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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4.27 10:06
연재수 :
189 회
조회수 :
11,069
추천수 :
127
글자수 :
1,432,441

작성
24.02.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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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38화 십강[十强]

DUMMY

138화 <십강[十强]>



“아무도 안 계세요?”


캣니스와 게이로드는 여관의 문턱을 넘었다.

숲 한가운데에 여관이 있다는 걱정과 다르게 내부는 아주 깨끗했다.

방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모험가 일곱 파티는 거뜬히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여관에 빈방이 많고 규모가 컸다.


“신기하네요. 당연히 문제가 있을 줄 알았는데.”


캣니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관 일 층에는 테이블이 가득했다.

한쪽 벽면에 있는 주류도 그렇고, 식사도 함께 제공해주는 형태인 듯했다.


“생각보다 더 제대로 된 여관이네요.”


이 층에는 방이 있었다.

비록 주인이 없어서 이 층까지 올라가 보지는 않았지만, 깨끗한 계단 난간으로 봤을 때 방 상태도 또한 훌륭할 터였다.

여관에 대한 전반적인 첫인상은 호평이었다.

길도 없이 숲 한가운데에 있는 여관치고는 수준이 높았다.


“그나저나 주인분은 어디로 간 걸까요? 식자재라도 채우러 간 걸까요?”


그런데 이리 훌륭한 여관이 있는데도 주인이 안 보였다.


“아직 날이 밝으니 어디 간 모양이야~ 이런 곳은 보통 밤 장사를 기본으로 하니까~”


주인 없는 여관에서 캣니스와 게이로드는 나름의 추측을 했다.

적어도 관리받지 않은 여관은 아니니까 금방 주인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주인이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남은 일행은 릴리트가 있으니 찾아오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캣니스. 들었니?”

“네, 돌아왔나 봐요.”


캣니스와 게이로드는 동시에 일어섰다.

한참 의자 위에서 발을 구르던 그때, 바깥에서 인기척이 나타났다.

그들은 여관의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문 쪽으로 갔다.


“씨발. 흙먼지 들어오게 문은 왜 안 닫힌 거야?”


그런데 들어오는 인영이 심상치 않았다.

상스러운 욕을 뱉으며 들어오는 목소리는 여관의 청결함과 거리가 있었다.


“청소하자마자 또 청소해야 하잖아!”


심지어 미세하게 살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단순히 혼자서 짜증을 낼 뿐인데 캣니스와 게이로드는 긴장했다.

일단 그들이 느낀 바로 여관 주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거 같았다.


“뭐야? 한 놈이 아니었어?”


집으로 들어오던 여관 주인이 눈을 마주쳤다.

밝은 햇빛 탓에 구체적인 모습이 일순 가려졌다.

캣니스와 게이로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그에게 시선 떼지 않았다.

문 안으로 들어오는 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더욱 집중하였다.


“후, 씨발. 오늘 무슨 날이냐? 무슨 세 명이나 찾아와?”


탁-


여관 주인의 발이 문턱을 넘었다.

그 순간, 그의 온전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캣니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의 반사적으로 맞붙은 입술이 열렸다.


“킬리언 님···?”

“뭐?”


눈앞에 사람을 두고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녀가 알던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은 이곳에 올 수 없었다.


“엉? 킬리언이라고?”


여관 주인의 반응을 봐도 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의외의 말을 들은 목소리였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착각했어요.”


캣니스는 사죄의 뜻으로 고개 숙였다.

여관 주인의 외견과 본인이 기억하는 사람의 모습이 비슷한 나머지 무례를 저질렀다.


“캣니스 짱. 아는 사람이니?”


귓속말로 물어온 게이로드에게 고개 저었다.


“아니에요. 정말 모르는 사람이에요.”


이번 말에는 확실히 자신할 수 있었다.

분명 닮긴 했지만. 조금만 상대방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관 주인은 그가 아는 사람과 닮았지만 달랐다.

적갈색의 머리인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붉은 머리 색을 가지고 있다.

눈앞의 사람도 젊은 외모이지만, 그 사람보다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아는 분이랑 너무 비슷해서 말이 잘못 나왔어요.”


그러니까 아는 사람일 리 없었다.

캣니스는 다시 한번 사죄했다.


“누군가 했더니. 아들놈을 아는 녀석들이었구나?”


그런데 여관 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안도하던 캣니스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그러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 이리 와서 앉아. 그놈이 요새 뭐하며 지내는지 이야기 좀 들어보자.”


여관 주인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 순간, 캣니스와 게이로드는 다른 사실을 하나 더 알 수 있었다.

숲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검은 복면의 남자. 그자가 있었다.

