마왕님과 너희의 힘의 차이가 너무 커서, 마법사가 네 몸의 신성력을 이용해 자폭시킨 거라고?”

“네, 저도 믿기지 않아서 악몽인 줄 알았는데······.”


황당한 이야기에 이마를 짚었다.

지금껏 수많은 계략을 겪은 그였지만, 용사가 동료를 신성력 폭탄으로 쓴 일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그동안 마왕성이 평화로웠다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움찔. 성직자의 어깨가 떨렸다.

가더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하아······.”


동료의 등에 칼을 꽂은 놈들인데도 대신 죄책감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지만 약한 인간이니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래서 몸은 어때?”

“몸이요?”

“소생의 단검을 처음 사용해 봐서 잘 된 건지 모르겠네. 몸에 이상한 점은 없어?”

“네, 멀쩡해요. 오히려 전보다 상태가 좋아진 거 같아요.”


성직자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아직 신성력이 부족한 감이 있지만 확실히 몸 상태는 좋았다.


“그래? 그거 다행이네.”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한 한마디.

성직자는 옅은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을 보고 제자리에 굳었다.

그녀가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느꼈지만. 눈앞에 남자는 나른해 보이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아, 그리고 네 옷은 내가 다른 걸로 갈아입혔어. 그나마 쓸만해서 건진 건 이 망토 정도인데···.”

“네?”


낯 뜨거운 감정을 느낀 것도 잠시. 성직자는 천천히 가슴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원래 입었던 사제복은 어디 가고. 허전한 셔츠 안쪽과 무릎 위까지 올라온 치마가 있었다.


“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이 있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어지러움에 관자놀이를 짚었다.

떨리는 손으로 망토를 건네받고 망토의 모자를 뒤집어썼다.

무릎을 덮은 담요를 더욱 단단히 둘러쌌다.


“···어디까지 보셨어요?”

“망토 빼곤 다 불타 있었어.”


정적.

어색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감돌았다.

침묵 속에서 한마디 단어가 오갔다.


“변태···.”

“미안.”


성직자는 볼을 부풀린 채 가슴께까지 무릎을 끌어당겼다.

그래도 가더가 내심 걱정했던, 소리를 지르거나 결투를 신청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화 안 났어?”

“화났어요.”

“괜찮은 거 같은데?”

“화났다고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입술을 삐진 듯 내밀었다.

이에 가더는 입을 다물고 얌전히 나뭇가지나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성직자의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가더의 여유 있는 태도가 짜증이 났다. 어른처럼 행동하는 게 짜증이 났다. 마음 어딘가 패배감이 드는 성직자였다.


-꺄르르


“읏!”


어디선가 아이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바람이 불더니 담요가 뒤집혔다.

이 때문에 하반신 쪽 시선을 신경 쓰지 않던 자세가 드러나고 말았다.


“눈, 눈 돌려요!”

“어, 그래.”


이번에도 얼굴을 붉히는 건 그녀뿐이었다.

여전히 조각상 같은 얼굴에는 동요하는 기색 하나 없었다.

성직자는 더욱 담요를 꽁꽁 둘러싸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


제 반응이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무리 은인이어도, 함께 있는 분위기가 편안해도, 상대는 마족이었다.

그것도 그냥 마족이 아닌, 인족의 숙적인 마왕군 말이다.


“···당신은 왜 저를 구했어요?”


성직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빙빙 돌려서 묻는 건 그녀의 성정과 맞지 않았다

이에 가더는 팔짱을 껴서 겨드랑이 밑에 손을 두었다.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결단을 내린 듯 팔짱을 풀었다.


“음. 좀 더 나중에 설명하려 했는데.”


그는 위대한 계획을 들려줬다.

어쩌다 마왕성 문지기를 그만두게 됐지만,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피폐한 삶을 살고 싶는 않다.

그 끔찍한 마왕성이 재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고. 그냥 인간계에서 은퇴 후의 삶을 즐기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응?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성직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이마를 짚고, 무언가 잘못된 듯 고개를 저었다.


“문지기님···.”

“응, 왜?”

