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4.27 10:06
연재수 :
189 회
조회수 :
11,071
추천수 :
127
글자수 :
1,432,441

작성
24.03.15 22:47
조회
9
추천
0
글자
19쪽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DUMMY

외전 <다섯 번째 용사>




평범하게 북적이는 술집의 풍경.

이 마을을 감싸는 위협이 범상치 않지만 그러한 사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팔자 좋게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이야기한다.

고작 싸우는 일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겁쟁이는 이 마을에 없었다.

또한 이 시간대에 으레 거친 용병들이 모인 장소가 그렇듯 건물 전체가 시끌벅적했다.


“아니. 씨발!”


그러나 제아무리 거친 용병들도 한 사람의 눈치를 살피기 일쑤였다.

손님들이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술집 한구석에 눈길이 갔다.


“킬리언. 동료가 되어줘. 우리 함께 마왕을 무찌르자.”


한 테이블에서 거친 용병들과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반듯한 차림새나 외모 그리고 말투가 그러했다.


“킬리언. 너의 실력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어. 마왕 토벌이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닌 거야.”


그들은 용사였다.

현재 새로운 동료를 영입 중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냐고!”

“너밖에 적임자가 없어. 함께 마왕을 무찌르자.”


쾅.


인내심이 바닥 난 킬리언이 술잔을 거칠게 내려놨다.

벌써 같은 이야기만 반나절 째다.

대낮부터 저녁 대까지 끈질기게 쫓아오는 용사들을 눈엣가시처럼 보았다.

이 이상 견딜 수도, 어울려주기도 싫었다.


“아니 씨발! 안 한다고. 안 해! 술맛 떨어지니까 알짱거리지 말고 제발 꺼져!”


킬리언과 게일이 갈등을 빚었다.

사실 갈등이라고 표현하기도 그렇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용병왕의 후계와 용사는 서로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너의 귓구멍이 이상한 거 같아서 다시 말하는데 잘 들어. 마왕이고 대륙의 평화고 내 알 바 아니야. 어차피 강한 사람은 사는데, 왜 쓸데없이 내가 돈도 안 되는 자선사업을 해야 하는데!”

“킬리언. 그건 네가 오해하는 거야. 우리가 하는 일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고귀한 일이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큰 뜻을 담고 있는 일이라고.”

“그게 자선사업이잖아! 제발 꺼져! 호구짓 할 거면 제발 너희들끼리 하라고. 난 안 할 거니까!”

“킬리언.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다시 생각···”

“카아악! 몇 번이고 생각해도 똑같아. 이 거머리 같은 새끼야!”


킬리언은 필사적이었다.

밥맛 술맛 다 떨어지게 멀쩡한 남자가 미친 소리 하는 걸 듣고 싶지 않았다.

이를 비유하자면 사이비 종교의 신도가 온종일 쫓아다니는 격이다.

처형자에게 언제 척결 당할지 모르는 사이비 종교에 영입하라. 딱 이 수준인 미친 소리였다.


“야. 저기 좀 봐.”

“미친개. 성질이 많이 죽었는데?”


그런데 같은 술집의 용병들에게는 두 사람의 말다툼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곳에는 킬리언 이그나이트의 명성을 아는 용병이 대부분이다. 또한 명성만큼이나 그의 불같은 성격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런 킬리언과 정면에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하다니. 굉장히 진귀한 장면이었다.


“제발 꺼져-!”


다들 불똥이 튈까 봐 조심하고 있지만. 한쪽 귀를 열어놓았다.

킬리언의 성미가 어떤 방식이 터질지 흥미로웠다.


“킬리언. 우리는 너 같은 뛰어난 실력자가 필요해.”

“이런 씨발!”


마침내 킬리언의 성격이 폭발했다.

눈앞의 용사를 보니 답답해서 술과 안주가 놓인 원형 테이블을 뒤집어엎었다.

엎은 테이블 위로 다리를 올리고 답답한 상대방을 노려봤다.


“잘들어. 자꾸 실력 실력 말하는데! 난 나보다 약한 놈 밑에 안 들어가! 정 나를 데려가고 싶으면 나를 꺾어보라고!”


짐승같이 으르렁대며 허리춤에 칼을 빼내 들었다.

단단히 화가 난 두 눈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그 모습에, 용병들은 피식 웃으면서 관심을 끊었다.

그 킬리언이 칼까지 빼내 들었으니 더 이상의 충돌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 말 정말이지?”

“뭐?”


그런데 이곳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한 번 관심 끊었던 용병들이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분명히 말했어. 너를 꺾으면 동료가 되어주는 거야.”


