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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4.27 10:06
연재수 :
189 회
조회수 :
11,064
추천수 :
127
글자수 :
1,432,441

작성
24.03.1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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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DUMMY

외전 <다섯 번째 용사>



“치료해주겠다고?”


킬리언은 말의 의도를 의심하였다.

하얀 망토와 어리고 고운 손을 번갈아 봤다.

지금 성직자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안다. 하지만 알아들은 표정이 떨떠름하였다.


“네가 왜?”

“네?”

“네가 왜 나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무료로 치료해준다고 해도 따지듯이 물었다.

성직자는 당황한 채 입을 열었다.


“그야 다쳤으니까···.”

“다치긴 뭘 다쳐. 그 갈색 머리 놈 공격 하나도 안 맞았건만.”

“하지만 방치하면 상처가···”

“내 말 못 알아들었냐? 안 다쳤다고.”


킬리언이 성직자의 치료를 거듭 거부했다.

큰 이유는 없다. 그냥 기분이 나빠진 게 이유의 다였다.

본인 파티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랑 싸웠으니 다쳤을 거다. 이런 이유로 치료를 제안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나 말고 네 용사님이나 챙겨. 다음부터는 주제 파악하라는 말도 전하고.”


뭉쳐 다니는 멍청이들이 동료에 대한 자신감과 오만함이 넘쳐흐른다.

나설 때 안 나설 때 파악 못하고 내미는 적선이 짜증 났다.


“이딴 짓을 나한테까지 하려 하지 마.”


탁탁, 불편한 기분으로 구두 앞코를 들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환각초 피우다 만 것이 계속 신경쓰였다.

하지만 성직자는 어딜 가지 않고 가만히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치료는 확실히 해야 해요.”

“내 말 못 들었냐? 그놈이랑 붙어서 하나도 안 다쳤다고.”

“하지만 다친 데는 있잖아요. 왼쪽 팔꿈치죠? 리자드맨이랑 싸울 때 다친 곳이.”


싸아아.


킬리언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나빠졌다.

동네 형처럼 가볍게 굴던 겉치레가 사라졌다.


“너. 내가 다친 줄 어떻게 알았어?”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추궁하였다.

조금 전까지 성직자를 귀찮아서 쫓아내려는 태도에서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야 킬리언 님이 티를 냈으니까요?”

“내가 티를 냈다고? 내가 언제?”

“줄곧 그랬어요. 리자드맨이랑 싸운 이후에도 그랬고, 술집에서도 그랬고. 용사님과 싸울 때 왼팔을 사용할 때도 인상을 찡그렸잖아요.”

“거짓말하지 마. 내가 무슨 인상을 찡그리긴 찡그···”

“아. 지금도 그런다.”


킬리언은 말하다가 멈췄다.

무의식중에 본인의 미간을 더듬었다.

하지만 아픔을 보였다는 말과 다르게 딱히 불편함을 느끼거나 내색한 흔적은 없었다.

아주 잠깐. 자세히 의식해야만 느껴질 정도로 약한 통증.

신경 쓰지 않으면 굳이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가만히 두면 알아서 나을 부상이라고 여겼다.


“팔 주세요. 내일도 용사님이 올 테니 대비해야죠.”


그런데도 이걸 눈치채고 팔을 주라고 말한다.

킬리언은 이 상황이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본인에게도 손해가 아니었기에 시키는 대로 따랐다.


“보세요. 새파랗게 멍들었잖아요. 지금이야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중에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요.”


그 말대로 소매 안쪽 팔꿈치가 파랗게 멍들었다.

단순히 멍든 게 아니고 새까만 점이 있는 걸 보니 생각보다 크게 다쳤다.


“야.”

“네?”

“무슨 생각이야?”


하지만 치료와 믿음은 다른 이야기다.

팔꿈치에 신성력이 깃드는 와중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직자를 쏘아봤다.


“적을 치료해준다니 무슨 생각이야?”


그 말에 성직자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미 다 나은 팔꿈치에서 고개 들어 눈을 마주쳤다.

