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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4.27 10:06
연재수 :
1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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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7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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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3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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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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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41화 십강[十强]

DUMMY

141화 <십강[十强]>



“선공 줄게, 들어와.”


사무엘이 선공을 양보했다.

브레드와 쌍둥이 모험가는 눈빛을 교환했다.

센츄어리 대륙 십강의 힘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고 있다. 하지만 최정예 모험가들을 상대로 저리 오만할 정도는 아니라고 자신했다.

한 번 쓴맛을 봤던 게이로드조차 이번에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들 몸 안의 마나를 기의 형태로 바꾸었다.

평범한 모험가의 형상에 이질적인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기는 마나를 연소시켜서 외부의 제약을 감소시키는 기술이지. 마력의 성질에 따라서 아지랑이가 독특한 빛을 띠는데. 적어도 싸움의 기초는 아는 애들이라서 다행이네.”


사무엘은 기를 운용하는 기술을 보고 평가하였다.

게르드와 게이로드는 노란색, 브레드와 라나에게는 푸른색 아지랑이가 보였다.

그도 그들이 준비하는 일에 맞춰서 검 두 자루를 서너 번 돌렸다.


“그런데 그쪽 계집은 기준 미달이야. 아직 기의 형태도 불안정하고 전신을 덮지 못하고 있어.”


까득, 모욕당한 라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노골적인 평가에 두 눈에 핏줄을 세웠다.

평소에 온화해 보이던 이들에게도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침범하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십강이라도 우리를 깔보면 큰코다칠 거야.”

“그래? 꼭 그래 줬으면 좋겠네.”


라나가 도발하였지만 소용없었다. 사무엘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거듭 도발이 이어지고. 양손의 든 칼을 하늘 높이 던졌다.


“눈빛 좋아. 죽일 각오로 덤벼.”


그 말이 신호탄이었다.

미스릴 모험가 두 명이 달려들었다.

사무엘은 순식간에 양팔로 가드 자세를 취했다. 달려드는 움직임을 따라서 시선을 움직였다.


“그래. 가장 튼튼한 놈이 몸을 대는 게 맞지.”


쾅!


사람 몸에서 폭발 마법이 일어난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쌍둥이 모험가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이것만 해도 믿기 힘든 일.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한 번 시선을 움직였다.


“느려. 합공은 상황을 보고 하는 게 아니야. 머리로 먼저 움직이고, 그 뒤는 몸으로 판단해야지.”


쌍둥이 모험가가 연달아서 보여주는 제2의, 3의 연격을 읽었다.

네 번째 연격이 이어질 때 그는 수비 이외에 행동을 보였다.

양팔로 쌍둥이를 상대하는 와중에 다리를 뻗었다.

그가 허공에 발길질하자 마법처럼 두 자루의 칼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건 마법이 아니었다. 떨어지는 두 자루의 칼을 정확한 순간에 걷어찬 것이다.

두 자루의 칼은 브레드 뒤에서 달려오던 모험가를 노렸다.


“꺅!”

“라나여!”


시야가 방해되는 건 수비하는 쪽만이 아니라 공격하는 쪽도 마찬가지다.

사무엘은 그러한 싸움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검 하나가 라나의 목을 찢고 탈락시켰다.


“뭐해? 더 안 때려? 벌써 끝이야?”

“어머나. 그럴 리가 없잖니~”

“아니. 내가 보기에는 끝인데?”


뿌드득. 사무엘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그가 팔을 펼치자 두 거구가 버티고 있던 압박에서 해방됐다.

아무렇지 않게 주먹을 치운 모습에 쌍둥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 앞에 붉은 아지랑이가 이어졌다.


“어머. 이거 참~”

“정말 무거운 맛이야~”


그렇게 말한 쌍둥이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텅 빈 몸통에 사무엘의 공격이 정통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 공격의 여파로 흙먼지가 일어나고 숲의 나무가 흔들렸다.

무릎 꿇은 게르드와 게이로드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사무엘, 각오하게!”

“아. 맞아. 너도 있었지.”


주먹을 거둔 사무엘은 옆을 돌아봤다.

아직 브레드 머슬릿이 한 대도 맞지 않았다.

브레드는 온 힘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푸른 형상을 주먹에서 일으켰다.

