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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4.27 10:06
연재수 :
1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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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6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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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432,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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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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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DUMMY

외전 <다섯 번째 용사>



“게일. 우리 지금이라도 돌아가자.”


에이린이 말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당장 창관에서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러났다.

힘들게 건물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런 꼴을 보려고 온 게 아니다.

용사 파티에 필요한 건 경험 많고 실력 좋은 실력자이지. 이렇게 많은 여자를 안고 시시덕거리는 놈이 아니었다.


“네가 용병왕의 후계자로 유명한 킬리언 이그나이트야?”

“게, 게일?!”


그런데 에이린의 소망과 다르게 게일이 움직였다.

게일은 유흥을 즐기는 붉은 머리 남자 앞에 섰다.


“뭐야? 팬이야? 징그럽게 남정네한테 싸인은 무슨···.”


용병왕의 후게는 혼자 뭐라 중얼대더니 손을 내젓는다.

명백하게 잡상인 취급하는 태도에, 에이린은 어이가 없었다.


“야! 네까짓 게 뭔데 우리에게 그렇게 행동해!”


에이린이 길길이 날뛰었다.

당장 저 면상에 파이어 볼을 던지고 사과받을 거라며 난동을 부렸다.

게일과 모몬이 그런 에이린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뭐야? 호위였어? 그러면 말을 하지. 예쁜 아가씨 싸인이면 언제든지 환영인데.”


눈치 없이 또 재수 없는 말을 한다.

에이린이 또 날뛸 기색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하루가 다 지나도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을 터였다.

겨우겨우 그녀에게서 얌전히 있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봐. 여기 술 추가할게!”


이런 수고도 몰라주는 붉은 머리 남자가 밉기만 하였다.


“하아. 킬리언 이그나이트.”

“너는 누군데 아까부터 개념 없이 남의 풀네임을 부르냐?”

“내 이름은 게일이야. 그냥 게일. 성은 따로 없어.”


게일이 다시금 정면에서 붉은 머리 남자와 마주했다.

새삼 당연하지만, 에이린이 용병을 못마땅해하는 만큼 붉은 머리 남자 킬리언도 그들이 반갑지 않았다.


“어쩌라고. 네 부모 성이 없는 걸 나한테 따지러 왔냐?”


거침없이 내뱉는 독설.

게일은 그의 거친 말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킬리언 이그나이트. 용병왕의 후계자라고 하여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더 형편없는 모습이야.”

“허. 지금 나보고 뭐라고 했냐? 네가 뭔데 나에 대해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냐? 싸움에 자신 있어? 자신 있냐고, 새끼야!”

“언행부터 행동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싸움에 자신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자신 있어. 우리는 누구에게도 패배해선 안 될 자들이니까.”

“아니. 이 새끼 말투가 왜 귀족 나부랭이 보는 거 같지? 야. 성도 없는 개새끼가 왜 귀족 흉내 내고 지랄이야.”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킬리언 곁에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 옷을 가지고 자리를 비켰다.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 있어서 싸움 거는가 본데, 진짜로 그런지 내가 시험해줘? 대신에 뒤져도 뭐라 하기 없다? 네가 먼저 시비 걸었으니까.”


킬리언의 몸에 붉은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확실히 몸에 기를 두르는 모습부터 웬만한 모험가들과 실력 차이가 보였다.

살기를 뿌리며 허리춤의 쌍도 손잡이를 잡았다.

게일도 허리춤의 성검에 손을 올렸다.


“하. 안 빼겠다고? 그래. 누가 누구 발밑을 기는지 한번 겨뤄보든가!”


킬리언은 충고 대신에 해준 협박이 통하지 않자 사납게 으름장뒀다.

당장이라도 두 사람의 날붙이가 빛을 보려던 그때였다.


“킬리언!!”


쾅!


한 남자가 창관의 문을 큰 소리 날 정도로 열고 들어왔다.


“킬리언, 큰일이야! 마족 놈들이 또 왔어!”


정체불명의 남자는 마을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알렸다.