코앞에서 킬리언이 썩은 표정을 지었다.

게일은 갈색 머리 아래로 노란 눈동자를 기대감으로 빛내고 있었다.


“하아···.”


처음 만난 사내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시선을 받았다. 킬리언은 피곤한 얼굴을 마른세수했다.


“씨발. 죽기 싫으면 그냥 꺼지라는 소리야.”

“하지만 네 입으로 말했어. 너를 꺾으면 동료가 되기로.”

“아니. 미친 새끼야.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이제 킬리언은 질린 눈빛이 되었다.

본인도 상당히 또라이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용사라는 작자는 더 돌은 자였다.

그런 두 사람의 대치에 구경꾼들은 흥미를 가졌다.

성질 더러운 킬리언이 한 수 지고 들어가다니. 흔하게 있는 일이 아니다.


“흥. 그만둬, 게일. 우리가 무서워서 저러잖아. 스스로 뱉은 말도 모른 척하는 멍청이에게 뭘 바라는 거··· 읍.”


지금껏 얌전히 있던 에이린이 입을 열었다.

빠르게 모몬이 에이린의 폭주를 막았다.

그러나 이미 이 자리에 모두가 에이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었다.

당사자인 킬리언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하. 내가 무서워서 빼는 거라고?”


뿌득, 뿌득.


이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났다.


“너희. 다 뒤졌어. 당장 뒤로 따라 나와!”

“킬리언. 약속을 지켜주려는 거구나!”

“그딴 말은 이기고 나서 뱉으라고 갈색 머리 새끼야! 네 소원대로 내가 지면 동료든 꼬붕이든 해줄 테니 당장 기어 나와!”


쾅!


킬리언이 발로 걷어찬 의자가 날아가서 문을 부쉈다.

용사들은 여관 주인과 주변의 눈치를 잠깐 살폈는데, 다행히 기물 파손은 흔히 있는 일인 듯했다.


“죽여버리겠어!”


킬리언이 씩씩거리며 잔해 너머로 넘어갔다.


“음. 다행히 도발에 넘어가는 타입이었군.”


아직 술집에 남은 모몬이 말했다.

에이린의 말에 기분 상해서 내쫓기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자존심이 강한 타입이었다.

이러면 오히려 에이린의 욕설이 효과적이었다.

그를 자극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그러게. 다 에이린 덕분이야.”


게일도 붉은 머리 마법사를 칭찬하였다.

그 순간, 나무 잔해 하나가 머리로 날아왔다.


“야이 새끼들아! 빨리 나오라니까! 뭐해!”


물론 킬리언은 동료가 되겠다는 발언은 죽어도 하지 않을 사내였다.

그렇지만 그 부분은 어떻게든 되리라고 생각하며 술집 밖으로 나갔다.

망가진 문을 넘었다. 험악한 얼굴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와. 아주 곤죽을 내줄 테니까.”


꼭 주둥이를 분질러 주겠다는 선언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용사에게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용사의 실력을 몰라서는 아니었다.

뒤 따라가는 게일은 허리춤의 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



“후우. 간단히 규칙을 설명할게.”


도착한 곳은 마을 바깥이었다.

아주 먼 장소는 아니었고, 울타리 하나 차이로 바깥인 장소였다.

킬리언은 칼 하나를 던졌다가 받기를 반복했다. 대련 규칙을 설명했다.


“너무 눈에 띄는 행동은 금지야. 이능의 사용은 마음대로 해도 좋은데 살상력이 높은 스킬도 금지. 그 외에는 아무거나 해도 좋아. 독이던 다굴이던 뭐든 해. 단 상대를 죽이지 않는 전제하에.”

“질문 있어. 화신강림은 사용해도 돼?”

“그게 또 뭔···. 아. 네가 사용했던 빛나는 거? 마음대로 해. 그거 써야 승부가 될 테니까.”


꿈틀. 게일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도 자존심이 있기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면 너 혼자 덤비냐? 아니면 넷? 그래. 그 잘난 용사파티의 유명한 다굴빵 좀 한 번 봐볼까?”

“나 혼자 해.”

“갈색 머리 너 혼자? 웃기네. 꼴에 대장이라고 자존심 세우는 거냐?”


한시도 입을 쉬지 않고 도발한다.

두 사람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킬리언. 내가 부리는 게 정말로 오기인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알겠지.”


파지직-


게일의 몸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하얀 머리카락으로 변하고, 몸에서 흘러나오던 기운이 한층 강해졌다.


“뭐야? 저번처럼 빛줄기가 솟지는 않네?”

