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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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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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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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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DUMMY

짙은 마력 속에서의 마력감지는 흙탕물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만큼 그 어려움이 컸고, 여기에 카릿치오스의 빽빽한 밀림은 실제 시야마저 제한했다.


때문에 도망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환경이었으나, 문제는 추격자가 무한한 체력과 신체향상으로 무장한 불식(不息)의 인형들이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포위망을 무사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절대 모습을 들켜선 안됐고, 이에 카니엘 일행은 밤 사냥꾼의 힘을 이용했다.


즉, 테일리아의 특출난 눈을 앞세워 적들의 움직임을 선제적으로 파악, 때론 몸을 숨기고, 때론 우회를 하며 인형과의 접촉 자체를 피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행운이 곁든 도주도 한계가 있는 법.


점점 빈번해진 인형 정찰대와의 조우와 우회가 불가능할만큼 촘촘해진 포위망 앞에서 카니엘 일행은 결국 도주의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두터운 나무 뿌리가 문발처럼 내려와 입구 절반을 가린 어느 작은 토굴 안.

축축한 벽면에 몸을 바짝 붙인 채,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갈까 입을 꾹 다물던 카니엘은 자신이 신경써야 할 것이 호흡뿐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에 재빨리 정신을 집중해 입구에 자리한 현월수의 움직임을 억제한 뒤, 옆에서 미세하게 떨고 있는 벨리안느의 어깨를 꼭 붙잡으며 한 마디를 덫붙인 그였다.


“...걱정마. 작전대로 곧 적들이 움직일 테니까.. 그때 기회를 노리면 돼.”


“······”


하지만 그 확신 찬 말에도 벨리안느의 떨림은 잦아들기는커녕 더욱 심해졌고, 이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 갑자기 토굴 천장이 흙가루를 토해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들.


낱개로는 풀잎에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가벼웠으나 어마어마한 숫자로 인해 흡사 태풍이 지나가는 것 같았고, 때문에 벨리안느를 바짝 끌어당긴 카니엘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되뇌인 것은 결코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벨로나 단장님..’


인형들을 끌어내기 위한 기만 작전.


그 작전이 제대로 먹힌 것 같은 가운데, 저 무수한 인형들이 벨로나에게 달려들거라 생각하자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벨로나가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있는지 결코 잊지 않은 카니엘이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걸까?”


때문에 그치지 않을 비처럼 이어지던 인형들의 발소리가 마침내 멎었을 때, 자신의 팔을 붙잡으며 묻는 벨리안느의 말에 냉정히 답할 수 있었다.


“애초에 우리의 안전을 최우선하여 짠 작전이잖아. 그러니 다른 생각말고 벨로나 단장님을 믿도록 하자.”


“하지만 아무리 그녀라 해도..”


“어서.. 움직이자.”


그렇게 매몰차게 토굴 밖으로 나선 카니엘이었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나무 위에 몸을 숨겼던 테일리아가 활강하는 매처럼 내려왔다.


“적들이 모두 이동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 반가운 소식에 카니엘은 지체 없이 현월수를 돌려 세우며 곧바로 떠날 채비를 했다.


‘이 현월수로 저를 구출했듯 벨리안느 또한 지켜주길. 그리고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잘 보살펴 주십시요. 많은 시간을 함께하여 꽤 정이든 녀석이니..’


그렇게 현월수의 안장을 정비하다 문득 떠오른 벨로나와의 마지막 대화.

이에 마음을 한층 더 굳힌 카니엘은 미약하게 몸에 힘을 주며 주저하는 벨리안느를 이끌고서는 현월수에 태웠다.


“이동하자.”


그리고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를 숲을 향해 다시금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모두를 살릴 방법이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걸겠어!’


흔들리는 현월수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 어젯밤 자신이 외쳤던 말을 떠올린 벨리안느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각오와 달리 천 이백명의 월영군과 벨로나의 목숨까지 담보하여 도망치는 상황.


그럼에도 한편으로 카니엘과 큰 전투에 휘말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을 했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것이었다.


“벨,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해.”


그처럼 마음이 심란했기 때문일까?

빠른 걸음으로 현월수를 쫓아오며 건넨 카니엘의 말에 되려 반발심이 든 벨리안느였다.

특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죄값마저 벨로나에게 빼앗긴 채, 민폐만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고, 때문에 어떻게든 전투에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마력 전선을 넘어 마주한 현실은 일행의 안전조차 장담할 수 없을만큼 버거운 것이었다.


“좌측에 1기 발견! 우측으로 이동할게!”


짙은 마력 때문에 여지껏 무용지물이었던 마력감지 능력.

그러나 정상적인 마력환경에 접어들자 안개가 걷히며 드러난 암초처럼, 인형들의 위협적인 전열이 감지된 것이었다.


“잠시.. 역으로 감지 당했어! 좌측 1기, 이천 보폭 밖에서 접근.”


급작스레 전황이 전개된만큼 벨리안느의 월등한 감지력을 통한 선제대응이 어려운 상황.


“아! 안되겠어. 우회로에도 총 4기!”


“그럼.. 차라리 추격 인형들을 떨쳐낼게. 테일리아!”


그 혼돈 속에서 뒤늦게 추가 병력들이 감지되자 카니엘은 즉시 테일리아를 불러들였다.