용병왕의 후계의 원호를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였다.


“쯧. 너. 운 좋았다?”


킬리언은 혀를 차며 칼을 도로 넣었다.

남자를 따라 나가면서, 게일의 어깨를 밀치는 일을 빼먹지 않았다.


“베에! 누가 누구보고 운이 좋다는 거야?!”


에이린은 허겁지겁 나가는 킬리언의 뒷모습에 대고 혀를 내밀었다.

상대가 자신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든 말든 코웃음 쳤다.


“아주 혼을 내줄 수 있었는데 아쉽다. 그렇지? 게일.”


에이린이 도망치는 뒷모습에 욕하는 얼굴은 편안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얼굴이었다.


“게일~”


이상한 용병과 만나고, 원치 않던 싸움을 할 뻔한 게일에게 달려갔다.


“···게일?”


그런데 손을 붙잡기 직전에 그가 쳐냈다.

함께 모험을 떠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일이 에이린을 이런 식으로 내치는 일은 여태까지 없었다.

어쩐지 게일의 옆모습이 초조해 보였다.


“따라가야 해.”

“뭐?”

“킬리언을 따라가자, 애들아.”


이어서 뱉은 말은 동료들을 당황 시키기 충분했다.

설명을 바라는 얼굴마저 무시한 채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게일! 게일! 아 진짜! 왜 그런 놈에게 매달리는 거냐고!”


용사는 부리나케 준비했다. 먼저 간 두 사람을 따라갔다.

파티의 대장이 행동하자, 모몬과 에이린도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챙겨서 나갔다.


“땡큐~”

“항상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랄게요.”


성직자는 미남에게 은화 두 장을 쥐여주느라 뒤늦게 따라갔다.


“게일! 게일! 천천히 좀 가!”


마을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때아닌 추격전.

용사들의 추격전은 마을을 벗어나 숲 깊숙이 들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



“킬리언!”


킬리언은 인상을 찡그렸다.

먼저 도착한 그가 용병들과 어떠한 계획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유흥가에서 다짜고짜 시비를 건 세 사람이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쥐새끼처럼 뒤쫓아온 행색이었다.


“너도 지긋지긋하다. 또 무슨 욕을 듣고 싶어서 따라왔냐?”

“마족이··· 왔다고 들었어. 마왕군이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내가 너희들 도움이 필요할 거라고? 정신 나갔어?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엄마 젖이나 먹고 잠이나 쳐 자.”


게일의 눈빛에 이채가 돌았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더라도 이곳은 전장이 될 한 가운데였다.

그런 장소에서 아군의 원호를 거부하다니 정상적인 발언이 아니다.

이리도 감정적이어서야 연합은 제대로 될지. 여기 사람들끼리서 마을을 지킬 수 있을지가 불안했다.


“우리의 첫 만남이 좋지 않은 건 인지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도움이 될 거야. 믿어도 돼.”


게일은 함께 싸우자는 의견을 밀어붙였다.

이렇게 강하게 의견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마을을 지키는 일 이외에도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사실이 있어서이다.


“너희 도움 필요 없어. 머저리들아.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역시나 이번에도 험한 말 하였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단순히 그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보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게 아니라면. 지극히 이상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론이라면. 그건 현재 용사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필요한 마지막 부품이 되어줄 터였다.


“야! 너는 우리가 도와준다고 해도 말을 그렇게 싸가지 없··· 읍!”


모몬이 날뛰는 에이린의 입을 막았다.

방해하지 말라며 발버둥 치지만 무력에서 에이린이 모몬을 이길 리 없었다.


“하. 말이 안 통하는 새끼네. 야. 누가 쟤들에게 설명 좀 해라.”


킬리언은 더 말도 섞기 싫은지 등을 돌렸다.

다른 용병과 모험가에게 용사를 상대할 것을 명령했다.

그 뒤로는 몇 번 발을 구르더니, 빠르게 숲속으로 사라졌다.


“킬리언 혼자 어딜 가는 거야!”


