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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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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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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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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DUMMY

“..이제 됐다!”


매말랐던 땅에 빗물이 고이자 드디어 벨리안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마법 전투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 요소인 마력 규모와 마법 실력.

일반 전투의 병력과 전략으로 각각 대유되는 그 두가지 요소 중 인형들은 병력, 즉, 마력 규모에서 앞선 채 가장 기초적인 기체 마법을 주력으로 삼았다.


때문에 아무리 벨리안느라도 기초 마법으론 어떤 변수를 만들기 힘들었고, 그렇게 평지에서 벌어진 보병전처럼, 전략보단 병력수가 전투의 중요한 요소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협곡에 내린 비가 마법원(原)이 되자, 전황은 순식간에 뒤바꼈다.

기체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액체를 다루는 마법 실력에서 차이가 벌어지면서 더 이상 병력 숫자는 중요치 않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여태껏 보병간의 싸움이었다면 여기에 기병대를 투입한듯 액체 마법을 자유자재로 시전하며 전장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한 벨리안느.


그녀의 마법으로 협곡 전체를 적신 빗물이 침투성 높은 지형으로 집중되며 토양이 반죽처럼 변했고, 그러자 계곡 하층부가 점차 붕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인형들은 어떻게든 그 마법을 상쇄하려 했지만, 교각의 이맛돌을 빼듯 마법의 핵심 배열만 효과적으로 무너뜨리는 벨리안느의 마법 실력에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십번의 시도에도 단 하나의 마법도 시전하지 못하자 초조해진 인형들.


그 때문인지 그나마 시전할 수 있는 기폭 마법으로, 무모하면서, 벨리안느가 보기엔 어림도 없는 시도를 하려했다.


“의미 없을텐데..”


벨리안느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울려퍼진 파열음.

협곡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진동이 전달될 정도로 강한 기폭 마법에 하층부로

쏟아지던 물줄기와 상층부 지표면이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겉으로만 뭔가 일어난 듯 보였을 뿐.


마력원은 물론 마법 배열이 손상된 것도 아니었기에, 벨리안느의 예상대로 흩뿌려진 물줄기는 금세 모여들었고, 그렇게 인형들의 의미없는 저항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역시...’


마음 한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불안감.

그 불안감을 일깨우는 마력 움직임이 협곡이 아닌 코 앞에서 요동치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선봉대에 있던 백여기의 인형들이 기존의 산개 진형을 깨고 일제히 돌격해왔던 것이었다.


“정말이지..”


마법 공격에 선봉대가 전멸되더라도 협곡의 마법만큼은 막겠다는 인형들의 결정.


그 목적대로 인형들은 벨리안느를 향해 성난 파도처럼 달려들고 있었고, 그 경로를 벨로나 혼자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머뭇거리다간 자신은 물론 벨로나의 목숨까지 위험했지만, 협곡의 마법 또한 마무리 단계에 있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벨로나가 벨리안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리가 있음에도 그녀의 결의를 느낄수 있는 단호한 고개짓.

이후 그녀는 인형들의 규모를 감지했음에도 되려 앞으로 뛰쳐나갔고, 그 모습에 벨리안느는 눈을 질끈 감고선 마법 시전에 모든 힘을 쏟아 부을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마법을 상쇄하려면서 협곡 상층부에 쌓인 토사를 치우기 위해 또다시 기폭 마법을 시전하는 인형들.


이에 재빨리 방해 마법을 뿌리친 뒤 일말의 불확실성도 없애기 위해 기폭 마법 또한 상쇄하려던 순간,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집단이 하나의 마법을 시전하면 생기는 문제점.

시전되는 마법과 반대의 움직임은 즉각 알수 있지만, 유사한 마법은 누가 어떤 의도로 시전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실.


이에 벨리안느는 인형들의 기폭 마법 위치를 조금씩 조절하면서 동시에 적당한 수준의 상쇄 마법을 시전하는 기만 작전을 펼쳤다.


때문에 인형들은 상쇄 마법에 우선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기폭 마법이 최초 지점보다 아래에서 시전되고 있음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이전과는 사뭇다른 폭발음과 진동.

물길로 생긴 내부 빈 공간에서 터진 기폭 마법에 협곡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그렇게 대지가 주저앉는 소리와 진동은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대지의 여신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 치는 상황.

그 섬뜩한 소리와 함께 눈을 뜬 벨리안느는 파편으로 가득한 세상을 목격했다.


자신의 예상대로 무너진 협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나무와 흙먼지 조각들.

그리고 자신의 예상과 달리 벨로나의 머리 위로 협곡의 파편처럼 쏟아지고 있는 수십의 인형들.


“안돼!”


마력 감지조차 못해 어떤 마법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인형들은 단두대의 칼날처럼 빠른 속도로 낙하했고, 그렇게 벨로나의 목이 떨어지려던 순간.


“좀 늦었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마법 배열이 순식간에 나열되더니, 기폭 마법이 시전되어 낙하하는 인형들을 휩쓸었다.


그 마법에 돌격을 잠시 멈춘 인형들과 그 사이 뒤로 물러나는 벨로나의 모습.

그렇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비로소 마력 기운을 감지한 벨리안느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갈기를 휘날리며 우뚝서있는 현월수와 그 옆에 나란히 서있는 샤즐 노리탄.

거듭되는 위기로 지칠대로 지친 상태에서 등장한 든든한 지원군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낀 벨리안느는 저도 모르게 살포시 주저 앉고 말았다.