어쩐지 망토 안쪽에서 동그랗게 눈 뜨고 있을 멍청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살짝 시선을 피했다.


“킬리언 님은 용사님의 적이세요?”


돌아온 건 조금 전 질문을 되묻는 말.

킬리언은 되묻는 질문에 어이가 없었다.

눈앞의 성직자는 제 동료와 칼부림을 부린 걸 죄다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면 나랑 걔가 싸운 건 뭔데?”

“그야 대련이잖아요? 킬리언 님의 영입이 걸려있긴 하지만요.”

“그걸 알면서도 나를 치료해? 그냥 용사에게 다 불고 이쁨받는 게 낫지 않아?”

“이쁨받다니요? 남의 약점을 말해주는 일이요? 설마요. 용사님은 그런 악덕한 생각하지 않아요.”


대화를 나눌수록 더 말문만 막힌다.

왠지 용사 게일과 대화 나눌 때보다 더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옳은 말만 하니 반박할 거리가 없다.

심지어 연장자가 말하는데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본인의 말이 다 맞는다고 여기는 성직자를 어떻게 쥐어박을까 하는 충동이 치밀었다.


“야.”

“네?”

“다음부터는 내 상처를 치료하지 마.”


킬리언이 소매를 내렸다.

그런데 또 그랬다.

망토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멍청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터였다.

이어서 망토 안에서 들려온 말은 지금까지의 감상과 별로 다를 게 없는 말이었다.


“왜요?”

“왜긴 왜야. 내 마음이지. 나는 나보다 약한 놈이 알짱거리는 게 제일 싫어.”


착하고 옳은 소리만 하는 성직자.

킬리언은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조금 어린 아이가 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싸움에서 이겼는데 왜 내가 배려받아야 하는 거지? 배려는 약한 놈들이나 받는 거야. 나처럼 강한 사람은 선망만 받으면 되는 거라고.”


그리 말한 킬리언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할 말 없게 하는 완벽한 논리였다.

망토 안의 얼굴은 더욱 멍청하게 변했을 거라고 예감했다.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의 말 같은 걸 안 듣겠다는데 어떡하겠나. 싶었다.

무슨 말을 하든 방금 논리로 받아칠 자신이 있었다.


“불쌍한 사람.”

“뭐?”

“킬리언 님은 외로운 사람이군요.”


하지만 예상했던 반응과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심지어 말문이 막혀 있을 줄 알았더니. 도리어 킬리언을 멍청이 취급했다.


“하! 지금 뭐라고 했냐? 꼬마야.”


킬리언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느꼈다.

게일이 말 걸었을 때보다 더한 짜증을 느꼈다.

은근히 화를 드러내는데도 망토의 머리 부분이 여전히 꼿꼿이 서 있다.

처음에는 틈만 나면 고개 숙이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지금은 차라리 그때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언제나 사랑 속에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것이 두려워서 혼자 있기를 원하다니요? 그런 건 좋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고 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로······”

“야.”


후웅.


킬리언이 팔을 휘두르자, 뒤편에 있던 숲의 나무가 줄기째로 잘려 나갔다.

한두 나무가 아니라 여러 나무가 중심을 잃고 쿵쿵 쓰러졌다.


“치료해준 건 고마운데. 내 앞에서 함부로 떠들지 마.”


킬리언의 험악한 얼굴이 성직자를 노려봤다.

방금 치료한 왼팔로 칼을 들고 있었다.

리자드맨과 싸울 때도 보여준 적 없던 살기를 보였다.


“아이라서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약자면 약자답게 알아서 발밑을 기어.”


칼끝으로 망토의 머리 부분을 가리켰다.

대답을 바라고 같은 자세로 한참 서 있었는데,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킬리언은 쯧, 혀를 차고 칼을 집어넣었다.

주머니에서 환각초를 하나 꺼냈다.


“알아들었으면 꺼져. 애새끼처럼 여기서 질질 짜지 말고.”


이 말에 겁먹었다고 여기고 쫓아내려 했다.


“그건 옳지 않아요.”