평범하게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온몸에 여러 자상을 간직한 채로 기절해 있었다.


“어디 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게 베인지역이었던가? 그 뒤로 도통 소식이 없어서 괘씸했는데 잘됐네.”


여관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복면의 뒤통수를 잡고 질질 끌고 갔다.

걷는 걸음에 맞춰서 허리춤의 쌍도가 흔들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붉은 핏물이 굵은 선을 그었다.


“자. 그러면 사정을 들어볼까?”


테이블 하나 위에서 무릎을 치고 앉으며 말했다.

그러나 캣니스와 게이로드는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심지어 캣니스는 여관 주인의 모습에서 좀처럼 충격받은 시선을 거두지 못하였다.


“뭐야? 왜 그래? 내 아들 문제로 온 거 아니었어?”


여관 주인이 어서 와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게이로드는 캣니스를 곁눈질했다.

어떻게 할지 의견을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일행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 같았다.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겁쟁이의 얼굴이었다.

여정 중 처음으로 캣니스에게서 느껴보는 낯선 감정.

아니. 애초에 이 여사제가 평생 이런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을까 싶은 의문마저 들었다.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여관 주인도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미간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상하네. 당연히 아들놈에게 호되게 당해서 찾아왔을 줄 알았는데. 이것들이 왜 이렇게 패기가 없어?”


붉은 머리 여관 주인이 한 발짝 움직였다.

아무런 위협 없이 단순한 움직임이었는데, 캣니스는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는 괜찮다가, 내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놀랐었나? 그러면 아마도 나와 그놈의 관계 때문이라는 건데···.”


세 명이 나란히 섰다.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 닿을 거리였다.

붉은 머리 여관 주인은 겁먹은 여사제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잔뜩 겁을 먹어서는, 양손으로 옷 안쪽의 무언가를 꼭 쥐고 있었다.


“너. 그거 뭐야?”


의문만이 가득한 채 대치하던 순간.

누가 반응할 틈도 없이 한 사람의 손이 움직였다.

게이로드가 뒤늦게 반응할 정도로 움직임은 한순간이었다.


절그럭-


행동의 종결을 의미하는 장신구가 바닥에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캣니스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가 여관 바닥에 버려졌다.


“아···.”


캣니스가 바닥에 떨어진 펜던트를 주우려고 몸을 숙였다.


“허. 이게 뭐야?”


그러나 행동이 끝나지 못한 채 굳었다.

캣니스는 뻣뻣하게 굳은 목을 올렸다. 자신을 주시하는 붉은 눈과 마주쳤다.


“내 아들놈에게 준 걸 왜 네가 갖고 있을까?”


보이는 건 약간의 노여움.

아주 작은 노여움이었지만 캣니스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아. 그렇군. 대충 이해했어.”


캣니스가 표정에 변화를 드러낸 건 나쁜 선택지였다.

방금까지 미세하던 여관 주인의 감정이 불길처럼 거세졌다.


“대답해. 내 아들과 무슨 관계지?”


그는 이 말이 마지막 자비라는 것처럼 말했다.

캣니스는 반쯤 눈이 풀린 상태에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었어요···.”

“어떻게?”

“제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


그 순간, 터질 것만 같던 압박감은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바람에 흔들리는 실만큼이나 예리한 살의였다.


“비키렴! 캣니스 짱!”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느낀 게이로드가 캣니스를 밀쳤다.

그러자 반달 형태의 도(刀)가 그녀가 있던 자리를 내리찍었다.


“쳇. 반응 하나는 빠르군.”


여관 주인은 혀를 찼다.

게이로드는 붉은 머리를 경계하는 동시에 캣니스의 상태를 살폈다.


“캣니스 짱. 정신 차려!”


그녀에게서 대답이 없다.

아직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에 낭패를 느꼈다.


“이봐! 이게 지금 무슨 짓이니!”


그렇기에, 붉은 머리에 따졌다.

조금 전 여관 주인은 진심으로 칼을 휘둘렀다.

그 증거로 바닥에서 벽까지 정확히 금이 갔다. 만약 게이로드가 반응하지 못했다면 저 위에 둘로 된 몸이 놓여있을 터였다.


“무슨 짓이기는, 딱 보면 몰라?”


그런데도 여관 주인은 귀를 후벼팠다.

조금도 양심의 가책이 없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칼이 빗나가서 성가시다는 듯이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데?”

“뭐라고?”

“며느리는 아닌 거 같아서 휘둘렀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게이로드는 미간을 좁혔다.

우연히 들린 여관에서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엮여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반응을 봤을 때, 잘못한 쪽은 캣니스다.