게일이 당황하여 쫓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막 발을 뗀 용사의 앞을, 어느 용병이 가로막았다.


“잠깐 기다리게!”


눈에 긴 상처가 있는 용병이 말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세월을 보낸 노장이었다.

노장은 용사와 멈춰 세우고는,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 던지며 말했다.


“우리는 이만 돌아갈 거다.”

“뭐?”

“너희도 쓸데없는 데 기운 쓰지 마라. 다 같이 마을로 돌아갈 거다.”


용사들은 그가 보여주는 판단에 당황했다.


“철수라니요? 방금 용병 한 명이 들어간 거 아니었습니까?”


게일은 조금 전 킬리언이 달려간 곳을 바라봤다.

이미 킬리언의 모습은 사라졌다. 혼자서 숲속 깊은 곳으로 마족과 만나러 간 것이다.

그런데 용병 본대는 한 용병을 사지에 던지고 철수를 명했다.

이 일에 담긴 뜻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이해되지 않나? 이해할 필요 없다. 굳이 마을 사람도 아닌 너희에게 설명할 의무는 없으니까.”


노장은 기껏 가져온 물품들을 도로 마을로 들고갔다.

다른 용병들도 하나둘 짐을 싸고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게일을 비롯한 용사들은 한참 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게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보다 못한 에이린이 물었다.

그들이 따라온 용병은 홀로 숲속으로 들어갔다. 용병 본대는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싸가지를 따라갈 거야?”


게일은 재차 묻는 마법사를 돌아보았다.

방금 싸가지라고 칭한 이를 생각했다.

곧, 이곳에 온 목적을 떠올리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장 씨. 저희는 방금 숲속에 들어간 용병을 따라가겠습니다.”


철수하는 노장에게 가서 말했다.

노장은 아니꼬운 표정을 지었지만, 딱히 그들을 말리 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괜히 갔다가 죽지 마라.”


그저 걱정인지 험담인지 모를 한마디 하였다.

용사들은 용병들이 철수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에이린. 위치는?”

“꽤 멀어. 그새 참 멀리도 갔네. 그 싸가지.”

“이 주변에 있는 마족도 알 수 있어?”

“이 근처에는 없어. 하지만 싸가지가 있는 방향에서 마기가 느껴져.”


용사들은 개척되지 않은 숲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꽤 먼 거리를 이동하였다.

달리던 중에 문득 모몬이 궁금한 점을 떠올리고 물었다.


“게일. 궁금한 것이 있네만.”

“뭔데? 말해 모몬.”

“그자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뭔가? 아무리 봐도 파티 활동에 적합하지 않은 용병으로 보인다만?”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일을 떠올렸다.

아무리 장소가 그렇고 상황이 좋지 못했다지만, 킬리언이 보여준 인성은 훌륭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조금 전 용병들이 보인 태도를 보아도, 딱히 이토록 집착할 정도의 가치를 못 느꼈다.


“보통은 걱정돼서라도 한두 명이 따라가지 않는가?”


용병들에게서 킬리언에 관한 호의적인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 숲속에 들어가도 그러려니 보내주는 일부터가 그랬다.

단순히 미움받는 용병이라면 모르겠지만, 용병왕의 후계라는 말은 어느 정도 그를 인정해준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한 집단의 꼭대기에서 걱정하는 이 하나 없는 모습이다.

절대로 긍정적인 성과가 아니었다.


“실력이 좋다는 건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네. 하지만 파티로써는 부적합하다는 게 명확히 보이지 않았는가.”


이는 곧 킬리언을 영입하는 건 초기의 목적에서 어긋난다.

그들은 실력보다도 파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동료를 구하고 있다.

막무가내인 파티원을 들이면 오히려 기존의 대열까지 어긋날 수 있는 일.

이득보다는 잃을 게 많은 영입이었다. 욕심을 부려서 영입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모몬. 네 눈에는 그렇게 보였구나.”


게일이 묵묵히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모몬의 물음에 어중간하게 답했다.