푸른 형상의 정체는 고유스킬인 마나 건틀릿.

이 순간 그는 일류 장인의 무기를 장착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아. 네가 걔구나? 고유스킬을 지녔다는 격투가?”

“브레드 머슬릿이라고 하네! 부디 기억하게!”


푸른 마나로 휘감은 주먹을 휘둘렀다.

살벌한 기세가 바람을 갈랐다.


“미안. 받아치면 아플 거 같아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심의 공격은 사무엘에게 닿지 못했다.

정확히 고개만 꺾어서 주먹을 피했다. 이어서 발을 휘둘렀다.


“큭!”


뒤늦게 브레드가 벗어나려 했지만 먼저 얼굴에 닿았다.

한 번 맞았는데 몸의 중심이 어긋난다. 눈앞이 핑 돌았다.

한 번의 발차기로 몸이 서너 걸음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꼴사납게 쓰러진 다음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코에서 피를 쏟아냈다.


“이걸로 끝···”


이로써 사무엘이 네 사람 모두에게 유효타를 먹였다. 가벼운 식후 운동 이후로 손을 털던 그때였다.


“어머. 끝일 리가 없잖니~”

“사무엘짱. 각오해~”

“염병들 하네···.”


욕지거리를 되뇐 사무엘은 방어 자세 취했다.

또 한 번. 이번에는 다른 이의 공격이 폭발을 일으켰다.


쾅!


흙먼지를 일으키고 서서히 가라앉았다.

흙먼지가 걷히고 보이는 광경은, 처음으로 모험가가 십강에게 한 방 먹인 모습이었다.


“어이가 없네. 처음 공격은 힘을 뺀 거였어?”


사무엘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양쪽 팔에는 뼈가 튀어나왔다.

처음 공격처럼 막으려 했다가 상처를 얻었다. 예상치 못한 주먹의 파괴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게 아니야~”

“더 싸워보면 알게 될 거야~”


조롱의 의미일지 아니면 진심일지.

사무엘은 쌍둥이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 더 싸워보면 알겠지.”


드디어 사무엘이 대련 중 처음으로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바뀐 분위기가 관람하던 캣니스에게도 느껴졌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서 바닥에 내동댕이쳤던 칼 두 자루 앞에 섰다.

팔의 뼈가 부러졌는데도 여전히 마음먹은 대로 팔을 움직였다.


“덤벼. 조금은 진심이 되어주마.”


붉은 아지랑이가 사무엘의 전신을 감쌌다.

살벌한 기의 흐름이 칼끝까지 옮겨갔다.


“지금 갈게~”

“각오해~”


근육질 쌍둥이가 동시에 움직였다.

이에 맞선 사무엘이 칼의 넓은 면으로 두 주먹을 막았다.


“한 번 더~”

“각오해~”


쾅!


이어진 두 번째 주먹.

사무엘은 눈을 찡그렸다.

첫 번째 공격을 수월히 막은 것과 다르게, 두 번째 공격에는 뒤로 밀려났다.

칼 등에 찍힌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났다.


“이제 뭔지 알겠어. 너희의 기술이구나?”


사무엘이 한 번 더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단 두 번의 경험으로 쌍둥이가 말했던 구조를 알아차렸다.


“보아하니 조건은 이중 타격. 같은 위치에 두 번째로 가하는 공격의 위력을 증대하는 모양인데.”


정답에 근접한 지 떠보는 말.

쌍둥이들은 험상궂지만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정답이야~”

“역시 눈썰미가 다르구나! 사무엘짱~”


어디까지나 떠본 말이었는데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무엘은 그들의 올곧음이 어이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만만한 건지. 아니면 올곧은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껏 여유를 부렸다면 제대로 덤벼.”


칼을 쥔 양손에 붕대를 감았다.

다친 팔을 치료하기 위함이 아니라 칼을 팔에 단단히 고정했다.

여태까지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였다.


“준비는 끝났니?”

“한 번 더 갈게~”


두 사람이 한 번 더 달려들었다.

쌍둥이 모험가 게르드, 게이로드.

모험가 길드의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쳤기에 미스릴 등급에 올랐다고 믿는다.