그렇다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라도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정상적인 방법이지만···.

문제는 두 사람 모두 정상적으로 대화할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후후. 이거 참 곤란한걸?”


게이로드는 튜닉을 벗었다.

갈등이 일상인 모험가답게 상황 판단이 빨랐다.

그의 몸에는 많은 흉터가 있었다. 그런데도 흉이 가소로워 보일 정도로 커다란 근육이 압도했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이 모습을 보기만 해도 도망갈 것이다.

그러나 붉은 머리는 여전히 귀찮다는 듯이 볼 뿐이었다.


“그래. 준비는 끝났냐? 끝났으면 밖으로 따라 나와.”

“후후. 숲속의 미남짱. 아무래도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대화로 풀 생각은 없니?”


무난하게 넘어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상황이 쉽게 말로 풀릴 리 없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여관 주인이 고개만 돌려서 칼끝을 들이밀었다.

정확히 캣니스를 가리켰다.


“당연히 있지. 일단 저것의 손발을 다 잘라버리고 난 다음에 말이야.”


그 말에 캣니스가 고개 들었다.

정신을 차린 거면 좋겠지만 어지간히 충격받은 그녀가 아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팔의 소매를 걷고는 맨살 그대로 앞으로 뻗었다.

게이로드는 쓰게 웃음을 지었다.


“캣니스짱. 팔 집어넣어. 저 남자. 분명히 바로 목을 치려 할 거야.”


움찔. 캣니스가 어깨를 움츠렸다.

얌전히 소매를 내리고 뒤로 물러섰다.

이게 그나마 게이로드가 느낀 다행인 점이었다.

여사제가 죄책감과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기에 그나마 아직 희망이 있었다.


“캣니스짱. 잘 들어. 나는 지금부터 저 남자랑 싸울 거야. 문제는 지금 상태로 봤을 때 내가 이기기는 힘들다는 거지.”


게이로드가 단언했다.

무려 미스릴 모험가가 승리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을 입에 담았다.

그 말에 캣니스의 몸이 일순 흔들렸다.

그래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게이로드는 한숨을 쉬며 여관 밖으로 나갔다.

세 사람은 둘과 하나로 나뉘어서 적대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시간을 버는 거야. 너의 마음이 정해진다면 언제든지 말려주렴.”


마음이 아픈 사람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섰다.

게이로드의 갈색 머리카락이 사자의 갈퀴처럼 풍성하게 휘날렸다.

이를 마주한 붉은 머리 주인은 허리춤에서 쌍도 중 한 개를 마저 꺼냈다.

면이 넓은 두 개의 칼을 한 손에 하나씩 쥐었다.


“하나만 묻자. 너도 저 여자를 도와서 킬리언을 죽였냐?”

“그 말에는 확실히 대답해 줄 수 있지~ 나는 킬리언이라는 사람을 모르지만, 저 아이는 무고한 사람을 해칠 능력이 없어.”

“그런 년이 하필 죽인 사람이 내 아들이라는 거네? 이건 참. 가족의 정은 참으로 귀찮은 일이야. 복수해야 하니까. 안 그래?”


두 자루의 칼 중 하나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냥 하늘 높이 던졌다.

딱히 마나의 움직임이나 스킬의 전조가 보이지 않았는데.

문제는 게이로드가 떠오른 칼에 한 눈 팔린 순간에, 붉은 형상이 육박했다는 점이다.


“큭! 재밌는 재주구나?”


한 번의 공격과 수비가 있었다.

한 번의 충돌로 게이로드의 얼굴을 가로지르는 자상이 생겼다.


“너도 재밌네. 설마 아줌마 말투나 내는 덩치가 이걸 막을 줄은 몰랐어.”

“뭔진 몰라도 한 번 더 해보는 건 어때? 이번엔 확실히 반격해줄게.”


게이로드는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같은 손으로 상처를 쓸어내렸다.

분명 다친 곳이 쓰라리면서 아플 텐데도, 이 이상 상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말투와 다르게 시원한 녀석 같으니.”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


또다시 서로 마주한 채 대치했다.

공중에서 떨어진 칼을 받아냈다.

마치 서커스 광대가 나이프를 다루듯이 커다란 칼을 다루었다.

붉은 머리 여관 주인은 손목에서 팔꿈치보다 긴 칼을 공중에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했다.


“자, 간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떨어진 칼을 받아서 다시 던졌다.

다만 이번에는 던진 방향이 달랐다.

위가 아니라 앞으로 던졌다.


“큭. 정말로 까다로운 싸움법이네!”


게이로드는 사납게 날아오는 칼을 피했다.