하지만 불을 붙이려는 순간에 또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짜증을 넘어서 어이가 없었다.

킬리언은 아직 태우지 않은 환각초를 손안에서 구겼다. 또 한 번 말을 건 겁 없는 성직자를 내려다봤다.


“내가 피겠다는데 뭐가 옳지 않은데?”

“킬리언 님의 말대로 강한 사람이 약자를 지키는 건 개인의 선택이죠. 하지만 약자를 같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에요.”

“하! 또 그 이야기냐? 내가 말 하지 않았냐?”


빠드득.


한 손으로 움켜쥔 울타리 부분이 우그러졌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은 이 나무 조각만큼이나 내게 가치 없는 말이라고. 나보다 약한 놈이 하는 말을 뭐 하러 들어야 하는데?”


킬리언은 성직자를 노려봤다.

이에 맞서는 망토의 머리도 고개 돌리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큰 짜증을 느꼈다.

망토 안에서 성직자가 건방진 눈을 하고 있다고 여기니 화가 났다.


“킬리언 님. 원래 울타리 속의 양이 황소를 만나기 전까지 제 울음소리가 멋있는 줄 아는 법이에요.”

“허? 지금 네가 날 가르치려 드냐? 내 나이의 반도 안 먹은 꼬마가 날 가르치려 든다고?”

“배움에 나이가 어디 있나요. 그리고 벌써 두 번째예요. 논쟁에 비난은 불필요하니 저를 꼬마라고 그만 부르세요.”

“왜? 꼬마라고 불려서 거슬려? 그런데 어쩌나? 너 꼬마 맞잖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땅꼬마야.”


뿌득.


망토 아래서 이가 갈리는 소리 났다.

킬리언은 성직자의 약점을 찾아내고 미소 지었다.


“땅꼬마 아니에요. 그리고···”

“그래. 땅땅꼬마야. 용사에게 가서 울고불고 이르렴. 땅꼬마처럼.”


뿌드득.


또 한 번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킬리언은 노골적으로 불쾌해하는 소리를 듣고 즐거워했다.

드디어 성직자를 쫓아낼 방법을 알았다. 옳은 소리를 못 하게 할 방법을 찾아냈다. 저 애늙은이와의 말다툼에서 이길 방법을 알아냈다.


“저는 용병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지만 킬리언 님만 한해서 평가를 바꿔야겠어요. 현재 용병의 평가가 안 좋은 건 전부 킬리언 님 같은 용병이 있어서예요. 이리 꽉 막힌 생각을 품으니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죠.”


성직자는 인신공격에 맞서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영악한 용병 앞에서는 귀여운 발악일 뿐이었다.


“어쭈? 키도 작은 게 말은 똑바로 하자?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용병 이미지가 망한 게 아니야. 내가 있으니까 그나마 모험가에 안 밀리고 용병 길드가 살아있는 거지.”

“키! 작다고 말하지 마세요! 저는 아직 성장기라고요!”

“네가 성장기인데 어쩌라고? 나는 이미 다 컸어, 땅꼬마야. 그리고 네가 커봤자지. 얼마나 큰다고 그러냐? 땅땅땅꼬마야.”


그리 말하며 혀를 낼름 내민다.

어느새 킬리언은 성직자보다 더 코흘리개 꼬마처럼 대화했다.

나중에 이 대화를 떠올리면 발작할 정도로 유치하지만, 효과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지금껏 태도 한 번 바뀐 적 없던 성직자가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저는 클 거예요! 킬리언 님보다 더요!”


어느새 그들의 대화는 논점에서 벗어났다.

이제 본래의 논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응. 그래. 다음 땅꼬마가 하는 말~”

“더는 안 되겠어요! 셀레브리디 님을 따르는 종으로서 형제님이 하는 모욕을 두고 볼 수 없어요!”

“두고 볼 수 없으면 어쩔 건데? 너희 용사님 털렸죠? 아니면 아빠에게 이르러 가게 땅꼬마야?”