그만큼 미스릴 등급이 가지는 명성과 벽은 숙련된 모험가도 만만히 볼 게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 관한 진실은 그들이 개별적인 능력을 인정받아서 미스릴 등급에 올랐다는 점이다.

모험가에게 미스릴 등급이란 모험가 등급 중 최고 자리.

모험가 길드는 쌍둥이 모험가 각자의 힘이 금 등급 모험가 파티 전력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평가하였다.


“자, 간다~”

“두 번째 타격~”


바로 아래 등급인 급 등급 모험가보다도 압도적인 전략과 무력을 갖춰야 하는 게 미스릴 모험가다.

그렇기에 미스릴 등급은 명예와 부를 동시에 거머쥐는 것이다.

일개 모험가가 꿈꾸는 가장 높은 곳이 미스릴 모험가라서일까. 모험가들은 미스릴 등급을 딴 순간 활동을 멈추곤 한다.

명성을 땄으니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길드를 꾸려서 이끌기도 한다.

그런 일이 빈번히 일어나는 모험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게르드와 게이로드는 한 번도 다른 정규 파티를 꾸린 적이 없었다.

가끔 임무 중에 떨어진 적은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항상 함께 활동한다.


“오냐! 들어와라!”


덧셈 일 더하기 일은 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합을 맞춘 쌍둥이는 그 이상의 전투력을 보여준다.

마치 더 큰 꿈을 펼치라는 계시처럼 나타난 고유스킬, 이중 타격.

심지어 쌍둥이의 고유 스킬은 서로 타격한 부위를 공유한다.


“이걸로 끝~”

“훌륭했어, 사무엘짱~”


대련에서 사무엘을 밀어붙인 두 사람.

싸움에서 수적 우위는 언제나 강점으로 다가온다.

특히 합을 맞춰온 이들의 합공은 더욱 큰 위협이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손이 검을 쥔 양팔을 붙잡았다.


“벗어날 방법은-”

“없어~”


한 손으로는 움직임을 묶어두고 다른 한 손으로 다음 공격을 준비한다.

공격이 빗나간 한순간의 실수가 치명적인 빈틈으로 이어졌다.


“그러게 너무 자만했어~”

“우리를 얕보지 말았어야지. 사무엘 짱~”


양팔을 치우자 텅 빈 사무엘의 몸통이 있다.

게르드와 게이로드는 무방비한 몸통에 주먹을 날렸다.

아주 근소한 0.1초의 차이를 두고 이어질 그들의 공격.

고유 스킬까지 발동하여 치명상으로 이어갈 터였다.


“씨발. 그래. 내가 멍청했다.”


그때였다.

피가 튀었다.

하지만 피가 튀며 상처 입은 사람은 사무엘이 아니었다.


“어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게르드와 게이로드가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피로 흥건히 젖은 복부를 압박하였다.

곧 충격을 버티지 못한 무릎이 내려앉았다.

왈칵,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인정할게. 너희는 머저리지만 강해. 너희 둘이 함께라면 내가 만난 강자 중에서 손에 꼽을 거다.”


두 사람의 합공에도 멀쩡히 선 사무엘이 말했다.

이미 사무엘이 칼을 허리춤에 넣은 상태에서 팔짱 꼈다.

이로써 몇 분째 이어진 대련이 끝났다.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게 그거구나? 게이로드.”

“맞아. 신기하지? 게르드.”


쌍둥이 모험가는 아쉬워했다.

대련의 승자는 십강 사무엘 이그나이트였다.

대련이 끝났으니 다들 기절했던 브레드를 일으켜 세우고, 라나는 찢긴 목과 눈을 치료했다.


“나. 아무런 도움도 못 됐어···.”


캣니스에게 치료받는 가운데 라나가 말했다.

대련 시작부터 전투 불가 상태가 된 걸 서글퍼했다.

얼굴에 새파란 멍이 든 브레드 머슬릿.

그래도 브레드는 제 옆의 앉은 어린 모험가부터 다독였다.


“라나여. 자책은 하되 슬퍼하지 말게. 십강이라는 이름이 생각보다 더 높았을 뿐이네.”


아쉬움은 많았지만 견뎌낸다.

패배의 기억이 한 번 더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리라고 의심하지 않는 그였다.


“그래요, 그래야죠.”


라나는 브레드에게 위로받아서 슬픔을 털어냈다.


