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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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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6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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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DUMMY

카릿치오스의 청명한 밤하늘 속 별빛과 달빛을 등진 채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카니엘의 머리속에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단장님은 왜 하필 이런 자리에 벨리안느를 부른거지?’


소수의 최측근만 있는 자리라면, 오히려 벨리안느에 대한 오해를 풀수 있는 기회로 반겼으리라.


하지만 지금 회의는 이곳을 떠나기 전 최종 작전 회의로, 백부장급 이상 50여명의 지휘관들이 신경을 곤두세운 채 참석해 있는 자리였다.

그런 곳에 벨리안느가 등장하는 것은 끓는 기름에 물을 붓는 셈이었고, 때문에 카니엘로서는 벨로나의 지금 결정에 불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벨리안느를 위해 벨로나가 해준 것이 적진 않았다.

없는 물자를 모아 언덕위에 개별 막사를 설치해준 것도, 그리고 언덕 계단 입구에 자신의 막사를 놓아 일종의 방벽을 세워준 점도 그랬다.


특히, 시초의 마을에 도착한 이튿날 밤.

어떤 월영군이 언덕 뒷편을 몰래 오르는 것을 테일리아가 발견했을 때, 벨로나가 직접 제지한 사건은 지금껏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억제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몇 일간의 보초로 신경이 곤두서있기 때문일까?


‘하다못해 첫번째 회의 때, 벨리안느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한다고 해줬더라면..’


그렇게 신경쓰였던 자그만 일까지 떠올리다, 오히려 그 경우 흑표부대의 더한 반감을 샀을거라 깨달았고, 이에 머리를 식히려 주변을 둘러볼 때,


“카니엘!”


언제 합류했는지 함께 보초를 섰던 테일리아와 카를이 곁에 있다는 것과 뒤늦게 카를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음을 자각한 그였다.


“아니, 무슨 심각한 생각을 하길래 불러도 말이없냐.”


“아, 잠시..”


“됐다. 보나마나 네 여친에 대한 것이겠지.”


카를이 정곡을 찌르며, 어떻게 구했는지 알 수 없는 일리오스산 장창을 목에 걸친뒤 말을 이었다.


“근데 정말 벨리안느가 이렇게 나서도 되는거냐? 괜히 나한테 시비거는 병사가 있을만큼 전체적인 분위기가 썩 좋진 않던데?”


그 말에 또다시 불안해진 카니엘이 한숨으로 대답을 했을 때,


“죄송해요.. 저 때문에 그런 일을..”


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일에 신경쓰는 벨리안느의 모습에 연거푸 한숨을 쉬게된 그였다.


“파핫! 미안할 것까지야. 네 덕에 다들 내가 월영군 탈영병이란 사실은 잊은듯하니까. 아무튼... 첫 등장 준비는 다됐나?”


“그..글쎄요.”


“뭐, 벨로나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불러겠지. 그러니 너무 긴장마라.”


“벨! 저번처럼 내가 이상한 움직임은 다 잡아낼 테니,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고마워요.. 다들.”


어느 응원단에 뒤지지 않을만큼의 큰소리로 테일리아까지 말을 잇자, 그나마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된 벨리안느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계단 끝에서 등장한 사람키 세 배 높이의 거대한 횃불들의 제열과 그 아래 거대한 막사의 모습 앞에서 벨리안느와 카니엘은 표정을 굳힌채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여태껏 든든한 방어벽과 같았던 벨로나의 거대한 막사.

그러나 지금은 반대로 공략해야 할 철옹성처럼 보였고, 여기에 긴장감과 위축감마저 든 것은 천막의 주인이 수문장처럼 서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러내어 죄송합니다.”


머리 위에 뜬 달빛처럼 평온한 말투로 일행들에게 인사를 건넨 벨로나 세라트너.

투구를 뺀 완전 무장을 한 모습은 어느때와 다름없었으나, 그녀의 머리 위로 나부끼는 흑표군단의 깃발 때문인지 왠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


“뭐야? 카릿치오스에서 길을 잃곤 했던 벨로나가 맞는거냐? 어째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게 전혀 다른 사람 같은데?”


“책임져야 할 사람이 많기에 어깨가 무거워 보일수는 있겠습니다, 카를.”


“흠.. 그런건가? 난 또 지금껏 차한잔 하자는 말도 없길래, 역시 군단장님은 우리와 상종을 안하시는구나.. 했지.”