“그건 성검의 힘이야. 마족이 아닌 너에게는 성검의 힘이 통하지 않으니까.”

“아아. 간지는 템빨이야? 그건 참 쓸데없는 부가효과네.”


게일이 검을 들자, 사무엘도 나머지 칼 한자루를 뽑았다.

쌍도(刀)를 양손에 든 채 손가락 하나 뻗어서 까딱였다.


“덤벼, 애송이. 용사 노릇을 하는 너에게 실력 차이를 알려줄게.”


싸움은 한 마디 도발과 함께 시작됐다.

과감한 도발에 맞서서 하얀 섬광이 그려졌다.

코앞으로 다가온 성검과 신나게 웃는 킬리언의 칼이 부딪쳤다.

칼에 담긴 기운이 격돌하자 불똥이 튀었다.


“윽! 무슨 힘이!”


처음 함에서 튕겨 나온 건 게일의 성검이었다.

게일은 그 사실에 당황했다.

성검은 무려 양손으로 휘둘렀다. 그에 반해 킬리언은 한 손으로 칼을 쥐고 있었다.

무기 자체의 크기는 비슷하여도 무기에 실리는 힘이 다를 터였다. 그런데도 첫 공방에서 양손검이 밀려났다.


“휘유~ 검을 날려버릴 생각으로 친 건데. 꼴에 용사라고 쉽지 않네.”


한 번의 공방 이후 서로를 탐색했다.

거리를 두고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대충 봤을 때 너의 기술은 신체 강화와 이상한 마력 증가. 그 힘을 마나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비슷한 거겠지?”


한 번의 공방으로 알아낸 바가 많았다.

게일이 지닌 화신강림이라는 스킬에 대해서 빠르게 분석했다.

하나도 틀리지 않는 분석이었다. 그래도 게일은 반응하지 않았다.

싸움에서는 상대에게 확신을 주는 수가 적을수록 좋기에.

이 사실을 상대만큼이나 잘 아는 킬리언도, 잔혹하게 웃으면서 어깨에 올렸던 칼을 내렸다.


“문제는 본체가 대인전에 미숙하네? 맨날 근처의 잡몹이나 잡은 모습이 훤히 보인다. 새끼야!”


이번에는 킬리언이 공격했다.

게일은 빠르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두 눈을 킬리언의 쌍도에서 떼지 않았다.

상대의 무기는 두 개. 눈으로 움직임을 보고 나서 대처하려 했다.


“멍청아. 어딜 보는 거냐?”

“우웁!”


그런데 쌍도 중 하나로 공격할 거라는 생각이 빗나갔다.

훤히 드러난 복부에 발차기가 들어왔다.


“저, 비겁하게!”


지켜보던 에이린이 소리쳤다.

모몬은 가라앉은 낯빛으로 그들의 공방을 지켜봤다.


“어이 어이! 용사잖아! 용사라며! 막지만 말고 무얼 해보지?!”

“크윽! 난 지지 않아!”

“그래! 더 움직여! 이왕 붙었으니 더 오래 끌어 보라고!”


킬리언은 한 번의 유효타가 성공한 뒤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거칠면서도 섬세하게 짜인 연격을 이어갔다.

면과 선을 이용한 베기와 찌르기의 절묘한 조합.

게일은 맨 처음에는 반격할 여지도 보여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방어에 집중하는 일도 벅차했다.


“게일! 우씨! 반격해! 반격하라고! 저 싸가지에게 한 방 먹여!”

“에이린. 아마 이 이상의 응원은 소용없을 거라네. 저 둘의 기세는 이미 기울어졌으니.”


에이린이 끝까지 동료를 응원하고, 모몬은 싸움판에서 승패를 판단했다.

모몬의 말대로 이미 싸움의 양상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게일의 숨소리가 거칠고 몸놀림이 무겁다.


“말과 행동과 다르게 공격이 굉장히 체계적이고 까다롭군.”


그에 반해 킬리언은 날아갈 듯 몸을 움직인다.

지금 이 싸움은 게일이 흐트러진 호흡을 다듬지 않는 한 패배할 것이다.

그리고 킬리언이라는 용병은 한 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질 터였다.


“승부가 났군.”


몇 번의 공방이 더 이어지고 승부가 났다.

승자는 킬리언. 검을 놓친 게일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네 주제를 알겠냐? 다시는 말 붙이지 말고 눈앞에서 꺼져.”


생채기가 가득한 얼굴에서 칼을 회수했다.

쌍도를 칼집에 넣고 울타리 앞에 기대어 섰다.