“그런데 사무엘 아저씨. 마지막 순간에 그건 뭐였어요?”


대신에 슬픔을 털어내고 난 자리에 궁금증이 생겼다.

마지막 순간에 사무엘이 선보였던 기술.

그 원리가 궁금했다.


“지금 나한테 물은 거냐?”


칼 손잡이에 다시 붕대 감던 사무엘이 답했다.

자신을 부른 말이라는 걸 깨닫고 미간을 찡그렸다.

귀찮음을 생색내는 말과 다르게 라나의 물음에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라나의 궁금증을 단번에 해소해 줄 수 없었다.


“고유스킬.”

“고유스킬이요?”

“그래.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테니 그냥 그렇게만 알아둬.”


매몰찬 답변에 당황하는 라나.

하지만 고유스킬이라는 게 워낙 추상적인 개념이 많다.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기술이다 보니, 고유스킬을 지닌 본인은 설명 못 하는 부류가 있었다.

사무엘도 분명히 그쪽 부류였다.


“사무엘 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대신 설명해도 될까요?”


그렇지만 이곳에는 다른 사람도 있었다.

지금껏 세 번 기술을 본 캣니스가 손 들었다.

세 번은 많은 기회가 아니었지만, 캣니스는 사무엘의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네가? 사제가 싸움에 대해 알기는 뭘 안다고 그러냐?”


순수한 호의에 돌아온 건 얕잡아 보는 눈빛이었다.

비전투직인 사제가 무예가의 기술에 대해 뭘 알겠냐는 무시였다.


“그래서 된다는 건가요? 안 된다는 건가요?”

“해. 애초에 숨길 마음도 없으니까.”


다시 한번 묻자 수락해줬다.

어차피 이해 못 할 거라는 무의식중의 무시가 깔려있었다.

캣니스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은근히 기분 상했지만 삼켜내고 고개 돌렸다.


“라나 님.”

“어?”

“라나 님은 마지막 싸움을 어떻게 보셨어요?”


함부로 남의 고유스킬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건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사무엘이 허락했으니 예외였다.


“아저씨들이 칼을 붙잡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팔을 뿌리치고 베었어. 일련의 과정을 내가 놓쳤고,”

“그건 제대로 보신 거예요. 그 사이에 과정은 별거 없으니까요.”


라나가 기억을 더듬어가며 생각한 말을, 캣니스가 일축했다.

정말로 기술에 대해 잘 아는듯한 모습이었다.


“사무엘 님이 가진 고유스킬의 이름은 ‘일기당천’이에요. 시전자의 공격이 상대의 보호구를 무시하고 들어가죠.”


단순히 잘 아는 것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말했다.

이에 잠잠하던 사무엘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 뭐?! 잠깐만!”


사무엘이 급하게 말했다.

캣니스의 말대로 사무엘의 고유스킬은 ‘일기당천’이 맞다.

딱히 숨겨왔던 건 아니지만, 옛 동료 콘스탄트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알려준 적 없는 스킬.

그걸 여사제가 정확히 이름까지 맞췄다.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야기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면서 말 바꾸고 끼어든 모습.

사무엘의 변덕에 잠시 이야기가 끊겼다.


“···어디까지나 추론이었어요. 킬리언 님도 같은 스킬을 갖고 있었거든요.”

“걔가 나랑 같은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고? 그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긴데?”

“그런가요? 당연히 후계자니까 스킬을 계승했다고 생각했는데요.”


답변을 들은 사무엘의 미간이 좁혀졌다.

집을 나간 킬리언이 새로이 스킬을 얻었을 가능성은 크다. 심지어 자신이 그를 가르쳤으니 같은 고유 스킬을 얻을 가능성은 더욱 컸다.


“그걸 걔가 알려줬다고?”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말썽꾸러기가 타인에게 중요한 정보를 말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숨기려면 숨겼지. 그가 아는 성격이 그러했다.

만약 정말로 직접 말해줬다면, 잘난 자존심을 꺾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였다는 뜻이다.


“야, 너.”

“네.”

“나와라. 한판 붙자.”

“네···?”


그렇지만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사무엘은 여사제가 하는 말을 신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련을 가장해 본심을 듣기로 했다.


“진담으로 하는 말이에요?”