“대략적인 거리만 알려줘!”


그러자 자신이 나설 때임을 깨달은 테일리아는 그렇게 외친 뒤, 짧은 호흡과 함께 두 눈을 가리던 안대에 손을 갔다댔다.


“달과 밤의 사냥꾼, 이쉬타르여. 어둠을 꿰뚫는 눈이 지금 사냥을 떠난다.”


구릉 위 전투에서 보여줬던 녹시 이타르의 힘.


“그 사냥길에서 그대가 준 두 개의 메(MÈ) 중 하나가 눈꺼풀을 떤다.”


자신의 마력은 감춘채 신체향상보다 빠른 속도로 적의 마력을 추적, 사냥하는 능력은 지금처럼 소수의 추격대를 격퇴하기 더할나위 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눈을 뜬 하나의 메(MÈ). G̃issu!”


마침내 세찬 바람을 남긴 채 진격을 시작한 테일리아.


“그대로 직전! 천 보폭쯤이야!”


그런 그녀에게 적의 위치를 알려준 벨리안느는, 잠시뒤 쫓아오던 마력의 움직임이 멎는 것을 감지하며 사냥의 성공을 알아차렸다.


“좋아, 눈치채지 못했어. 움직이자.”


다행히 테일리아의 공격에도 우측 인형들의 움직임은 없었고, 이에 두 사람은 재빨리 테일리아가 확보한 길을 따라 나섰다.


“당분간 괜찮은 것이다!”


그 동안 주변 정찰까지 마친 테일리아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마중을 나왔으나, 이제 전황을 완전히 파악한 벨리안느는 결코 미소를 지어 보일수 없었다.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전방 4천 보폭에 100여기 규모의 포위 전열이 펼쳐져있어. 때문에 다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야 할 것 같은데...”


“오른쪽? 그럼 아까 지나쳤던 인형들은 어쩌고?”


“... 아마 후방 부대인만큼 감지 능력이 뛰어나진 않을거야. 그러니 두 진형 사이를 잘 파고 든다면..”


“벨리안느. 잘못하면 작전 전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으니 신중해야 돼. 정말 그 방법이 최선인거야?”


“······”


카니엘의 되물음에 벨리안느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적들의 마법 실력이 뛰어나 자신의 마력이 감지된다면 완전히 포위당할 상황.

때문에 전열 끝에 위치한 우측 인형들부터 섬멸하는 것이 최선이나, 그 숫자가 4기였기 때문에 왠만한 기습으론 어림도 없을테였다.


특히 자신은 어떤 마법 도움도 줄 수 없었기에 전투는 오직 카니엘과 테일리아의 몫이 될테였고, 두 사람을 위험에 빠트릴 선택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 그녀였다.


“벨.”


그렇게 우람한 나무에 기대어 갈팡질팡 할 때, 카니엘이 천천히 다가가 두 손으로 벨리안느의 뺨을 살포시 감쌌다.


“전쟁터에서 마법사의 판단은 상관의 명령보다 우선해. 그러니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월영군 또한 네 말을 따를거야. 심지어 벨로나 단장님이 옆에 있다해도.”


“······”


“즉. 그만큼 네 판단은 단장님의 결정처럼 예리해야 한단 말이고, 그래야 모두가 너를 믿고 목숨을 맡길 수 있겠지.”


모두를 살리기 위해선 우선 그 목숨들을 책임질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


그러나 자신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벨리안느는 대신 고개를 푹 숙인채 벨로나가 했을 법한 말을 이어갔다.


“우측 인형들만 제거한다면 그 뒤로 감지되는 마력은 없어서 괜찮을 듯해. 하지만 전투가 길어진다면 추가 지원 병력이 올 가능성이 있을 수도...”


“아래쪽으론 인형들이 없다는 거지? 그럼 나랑 테일리아가 우측 병력들을 남쪽으로 유인할게. 그 동안 넌 포위망 사이를 벗어나..”


“하지만 ..! 혹시 잘못 된다면..”


"벨! 반드시 살아올 테니 걱정마. 그러니 나를 믿고.. 아니, 작전에 참여한 모두를 믿고 일단 여길 빠져나가. 지금으로선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


“그래, 벨. 걱정하지 말라고. 나랑 칼 선에서 처리할 수 있을거야.”


마음을 후벼파는 카니엘의 말과 함께 테일리아 또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동조하자 더 이상 고집을 피울수 없게된 벨리안느였다.


“모두 무사해야 해....”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채 안녕을 기원하는 벨리안느와 그 처진 어깨를 감싸안아준 카니엘.


영원히 붙잡고 싶은 그 짧은 안식도 잠시, 곧바로 전투준비를 마친 카니엘과 테일리아는 이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진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보며 자신 또한 바삐 움직여야한다고 생각한 벨리안느였으나, 두 사람과 함께 하고픈 마음이 발목을 붙잡았다.


‘... 이런 내가 뭘 하겠다고..’


그러다 밀려오는 자괴감과 함께 자신의 이런 유약함 때문에 벨로나가 마법전이 필요없는 작전을 애초부터 고려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머리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결국 이게 내 최선이란 말이지..’


원통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월수를 박차며 도망갈 뿐이란 사실에 입술을 꽉 깨문 벨리안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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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3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7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9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40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9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9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7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8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2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2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0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5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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