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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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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1.12.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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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DUMMY

“대체.. 왜...?”


물기둥 속에 떠있는 시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린 미엔의 말속에는 두가지 의문이 내재되어 있었다.


‘페니탈 사제는 정말 무엇 때문에 칸타 사제를 죽였는가?’

‘그리고 그의 시체를 왜 저 우물 속에 넣어 뒀는가?’


그러다 문득, 조금전의 대화에서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던 미엔이었다.


“설마.. 마력의 눈물을 만드는데...”


그 순간, 천장의 구멍을 향해 솟구치던 물기둥에 급격한 변화가 생겼다.


칸타 사제 시신을 중심으로 물덩이들이 구 모양으로 응집되더니, 서서히 반투명한 어떤 마법 물질로 탈바꿈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벽면의 마법진은 푸른 빛을 격렬히 내뿜었고, 땅은 더욱 요동쳤으며, 한기는 뼈속에 스며들듯 극심해졌다.


수로의 물길은 공중으로 솟구쳐 마법 물질을 향해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갔으며, 그렇게 엄청난 양의 물을 흡수하는데도 마법 물질은 점차 작아지는 기괴한 현상까지 펼쳐졌다.


“세상에..”


여기에 별이라도 탄생시킬 듯 빛을 내뿜기 시작한 마법 물질.


순백에 가까운 그 빛은 그림자마저 집어 삼키며 더욱 밝아졌고, 그 새하얀 세상에서 미엔은 뭔가에 홀린듯 마법 물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게 되었다.


닿을 수 없는 높이에서 반짝이는 새하얀 빛.


“저것이.. 마력의 눈물?”


그렇게 이름으로서 그 존재를 인식하며 손을 내뻗은 순간.




갑작스레 온 세상이 암흑에 잠겼다.




당황한 미엔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한줌의 빛조차 찾을 수 없었고, 뭐라도 붙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그 어떤 것도 닿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땅을 딛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지경.

난생처음 느껴보는 공포감에 비명을 크게 내질러 보았지만,


[················································]


소리를 내고 있다는 의식만 있을 뿐, 마치 모든 감각이 절단된 듯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어떤 마법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인지 못하는 사이에 생사를 넘나든 것인지, 수 많은 가능성과 생각들로 첨철되는 찰나, 한가지 가능성에 집중되는 의식.


[태초에 가지고 태어난 감각이 아닌 의식으로만?]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아니, 꿈속에서 꿈을 꾸는듯 시간과 장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의식의 파편들이 융기하면서 동시에 침강했다.


[아아..?]


수백보폭의 나무들이 빼곡한 밀림과 그와 비교도 안될 높이의 건물로 이뤄진 도심.

광활한 푸른 바다와 황갈색의 토양 그리고 뜨거운 사막과 無의 공간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장소들이 나열되는 가운데 그 속에서 발견되는 한가지 공통점.


세상의 호수빛을 모두 담은 듯한 물방울 모양의 마석, ‘마법의 눈물’이란 존재.


그 존재를 인식하자 마법의 눈물에 얽힌 시간과 장소들이 폭발에 휘말린 종이조각처럼 휘날렸다.


길다란 체형과 갸날픈 팔다리.

순백에 가까운 피부의 인간과 닮은 어떤 미지의 존재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야수의 모습과 하얀빛으로 둘러쌓인 한 여인.


다시금 나타난 미지의 존재와 진월대만큼 높은 건물들로 이뤄진 그들의 도시.

미지의 도시에서 월영시로 장소가 바뀌더니 이어서 스쳐지나가는 무영지로 보이는 사막과 잠든 소년 그리고..


'트리스트 사제!?]


마법의 눈물에 얽혀있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생명들이 스쳐지나가는 찰나에 알아볼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


하지만 소용돌이 치는 강물에 떠내려간 종이배처럼 한번 지나간 의식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렇게 미엔의 의식 또한 시간과 장소를 표류하며 점차 흐릿해질 때.


“미엔!”


어떤 관측자의 외침이 흐릿하게 들리는 순간 한 줄기 빛이 번쩍였다.


“미엔 엘리느!”


조금더 강해진 그 소리와 함께 찾아온 것은 온몸을 휘감는 추위와 미세한 땅의 울림.


‘여기가..’


그 생각과 동시에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음을 ‘느꼈고’, 이후 흐릿하게 자신을 내려보는 에스트의 얼굴과 동굴의 천장을 차례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눈동자를 굴리다 마주한 청색의 물질.