그러나 그가 도달한 결론과 별개로 캣니스는 당혹스러웠다.

브레드의 얼굴 멍을 치료하다가 말문이 막혔다.


“방금 네 분과 싸우셨잖아요. 농담이시죠?”


그러나 농담이 아니었다. 상대편의 얼굴이 진지했다.


“하지만 사무엘 님···.”

“왜? 뭐가 문제야? 무서워서 그래? 살살해 줄 테니 겁먹지 말고 들어와.”


캣니스가 들어오기를 망설이자 사무엘이 얼른 말했다.

온갖 이유를 갖다 대며 싸움에 끌어들였다.

이를 스킬을 공개한 보복이라 생각한 캣니스는, 더욱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저 사무엘 님. 그러면 싸우기 전에 한 가지 조건을 걸어도 될까요?”


그래도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는 않는다.

동료들이 체면 차릴 새도 없이 졌는데도 도망치지 않았다.

사무엘은 입꼬리를 올렸다.

도망치지 않는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좋아. 내 특별히 한 손만 써줄게. 거기에 네가 말할 제약도 추가하고.”


멋대로 사제에게 맞춰서 여러 제약을 추가했다.

겉으로는 사제를 배려한 모습이지만, 그는 그저 싸움에 미친 사내였을 뿐이라는 걸 이 자리에 모두가 알았다.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해줄까? 눈 감고 싸울까? 아니면 한 발로만 서 있을까? 아니면 내 몸에 닿기라도 하면 네 승리로 할까? 원하는 조건을 말해.”


쉬지 않고 뱉는 스스로 짊어지길 자처하는 제약들.

캣니스는 십강이 싸움을 대하는 광기를 엿본 느낌이었다.


“아니요. 제가 말한 조건은 싸움에 거는 제약이 아니라······.”

“그러면 뭔데? 아, 싸우고 나서 바라는 게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면 해줄게. 사양하지 말고 말해.”

“하아.”


캣니스는 한숨 쉬었다.

브레드와 가더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한마디씩 하고 넓은 공간으로 움직였다.

망토 끈을 여미고 망토와 이어진 모자를 뒤집어썼다.

여사제의 체형과 얼굴이 순식간에 가려졌다.


“그렇게 꽁꽁 싸매면 앞은 보여?”

“이게 편해요. 저는 항상 이렇게 싸워왔어요.”


그녀 나름의 전투 태세로 들어간 상태였다.

모자로 생긴 그늘에서 입을 열었다.


“제 조건은 하나예요. 사무엘 님이 지고 나서 패배를 인정할 것.”


꿈틀,


한마디에 사무엘의 분위기가 변했다.

이마와 목에 핏대가 솟았다.

조금 전까지 호의적이었던 분위기가 단번에 살벌해졌다.


“그러니까···. 너에게 지고 나서 꼴사납게 매달리지 마라?”


예리한 칼이 다가오는 듯한 압박감이 생겼다.


“네. 맞아요. 조건을 지켜주시면 싸움에 응해드릴게요.”


그래도 캣니스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뿌득.


사무엘이 쥔 주먹에서 살벌한 소리가 났다.

이 순간, 게르드와 게이로드 그리고 라나는 경악했다.

왜 일부러 사무엘의 성미를 건드는 건지. 도발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라나가 말했다.

여차할 때 끼어들 가더라는 강자가 있다곤 해도, 상대는 십강이다.

그를 상대로 함부로 도발했다가는 곤욕을 치르게 될 터였다.


“아. 앞서 말씀하신 제약은 풀어도 좋아요. 그래야 나중에 봐줬다는 소리 못할 테니까요.”


빠드득.


이제 다른 이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무엘이 악귀 같은 표정으로 여사제를 노려보았다.


“헛소리 집어치워. 나는 분명히 말했어. 한 손만 쓰겠다고.”


금이 간 자존심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아이. 그것도 전투 직이 아닌 사제에게 놀림 받았다는 사실은 모욕적이었다.


“알겠어요. 조건만 지키세요.”


그런데도 캣니스는 같은 반응을 보였다. 어린아이에게 맞춰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지금껏 평온을 유지하던 사무엘의 성깔이 다시 나타났다.


