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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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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2.07.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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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DUMMY

“미안, 확실한 답을 주진 못해서. 하지만 네가 겪은 일이.. 마법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


트리스트에 대한 그 기억을 더듬으려던 찰나, 이어진 벨리안느의 말에 미엔은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하지 않다고?... 왜?”


“이미 벌어진 일의 원인을 안다고해서.. 그 반향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차라리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가 더 중요하지 않나..라고.”


“하지만 원인도 모르고 선택한 결과가 좋을리 없잖아?”


“결과는 의지의 또다른 형태.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인과는 넘을 수 있다고 믿어. 지금 이렇게 우리가 대화를 나누게 된 것도 네 의지의 결과인 것처럼.”


긴가민가하던 미엔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더위나 그 원인은 중요한게 아니었단 말이지...”


마찬가지로 이해못할 경험이 무엇 때문인지 또한.

그 사실과 동시에 자신이 이토록 원인에 집착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은 미엔은 기지개를 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음.. 결국 내가 이해못할 경험을 했다는 사실은 변함없고, 따라서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하다는 거지?”


그렇게 정리는 가능했지만 해결된 것은 어느 하나 없었다.

다만, ‘더워서 언덕을 오를 엄두가 안났다’따위의 선택을 하기 힘들어졌을 뿐.


그럼에도 왕진값은 제대로 받았다고 생각한 미엔은 자리를 마무리하려던 찰나, 문득 한가지 궁금한 것이 떠올랐다.


“아! 그럼 방금 너의 그.. 바람 마법에도 어떤 의지가 있었어?”


“...응. 나도 물어보고 싶은게 있긴 있는데..”


“그래? 뭔데?”


그 되물음에 벨리안느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이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짐작 가능한 미엔이었다.


“...전체 회의 때.. 벨로나가 했다던 말.. 넌 어떻게 생각해?”


역시나.


혼란 그 자체였던 벨로나 일행의 귀환 뒤, 바로 다음날 이뤄졌던 첫번째 전체 회의.


벨리안느를 제외한 흑표부대 주요 인사가 모인 자리에서 벨로나는 마법연계라는 복잡한 이야기와 함께 인형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벨리안느가 반드시 필요함을 설명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은 벨리안느를 전략적 차원에서 용서한다고 공표해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뒤,


‘여태껏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여러분들이 따라줬던 제 판단을 이번에도 믿어주길 부탁드리는 것일 뿐, 저와 같은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자신의 용서를 일종의 작전으로 취급하길 부탁하며, 마법연계와 벨리안느에 대한 ‘개인적 감정은’ 자율에 맡겼기에, 지금의 질문은 분명 그에 관한 것일테였다.


“흐음.. 글쎄..”


당당한 표정으로 조언을 하던 조금 전과 달리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채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녀.


그 모습에 어쩐지 장난기가 발동한 미엔은 이미 정해져 있는 답변을 한번 꼬아보기로 했다.


“나는 용서를 할수 없는 사람이지.”


말이 끝나자마자 벨리안느의 큰 눈망울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

예상보다 심각한 그 반응에 당황한 미엔은 황급히 말을 덧붙여야 했다.


“아니! 난 카니엘처럼 너한테 받을게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용서할게 없다는 뜻이야.”


“..그게..?”


“카니엘이 미쳤다고 너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을 올려 보냈겠어?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난 오히려 무혼반란 덕에 난민으로 인정받아 월연방국에서 잘된 경우거든?”


그 말에 고개를 치켜든 벨리안느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가득해 있었다.


“날 때부터 고아였던 나한테는 어린시절 날 속여 먹었던 놈들이 복수 대상이지 넌 아냐. 그러니까 적어도 내 앞에선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도 돼.”


“..고마워, 솔직히 말해줘서.. 그럼 내 도움이 혹시 필요하다면 언제든..”


“걱정마. 네가 귀찮아 할 정도로 찾아 갈테니까. 음.. 너도 내 도움이 필요하거나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언제든 말해.”


‘물론 다시 만나는 것이 먼 미래가 될수도 있지만.’


그 뒷말을 속으로 삭인채 미소를 띄운 것은 어떤 길을 선택할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일까?


“응!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해. 미엔!”


다시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마음이 심란해지려던 찰나, 벨리안느는 세상 걱정없는 사람처럼 해맑은 웃음을 내비쳤고, 그 모습이 왠지 얄밉게 느껴지던 찰나.