“이익! 저, 캣니스 센츄어리의 이름으로 선언하겠어요! 킬리언 이그나이트. 당신에게 성전을 요청하겠어요!”

“성전은 개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어디서 고위 성직자 흉내를···”


펄럭-


두꺼운 천이 바람을 따라서 넘어갔다.

줄곧 콧방귀나 뀌며 놀리기나 하던 킬리언이 말을 멈췄다.


“킬리언 이그나이트. 당장 성전에 맞서도록 하세요.”


성직자가 하얀 망토를 벗었다.

생각보다 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사람이 바뀐 건 아니었다. 잔뜩 화가 담긴 두 눈이 이글거렸다.


“뭐야? 너 지금 진심이냐?”


킬리언은 헛웃음을 지었다.

상대를 무시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감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망토 안에 잘도 숨겼구나, 생각되는 외모가 있었다.

작은 어깨 앞으로 금빛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바다 같은 푸른 눈동자도 보이고, 그 안에 담긴 화가 잔뜩 난 감정도 보였다.

목에서 턱 아래까지 이어진 화상자국도 보였는데. 그것이 유일하게 외모에서 보인 흠집이었다.


“쯧. 꼴에 용사라고. 어린 애도 범상치 않은 거 봐라.”


킬리언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을 귀찮아했다.

방금 성전을 선포하면서 느꼈다.

이건 코흘리개가 말로만 하는 협박이 아니다. 정말로 신의 이름 아래서 강제성을 띠는 성전이었다.

고위 성직자나 할 수 있는 성전 개시.

어떻게 어린 나이에 성전을 선포할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궁금해도 얻을 게 없으니 묻지 않았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 애들 우는 소리 제일 싫어하거든? 맞고 나서 울지 마라?”


킬리언의 조언에 성직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글부글 끓는 주전자가 연상되었다. 어지간히 어린애 취급받는 게 분했다.


“야. 싸우기 전에 하나만 묻자. 너 몇 살이야?”

“열여섯 살이에요!”

“뭐야? 진짜 다 컸네? 너 키 더 안 자라겠다. 포기해라, 야.”

“이이익! 성전에 임하면서 한다는 말이 그게 다인가요!”


성직자. 아니, 캣니스의 눈빛이 증오로 번들거렸다.

단순히 화가 난데서 그치지 않고 그를 미워하기로 작정한 눈이었다.

킬리언은 화가 난 아이를 바라보다가 쩝, 소리를 냈다.


“하아. 그래. 어른인 내가 참아야지. 공격할 테니 방어해라?”


방어하라고 하지만 사실상 못 막을 걸 알고 하는 말이었다.

성전이 시작된 이상 피하는 일도 그만두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걸음에 거리를 좁혔다.

빠르게 승부를 내려 했다.


“잘 자라.”


칼의 손잡이 부분을 휘둘렀다.

성직자의 관자놀이를 노려서 무장해제 시킬 의도였다.

그러나 단번에 기절시키려던 행동은 의외의 결과로 이어졌다.


“어? 잠깐······”


한순간 캣니스의 몸이 빛나더니 공격을 피했다.

심지어 공격을 회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격하였다.

몸을 움직이는 데 있어서 가장 껄끄러운 공간으로 침투한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몸의 제어력을 앗아갔다.

두 발이 공중에 뜬 킬리언은 당황했다.


“어? 씨발?”


순식간에 시야가 소용돌이쳤다.

몸이 공중을 부유하고 하늘을 날아가는 새가 보쳤다.

그는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이해 못한 채 눈동자를 굴렸다.

그리고 곧,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 수 있었다.


“커억!”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들어왔다.


쩌억!


땅이 갈라졌다.

킬리언은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해하려 했다.

땅바닥에 뒤통수부터 내려꽂히더니 정신이 혼미하였다.

당장이라도 눈꺼풀이 닫힐 듯했다. 버티려했다. 하지만 금방 알 수 있었다.

이건 근성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아··· 씨발··· 다시··· 해······.”


흐릿한 시야 너머로 황금빛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상대를 향해 천천히 팔을 뻗었다.