“뭘 꼬나봐? 네가 바라놓고 승부를 인정 못하겠냐?”


양팔을 엑스 자로 팔짱 꼈다. 패배한 게일에게 핀잔줬다.

얼른 시야에서 사라지라고 마을 쪽으로도 눈짓 줬다.


“상처는 네 돈으로 알아서 해. 포션을 쓰든 사제를 쓰든 뭐든 할 수 있잖아. 무려 귀하시 귀한 용,사,님이니까.”


노골적인 비아냥거림.

게일의 눈이 충격을 머금었다가 불씨를 품었다.


“용사님. 지금 치료할게요.”


하얀 망토를 뒤집어쓴 성직자가 게일에게 달려갔다.

양손을 모으고 신성력을 발휘했다.

조금 전 대련으로 입었던 상처가 하나둘 아물었다.


“뭐야. 마침 사제도 있었네? 상점이나 신전으로 안내할 필요가 없지? 그러면 얼른 치료 받고 꺼져, 다시는 찾아오지 마. 패배자 새끼야.”


빠드득. 게일이 이를 갈았다.

상처를 치료하는 성직자의 손을 쳐내고 일어섰다.


“내일. 내일 한 번 더 도전하겠어.”


비장한 눈빛으로 킬리언을 바라보았다.

킬리언은 코웃음 치며 대응했다.


“또 지고 싶으면 그러던가. 대신에 내일부터는 네가 질 때마다 밥값과 숙소 값을 대신 내.”


게일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일로 답변을 대신했다. 에이린과 모몬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갔다.

킬리언은 세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숨 쉬었다.

주머니에서 환각초 하나 꺼내서 불을 붙였다.



*****



“후우···.”


킬리언은 느긋한 움직임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울타리 앞에 기대어 서서 환각초를 태웠다.

반쯤 닫힌 눈꺼풀 안에는 지난 싸움을 복기하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용사와의 대련이 일방적인 싸움으로 보였지만, 그에게도 지독한 피로가 찾아왔다.


“조금만 더 오래 끌었으면 위험했으려나?”


저릿한 양손을 쥐었다가 폈다.

용사가 대인전에 미흡해서 망정이지. 만약 두 번 정도 사람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면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용사 게일의 잠재력은 얕봐서는 안 됐다.

특히 신체를 강화하는 고유 스킬.

맨 처음 강화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싸우는 도중 끊임없이 강해진다.


‘심지어 스킬 뿐 아니라 실력도 발전했나?’


킬리언은 환각초를 피우면서 생각하였다.

오랜만에 몸을 긴장하게 한 적수에 대해 평가하였다.


‘싸우면서 강해지는 스타일이라. 진짜로 죽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네.’


만약 사전에 호흡을 빼앗아서 제 능력에 반도 발휘하지 못하게 가로막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킬리언 그도 진심이 돼서 싸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누구 하나 팔이 진짜로 잘려 나갔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 평가하기에는 그러했다.


“후우. 하여간에 불공평한 세상이야.”


킬리언은 환각초의 연기를 길게 뿜었다.

싸움으로 흥분한 여운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바람을 느꼈다.

조금은 진정이 되던 그때였다.


“콜록. 콜록!”


기침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목소리를 따라서 시선이 움직였다.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성직자가 눈앞에 있었다.

용사가 데리고 다니던 성직자였다.


‘작네.’


첫 감상은 짧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꽁꽁 감춘 채 작은 키만 보이던 성직자였다.

다음 감상으로는 성직자가 왜 여기 남아서 콜록거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혼자 남은 작은 성직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콜록! 제 말이 안 들리··· 콜록··· 세요? 콜록!”


처음 목소리를 제대로 들었는데, 살짝 앳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신비주의에 목소리는 해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별로 궁금하지 않던 새로운 사실에 생각보다 놀랐다.


“콜록! 콜록! 죄송! 콜록! 해요! 콜록! 너무 연기가 독해서··· 콜록!”


환각초 연기를 견디지 못하고 기침만 뱉는다.

킬리언은 멍하니 하얀 망토를 바라봤다.

용사란 많은 마족과 싸우는 위험한 직책이다. 그런데 눈앞의 이 꼬마는 뭘까?

용사가 갖는 명성과 괴리감이 큰 모습이다,


“야. 너 몇 살이야?”

“네? 그게 갑자기 왜 궁금··· 콜록. 콜록. 콜록. 콜록!”


대화를 시도하려니까, 기침 소리 때문에 진행이 안 된다.

킬리언은 짧게 혀를 차고, 손으로 환각초를 비벼서 불씨를 껐다.