“그럴리 있겠습니까? 다만, 찻자리가 아니라 이렇게 작전 회의에 어려분을 초대해야 할만큼 상황이 좋질 못해서.”


“벨리안느까지 회의에 참석해야 할 정도로 나쁜가요?”


두 사람의 가벼운 입씨름에 카니엘이 불쑥 끼어들자, 벨로나는 숨을 짧게 내쉬고는 카니엘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어쩔수 없는 결정임을 이해 부탁드립니다, 카니엘. 그러나 분명 이 자리가 제 휘하 병사들은 물론 벨리안느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확고한 그녀의 눈빛에 더이상 토를 달수 없었던 카니엘이었고, 그러자 벨로나는 출정식을 마친 장군처럼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


“흑표부대 내부 회의라 벨리안느외 나머지 분들의 자리는 별도로 마련해야 했으니 참고 부탁드리며... 그럼, 이동해 볼까요, 벨리안느?”


이어서 천막을 향해 발걸음을 떼기 전 벨리안느를 돌아보며 눈빛을 보냈고, 그 무언의 명령에 카니엘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아줘야 했다.


“벨리안느. 들어가서 상황 보고를 듣는 것 이외 당신이 할일은 크게 없을 겁니다.”


“으..응..”


“그러나 혹시 마법이나 마력관련 조언이 필요할수도 있으니, 그 때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벨로나와 그 뒤를 재빨리 쫓아가는 벨리안느를 선두로 나아가길 수분,

어느새 굳건한 성문처럼 느껴지는 천막의 입구가 일행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럼 적어도 제 병사들의 현재는 구원할수 있는 자리가 되길.”


그리고 벨로나가 문을 여는 주문마냥 그렇게 중얼거리며 거대한 천막 입구를 옆으로 제친 순간.


가장 먼저 일행들을 반긴 것은 천막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열기.


내부 횃불과 병사들이 발산하는 열이 기폭 마법처럼 쏟아져 나온 것이었고, 그에 휘말려 안으로 발을 들이자 이번에는 백여개의 눈동자가 일행들을 맞이했다.


벨로나가 집무실로 쓰는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월영군들.

40여명의 백부장들이 가장자리를 따라 2열 횡대로 서있고, 그들 앞에는 4명의 대대장이 급조된 나무 책상을 사이에 둔채 마주 앉아있는 상황.


천막 안의 열기로 얼굴에 땀방울이 가득했으나, 그것이 마치 전투중 묻은 적의 핏방울인냥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모두는 다음 상대를 찾는 날선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눈빛을 정제해 더욱 시퍼런 기세를 뿜어내는 대대장들은 벨로나와 달리 좀더 날것의 위엄을 지녔고, 때문에 그들이 모인 책상에만 열기가 사라진듯했다.


그런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 딱 두 자리가 비어 있었고, 이윽코 그 자리의 주인들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맙소사 정말로···!”


“허참! 이거야 원.”


누군가의 단말마로 시작된 술렁임이 점차 천막안을 지배했고, 이에 발걸음을 멈출수 밖에 없었던 벨리안느였다.


그러자 등을 보인 사냥감에 달려드는 맹수처럼 그 울림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고,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 카니엘이 뛰쳐나가려 할 때,


귓가를 파고든 둔탁한 파열음. 이이서,


“벨로나 단장님. 그럼 회의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피를로니아 부단장이 월첨검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병사들이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그 전에 잠시..”


그리고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받은 벨로나는 갑자기 주머니 속에서 신체향상구슬 하나를 꺼내더니 머뭇거림 없이 각인진에 흡입시키는 것이었다.


마치 회의 시작 전 물을 마시는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으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 어떤 물리적인 공격을 시도한다면 죽음을 각오하라.’


적어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벨로나의 그 확고한 의지를 거스를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카니엘은 그때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벨리안느 맞은편에는 샤즐 사제가, 양 옆엔 벨로나와 피를로니아가 자리함을 확인하자, 그나마 편한 마음으로 입구쪽의 별석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제가 벨리안느를 이번 회의에 참여시킨 것은 인형에게 포위된 작금의 상황 속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상세한 상황 보고를 부탁드립니다. 키프로스 1대대장?”


그렇게 모두가 자리에 앉은뒤 이어진 벨로나의 설명 끝에 누군가 호명되었고, 그러자 벨리안느의 대각선에 앉은 한 사내가 일어나는 것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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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2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7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9 0 14쪽
»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40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9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8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7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8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2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2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0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5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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