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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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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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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DUMMY

“확실히.. 월연방국과 인형사이 전쟁이 벌어진다면 다른 국가들은 관망할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속으론 어떤 결과를 기대할지 뻔하지 않습니까?”


“월연방국과 유포레아스 모두가 멸망하길 바라겠지.”


“예. 그리고 저는 그 기대가 기대로 그치지 않고 어떤 물리적인 행동으로 이어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각 월연방국 도시에는 예비군이..”


“ ‘저는’ 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트리스트 사제.”


말이 끊긴 트리스트가 어떤 반박도 못할만큼 마메트 성주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말씀대로 신체향상으로 무장한 예비군이 있다면, 도시 연합만으론 연방국을 공격하진 못할겁니다. 유일한 위험이라면 도시연합과 손잡은 일리오스 제국군이 움직이는 것인데..”


“그 경우, 제국의 최전선에 빈틈이 생길테고, 우리가 인형과의 전선을 뒤로 물리면 그들의 본토가 위험해지니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예. 그래서 군사 작전은 쉽진 않지만.. 칼을 부딫치는 것외 공격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요.”


“보급을 조절해서 월연방국에 타격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 누구도 도시연합 소속 도시의 무역에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만, 속국화를 시도한다면 다른 이야기겠죠. 예전에 일리오스 제국의 특사가 제안한 것처럼.”


퀠른 성주의 오만함, 혹은 기백으로 상징됐던 소문의 전말을 뜬금없이 알게 된 바르나프는, 역시 특사를 내쫓을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한가지 의문점.


‘이토록 독립성이 강한 퀠른의 성주가 주변 국가의 간섭을 감내하면서 트리스트를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결론이 뭐지? 결국 힘의 집결에 참여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럴리가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정보다 빨리 집결된 힘을 이용하고 싶은 것이지요.”


“정확히 어떻게?”


'힘의 집결’까지 공유됐단 사실에 놀란것도 잠시, 바르나프의 입이 떡 벌어질 이야기가 마메트 성주의 입에서 나왔다.


“저희 군이 신체향상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죠. 월연방국을 계속 지원하기 위해선 적어도 도시를 지킬 힘은 있어야 하니까요.”


“... 그 경우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뻔하지 않나.”


“대륙의 곡창이 월연방국에 넘어갔다..라고 해석될만큼 공개적으로 힘을 사용할 생각은 없습니다. 때론 밖에 차고다니는 대검보단 품속의 비수가 더 날카로운 법이니.”


월연방국 군사력의 핵심 기술인 신체향상.

비밀로 할 테니 그 기술을 넘겨달라는 어이없는 말에 말문이 막힌 바르나프였으나, 고민하는 듯한 트리스트의 모습에 막혔던 입이 절로 열리고 말았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입니다, 트리스트 사제. 신체향상 기술이라니요! 잘못하다간 되려 저희 목이 졸리고 말겁니다.”


바르나프의 강한 반대에 대화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여기에 뜻을 알 수 없는 트리스트의 침묵이 길어지자 마메트 성주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고, 연달아 소르늬 또한 긴장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던 바르나프의 눈에 문득 들어온 칸나라는 이름의 낯선 꽃.


어느덧 밤하늘에 뜬 달빛과 그 꽃의 긴 줄기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대지를 할퀴고 있었고, 그 낯선 풍경에 이곳이 타국의 영토임을 실감했을 때.


“바르나프 공(公). 여기로 오실 때 퀠른의 뿌리는 잘 경험하셨는지요?”


“... 그 지하 통로 말씀이오?”


“예. 저희 뜻과 관계없이 나고 자란 고토가 전쟁터가 되어, 살기 위해 내뻗어야했던 뿌리 말입니다.”


역시 그 이동 과정이 의도적이었음을 알아챈 것도 잠시, 마메트 성주의 거침없는 말이 이어졌다.


“최초에는 가까운 거리의 요새만을 잇는 공사였습니다만.. 연합군의 강한 반발을 무릅쓰고, 교대 병력을 이용하면서까지 도시로 이어지게 했죠. 왜 그랬는 줄 아십니까?”