“왜 용사 안 따라가고 여기서 이러고 있어?”


만나서 반갑다는지. 이름이 뭔지. 애새끼가 왜 용사 꽁무니 쫓아다니는지. 사소한 거 다 넘기고 궁금한 점만 물었다.

이에 성직자는 본인의 가슴을 두드렸다.

자꾸 나오는 기침이 멎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콜록. 상당히 독한 환각초를 쓰시네요. 몸에 안 좋을 거예요. 콜록.”

“남이사. 별로 독한 종류도 아니야, 이거.”


킬리언은 반쯤 남은 환각초를 바닥에 버렸다.

구두 밑창으로 환각초를 문댔다.


“그래서. 뭐 때문에 혼자 남은 거야?”


킬리언이 눈을 가늘게 뜯고 묻자, 망토의 어깨 부분이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이윽고 별 볼 일 없는 말이 성직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냥요···.”

“쯧. 거짓말하려면 적어도 변명거리는 준비해라. 성의 없게 답변이 왜 그래?”

“죄송해요.”

“뭘 또 순순히 인정해? 애면 애처럼 굴어. 뭔 이런 일로 사과하냐?”


킬리언은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다가 돌연 인상을 썼다.

용사와 마찰을 빚은 뒤, 갑자기 그쪽 애를 맡게 되어서 기분이 심란했다.


“죄송해요. 애답게 구는 법을 모르겠어요.”


심지어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애가 주눅 들어 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애꿎은 붉은 머리만 헝클였다.


“야.”

“네?”

“왜 사과하냐니까?”

“킬리언 님을 언짢게 해서···요? 사람이 실수할 때는 바로잡을 용기를 아끼지 말라고 들어서 실천했어요.”

“얘는 무슨 벌써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신전 놈들은 원래 싹수부터 이러냐?”


킬리언은 스스로 말을 뱉고도 아차 싶어서 눈치를 살폈다.

겉으로 보기에 망토는 잠잠했다. 상처가 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크흠. 신전 욕 한 건 아니었다? 알지? 나는 오히려 사제 놈들 좋아해.”


이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돈은 좀 처먹지만 포션보다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게 신전의 힘이다.


“속물적인 얼굴을 갖고 계시네요.”

“신전도 돈 밝히는데, 나라고 돈 밝히면 안 되냐?”


킬리언 본인이 생각하기에 완벽한 논리였다.


“그렇···네요. 확실히 대신전의 주교님도 돈을 밝히시니까요. 하물며 킬리언 님은 용병이니까 이상할 게 없는···.”

“넌 그걸 왜 진지하게 고민하냐?”


바로 킬리언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농담 삼아 말했는데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개선하는 아이가 살짝 무서웠다.


“킬리언 님은 속물적이다···.”


심지어 욕인지 단순한 평가인지 모를 말도 하였다.

킬리언은 이제 될 대로 대라는 식으로 한숨 쉬었다.

그 후로도 성직자는 한참 동안 무언가 고민하고 결론 내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다행이에요. 킬리언 님이라서 편히 말할 수 있겠어요.”


킬리언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뭘···”

“킬리언 님. 손을 내밀어주세요. 제가 다친 곳을 치료해드릴게요.”


절대로 내색하지 않던 부상을 언급하는 성직자.

킬리언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4/17 수요일 휴재입니다. 24.01.05 12 0 -
공지 도전! 주 3회 연재! 23.12.25 8 0 -
공지 연재 주기에 관하여? 23.07.03 37 0 -
공지 안녕하세요! 지하이입니다! 22.11.02 158 0 -
189 156화 전사의 나라 24.04.27 4 0 15쪽
188 155화 전사의 나라 24.04.24 4 0 15쪽
187 154화 전사의 나라 24.04.22 5 0 12쪽
186 153화 변하지 않는 24.04.19 6 0 25쪽
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5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6 0 15쪽
183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6 0 17쪽
182 149화 사막의 나라 24.04.08 6 0 16쪽
181 148화 사막의 나라 24.04.05 6 0 21쪽
180 147화 사막의 나라 24.04.03 7 0 12쪽
179 외전 다섯 번째 용사 終 24.04.01 8 0 31쪽
178 외전 다섯 번째 용사9 24.03.29 6 0 13쪽
177 외전 다섯 번째 용사8 24.03.27 6 0 16쪽
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7 0 28쪽
175 외전 다섯 번째 용사6 24.03.20 5 0 21쪽
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6 0 20쪽
»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10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6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7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7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4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8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9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12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10 1 14쪽
164 141화 십강[十强] 24.02.23 8 0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