“혹시 바보예요?”

“으응? 뭐?”

“아니에요. 잘못 말했어요. 그냥 잠깐 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

“어, 그래···.”


가더는 입을 다물고 얌전히 앉았다. 그러다가 좀이 쑤시면 모닥불의 재를 들쑤시곤 하였다.

그동안에 성직자는 미간 사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녀가 이토록 생각하는 바는 하나였다.


‘조금 덜떨어진 마족인 걸까?’


생긴 것과 행동은 멀쩡하니 그런 거 같지 않다.

그렇다면 자신을 놀리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닐지 의심했다.


‘하지만 딱히 거짓말하는 거 같지도 않고···.’


거짓을 간파하는 게 그녀의 주특기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능력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의심하는 족족 가더의 말을 사실이라고 판명됐다.

이건 차라리 제 감이 죽었다고 믿고 싶은 정도였다.


‘하긴 동료에게 버림받았으니 만만해 보였을지도···.’


성직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몸을 떨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 이런.’


그제야 마왕성에서의 기억을 언급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마력이 심장을 파고들고, 뒤를 돌은 순간 등을 떠밀린 순간을 기억했다.

배신당한 기억이 맹독처럼 몸에 퍼져갔다.

식은땀이 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흐윽···.”


모골이 송연했다.

뒤늦게 찾아온 배신감이 숨을 막았다.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눈앞이 뿌예졌다.


”성직자?“


가더가 본 성직자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봤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용사님···.”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머리를 감싼 채 떨었다.

시간이 지나도 성직자는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더는 잠시 고민한 뒤, 언젠가 배웠던 방법을 사용했다.

떨고 있는 몸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하아··· 하아······.”


숨을 쉬는 것을 따라서 갈비뼈가 오르내렸다.

효과가 있는지 서서히 발작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내 완전히 숨소리가 진정됐다.

성직자는 그의 몸에서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요. 저는 이제 괜찮···”

“열은 없는 거 같은데?”

“네···?”


성직자가 정신을 회복하고 말한 그때였다.

그녀의 시야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와 매끈한 갈색 피부가 고스란히 눈에 담겼다.


“아니면 이게 부작용인가?”


이마가 다른 이의 이마와 닿았다.

성직자의 당황한 눈동자가 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 정신 차렸구나?”

“지, 지금 이게 무슨···!”


성직자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을 뒤로 움직였다가 담요 너머로 느껴지는 단단한 물체에 헉, 숨을 삼켰다.

근육질 팔이 쓰러질뻔한 등을 받치고 있었다.

얼굴은 더욱 가까워졌다.


“역시. 많이 아픈 거지?”


거칠지만 다정한 손가락이 눈가를 스쳤다.

터무니없이 맑고 붉은 눈동자 안에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뭐, 뭐, 뭐 하는 거예요!”


이에 성직자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가더의 몸을 밀쳐내고 거리를 두었다.

양쪽 귀와 양 볼은 라즈베리처럼 붉게 변했다.

옷감에 남은 열기를 느끼자 더욱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벼, 변태!”


성직자가 자지러지듯 소리친 한마디에, 가더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이윽고 그는 시무룩해졌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거리감이 없어서. 당신이 정말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 얼굴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성직자는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냈다.

그를 탓하는 건지 말을 수습하려는 건지조차 알기 힘든 말이었다.


“그, 그러니까 얼굴이 가까워서···!”


성직자는 발작에서 깨어났을 때의 얼굴을 떠올렸다.

서로의 이마가 맞닿은 순간에 보았던 붉은 눈동자와 입술이 생각났다.


‘으. 으아···!’


곧 그녀의 얼굴 전체가 사과보다 붉게 익어갔다.

심장은 드래곤보다 더 빠르게 뛰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고동쳤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성직자는 알지 못했다.

세상을 구한 용사이기 이전에 열일곱 살의 소녀다.

잘생긴 남자를 보면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한창 다양한 경험을 쌓을 때이지만, 그녀의 인생은 지나치게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었다.


"성직자. 내가 네게 무슨 잘못이라도···"

“떠, 떨어져서 이야기해요!”