“이거 오랜만에 현월수를 조종하려니 마음대로 안되더만. 그래도 한 건해서 다행일세.”


샤즐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고, 쪼그려 앉아있던 벨리안느가 그 손을 맞잡는 순간,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들.


“거만하고 덩치만 큰 와르둠을 내가 구한 것이다!”


“무슨! 어림 반푼도 없는 소릴! 일부러 허점을 보여서 반격을 하려는 참이었는데!”


그렇게 테일리아와 카를이 우측 숲에서 티격대며 걸어오는 것을 확인하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사람.


“카니엘? 카니엘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피투성이가 된 카니엘이 비틀거리며 왼편 수풀에서 나타났고, 그 몰골에 깜짝 놀란 벨리안느는 용수철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다.


“자..잠깐 벨리안느..”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듯했으나, 무슨 이유인지 카니엘은 벨리안느가 다가오자 뒤로 주춤거렸다.


“폭주 때문에.. 혹시 너한테..”


십여기의 인형과 홀로 전투가 가능했던 이유, 그렇게 벨로나가 벨리안느에게 올 수 있었던 이유이자, 카니엘이 살아남을 수 있있던 이유.

카니엘 스스로가 폭주라고 부르는 현상에서의 인형에 대한 분노가 혹시 벨리안느에게도 뻗칠까 두려웠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리 없는 벨리안느는 거침없이 다가가 포옹을 했고, 그렇게 맞닿은 심장 박동으로 살아남은 기쁨이 전달되며 동시에 카니엘의 걱정 또한 소멸되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모두들.. 특히 벨리안느, 수고했습니다.”


두 사람의 포옹을 지켜보던 것도 잠시, 일행들은 어느새 나타나 상황을 정리하는 벨로나의 말에 집중하며 다시금 긴장의 끈을 죄었다.


“일단, 벨리안느. 정확한 상황은?”


“인형 본대 앞의 협곡을 무너뜨려 길목은 막아놨어. 그래서.. 추가 병력 파견이나 직접 올라오는 것도 쉽진 않을거야.”


“그럼 당장 상대해야 할 병력은 선봉대뿐이라 가정하고... 샤즐 사제, 저 그리고 카를을 후발대로 나머지를 선발대로하여 총 두 개조로 출발 하겠습니다.”


“음? 그냥 다같이 저기 남아있는 인형들을 먼저 물리치는 것이 낫지 않나?”


“두개 조로 나누더라도 저정도 병력에는 당하진 않을거란 계산입니다. 그러니 굳이 싸울 바에 차라리 본대와의 거리를 벌리는 것이 좋을겁니다.”


“흐음..그래서? 구체적인 작전은 뭔가?”


“후발대가 인형들의 전진을 막으면서, 선발대의 벨리안느가 마력을 모으며 전진.

이어서 후발대가 뒤따르며 모아둔 마력을 기반으로 다시금 인형들을 저지할 생각입니다.”


그 설명에 카니엘은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마력을 모으는 시간까지 절약해 도망칠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고, 그 뿐만 아니라 벨리안느의 마법 연계를 고려해서 샤즐 사제가 전면으로..


“잠시.. 단장님.”


카니엘이 생각을 이어가다 다급하게 외쳤고, 이에 이동할 준비를 하던 일행들은 일제히 카니엘을 바라보았다.


“마법 연계..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좀전에 벨리안느가 쓴 마법으로 인형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순간이었다.

카니엘이 던진 질문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행들은 뜬금없이 울려 퍼지는 뿔피리 소리에 먼저 반응해야 했다.


귀를 파고들어와 심장의 혈관을 넓히는 듯한 소리.

도저히 어디에서 누가 이런 소리를 만드는지 알수가 없어 모두가 어리둥절할 때, 테일리아와 카를이 동시에 외쳤다


“길리아스!”


“저기 뭔가 있는것이다!”


두 사람이 각기 다른 감각으로 뿔피리 소리의 정체와 그 위치를 밝혀냈고, 때문에 일행들은 구릉 아래 숲에서 검은 연기처럼 일렁이는 것이 삼백명의 길리아스임을 알수 있었다.


“저 새끼들 지금 뭐하는거지?!”


분노와 어이없음 그리고 안타까움이 뒤섞인 카를의 외침.

그도 그럴것이 그들의 이동 형태는 전투 대형이라기보단 서둘러 퇴각하는 것에 가까웠는데, 그 방향 끝에는 다름 아닌 인형 본대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력 감지를 못해 인형 본대가 있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럼 애초에 왜 여기까지 기어나온거냔 말이다.”


“잠깐..”


흥분에 찬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던 벨로나와 카를은 또 다시 뭔가를 발견한듯한 테일리아의 말에 동시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을 가리는 붕대로 표정과 감정을 함께 감춘 소녀.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으면 도통 감정을 알아차릴 길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 두려운 것을 목격한듯 입술이 파르르 떨렸던 것이고, 일행들은 그에 의아함을 가진채, 거의 지평선을 가리키는 테일리아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길리아스 병사들이 자살처럼 보이는 이동을 하는 이유와 뜻밖에도 좀전에 카니엘이 던졌던 마법 연계에 대한 실마리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바람에 빠른 속도로 넘실대는 연녹색 안개처럼 삼천의 인형들이 돌격해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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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5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3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7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8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40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40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50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9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8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40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4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7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1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3 0 9쪽
164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5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3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1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40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6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7 0 11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4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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