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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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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47,868

작성
22.02.1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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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DUMMY

그것은 빛마저 흡수하는 완벽한 어둠이었다.

마침내 벨리안느를 붙잡고, 눈에 가싯거리였던 벨로나마저 제거할 절호의 순간.


호수가 증발되는 말도 안되는 장면이 전달되더니 이어서 나타난 미지의 존재.


그 존재가 무언인지 파악할 틈도 없이 세상은 그 완벽한 어둠으로 덮혔고, 그렇게 아르센과 추격대의 집단동화(集團同和)는 끝이났다.


“대체...”


포위망을 펴기 위해 전면에 나선 추격대는 정확히 1,352명.

하지만 애초부터 그들의 존재가 이 세상에 없었다는 듯 단 한명과도 동화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현상.


“무슨일 있습니까?”


아르센의 옆에서 초조하게 작전의 결과를 기다리던 엘제어는 심상치 않은 그의 표정에 곧바로 질문을 했다.


“... 모르겠어.. 벨리안느인가? 아니, 마법은 없었는데...”


믿기 어려웠으나 일단 전멸 가능성과 그 원인을 추측하던 아르센은 곧바로 자신의 말을 부정했다.

벨리안느에게 그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거대한 마법이 시전되지 않았기 때문.


그렇게 기폭의 울림, 치솟는 화염, 살을 에는 냉기 등의 마법 없이 어떻게 1,352명과의 연결이 단번에 끊어졌는지 추측하던 아르센은 이내 생각을 멈췄다.


“직접 전방으로 가봐야겠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르센에게 유일하게 남은 그 선택지는 그러나 엘제어에겐 비이성적이며 충동적인 의견일 뿐이었다.


“안됩니다. 벨리안느의 마법 범위 밖에서 대기하기로 했지 않습니까?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집단 동화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시지요.”


“집단 동화가 안되니까 하는 말이야.”


“예?”


“추격군 모두가.. 사라졌어.”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짓는 엘제어를 내버려 둔채, 아르센은 재빨리 잔여 병력에게 대기 명령을 내린 뒤 질주를 시작했다.


그렇게 초토화 된 숲의 파편을 밟고, 그것이 토해내는 먼지를 뚫고 나아가길 수분.


마침내 하제르 호수쪽의 마력들이 하나둘씩 감지되기 시작했고, 이에 좀 더 마력 집중을 하던 찰나.


“..의장님! 이번엔 대체 왜?!..”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고 갑자기 질주를 한 것도 모자라 이번엔 뜬금없이 발걸음을 멈춰세우자 엘제어는 불만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르센은 벼락이라도 맞은듯 미동조차 없었다.


그렇게 침묵이 점차 길어지자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 그의 표정을 살핀 순간, 엘제어는 멈칫하고 말았다.


“······!”


유한한 생명이 끝을 맞이할 때 내비치는 공포감.


보통 인형은 이해조차 못할 그 심연의 감정이 아르센의 얼굴에 섬세히 표현되자, 엘제어는 그를 창조한 대륙의 공적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지경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런 감상도 잠시.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아르센을 재촉했고, 그러자 그는 짓고 있는 표정만큼이나 절망적인 말을 내뱉는 것이었다.


“..우리 종족을 말살 시킬 수 있는 존재가 저기에 있어.”


////////////////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은 시체들로 가득했다.

아니, 시체이길 희망하는 존재라고 정의하는 편이 옳았다.

대상은 마법진이 파괴되어야 죽는 인형이었기에, 단지 모래톱 위에 널부러져 있다는 것만으론 시체라 부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한시빨리 애매한 호칭과 함께 마음속 불안을 정리하고 싶은 카니엘이었으나, 그전에 마땅히 해야할 일이 있었다.


“벨리안느!”


치열한 전투 도중 어느 순간 현월수에서 떨어졌던 그녀.

다행히 부드러운 모래 덕에 큰 부상은 없었고, 고른 숨을 내쉬는 것으로 보아 잠시 기절한듯했다.


그렇게 한시름 놓은 카니엘은 그녀를 똑바로 눕힌 뒤 일행들을 찾아 나섰고, 곧 근처에서 샤즐과 테일리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 부상은 없었으나, 벨리안느와 마찬가지로 의식이 없는 상태.

