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13월 이야기

깊은 상흔의 잔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7,800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2.02.28 20:45
조회
43
추천
0
글자
10쪽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DUMMY

아직 신체향상 힘이 남아 있는 듯 눈으로 쫓기 힘든 돌격 속도.

여기에 호수 경사면을 내달렸기에 가속도가 붙었고, 그렇게 그녀의 월첨검에 반사된 섬광은 하나의 빛줄기가 되어 카니엘을 지배하던 불안마저 몰아내는듯했다.


하지만 저 비개연적 존재를 꿰뚫을 듯한 대륙 최고 검희의 공격은, 그 속도보다 더 빠른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둔탁한 충격음.


그 소리에 넋을 놓고 있던 카니엘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벨로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존재만이 우둑커니 있을 뿐이었다.


“벨로나!”


순간, 옆에 있던 카를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며 뛰쳐갔고, 카니엘 또한 일단 그의 뒤를 따르다 뒤늦게 호수바닥에 쳐박혀 있는 벨로나를 발견했다.


도중에 한바퀴 구를만큼 허겁지겁 달려가 목격하게 된 벨로나의 처참한 모습.


언제나 정갈히 묶여있던 머리칼은 산발이 된 채였고, 굳은 의지가 담긴 입술에는 피범벅이 된, 그리고 목표를 향했던 또렷한 시선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로 굳게 닫힌 상태.


상상조차 해본적 없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꼼짝못한 카니엘과 달리 카를은 언젠가 만신창이가 된 벨로나를 본적이 있어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카니엘! 엄호해!”


때문에 벨로나의 등과 허리를 서슴없이 붙잡아 부축한 카를이었고, 이에 두 사람이 물러설 동안 자연스레 카니엘이 칼을 빼들고 그 존재와 대치하게 되었다.


지상의 그 분주한 움직임에는 전혀 관심없는 듯 미동조차 없는 그 존재.


마치 각기 다른 물체를 비추는 깨진 거울을 한데 모은 것처럼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었고, 대신 느끼는 위압감과 공포는 배가 되었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 존재 주변을 떠도는 잔해들 정도.

호수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물덩이와 흙과 먼지,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조차 안되는 곡갱이와 그리고 찢겨진 로브 등..

하지만 그 잔해들 또한 얇은 종이가 물에 녹아들듯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고, 그 중 로브에 떨어져 나온 두건이 눈에 익어 시선이 갈 때였다.


“//다른/./ 제단이//. 있었//”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듯 끊겨서 들려오는 말.

그 소리에 당황하던 찰나, 더욱더 믿기지 않은 일이 카니엘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조각났던 옷감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암갈색 로브가 되더니, 사람 형태에 불과했던 그 존재 또한 갑자기 특정 모습을 갖춘 것이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은 월연방국 사제 복장을 한 어떤 사내.


“그것이 순리라면 따를 뿐.”


얼굴을 제대로 볼 틈도 없이, 정체불명의 말을 남긴 그 존재는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에 카니엘은 재빨리 월첨검을 고쳐잡았으나 예상했던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신 그 존재는 물길에 떠내려가는 나뭇잎처럼 서서히 뒤로 물러날 뿐이었다.


“뭐해!”


그럼에도 끝까지 경계를 풀수 없었던 카니엘을 향해 카를의 외침이 쏟아졌다.

어느새 일행들이 누워있는 모래변에 도착했던 것이었고, 그 모습을 본 카니엘은 지체없이 뒤로 내달렸다.


“후우...”


그렇게 모래변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 존재는 점처럼 보일만큼 멀어진 상태.

그때서야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으나, 눈 앞에 쓰러져 있는 벨로나의 상황에 다시금 목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좀 어떻습니까?”


“큰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 내부는 어떤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그 기분 나쁜건 도대체 뭐다냐?"


"사제..? 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물러나서 다행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그 순간 벨로나가 몸이 들썩일 정도로 거센 기침을 하면서 핏덩이 하나를 뿜어냈고, 놀란 두 사람은 걱정대로 내부 장기 손상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안되겠다. 저기 네 여자친구.. 아니, 아무나 좀 깨워봐. 마법으로 뭐라도 해야지...”