하지만 눈꺼풀이 풀리는 일과 동시에 팔도 떨어졌다.


“···킬리언 님?”


캣니스가 쓰러진 킬리언의 볼을 찔렀다.

방심하다가 기절한 사실을 깨닫고 한숨 쉬었다.

벗어둔 망토를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기절한 용병도 잊지 않고 등에 업었다.

어린 체구의 성직자에게 업혀서 발이 질질 끌려간다.

이런 킬리언의 모습을 마을 사람들이 보고 수군댔다.



*****



“으악! 다시 해!”


킬리언은 눈을 떴다.

몸부림치면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눈을 뜨고 본 광경이 기절하기 전과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뭐지? 꿈인가?”


술집을 함께 운영하던 여관 안이다.

이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혹시 꿈을 꾸었나 싶어서 제 몸 상태를 살폈다.

뒤통수를 만져봤지만 혹 하나 없다. 어디 특출나게 아픈 곳이 없다.

온몸에 아무런 상처가 없다는 걸 깨닫고는. 미간 사이를 꾹 압박했다.


“꿈이었냐.”


술을 끊어야겠다고. 술 때문에 별 꿈을 다 꾼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일어나셨군요?”

“으악! 깜짝아!”


난데없이 인기척이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침대 아래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씨발!”


침대 아래서 꾸물꾸물 하얀 망토가 올라온다.

금발의 성직자가 얼굴을 올라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킬리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씨발! 너 여기에 어떻게 왔어!”

“네? 여관을 운영하는 신자님께 물어보니 답변해 주시던데요?”

“신자라고? 넌 지금 그 새끼가 신자라고 불릴만하다고 생각하냐?”


킬리언은 여관 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2미터가 넘는 망나니 칼을 들고 돼지나 썰던 모습.

아무리 생각해도 신자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여신님의 자식이에요. 모든 세상의 이치가 신의 뜻이니 살아가기만 해도 신을 따르는 신자와 다름없죠.”

“염병. 지랄하네.”

“하지만 신의 뜻을 따르는 동안에도 고칠 점은 있어요. 킬리언 님으로 예를 들면 그 험한 입이요.”


킬리언은 질렸다. 캣니스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하얀 망토의 목덜미를 잡고 들었다. 근육질 팔 아래로 캣니스가 대롱대롱 매달렸다.


“킬리언 님? 무얼 하시는 거죠?”


발걸음이 자연스레 창가로 향했다.


“아. 깜빡했어요. 원래는 용사님들이 일어나자마자 제가 환기를 시키는데. 아무래도 낯선 공간이다 보니 그만 실수르으으으으을···?!”


더 이상 용사의 아침이고 뭐고 더 들을 필요 없었다.

킬리언이 삼 층 창문에서 캣니스를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꺄악-!”


짧은 비명을 외면하고는 창문을 닫았다.

아무렇지 않게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눈 감았다.


쿵쿵.


문 밖에서 신명 나게 발소리가 들려온다.

침대에 누운 킬리언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쿵쿵.

이내 쿵.


예상한 방문자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제정신인가요?! 사람을 건물 밖으로 내던지다니요!”


어제처럼 화가 잔뜩 담긴 목소리.

이에 모르는 척. 베개로 귀를 막았다.


“안 자는 거 다 알아요! 자는 척하지 마세요!”


어제에 이어서 2차전의 시작.

하지만 킬리언은 싸워줄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이 그렇게 나쁜 짓만 골라서 할 수가 있어요!”


혼자서만 울분을 터트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상대해주는 이가 없자 더 크게 소리쳤다.

이제는 킬리언도 모든 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버텼다.


“만약 킬리언 님이 던진 사람이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한참 이어지던 목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졌다.

킬리언은 그 변화가 의아했다.

베개를 내려도 괜찮은가 고민하다가, 끝내 궁금증을 못 참고 뒤 돌았다.


“반가워. 킬리언.”


뒤돌아본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귀찮은 녀석이 네 배로 늘어났다.

한 녀석도 시끄러운데. 시끄러운 놈들이 떼로 몰려왔다.