하지만 애초부터 상태가 좋지 못했던 벨리안느와 달리, 두 사람은 끝까지 인형과 싸우고 있었기에 갑자기 기절한 이유에 갸웃하던 찰나.


“제엔장. 아무도 없냐? 이렇게 죽는건 좀 아닌데!”


그 외침이 들려오는 곳으로 재빨리 발걸음은 옮긴 카니엘은 십여기의 인형들에 깔려 꼼짝을 못할 뿐, 큰 부상 없이 멀쩡한 카를을 발견했다.


“무사하셨군요!”


“너도 무사해서 다행이고.. 일단 이 기분 나쁜 것들부터 치워줘.”


그 말에 인형들을 하나 둘씩 옆으로 밀어내며 그들이 미동조차 없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으나, 이상하게도 마음속 불안은 가시질 않았다.


“다른 일행들은? 무사하냐?”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 모두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벨로나 단장님은...”


“우리보다 먼저 죽을 녀석은 아니니 괜찮겠지.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냐? 갑자기 인형들이 시체가 되어 쏟아내리지 않나. 그리고...”


카니엘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던 카를은 그때서야 제대로 바라보게 된 전황에 잠시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하늘을 가르던 푸른 수평선을 밀어내고 대신 자리잡은 흑색의 지평선.

맑은 물로 가득했던 하제르 호수는 질척이는 뻘로 이뤄진 계곡이 되었고, 그 주변에는 누군가 뿌려놓은 조약돌 마냥 천여기의 인형들이 널부러져 있는 상황.


“호수 밑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그보다... 이정도 규모의 인형들이 일순간 전멸했다? 말이되냐 그게?”


“그것도 아무런 외상 없이 말이죠.”


차라리 신체 어딘가가 불에 탔다거나 찢겨있다면 모를까.

그랬다면 어떤 마법 때문이라 추측이라도 할테였지만, 인형들은 마치 낮잠을 자는듯 멀쩡한 모습이라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너랑 나만 멀쩡하고 마법사들만 기절한 것 같은데.”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카니엘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카를의 말.


“그럼 똑같이 인형들도 잠시 기절한 거라면..”


여기에 카니엘이 한가지 가설을 덧붙이자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듯 서둘러 이동할 채비를 시작했다.


“잠깐. 이참에 그냥 인형들 목을 전부 다 따버릴까?”


“아뇨. 본대가 따로 있다 했으니 빨리 여길 벗어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보다 단장님을..”


현월수 위에 샤즐을 태우느라 애를 먹던 카니엘은 테일리아를 들쳐맨 것으로 먼저 준비를 끝낸 카를에게 그렇게 부탁했고, 이어서 벨리안느를 업고 일어서려던 찰나.


“음? 저거 벨로나 같은데.... 쟤 뭐하냐?”


생각보다 빠른 발견에 자연스레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보게 된 카니엘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한무더기로 쓰러져 있는 인형들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벨로나의 금빛 머리칼.


“단장님! 무사...”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반갑게 소리치려던 카니엘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에게 일격을 가할 듯, 갑자기 검을 움켜쥐고 돌격 자세를 취했던 것.


하지만 주변에는 쓰러진 인형들밖에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공격 대상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렇게 벨로나의 검날이 향한 곳을 한참동안 둘러보다 일반적인 시선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발견한 "그 존재."


“저게 대체...?”


마치 누군가 단검으로 하늘을 찌른듯 푸른 창공 속 검은 상처 하나.

호수 경사면 위에 몇십 보폭이나 떠있는 그 정체불명의 존재는 멀리서 보기에는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니엘의 본능은 그것이 어떤 이질적인 존재임을, 그리고 인형의 마법처럼 볼수는 없지만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남을 힘이 주변에 있음을 경고했다.


'혹시 저 존재 때문에 인형들이..?'


그렇게 이치에 벗어난 존재가 눈 앞에 있었기에 말도 안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던 찰나, 눈에 들어온 벨로나의 움직임.


"단장님!"


이 모든 상황이 불길하기만 했던 카니엘이 본능에 따라 경고의 외침을 내질렀으나, 벨로나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존재'를 향해 검날을 세운채 돌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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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4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7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9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40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9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9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8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8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2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3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1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5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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