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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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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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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DUMMY

시초의 마을을 지배하는 여름의 더위는 지난 몇일 사이 더욱 극심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해줄 객관적 자료는 어디에도 없었고, 때문에 개인차로 더워졌다고 착각했을 가능성 또한 충분했다.


그렇게 해가 진 뒤에도 이마에 땀이 맺히는 현상에 대하여, 그 원인의 애매함과 무엇보다 해결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올 때,


‘잠깐, 혹시 눈앞의 이 사람이라면 더위를 식힐 수 있지 않을까?’


분홍빛이 살짝 감돌만큼 밝은 금빛 머리.

둥그스런 눈매의 큰 눈과 콧대는 그리 높지 않았으나 콧볼은 솟아있어 전체적으로 귀여운 느낌.


겉모습만 본다면 영락없는 자기 또래의 소녀였으나, 믿기지 않게도 그녀는 날씨를 바꿀 힘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마법으로 더위를 날려 줄수 있는지?’라는 부탁을 해볼까 했으나, 우선 자신의 직업, 즉, 의약사로서의 소명에 집중한 미엔 엘리느였다.


“처음에 치료를 잘해놔서 추가 감염은 없네. 다만 아물던 상처가 한번 터졌을 뿐. 그러니 너무 무리해서 움직이지 말고. 약도 제때 바르고.”


무거운 침묵 속, 작은 끄덕임.


“마법이 만능은 아닌가 보네. 네 정도면 잘린 팔도 붙일수 있을줄 알았더니.”


그 말에도 큰 반응 없이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집중하는 그녀.


“...흐음. 카니엘 앞에서도 이렇게 아무말도 안해?”


그때서야 눈을 휘둥그레 뜨는 반응을 보였으나, 그것도 잠시뿐. 다시금 시선을 아래로 돌린 대륙의 공적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왠지 짜증이 난 미엔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처음이라..”


“...뭐가?”


“내 또래의 여자와 말을 섞는게.. 그래서 어떤 말을..”


그 말에 한숨을 내쉰 미엔은 앉아있던 간이침대에서 일어난 뒤, 침묵과 텁텁한 공기를 환기시킬 겸 천막 입구를 걷어냈다.


그러자 눈에 들어온 중앙탑의 하층부 전경.

하얀 대리석과 정체모를 물질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보석을 보는듯 황홀했으나, 미엔은 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없었다.


저 탑 안에서‘마력의 눈물’이 만들어졌던 과정들.

칸타 사제의 죽음과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린 페니탈 사제,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이상한 경험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이었다.


“정말 혼자 월영군 오천명을 담당한다고 얼마나 바쁜지! 그런데 이 더위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여기까지 왔다고. 애초에 카니엘의 부탁이 아니었음 말이야...”


그 꺼림칙한 기억들을 떨쳐내기 위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던 미엔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실제로 카니엘은 지나가는 말로 물었을 뿐이었고, 그럼에도 야밤에 이 높은 언덕을 오른데는 자신만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


“...그러니 최소한 왕진 값은 받아야겠어!”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정작 그녀와 마주하자 쌀쌀맞은 태도로 대하고 있었고, 이에 상대는 어쩔줄 몰라하며 답을 이어갔다.


“미안...나.. 지금 돈이 없는데.”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기에 웃음이 터질뻔한 미엔은 간신히 평정심을 찾은 뒤, 다시금 벨리안느 이얀과 마주했다.


“그럼 대신에 질문을 하나 할테니, 대답해줘.”


살짝 당황한 표정과 함께 이어진 작은 끄덕임.


“카니엘과 정말 사귀는거 맞아?”


그 물음에 벨리안느는 더욱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훨씬 큰 끄덕임으로 답했다.


“신기하네...‘인형 파괴자’라 불릴만큼 복수 앞에선 물불 안가리던 카니엘인데.”


그렇게 끝까지 의구심을 드러낸 미엔은, 그녀가 이에 반발해 카니엘에게서는 듣지 못했던 두 사람만의 이야기를 꺼내길 기대했다.


하지만 이어진 것은 의심과 비난마저 흡수하는 무거운 침묵뿐.


“뭐.. 당사자가 그렇다고하면 믿는 수밖에. 그런데 방금은 그냥 해본 말이고... 진짜 묻고 싶은건 따로 있어.”


그렇게 어색함을 깨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크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대륙 최고의 마법사라는 너한테... 마법이라는 것은 도대체 뭐야?”


“...............”


전혀 예상 못한 질문에 당황한 벨리안느는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미엔을 제대로 마주보았다.


연갈색 단발머리에 잘 어울리는 짙은 녹색 눈동자와 날렵한 턱선.