짜증 나는 갈색 머리 둘에 붉은 머리 하나. 거기에 밤새도록 함께 있던 하얀 망토 하나까지. 만나고 싶지 않은 손님들이 총집합했다.


“킬리언. 너에게는 어제의 치욕을 만회하려고 왔는데···. 사제님은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게일이 말했다.

온기를 담고 말하던 말투가 금방 냉랭해졌다.

그 말에, 킬리언은 미간을 찡그려졌다.

단순히 용사들의 방문에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사제님. 말 안 하실 겁니까?”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묘한 분위기.

용사가 나타나고부터 입을 다문 성직자의 모습이 신경 쓰였다.


“그, 그게. 킬리언 님이 다쳐서 간호해주다 보니까······.”


입만 다문 게 아니라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킬리언을 대할 때와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다.

파티원에게 언질 없이 외박해서 꾸중 듣는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어쩐지 달라 보였다.

더 익숙하고 기분 나쁜 종류의 무언가였다


“너. 따라와.”


붉은 머리 마법사가 하얀 망토를 잡아끌고 방에서 사라졌다.

둘이 사라질 때까지도 묘한 분위기는 사라질 줄 몰랐다.


“후우. 미안해. 우리 파티의 사제님이 민폐를 끼쳤네.”


게일이 킬리언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킬리언은 뭐 씹은 표정이 되었다.

미안하다는 말에서 사죄의 감정이 조금도 전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말 안에 도사리는 감정은 의심과 불신.

당장 팔을 붙잡고 추궁하지 않는 게 기특할 정도로 짙은 감정이었다.


“혹시 사제님이 너에게 실수한 건 없지?”


곧, 묘한 분위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킬리언 앞의 용사는, 캣니스가 말한 병간호라는 단어를 싹 다 잊어버린 듯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지. 무슨 작당을 꾸미는 건 아닌지. 킬리언이 용병으로 활동하면서 많이 봐온 시선의 한 종류였다.


“쯧.”


기분이 불쾌해져서 혀를 찼다.

아침부터 성직자와 마주하면서 하루 시작이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귀찮은 일 정도는 평소에도 여러 번 경험해서 상관없었다.

하지만 용사가 떠보듯이 하는 말에, 그가 아는 욕설을 다 표현해도 나아지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더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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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54화 전사의 나라 24.04.22 5 0 12쪽
186 153화 변하지 않는 24.04.19 6 0 25쪽
185 152화 변하지 않는 24.04.15 5 0 13쪽
184 151화 사막의 나라 24.04.13 6 0 15쪽
183 150화 사막의 나라 24.04.10 6 0 17쪽
182 149화 사막의 나라 24.04.08 6 0 16쪽
181 148화 사막의 나라 24.04.05 6 0 21쪽
180 147화 사막의 나라 24.04.03 7 0 12쪽
179 외전 다섯 번째 용사 終 24.04.01 8 0 31쪽
178 외전 다섯 번째 용사9 24.03.29 6 0 13쪽
177 외전 다섯 번째 용사8 24.03.27 6 0 16쪽
176 외전 다섯 번째 용사7 24.03.25 6 0 28쪽
175 외전 다섯 번째 용사6 24.03.20 5 0 21쪽
» 외전 다섯 번째 용사5 24.03.18 6 0 20쪽
173 외전 다섯 번째 용사4 24.03.15 9 0 19쪽
172 외전 다섯 번째 용사3 24.03.13 6 0 18쪽
171 외전 다섯 번째 용사2 24.03.13 7 0 14쪽
170 외전 다섯 번째 용사1 24.03.08 7 0 13쪽
169 146화 십강 사무엘 24.03.06 4 0 25쪽
168 145화 십강 사무엘 24.03.04 8 0 17쪽
167 144화 십강 사무엘 24.03.01 9 0 20쪽
166 143화 십강 사무엘 24.02.28 11 0 12쪽
165 142화 십강[十强] 24.02.26 10 1 14쪽
164 141화 십강[十强] 24.02.23 8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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