천막 밖, 어둠속에서 누구인지 알 것 같은 불빛 하나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미엔이었다.


“그리고? 또 궁금한건 없어? 나도 질문을 많이 했으니 뭐든 물어봐. 예를 들어 카니엘의 과거 이야기라던가. 이래뵈도 접점이 많았거든.”


“아..? 그랬어? 무.. 무슨 관계..길래?”


그래선 안됐지만, 오래전 자신을 골탕 먹였던 자들의 쾌감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미엔은 완벽한 순간을 위해 살짝 뜸을 들인뒤 장난의 마침표를 찍었다.


“음.. 카니엘의 전속 주치의? 아니 그 이상이었나?”


그 순간 벨리안느의 표정은 혼자보기엔 아쉬울 정도였다.

혹시 다른 사람이 봤다면 대륙의 공적이라고는 상상도 못할만큼 인간적인 감정들.

당혹감을 기본으로 애통과 약간의 분노까지 섞여 말조차 못하는 그 모습에 미엔은 결국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고, 때마침 횃불을 든 카니엘이 막사에 도착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나누는거야?”


“푸하하하.. 그냥..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의 이야기들?”


“가지지 못한 거라니?”


영문 모를 대답에 벨리안느를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고, 때문에 카니엘은 미엔이 웃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했다.


“아.. 그냥 마법과 관련한 이야기였어. 그 외는 가벼운 장난? 벨리안느의 반응이 너무 극적이라 나도 모르게.. 그런데 넌 어쩐일로? 벌써 회의가 끝난거야?”


“아니, 이제 시작하려던 참이야.”


“그럼 설마 내가 네 여자친구한테 해코지를 할까 걱정돼서 올라온거야?”


“그럴리가.”


잔웃음과 함께 계속 질문을 던지는 미엔과 장난이란 말에 그때서야 표정이 풀린 벨리안느 사이에서 카니엘의 연이은 대답은 사뭇 무거웠다.


뿐만 아니라, 완전 무장을 한 채 막사 입구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있는 모습은 흡사 전쟁터로 나서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뭐야? 무슨일 있어?”


“..벨로나 단장님의 소집 명령이야. 우리 모두 작전 회의에 참석하라는..”


“모두라면...?”


“..벨리안느, 너까지 포함해서. 이동 계획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 확인할게 있는듯해.”


그 말에 벨리안느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이어서 마치 사형대에 오르는 사람처럼 온몸을 떨기 시작해 카니엘으 물론 미엔 또한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줘야 할 지경.


‘아니.. 어쩌면 사형대보다 더한 자리겠지.’


붙잡은 손에서 전달되는 떨림과 그 속에 가득한 두려움을 충분히 이해한 미엔이었다.


'차라리 사형대라면 죽음을 맞이할 사형수에 대한 연민이 한방울쯤은 있을텐데..'


하지만 그녀가 향할 곳은 월연방국 최정예 부대, 흑표 군단 병사들이 가득한 회의장.


때문에 그 누구보다 인형에게 잃은 것이 많은 그들이 내비칠 ‘개인적 감정’들은 순수한 경멸과 살의일 것이 분명했다.


“괜찮겠어? 내가 벨로나 단장님께 어떻게 잘 말해볼까?”


그리고 그 분위기를 어느 정도 체감했는지 카니엘이 무리인게 분명한 말을 건넸고, 그러자 오히려 벨리안느의 떨림은 서서히 멎는 것이었다.


“아냐. 언제까지.. 과거로부터 도망 칠수 없어..”


심호흡과 함께 떨리는 입술을 한번 오므린 뒤, 다시 입을 연 벨리안느.


“내 의지로, 내 선택으로 여기에 있고, 내가 이루고싶은 결말이 있어. 그러니 내려 갈게.”


그렇게 말하며 미엔이 잡고 있는 손을 살며시 놓은 벨리안느는 카니엘과 시선을 교환하며 앞으로 발걸음을 한발짝 떼었다.


이어서 중앙탑 하단이 보이는 천막 입구로 천천히 나아갔고, 그 두 사람의 뒷모습과 텅빈 손을 번갈아 바라보던 미엔은 어쩐지 한방 먹은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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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2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7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9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39 1 9쪽
»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9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8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7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8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2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2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0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5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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