흔히 말하는 야성미가 넘쳐흐르는 가더의 몸.

미(美)에 대한 면역이 없는 성직자에게 자극이 심했다.


“자, 잠깐만 5미터 안으로 들어오지 말아 봐요!”


그렇다 보니 성직자가 진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가더의 시무룩함이 해소되는 일은 없었다.



*****



말을 나누지도 못한 채 꽤 긴 시간만 흘러갔다.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성직자는 접은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성직자. 혹시 아직도 대답을 못 정했어?”


그때, 가더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에 성직자는 ‘아.’ 작게 소리 내며 눈에 띄게 당황해하였다.


“아, 아니에요. 잠시만요. 잠시만 시간을···.”


잠깐의 헤프닝 때문에 까먹고 있었다.

말끝을 흐린 성직자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가 했던 제안을 천천히 떠올렸다.

그를 센츄어리에 정착하게 도와주는 것이 그가 한 부탁이었다.


‘길어봤자 몇 개월···.’


성직자는 생각했다.

목숨값에 비하면 싼 거래였다.

하지만 문제는 이 남자를 센츄어리 대륙으로 데려가는 부분이었다.


‘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아무리 자신이 원래 힘의 절반밖에 돌아오지 않았어도, 고위 사제 이상의 신성력이다.

그런 그녀를 손쉽게 제압하는 존재를 센츄어리 대륙에 데려가도 괜찮을지 알 수 없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입장과 마왕군 소속 마족이라는 입장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았다.


“그··· 문지기님?”

“왜?”

“괜찮다면. 혹시 몇 년만 시간을 두고 도와드려도 될까요?”


그 말에 가더의 눈썹 한쪽이 올라갔다. 그 눈빛은 ‘이유는?’이라고 묻고 있었다.

성직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문지기님을 데리고 가기에는 문제가 많아서요. 아무래도 아직 센츄어리에는 마왕군 잔당이 남아있고··· 또 저도 그거 때문에 제가 바쁠 테니까··· 조금 시대가 안정되면 그때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성직자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자기가 하는 말이 얼마나 형편 좋고 이기적인 말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그의 인간계 정착을 위해서라도. 모든 일을 완벽히 정리해 놓은 후가 좋았다.


“용사님과도 다시 만나야 해서요···. 비록 안 좋게 헤어졌지만. 대륙이 안전하지 않은 이상 동료로서 함께 해야 하는···”

“하!”


한참 이야기를 듣던 가더가 비웃음을 흘렸다.

그 목소리에 성직자가 움찔 놀라며, 시선을 내렸다.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서 이어질 비난을 기다렸다.


“그 이유는 못 들어주겠네.”


가더는 말을 뱉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처 그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성직자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물론 문지기님의 일은 잊지 않을 거예요. 원한다면 신께 맹세해도 좋아요. 모든 일이 정리되면 그때 데리러 올 테니까······”

“마음에 안 들어.”


파삭-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와 함께 성직자는 한 걸음 물러났다.

다시 한번 흙을 지르밟는 소리가 들리자 똑같이 한 걸음 더 물러났다.


“용사와 함께해야 하니까 내 부탁을 뒤로 미루겠다고?”


성직자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말을 하는 가더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껏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 짐작했던 마족이, 정말로 아무런 욕심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누구 때문에 당장 어젯밤도 밥을 굶었는데 말이야.”


성큼성큼 다가오는 가더를 따라서 뒷걸음치는 걸음이 빨라졌다.

몸을 감싸던 담요가 스르륵 떨어졌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이 단숨에 꺼졌다.

성직자는 몸을 떨면서 앞을 보았다.

마계의 달빛마저 빨아들인 붉은 눈동자와 정면에서 마주했다.

그것은 불꽃과도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표정 지으면서. 내 부탁을 뒤로 미루지 마.”


그런 표정.

예상치 못한 말을 듣자. 성직자는 무의식중에 얼굴을 만졌다.

그러자 미소 짓는 줄 알았던 얼굴이, 사실은 한쪽 입꼬리가 내려와 있었다.