“너. 안 되겠다. 대충 실력 봐주고 꿀밤 정도로 끝내려 했는데, 괘씸해서라도 팔 한 짝은 가져가야겠어.”

“네? 그런 어중간한 각오면 관둘게요. 이왕 싸우는 거면 제 목을 칠 생각을 하셔야죠.”


모두가 사무엘의 몸이 폭발하는 착각을 느꼈다.

사무엘의 주위에 붉은색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너. 진짜. 혼날 줄 알아라.”


악귀 같은 얼굴로 싸울 자세를 취하는 사무엘.

이 상황을 지켜보는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저씨들.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켜보는 이들 중 유일하게 이성을 찾은 라나가 말했다.

묵묵히 팔짱 낀 채 싸움을 지켜보려 하는 세 모험가를 나무랐다.


“저러다 큰일 나겠어요!”


여사제가 상대할 자는 무려 베테랑 격투가 네 명을 거뜬히 이긴 상대다.

심지어 화가 잔뜩 난 사무엘과 싸우게 두다니, 이성적인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말려야 한다.


“얘. 똥 마려운 켈베로스처럼 굴지 말고. 얌전히 있어.”

“뭐라고요?!”


돌연 들려온 말에 라나의 고개가 여관 지붕으로 돌아갔다.

지붕 위에 앉은 서큐버스 릴리트를 향해 노려봤다.


“언니는 안 싸워보니 그런 말을 하는 거겠죠! 아니면 싸움 구경이 즐거워서 그래요? 캣니스가 중상을 입으면 우리 중 누가 치료해줄 건데요?!”


당장 여사제에게 큰일이 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태연히 다리 꼰 채 농담하는 릴리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라나가 목소리를 높일 만큼 사무엘이 보이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싸움이 끝나면 여사제는 최소 기절. 심하면 중상이었다.


“얘. 저 아이 저래 보여도 용사야. 누가 누굴 걱정해?”


여전히 릴리트는 지붕 위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현 상황이 따분하다는 듯 하품까지 하였다.


“용사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후방 보조 역할인 사제가 십강과 육탄전을 하겠다는데 걱정이 안 돼요?!”

“너. 내가 누군지 까먹었어? 너보다 내가 더 저 아이에 대해 잘 아니까 조용히 보기나 해.”

“아니. 이 언니가 진짜!”


두 사람 다 답답함을 토로했다.

라나는 릴리트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곳에 도움을 청했다.


“아저씨들! 이러다가 정말로 큰일···!”


세 모험가가 여전히 팔짱 낀 모습으로 서 있던 그때였다.

공터에 선 두 사람을 가리키기 무섭게 신호가 떨어졌다.


“간다.”


신호는 사무엘의 목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진심이 된 사무엘은 움직임부터 달랐다.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장소를 바라볼 때, 이미 그의 칼은 다른 장소에서 움직였다.

캣니스가 선 장소로부터 한 발짝 겨우 차이 날 거리.

몸 안쪽에서 휘두른 칼은 정확히 목의 경동맥을 노렸다.


“헉!”


칼이 휘두름과 동시에 다들 눈을 부릅떴다. 이어진 결과에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했다.


푹-


라나는 입을 틀어막기까지 했다.

흙 위로 적지 않은 양의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투툭. 투두둑.


멀리서도 끔찍한 대련이 되리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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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싸움에 미친 글러 먹은 아저씨 네 명.

전 용사 vs 현 십 강의 싸움 참을 수 있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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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153화 변하지 않는 24.04.19 6 0 25쪽
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5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6 0 15쪽
183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6 0 17쪽
182 149화 사막의 나라 24.04.08 6 0 16쪽
181 148화 사막의 나라 24.04.05 6 0 21쪽
180 147화 사막의 나라 24.04.03 7 0 12쪽
179 외전 다섯 번째 용사 終 24.04.01 8 0 31쪽
178 외전 다섯 번째 용사9 24.03.29 6 0 13쪽
177 외전 다섯 번째 용사8 24.03.27 7 0 16쪽
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7 0 28쪽
175 외전 다섯 번째 용사6 24.03.20 6 0 21쪽
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6 0 20쪽
173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10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7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7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7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5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8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9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12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10 1 14쪽
» 141화 십강[十强] 24.02.23 9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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