또 한 번 붉은 머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오는구나!’


게이로드는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에 상처를 허용한 현상을 알기 위해 초현실적인 감각을 꺼내었다.

일 초의 반도 안 되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그 안에서 칼을 휘두르는 팔을 붙잡으려 했다.


‘역시 이거였네.’


그런데 손이 닿지 못했다.

마치 있지 않은 존재를 잡으려 한 것처럼 손이 팔을 통과했다.

그 와중에도 자연스럽게 뻗은 팔은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칼의 궤적이 목을 향해 다가왔다.


“그래도 이번에는 읽었어~”


막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방어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피하면 되었다.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하고 은빛 궤적이 코끝을 스쳤다.

짧은 순간에 상체를 뒤로 젖혀서 회피했다.


“오, 이걸 피했네?”

“둘 다 아쉬웠지 뭐.”


이번에는 게이로드가 반격할 차례였다.

다리와 허리의 힘으로 뒤로 젖혔던 상체를 일으켰다.


“흐읍!”


몸을 똑바로 세우면서 허리를 비틀었다.

온몸의 근육을 쥐어 짜내는 반동을 이용해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안 아쉬운데?”


그런데 한 가지 실수가 있었다.

언제 손에 칼을 쥔 건지. 분명히 비어있을 여관 주인의 왼손에 칼이 들려있었다.

심지어 급하게 쥐어서 애매한 자세도 아닌, 정확히 심장을 향한 공격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상대의 사정 같은 건 안 봐주거든.”


아주 간단한 사실만을 뱉은 몇 마디.

마주한 게이로드는 입매를 비틀었다.


‘상당한 실력자였구나.’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죽음이 다가오는 감각에 땀샘이 활짝 열렸다.


“사무엘-!!”


그때였다.


푹-


동시에 두 가지 움직임이 있었다.

하나는 여관 쪽 방향에서, 다른 하나는 게이로드와 붉은 머리 사이였다.


“커흡!”


조금 전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던 여사제가 싸움에 끼어들었다.

게이로드 앞에 끼어들어서 대신 옆구리에 커다란 칼을 맞았다.


“캣니스 짱!”


게이로드가 소리쳤다.

여관 주인과 대치하던 일은 뒷전이었다.

온몸으로 당황이 튀어나왔다.

자신 대신에 칼을 맞아 쓰러진 여사제를 살폈다.


“아 씨발.”


그러다가 방금 저지른 실수를 깨달았다.

황급히 싸우던 상대인 붉은 머리의 행색을 살폈다.


“아. 씨발. 이놈이고 저놈이고 먼저 죽고 싶어서 지랄들이야.”


다행히 그는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붉은 머리는 여관 쪽의 인기척에 신경 쓰고 있었다.


“사무엘! 나는 네놈을 용서치 않겠다!”


피떡이 되었던 복면 남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숨겨둔 회복 물약이라도 있었던 건지. 멀쩡한 모습으로 주의를 끌어서 공격이 없던 것이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게이로드에게는 잘된 일이다.


“비겁한 새끼. 봐주니까 머리 끝까지 기어오르지.”


붉은 머리 남자 사무엘이 어깨에 박힌 단도 하나를 빼냈다.

복면의 남자도 얌전히 주의를 끈 게 아닌 모양이었다.


“우선 너부터 죽인다.”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과 함께 여관 쪽으로 구두코를 돌렸다.

그에게도 게이로드와 캣니스는 뒷전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그런데 캣니스가 발걸음을 돌린 그를 말렸다.

여관 쪽으로 칼을 빼내든 사무엘을 멈춰 세웠다.

화가 잔뜩 난 눈빛이 그녀를 보았다.

캣니스는 눈빛에 일순 움츠러들었지만, 천천히 제 할 말을 하였다.


“이야기를. 이야기를 나눴으면 해요.”


적대하는 눈빛에도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옆구리에서 커다란 칼이 박힌 채로 비틀비틀 일어섰다.


“흐읏!”


그러다가 칼 손잡이에 스스로 손을 대고 쑥, 뽑아버렸다.

막혀있던 피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캣니스짱!”

“잠깐만요. 게이로드 님.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많은 피를 흘려서 창백한 안색이었다.

그런데도 차분하게 말하며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

손으로부터 흘러나온 황금빛 신성력이 찢어진 상처를 감쌌다.

서서히 흐르는 피가 줄어들더니 뚫린 옷까지 복원했다.


“너, 뭐냐···?”


붉은 머리 사무엘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사제의 치유 능력에 관해 나름 아는 부분이 있었는지, 경이롭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저곳의 신자님이 신자님을 사무엘이라고 불렀죠. 잠깐만 가만히 계셔주세요. 사무엘 님.”