눈가는 건드리기만 해도 따끔거렸다.

미간 사이에 생긴 깊은 골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짐작 가게 했다.


“잘 들어. 나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어. 그런데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성직자의 얼굴 앞으로 거대한 손이 다가왔다.

한번 뻗었던 손이 어째선지 제자리로 돌아갔다.


“확실히 대답해.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가더는 팔짱을 끼고 성직자를 노려봤다.

그 재촉에 성직자는 말문이 막혔다.

하고 싶은 일을 말하라니. 용사에게도 들은 적 없는 권유였다.

그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저는···.”


하지만 그렇기에 성직자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확실히 조금 전에 자신이 했던 이야기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인제 와서 하고 싶은 일을 정하라 해도 뚝딱 나올 리 없었다.

항상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찾는 게 성직자 그녀였기에.

고민하는 시간은 꽤 길어졌다.

침묵은 길게 늘어졌다.

하늘을 나는 새소리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전부였다.


“성직자!”


그때였다.

성직자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가더의 모습을 보았다.

그 표정은 그녀에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무언가에 놀란 표정이었는데. 그가 일직선으로 팔을 뻗었다.


“삐익.”


조금 전까지 미세하게 들리던 새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것은 바로 머리 뒤에 있었다.

성직자가 놀라서 뒤를 돌았지만, 상황을 인지하는 것보다 그것의 행동이 빨랐다.

돌풍이 자신을 휩쓸었다.


‘아.’


성직자는 자신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베인지역, 수많은 마수가 날뛰는 곳.

코끼리도 잡아먹는 베인지역의 터줏대감인 흰눈갈가마귀의 발톱이 다가왔다.


‘어떡하지?’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위험을 느낀 몸이 신성력을 운용했다.

그러나 지금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저 발톱이 몸통을 꿰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저리 꺼져!”


그건 실로 한 끗 차이였다.

발톱이 눈앞에 드리운 직후 가더가 마수를 쫓아냈다.

성직자는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한 뒤에야, 눈앞에서 소리치는 목소리를 들었다.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그를 보았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 그곳에 있었다.


“새고기 녀석. 감히 남의 것을 탐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침착함을 되찾아갔다.

다행히 몸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거대했던 비행 형 마수도 일단은 도망갔다.


“감사해요, 문지기님. 그런데 저 이제 괜찮···”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성직자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곧 소스라치게 놀라서 손을 뗐다.


“문지기님 옷이!”


그가 입었던 옷이 넝마조각이 되었다.

뜨거운 온기가 피부 위로 곧장 느껴지자 얼굴이 붉어졌다.

성직자는 민망한 기분에 휩싸여, 더욱 팔을 뻗어 떨어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손목을 붙잡혔다.


“뭐, 뭐, 뭐, 뭔가요?!”


당황스러움을 느낀 일도 잠시. 그가 입을 열었다.


“너, 한 가지만 묻자. 너는 정말로 내가 아니라 용사를 선택할 거야?”

“네?”

“젠장! 나를 버리고 용사에게 갈 거냐고!”


성직자는 멍한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잘못 들으면 그녀가 그를 배신하기라도 한 줄 알 소리였다.


“그게 무슨! 제가 버리기는 누구를 버린다는···!”


어이없어서 반박하려 했다.

그러다 이내 그가 진심으로 화낸다는 것을 깨닫고 대답을 늦췄다.

성직자는 잠시 우물쭈물 대답을 망설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가더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눈에는 또 예의 감정이 깃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가 꾸욱, 주먹을 쥐며 손을 내렸다.

벌써 두 번째 같은 행동이었다.

두 사람 다 그 행동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너는 줏대도 없냐? 너를 죽이려고 했던 녀석에게 돌아가고 싶어?”

“죽이려 했던?”

“놈이 널 죽이려고 했잖아! 다른 이유라면 기다릴 수 있는데. 나는 마족이고 놈은 인간이라서 나를 버리겠다는 건 너무하잖아!”


가더는 답답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손목을 그러쥐며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네 표정을 봐! 그게 가고 싶다는 인간족의 표정이야? 그렇지 않은 게 보이니까, 나랑 함께 인간계로 가서 복수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복수···.”