벨로나의 기도를 확보하며 외친 카를의 말에 카니엘은 즉시 한무더기의 인형들을 뛰어넘어 조금 떨어진 곳에 누워있는 벨리안느에게 달려갔다.


“벨리안느! 정신차려봐.”


하지만 제 아무리 어깨를 흔들어도 반응조차 없는 그녀.


“우음.. 일레니아..”


그 순간 건너편에서 테일리아의 잠꼬대가들려왔고, 그녀라도 깨우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던 중 무언가에 걸려 꼴사납게 넘어지고만 카니엘이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발을 헛딛었다고 생각했으나, 이어서 전달된 강한 통증.

발목이 으스러질듯한 그 느낌에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카니엘은 곧 시체라 정의했던 것들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카를...! 인형들이 움직입니다!”


그 외침과 동시에 카니엘은 재빨리 발목을 잡고 있는 인형의 손목을 월첨검으로 쳐냈다.

이어서 벨리안느를 향해 기다시피 다가가 그녀를 들쳐 업은 뒤, 테일리아까지 챙기기 위해 일어섰을 때.


“세상에..”


때이른 한파로 죽어가는 곤충 떼를 보는 듯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모래 바닥에 얼굴을 박은채 하체만 펄떡이며 일어서려는 인형.

다리를 질질끌며 팔로 기어가는 인형과 반대로 상체가 뒤로 접힌 채 하체만 움직이는 인형 등.

그렇게 천여기의 인형들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꿈틀거리는 장면은 기괴하다 못해 공포스러워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우왓!!”


그 순간 인형들 사이에서 테일리아가 놀란 고양이처럼 튀어올랐고, 이에 정신이 번쩍든 카니엘은 우선 일행들의 안전부터 챙기기로 했다.


다행히 샤즐 사제는 현월수에 단단히 매여있어 따로 손쓸 필요가 없는 상태.

여기에 테일리아의 날쌘 움직임과 가벼운 몸이라면 현월수를 불러들이며 함께 태울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테일리아! 올라타!”


그렇게 테일리아를 둘러싼 인형들 머리 위로 현월수가 도약하자, 예상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현월수 위에 올라탄 그녀.


그 모습에 안도할 겨를없이, 카니엘은 곧바로 현월수의 방향을 틀어 길을 뚫는데 활용했고, 자신도 그 뒤를 따르며 벨로나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복귀 할 수 있었다.


“용케도 다 데려왔군! 그건 그렇고.. 이건 또 무슨 지랄의 연속이다냐!”


그 동안 벨로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카를은 뒷편에서 한쪽 발로 뛰쳐오는 인형 한기를 처분하며 그렇게 카니엘을 맞이했다.


“아무래도 아까 그 존재가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 같습니다.”


“어찌됐든 인형들 꼬라지를 보니 당장 위험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럼 떠나기 전에 단장님 상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테일리아! 일단 벨로나가 이동해도 괜찮은지 살펴줄래?”


“음..? 아..아!. 아?”


아직 몽롱한 상태에 있던 테일리아는 벨로나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얼굴을 파묻을 듯 고개를 숙여 그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 마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중얼거린 테일리아의 말은 아직 잠에서 덜 깼다는 오해를 낳기 충분했다.


“정신차려 테일리아! 감당 안될 것 같다면 샤즐 사제를 깨우고!”


그렇게 신경 곤두선 외침 후, 카니엘은 느리지만 거리를 좁혀 오는 수 십의 인형들을 보며, 만일을 위해 신체향상구슬을 꺼내어들었다.


그 순간 어느 때보다 진지한 말투로 맞받아친 테일리아.


“정신 말짱한 것이다! 정말로 난나의 힘이 사라졌는데 날더러 어쩌란 거냐!”


그녀의 말속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고, 이에 의아하던 카니엘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신향구를 보고 상황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검회색 안개 같은 것으로 가득차있어야 할 구슬이 새하얗게 비어 있었던 것이었다.


“신체향상이...”