조금 전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완전히 같은 의견이 아닌 애매한 대답이었다.


“게일.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못 알아듣네만?”

“미안해. 사실 나도 뭐라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래. 정리되면 다시 이야기해줄게.”

“알겠네. 너만이 느낀 무언가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고마워. 오래 생각할 일은 아닐 거야.”


말끝에 ‘아마도.’라는 말이 들리지 않았지만 붙어 있다고 느꼈다.

용사들은 한참 동안 달렸다.

그러다가 숲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칼을 부딪치거나 싸우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대화하는 목소리였다.


“아니. 씨발. 뇌도 파충류라서 내 말을 못 알아듣냐?”


그래도 역시나 사이좋은 대화는 아니었다.

용사들은 무기를 빼내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킬리언! 도와주러 왔어!”

“응? 뭐야 씨발.”


킬리언을 사이에 두고 싸움 진형을 갖추었다.

게일은 성검을, 모몬은 망치를, 에이린은 지팡이를 들었다.

유일하게 무기가 없는 여사제만이 빈손으로 있었다.

용사 파티의 등장에 두 무리가 얼빠진 얼굴을 하였다.


“킁. 붉은 인간. 그러면 저놈을 뭐라 설명할 거지?”

“···씨발. 뭔가 했더니 이 새끼들이었냐?”


용사들이 도우러 왔음에도 킬리언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만상을 지었다.

마족인 리자드맨과 몇 차례 대화를 더 주고받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뒈져.”


이어서 붉은 선이 허공을 그었다.

허리춤의 쌍도가 어느새 손에서 휘둘려지고 있었다.


“숙여!”

“어엇?”


상황을 지켜보던 게일이 에이린의 머리를 눌렀다.

갑작스레 험한 대우에, 에이린은 손과 무릎에 흙이 묻었다.

무릎 꿇은 자리에 나무뿌리가 있어서 무릎이 시큰거렸다.


“악! 게일! 이게 뭐 하는 짓···”


말하다 말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역시 인간은 졸렬하다!”


순식간에 숲 바닥에 구르는 시체들.

조금 전까지 태연히 말을 주고받던 리자드맨도 예외는 아니었다.


“뭐야! 너 싸가지, 저 도마뱀 놈과 친한 사이 아니었어?”


태연히 이야기 나누다가 리자드맨을 베어버린 상대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킬리언은 콧방귀 뀌었다. 칼 등치로 달려오는 마족들을 향해 가리켰다.


“내가 미쳤냐? 도마뱀을 어디에 써먹는다고 저것들과 친구 하냐?”


그리 말하며 칼을 높이 들었다.

숲을 빼곡히 채우는 마족을 향해 몸을 던졌다.


“저 멍청한 싸가지가!”


에이린은 킬리언의 무모한 행동에 경악했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자도 한계는 있다.

중대 이상의 병력을 단신으로 맞서는 건 위험한 일이다.

심지어 상대가 마족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래. 차라리 잘 됐어. 너 같은 거 동료가 될 바에는 확 죽어버려라.”


곧 죽을 인간의 명운을 빌었다.

무모한 행동에 안타까워하며 마법 시전을 준비했다.


“젠장. 우리까지 베어버릴 생각인가?!”


그런데 또 한 번 게일이 머리를 눌렀다.

피가 잔뜩 묻은 창 하나가 용사들 뒤편의 나무에 박혔다.

만약 게일이 머리를 누르지 않았다면, 곧장 미간을 꿰뚫었을 것이다.

에이린은 게일과 나무에 박힌 창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흙투성이가 된 손과 무릎을 보았다.


“저, 저게! 진짜 가만 안 둬!”


에이린은 곧장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스파크가 튀었다.

이를 따라서 천이나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라이트닝 스피어!(Lightning Sphere!)”


번갯불이 빠른 속도로 전장을 내리달렸다.

방금 막 리자드맨의 목을 벤 사무엘이 고개 숙였다.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리자드맨 한 마리를 감전시켰다.