여전히 꿈을 꾸는 듯한 반응이 돌아왔다.

가더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성직자와 거리를 두고 제 가슴을 두드렸다.


“아우! 답답해서 진짜!”


또다시 거센 바람이 머리카락을 나부끼게 하였다.

한 줄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인기척이 드리웠다.

가더의 얼굴에는, 안 그래도 심란한데 새고기가 거슬리게 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젠장,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줄 테니까, 같이 다니자는 거야.”


결국 했던 말의 반복이었다.

가더는 다시 한번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성직자는 바위 못지않게 단단한 품에 몸을 기대었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시선을 위로 올렸다.


‘어째서.’


멍한 상태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가더가 진지한 표정으로 마수와 대치하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어렸을 적에 꿈꾸었던 이상향 같은 모습으로.

어째서 그가 이렇게 자신을 위해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답은 여전히 얻지 못했다.

조용히 그가 팔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네가 싫은 일이라면 억지로 하지 마. 나를 실컷 이용해. 나도 너를 이용하는 것뿐이니까, 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참지 말라고.”


그 말은 마른 우물에 떨어지는 빗줄기와 같았다.

마음속에 생긴 파문만큼이나, 커다란 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돌풍이 불었다.

성직자의 금빛 머리카락이 한순간 뒤집혔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윽고 발이 땅에 닿자, 눈앞에 그가 무릎 꿇었다.


“그러니까 나를 마계에서 데려가 줘.”


검은 깃털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깃털의 틈새 사이로 햇빛이 쏟아졌다.

그 기이한 광경 속에서 가더는, 사랑 고백이 우스울 정도로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제발 그냥 가지 말아줘.”


같이 있어 달라는 애원.

성직자의 두 눈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천천히,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잘못 알았던 걸까.’


성직자는 그의 눈가를 조심히 어루만졌다.

손이 닿은 눈꺼풀이 닫혔지만 거부하거나 내쳐지지는 않았다.


“문지기님.”

“응.”

“저에게 무얼 바라는 건가요?”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눈가를 만지던 손이 붙잡혔다.

손바닥 위로 붉은 눈의 짐승이 이마를 갖다 댔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야. 더 이상 혼자 있기 싫고 이용당하는 것도 싫어. 나도 너희들 용사처럼 대등한 관계를 갖고 싶어.”


성직자는 깨달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담긴 건 죄악으로 치부할 탐욕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갈망하는 삶에 대한 욕심. 동시에 처절할 정도로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어째서 그가 이렇게 외로움에 몸부림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모습에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는 닮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성직자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양손으로 그의 뺨을 감싸고, 붉은 입술 위에 제 입술을 포갰다.


“캣니스 센츄어리.”


입술을 떼고.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혹시 발음이 잘못됐을까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캣니스 센츄어리예요.”


스스로 이름을 밝힌 캣니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는 스스로 자문했다.

어째서 그의 부탁에 어울려주게 된 걸까. 하고.


-뭐든 도와줄 테니까!


분명 그가 하는 말이 악마의 속삭임만큼이나 달콤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 따름이나 거창한 복수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저 이런 작은 변심 정도는 허용해 달라는 욕심을 가졌을 뿐이다.

그와 함께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작은 양이 모시는 여신님께 청합니다.”


캣니스는 한 발짝 물러나서 두 손을 모았다.

눈앞에 있는 마족 앞에 무릎 꿇었다.

그녀가 모시는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저 캣니스 센츄어리는 셀레브리디 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현 시간부로 문지기님의 여정을 함께하며 축복을 내릴 것을 맹세합니다.”


어쩌면 이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행동에 있어서는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신의 이름으로 하는 축복과 예속의 계약.

가더가 바랐던 대로 성직자는, 용사보다 우선하여 그의 여정에 함께하기로 맹세했다.


“후우···.”


맹약을 끝낸 성직자가 지친 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훗날에 변심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스스로 달기를 자처한 목줄이었다.