“······”


“전쟁 결과와 무관하게 저희는 최후를 맞이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형에 의해서든 아니면 연합군에 의해서든. 그래서 어떻게든 그 끝을 대비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

그 우수수거리는 소리가 요새안을 가득 메워, 왠지 성주의 말에 동조하는 듯 들릴 때.


“다행히 인형들이 그은 국경선이 절묘한 세력 균형을 만들어 지금까지 살아남았지만...‘힘의 집결’은 그 균형을 깨트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말과 함께 한송이 꽃 앞으로 다가선 마메트 성주는 그 붉은 잎을 살짝 건드렸다.


“그 다가올 폭풍 속에서, 이렇게 꽃잎을 피울수 있다면.

그 장소가 요새안이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여‘힘의 집결’에 동참했습니다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최악의 경우를..”


“ ‘힘의 집결’은 계획대로 이뤄질 것이며, 모두는 예정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트리스트의 견고한 대답에도 흔들리는 붉은 꽃.


“정말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계획에 어떤 흠집도 없을거라고?”


다시금 발걸음을 돌려 트리스트 앞에 당당히 선 성주였으나, 이전과 달리 살짝 흔들리는 눈동자.

그 떨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은 비단 바르나프 뿐만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나보군. 말해 보도록.”


“..대륙 남단의 소식입니다만, 그전에 시초의 마을에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아직은 계획대로 무사히 마무리됐다는 사실밖에 알려줄수 없다. 그리고 혹시 흑표부대에 대한 걱정이라면...”


“아뇨. 벨로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는 것이 아닙니다.”


노빌리스크에서 벨로나가 목격됐단 소문은 이미 아라한에서 들었던 바였다.

때문에 대륙 남단이란 말에 당연히 벨로나관련 소식일거라 추측했으나, 마메트 성주는 그런 시시한 것이 아니라는 말투였다.


그리고 긴 한숨 뒤 이어진 말은 바르나프는 물론 트리스트까지 충격을 받기 충분했다.


“노빌리스크에서... 대륙의 공적을 봤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


“물론 가짜 정보가 판을 치는 클레이 루트발 이야기지만, 심상치 않은 현상이 뒷받침되니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것이 아닌가 싶더군요.”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그리고 심상치 않은 현상..?”


바르나프의 당황한 물음에 여태 잠자코 있던 소르늬가 목을 한번 가다듬으며 앞으로 나섰다.


“약 한달 전, 수십의 인형 분대가 시간차를 두고 경계 지역을 가로지는 것을 포착, 이에 다른 도시와 공조한 결과 비슷한 현상이 있었음을 상호 확인했습니다.”


“그게 대륙의 공적과 무슨 상관이오? 대륙 어디든 돌아다니는 것이 인형 정찰대인데.”


“예. 그래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만.. 그들의 숫자와 방향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더군요.”


“숫자와 방향?”


“타 도시의 정보를 취합한 결과, 움직인 병력은 최소 3천에서 최대 5천. 최종 목적지는 카릿치오스로 추측됩니다.”


그제야 이해하게 된 마메트 성주의 질문.

“예. 사제님께서 진행하신 일 때문에 인형들이 그렇게 대거 움직였는지 궁금했던 겁니다. 혹시 그게 아니라면..”


미세하게 떨리는 마메트 성주의 눈동자와 그에 비쳐 흔들리는 트리스트의 모습.


“어떤 풍문이 사실이기에 인형들이 움직였다면... 그 변수도 계획 속에 있는 겁니까?”


혼자서 역사를 쓸수 있는 대륙의 공적.

예고 없는 돌풍처럼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그 가능성은 생각도 하기 싫었고, 따라서 트리스트가 진행한 일이 원인이어야만 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은 유일하게 진실을 알고 있는 자에게 향했으나, 트리스트는 어둠에 잠긴 바위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용기를 낸 바르나프가 한마디 하려는 순간.