캣니스는 느린 걸음으로 붉은 머리 앞에 섰다.

사무엘은 어디 말해보라는 듯이 턱을 세웠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러나 그 관대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굴 쪽으로 손을 뻗던 상대의 손목을 붙잡았다.


“놔주세요.”

“내 몸에 손대지 말고 말해.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했어?”

“별일 아니에요.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어요.”


그 말에는 또 눈썹을 찡그렸다.

캣니스의 속을 다 파헤치겠다는 듯이 매섭게 눈을 떴다. 한참 동안 대치가 이어졌다.


“쳇. 마음대로 해.”


사무엘이 먼저 물러섰다.

거칠게 캣니스의 손을 놔줬다.

그래도 적이 제 몸에 손을 대는 일을 허용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치료하기 편하게 단추 세 개도 스스로 풀었다.


“게이로드 님. 저쪽 신자님이 하는 행동을 주의해주세요.”


캣니스가 지친 목소리로 부탁하였다.

게이로드는 부탁대로 그들 곁을 지켜 섰다.


“그러면 치료할게요.”

“오냐.”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사무엘의 셔츠 어깨 부분을 벗겼다.

셔츠를 벗겨낸 피부는 새까맣고 핏줄이 보라색으로 변해 불거져있었다.

단검이 찔렀던 자리에서 죽은 피와 독한 냄새가 진동하였다.

얼핏 봐도 평범한 단검에 당한 게 아닌 상처.

그래도 별 말없이 치료를 시작하였다.


“덧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캣니스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물에 적셨다.

정화의 단계를 거쳤기에 어지간한 직물보다 더 깨끗한 상태였다.

손수건으로 상처 주변을 달래며 정화의 힘을 불어넣었다.

상처에서 검은 피가 쏟아졌다.

기세 좋게 나오던 검은 피는 시간이 흐르면서 붉게 변했다.

피부의 색이나 혈관의 부기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일을 끝으로, 칼이 파고든 상처까지 완벽하게 치료했다.

흉터의 흉 자도 찾아볼 수 없게 말끔히 나았다.


“솜씨 좋은데?”


치료가 끝나자 여관 주인인 사무엘이 어깨를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 끔찍했던 통증은 온데간데없었다.


“너. 내 아들과 무슨 관계라고 했지?”


사무엘은 이리 훌륭히 치료해준 여사제를 바라봤다.

캣니스는 조금 전까지 미소 짓고 있었으면서, 눈을 마주치자마자 또 눈빛이 흐려졌다.


“저는···.”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자세히 이야기하려 했지만. 소리 지르는 복면의 남자 때문에 흐름이 끊겼다.

사무엘은 문기둥에 기대서 절규하는 남자를 보면서 혀를 찼다.

이야기를 뒤로 미루자는 손동작과 함께. 쌍도를 허리춤에 넣고 일어섰다.

무릎과 허리를 쭉 펴며 몸을 풀었다.


“어쨌든. 아들놈 이야기. 가지고 있는 거지?”


스쳐 지나가며 물었다.

그 말에 캣니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 네 처분은 이야기를 들은 뒤로 미뤄둘 테니까.”


캣니스는 게이로드에게 부축받아서 일어섰다.

어느새 사무엘은 복면의 남자를 기절시키고 들어갔다.

사무엘의 뒤를 따라서 그들도 다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곳이 평범한 여관은 아닌 모양이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우연히 한 사람과 마주쳤는데. 그 사람이 죽은 직장 동료의 아버지일 확률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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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156화 전사의 나라 24.04.27 3 0 15쪽
188 155화 전사의 나라 24.04.24 4 0 15쪽
187 154화 전사의 나라 24.04.22 5 0 12쪽
186 153화 변하지 않는 24.04.19 6 0 25쪽
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5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6 0 15쪽
183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6 0 17쪽
182 149화 사막의 나라 24.04.08 6 0 16쪽
181 148화 사막의 나라 24.04.05 6 0 21쪽
180 147화 사막의 나라 24.04.03 7 0 12쪽
179 외전 다섯 번째 용사 終 24.04.01 8 0 31쪽
178 외전 다섯 번째 용사9 24.03.29 6 0 13쪽
177 외전 다섯 번째 용사8 24.03.27 6 0 16쪽
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7 0 28쪽
175 외전 다섯 번째 용사6 24.03.20 5 0 21쪽
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6 0 20쪽
173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9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6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7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7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4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8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9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12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10 1 14쪽
164 141화 십강[十强] 24.02.23 8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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