동굴 천장에 절대자처럼 떠있는 그것은 영겁의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었던 ‘마력의 눈물’이었다.


/// ///


눈을 살며시 뜬 미엔을 내려보며 안도의 숨을 내쉰 에스트는 이어서 그녀의 시선 끝에 있는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낀 감상은 단 하나.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될 물건이다.’


분명 겉은 보석처럼 생겼으나, 돋아난 투명한 손으로 주변 모든 것을 짓이기고, 그렇게 새어나온 생명의 원천을 빨아먹는 괴물이 탄생한 느낌.


이어서 양팔을 벌린 페니탈 사제를 향해 그 괴물이 걸음마를 떼듯 서서히 내려오자 불안과 두려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노려보는 것 이외, 에스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 계단 입구에서 서성이던 찰나, 솟구친 물기둥.

신체 향상의 힘으로 꼭대기까지 휩쓸릴 위기는 넘겼으나, 다시금 동굴 안으로 쏠리는 하강 급류에 동굴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고, 그렇게 간신히 발을 딛였을 때.


다리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자신의 신체향상 효과가 사라졌음을 느낀 에스트였다.


뿐만 아니라, 마력의 눈물 탓인지 다른 신향구 또한 쓸수가 없었고, 그렇게 유일한 무기가 사라지자 에스트로서는 어떻게 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물론 신체 향상을 할 수 있다해도 저 힘에 맞서진 않았을테지.’


마침내 마력의 눈물이 페니탈의 손에 쥐어지는 것을 목격함과 동시에 떠오른 그 생각.

그렇게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자 눈앞의 일에 책임감을 느끼기보단, 자신이 해야할 일, 즉, 미엔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일에 집중하게 된 에스트였다.


멈출줄 모르는 땅의 울림으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동굴벽면.

그 틈에서 떨어져나온 낙석으로 머리가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마땅히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중앙탑으로 향하는 계단은 물기둥으로 반파된 상태였고, 거센 물살로 수로 또한 무너지기 직전이라 그 밑에 숨는 것도 불가했기 때문.


결국, 한시 바삐 수로를 따라 하제르 호수로 탈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으로 보이자, 에스트는 애써 무시했던 페니탈과 그 존재를 올려봐야 했다.


“멀리 떨어지길.”


아니나 다를까.

시선조차 담겨 있지 않은 말을 남긴 채, 페니탈은 하나뿐인 탈출구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그가 걷고 있는 수로 밑으로 함께 빠져나갈지 고민하던 에스트는, 눈에 들어온 페니탈의 모습에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게 좋아 보이군요.”


방금 그가 한 말이, 오만에 찬 위협이 아니라 순수한 경고였음을 깨닫게하는 모습.


마력의 눈물을 떠받치던 그의 손바닥은 가뭄든 논처럼 갈라져 있었고, 그 틈으로 새어 나온 핏방울은 땅으로 떨어지지 못한 채 공중을 맴돌았다.


뿐만 아니라 하얀 가루같은 것들이 마력의 눈물 주변에 떠다녔는데, 그것이 얼굴에서 떨어져나온 피부 조각임을 깨닫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뻔한 에스트였다.


“대체···”


그렇게 생명의 원천을 빨아먹는 그 괴물이 페니탈을 통째로 갉아먹고 있는 현장에서 뒷걸음질친 에스트는 더욱 믿기지 않는 광경에 결국 주저 앉고 말았다.


마력의 눈물이 페니탈의 흔적조차 지우려는듯 그의 모습 일부가 일그러지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길 반복하는 것이었다.


“눈물이 제단을 떠나면... /./ 무너지진 않을거니.”


그 현상에도 아무렇지 않은듯 걸어가던 페니탈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숨이 멎을듯한 에스트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짐작컨데 이곳에 있는것이 안전할거란 말.

그 진의는 알 수 없었으나, 페니탈이 나름의 배려를 베풀었다고 생각한 에스트는 이 틈에 한가지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페니탈 사제!.. 대체 당신들은 그 힘으로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죽음으로 귀결될 여정을 거리낌 없이 나아가는 순례자에게 건네야하는 당연히 질문.


그 우인(偶人)의 물음에 순례자는 잠시 본 모습으로 돌아와 그 어느때 보다 명확한 목소리로 답변을 했다.


“반복되는 고리를 끊고 역사 이전의 존재조차 가지못한 길을 개척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페니탈의 모습은 수로 위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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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2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6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9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39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8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8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7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8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1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2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0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5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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