생사를 확인할 필요 없이 즉사였다.


“야이 씨! 어디에 쏘는 거냐! 이 멍청한 마법사가!”


아직 멀쩡히 살아있는 킬리언이 소리쳤다.


“흥! 그러길래 맞기 좋게 그런 곳에 있으래? 꺄악!”


에이린은 킬리언의 꼴사나운 모습을 비웃던 중에 급히 머리를 숙였다.

킬리언이 살짝 몸을 비틀자 에이린 뒤쪽의 나무에 박혔다.

에이린이 맞도록 일부로 유도한 화살이었다.


“꼴 좋다! 누가 맞기 좋게 대놓고 마법 쓰랬냐!”

“저게! 너 진짜 죽었어!”


그 뒤로 킬리언과 에이린은 무구와 마법을 하나씩 주고받았다.

리자드 맨 투구를 던지면 파이어볼이 전장에 날아들었다.

욕지거리 뱉으면 쌍욕이 돌아왔다.

단검 하나를 훔쳐서 던지면 라이트닝 스피어로 응수했다.

그러한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동안 리자드맨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두 앙숙은 서로 티격태격 투사체를 주고받다가도 위험한 빈틈이 생기면 막아주는 게 꽤 손발이 잘 맞았다.


“게일. 아무래도 너의 말이 맞는듯하군.”

“그러게. 실제로 보니 더 놀라워.”


모몬과 게일은 감탄했다.

처음 실전에서 합을 맞추는데도 두 사랍의 합공이 그럴싸했다.

비록 고의가 다분한 오인사격이 대부분이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놀랍도록 손발이 잘 맞았다.

조금만 의견을 조율하여 다듬으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다.


“꺄악! 미친놈이! 게일, 모몬! 저놈 좀 죽여줘!”


퍽, 나무에 부딪힌 리자드맨 머리가 터졌다.

에이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였다.

이에 게일은 웃으면서 검을 들었다.


“그건 봐줘. 에이린.”


정말로 그녀가 킬리언을 죽이기 전에 싸움을 끝내기로 했다.


“화신강림[化身降臨].”


하얀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하늘과 땅이 연결된 듯한 현상에, 지상에서 싸우는 모든 이가 싸움을 멈췄다.

하늘까지 닿은 빛줄기의 중심에는 용사 게일이 서 있었다.

하늘과 사람이 이어진 거 같은 신비한 모습이다.

이윽고 빛줄기가 서서히 가늘어지면서 자취를 감췄다.

빛줄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몸에서 하얀 기운이 넘쳐 나오는 게일이 있었다.


“가자. 모몬.”

“끄응. 굳이 그 기술을 쓸 필요가 있었는가?”


용사의 머리 색깔이 새하얗게 변했다.

흰 머리와 노란 눈동자. 멸족했다고 알려진 천인족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색 조합이다.


“우리의 힘도 보여줘야지.”


게일은 검을 들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충만한 신력이 검에 깃들었다.

순식간에 쏘아진 몸이 미물의 목을 베었다.


“이걸로 하나 빚진 거다?”

“하!”


게일과 킬리언은 짧은 순간에 시선을 교환했다.

두 사람의 눈빛이 승부심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더 강하냐는 원초적인 투쟁의 욕구가 담긴 경쟁이었다.

쌍도와 성검이 휘두른 수를 헤아릴 새도 없이 휘둘러졌다.

베어 넘기는 적의 수는 무기를 한 번 휘두를 때보다 많았다.

어느새 정신없이 전장에서 구르다 보니, 그 많던 마족이 모조리 몰살됐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킬리언. 너를 용사의 일원으로서 영입하겠어.”


게일은 갈색으로 변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선의의 경쟁 이후 속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킬리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함께해줄 거지? 킬리언.”


킬리언은 내밀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내 헛웃음 지으며 마주 손을 내밀었다.


“좇까 새끼야.”


자연스레 가운뎃손가락을 들었다.

여전히 용사파티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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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7 0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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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6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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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7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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