“인형들이...”


갑자기 가장 가까운 꽃잎에 손을 내뻗으며 무겁게 말을 시작한 트리스트.

하지만 어떤 마법 때문인지 그의 손길에 닿은 붉은 꽃잎은 갑자기 사그라 들었고, 그 해괴한 광경에 잠시 정신이 홀렸을 때.


“대규모 병력을 대륙 최남단으로 이동시켰다면, 북벌을 서둘러야겠군. 그러니 퀠른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신체향상이라면 허락하도록 하지.”


충격으로 충격을 덮을 셈이었다면 트리스트의 의도는 성공이었다.


어떻게 귀결될지 모를 대륙의 공적이나 카릿치오스의 일보다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변화에 모두의 관심이 쏠린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원마법진의 공유는 없다. 적당한 시점에 각인진을 새길 사제들을 파견토록 하지. 그리고 바르나프가 신체향상 구슬의 공급을 맡도록.”


신체향상 병력 숫자를 조절하고, 그 사용까지 월연방국에서 제어하겠다는 말.


“···트리스트 사제, 그럼 그 공급 물량은 어느 정도로..?”


“월 3천개로 제한하지.”


“하지만..”


“퀠른의 정예병력 모두를 한번에 전환하진 않을테고.. 그럼 어디 당장이라도 전쟁을 치룰셈인가?”


“······”


마메트 성주의 반발은 잠재운 트리스트는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는 듯 세 사람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 마메트 성주 또한 최소 1년의 준비 기간을 예단했던터라 더 이상 불필요한 잡음을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협상이 마무리되는 분위기 속에서 트리스트는 요새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고, 자연스레 대륙의 공적에 관한 이야기는 묻히는 듯했을 때.


“사제님. 곡식은 먹는 사람이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그 어떤 차별없이 공복을 채워주지요.”


한발 앞서 요새 출구로 향하며 마메트 성주가 던진 의미 불명의 말.


“그것이 흑토(黑土) 여신의 가르침이기에, 저희는 배고픔을 모르는 존재와 최후의 전쟁을 치루는 자들의 배를 채워줄 것입니다.”


월연방국을 지원하는 좋은 명분이란 생각과 함께 굳이 이런 비유가 필요한지 했을 때.


“그리그 그 행위엔 어떤 정치적 의도가 없기에, 요청이 있다면 무혼(無魂)을 향해 북진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관용을 베풀 겁니다.”


“······좋을대로.”


그 대화가 마무리된 것은 마침 모두가 요새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때문에 새카만 밤바다처럼 변해버린 들판의 모습에 잠시 정신이 팔려, 한 발 늦게 마메트 성주의 말뜻을 이해한 바르나프였다.


‘필요하다면 흑표 부대까지 지원하겠다라..’


살아남기 위해 지하로를 건설했고, 같은 이유로‘힘의 집결’에 참여한 마메트 성주.


그런 그가 트리스트 앞에서 흑표 부대를 지원하겠다고 당당히 말한 것은 단지 배짱을 부리기 위해서는 아닐테였다.


“다행히 올해는 모두의 배를 불릴만큼 대풍년이 들 것 같습니다. 자, 어서 성으로 가시죠. 못다한 이야기와 앞날을 축복하기 위한 자리를 가져야하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불어온 세찬 바람과 이에 줄기와 잎사귀가 부대껴 폭풍우 소리를 내는 어둠속 들판.


마치 대륙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다가오는 느낌 속에서 바르나프는 마메트 성주의 말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진심으로 벨로나가 몰아치는 소용돌이의 중심이 될것이라 믿는건가...?’


무엇보다 더 이상 대륙의 공적에 대한 것은 안중에 없다는 듯한 그의 태도.


단지 트리스트를 흔들기 위한 거짓 정보였는지 아니면 다른 숨기는 사실이 있는지, 저 어둠속에 내뻗은 뿌리의 깊이처럼 그의 속셈을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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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4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7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9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40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9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9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8 0 11쪽
»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9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2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3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1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5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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