서둘러 주머니속 다른 신향구를 뒤져봤으나 모두 마찬가지인 상태.

이에 혹시나 하여 카를을 바라보았으나 그 또한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텅빈 신향구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이, 꼬맹이! 이게 무슨 일이냐?”


“마법은커녕 마력 감지도 안되는 것이다. 힘을 제대로 쓸수 없는 상태인거다.”


“젠장.. 그래서 인형들도 저 모양인가? 아무튼 그럼 치료고 뭐고 물건너 갔으니 일단 여길 벗어나도록하지. 내가 사제 영감을 챙길 테니까...”


카를의 제안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

특히 신체향상이 불가능했기에 저 꿈틀거리는 인형들 중 한기라도 제대로 움직일 경우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 있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서둘러 현월수에 매어놨던 샤즐 사제를 바닥에 내리고, 대신 벨로나를 조심스레 태운뒤 등자끈으로 고정시키던 중.


“저기..!”


샤즐을 흔들어 깨우던 테일리아가 사냥꾼의 눈으로 무언가를 발견하고선 다급히 소리쳤다.


그렇게 현월수 넘어로 보게 된 것은 거침없이 날아드는 검날같은 한 인형의 질주.

확실히 버둥거리는 근처 인형보단 눈에 익은 움직임이었으나, 그 사실이 결코 달가울 수 없는 두 사람이었다.


“진짜.. 이제 살았나 싶었더니..!”


카를의 포효로 생긴 메아리가 채 사라지기 전에, 얼굴을 희미하게 알아볼만큼 빠른 속도로 다가온 그 존재는..


“... 노빌리스크에서의..?”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이름보다 얼굴이 먼저 기억나는 그 존재.

꽤 먼거리임에도 역시 그 도드라진 외모가 눈에 띄었으나, 예전과 같은 감탄의 감정은 눈꼽만큼 들지 않았다.


대신 저것이 유포레아스 공화국의 의장, 아르센이란 객관적 사실만 머리속을 맴돌 뿐.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이름과 함께 저 인형이 벨리안느를 속여 무혼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떠올렸고, 그러자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감정으로 검을 움켜쥐게 된 카니엘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깊은 상흔의 잔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러스트 삽화] 4장_탈주 전투 (5) 20.06.19 257 0 -
공지 [일러스트] 인물소개_ 벨리안느 이얀 20.06.07 279 0 -
공지 [일러스트]_인물 소개_벨로나 세라트너 20.05.31 326 0 -
182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7) 23.02.28 11 0 12쪽
181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6) 23.01.04 32 0 10쪽
180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5) 22.10.26 42 0 8쪽
179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4) 22.10.17 36 0 8쪽
178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3) 22.10.13 37 0 11쪽
177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2) 22.09.07 43 0 10쪽
176 [4권] 2장. 불티_1화_프랙탈 (1) 22.08.10 37 0 10쪽
175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5) 22.08.02 38 0 14쪽
174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4) 22.07.26 38 1 9쪽
173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3) 22.07.19 48 0 9쪽
172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2) 22.07.12 48 0 9쪽
171 [4권]1장. 뿌리_ 2화_ 열기(1) 22.06.27 47 0 11쪽
170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4) 22.06.02 38 0 12쪽
169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3) 22.05.23 43 0 10쪽
168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2) 22.05.06 45 0 9쪽
167 [4권]1장. 뿌리_ 1화_곡식의 왕 (1) 22.04.21 40 0 7쪽
16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5) 22.03.23 43 0 12쪽
165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4) 22.03.16 41 0 9쪽
»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3) 22.02.28 44 0 10쪽
163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2) 22.02.14 42 0 8쪽
162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1) 22.02.03 40 0 7쪽
161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10) 22.01.20 39 0 8쪽
160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9) 22.01.10 39 0 9쪽
159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8) 21.12.27 44 0 9쪽
158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7) 21.12.20 46 0 11쪽
157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6) 21.12.03 40 0 11쪽
156 [3권] 12장 합수(合水) 2화_ 마력의 눈물(5) 21.11.10 44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