여기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탄탄한 몸매.

그런 그녀의 시선에는 여태껏 다른 사람들의 눈빛에서 봐왔던 멸시와 적대감은 없었고, 대신 호기심과 약간의 긴장만이 어려 있을뿐이었다.


때문에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지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솔직한 답을 하게된 벨리안느였다.


“모두가 알고 있듯, 그 능력으로 씻을수 없는 죄를 지었기에...마법은 저주였지. 나한텐”


예상외의 대답이라는 듯 놀란 표정을 짓는 미엔.

그 반응을 살피던 벨리안느는 아직 끝나지 않은 답변과 함께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렸고, 그 생각에 의지를 담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힘이야.”


말이 끝나자마자 천막의 펄럭임과 함께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여름의 찝찝한 입김이 아니라 미지의 힘이 서린 차가운 바람이 맴돌며, 미엔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과 천막 안의 열기를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역시... 마법이란건 대단하네. 고마워. 적어도 지금의 나한텐 큰 도움이 됐어.”


더위와 함께 남아있던 경계심 또한 사라진 것일까?

오랜만에 느껴본 상쾌함에 진심이 담긴 감사를 건넨 미엔이었고, 그러자 상대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그 거짓없는 미소에 절로 떠오르는 카니엘의 말.


‘대륙의 공적이라는 남들이 씌운 탈에 가려 보기 힘들 뿐, 그 안은 정말 꾸밈없는 사람이야.’


수없이 들었던 그 말을 어느정도 이해하게 된 미엔은, 아직 천막안을 맴도는 선선한 바람에 좀더 의지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방금 질문이 뜬금 없이 들렸겠지만, 그냥.. 내게는 무지의 영역인 마법이 너한테 어떤 것인지 궁금했어.”


그 말과 함께 벨리안느에게 성큼 다가가 그 옆에 나란히 앉은 미엔.


“왜냐하면 나와 전혀 상관없을줄 알았던 그 힘이 지금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듯하니까.”


그 갑작스러운 접근에 당황하는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잠시 틈을 가지던 미엔은 열린 천막 입구로 보이는 중앙탑의 모습에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말인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


답을 적지 못한 의약사 시험 마지막 문제.

온갖 노력에도 눈치채지 못했던 마력의 눈물의 탄생.

그 중요 순간마다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든 마법이, 지금의 열기처럼 미엔의 마음 한켠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 모였을 때, 내가‘마력의 눈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했다고 했잖아? 그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경험을 했거든?”


“이상한 경험?”


“몰라. 그냥 꿈일 수도 있어. 뒤죽박죽인 시간 축에서 전혀 모르는 공간과 사람들이 스쳐갔으니... 그런데 혹시 마법이라면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할수 있을까 해서.”


미엔의 말에 문득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음을 떠올린 벨리안느였다.


메마른 하제르 호수를 넘어와 일행들 앞에 나타났다던 정체불명의 존재.


정황상‘마력의 눈물’과 동화된 페니탈 사제라 추측되는 가운데, 그 당시 자신 또한 모호한 경계 속에서 어머니라 여긴 존재와 만났던 것이었다.


“혹시.. 같이 있었다던.. 에스트? 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글쎄. 서로 그런말을 한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나도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거니까.”


그러나 벨리안느가 확인한 바론 적어도 카니엘과 테일리아는 비슷한 경험을 하진 않았다.


때문에‘마력의 눈물’탓인지, 아니면 두 사람에게 일어난 우연한 현상인지 애매했고, 따라서 원론적인 답을 해줄수 밖에 없는 벨리안느였다.


“마법은.. 누군가의 의지가 마력을 매개로 발현되는 것. 때문에 그 의지와 마력 상황만 받쳐준다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수 있어.”


“그렇다면 내 의지로 그런 경험을 했다는 거야? 하지만.. 난 마법사가 아닌데?”


“‘마력의 눈물’이란 어마어마한 마력덩이가 영향을 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니면?”


“근처에 있던 마법사의 의지가 작용한 것일 수도.”


하지만 그 당시 근처에 있던 유일한 마법사는 페니탈 뿐이었다.


때문에 분명히 그조차 이해못할 미지의 공간과 사람들을 굳이 자신에게 보여줄 이유가 있나싶었을 때,


‘아.. 하나 있었구나.’


꿈처럼 스쳐지나간 미증유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아볼수 있었던 존재.


사막과 같은 공간. 그곳에 있던 트리스트의 모습이 미엔의 기억 속에서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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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2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7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9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40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9 0 9쪽
»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9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7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8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2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2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0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5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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