설령 상대방이 자신을 이용한다고 해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한. 이 목숨이 누구에게 받은 건지를 잊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감정적으로 저지른 행동.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섣부르고 멍청한 행동이었다.


“음. 그거 좋은데? 그러면 나도 할까?”

“네?”


그런데 여기서 그들의 관계는 그치지 않고. 가더가 어처구니없는 말을 뱉었다.

이후의 일은 캣니스가 말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나, 가더 타나토스가 타나토스 님의 이름을 걸고 수호의 맹약을 하겠다. 앞으로 캣니스를 방해하는 모든 존재에게서 그녀를 지킬 것을 맹세하겠다.”


기사가 충성을 바치는 것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의 가벼운 목소리가 아닌 진지함이 깃든 목소리였다.


“어때? 이러면 인간족처럼 공평하지?”


맹세를 끝내고는 가벼운 말투로 말한다.

이에 캣니스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어쩌자고 저에게 수호의 맹약을···.”


기사가 평생을 바칠 주군에게 맹세한다는 맹약.

어쩐지 순수한 아이를 잘못된 일로 끌어들인 거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캣니스가 가르칠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결국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지친 입꼬리를 올렸다.


“후훗. 저만 바보인 게 아니었네요.”


배를 부여잡고 쿡쿡 웃었다. 너무 웃어서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문지기님. 섣부르고 충동적이었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나름의 신념이 있었겠지만, 섣부르고 충동적인 행동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서로 이 맹약을 족쇄라고는 느끼지 않았다.


“함께 맹세해 주셔서 감사해요.”


캣니스는 미소 지었다.

모험 중에 처음으로 느낀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가더도 그녀의 웃음을 보고 씩 웃었다.

본인 앞머리를 쓸어올리니, 바람에 내려왔던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이마를 드러냈다.


“그러면 축하하는 의미에서 이걸 먹도록 하자.”


그러고는 지금껏 옆에 있었던 물건을 들어 올렸다.

캣니스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흰눈갈가마귀의 사체를 한 손으로 든 그를 보고.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흰눈갈가마귀를 먹을 수 있던가요···?”

“응? 아마도. 못 먹을 건 없겠지.”


한 번 막다른 길로 내몰린 두 사람의 평안한 삶을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얻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인간 불신 속에서 새로운 인연을 다시 얻었다.

물론 그들의 삶이 생각만큼 평탄할지는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문지기님! 왜 손질을 저한테 맡기는 거예요!”


어쩌면 둘 중 하나는 벌써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무르기에는 이미 늦었다.


“문지기님-!”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11/13 수정했습니다~ 그런데 왜 글자 수가 1만 자로 늘어난 걸까요···?
후우··· 글하고 그림은 왜 끝도 없이 수정해야 할 부분이 보이는 걸까요···. 프로 작가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작가의 TMI: 가더의 신장은 191cm입니다. 다만 갑옷을 입으면 2미터가 훌쩍 넘습니다. 캣니스의 신장은 155cm입니다. 제 키는 180cm입니다

작가의 TMI: 용사의 이름은 그냥 게일이다. 용사의 일행 또한 용사라고 불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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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화 전야제 22.11.12 116 0 12쪽
15 14화 전야제 22.11.11 124 2 14쪽
14 13화 모험가의 활동 22.11.10 125 2 16쪽
13 12화 모험가의 활동 22.11.09 142 2 11쪽
12 11화 모험가의 활동 22.11.08 161 3 11쪽
11 10화 모험가의 활동 22.11.07 185 2 11쪽
10 9화 모험가 길드 + 외전 22.11.06 201 2 13쪽
9 8화. 모험가 길드 22.11.05 214 3 12쪽
8 7화. 모험가 길드. 22.11.04 231 4 13쪽
7 6화 모험가 길드 +1 22.11.04 264 4 14쪽
6 5화. 모험가 길드 22.11.03 308 5 18쪽
5 4화. 길 +1 22.11.02 398 7 13쪽
» 3화. 마왕성 문지기 22.11.02 579 6 24쪽
3 2화. 마왕성 문지기 +4 22.11.01 672 2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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