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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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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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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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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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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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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7)

DUMMY

151화


1월 23일 오전에 콘체스터 성의 외성문 앞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와 버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체험 마차가 도착한 것이다.


서부 변경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인 콘체스터시의 외곽에는, 이중으로 된, 성벽이 타원형으로 빙 둘러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성벽 북쪽 부분의 절반은 콘체스터 성이 자리를 차지한 채로 북문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대형 요새들이 그렇듯 콘체스터 성도 처음에는 내성과 외성의 이중 구조로 건설되었었다.

하나 거듭되는 증축으로 내성의 중앙에 있던 아성이 내성벽과 한 몸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외성 밖에 새로운 외성벽이 한 겹 더 둘러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성벽을 한 겹 더 둘렀음에도 이중 구조인 건 그대로였지만, 대신 성의 크기 자체가 엄청나게 벌크업이 되어 버렸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인구 일만 이천의 시가지까지 성으로 포함하지 않아도, 브리갠트 왕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요새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콘체스터 성을 제외한 서부의 모든 장소가 하지운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곳 시가지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이미 보름 전부터 하지운에게 소리도 없이 점령당한 상태인 것이다.


그동안 외부 성곽의 수비를 강화하고 시가지의 치안을 확립하기 위해, 서른 명의 친왕파 전사들과 백 명의 용병들이 불철주야 수고해 왔던 것을 하지운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도리를 아는 하지운이,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손수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도시의 정당한 원소유주 하지운이 그들을 연회에 초대했다.

물론 아무리 간절하게 초청해도 절대 응할 것 같지 않아서, 복제 인간들이 한 명 한 명 조용히 납치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날 밤 백삼십 명의 늠름한 초대남들은, 콘체스터 인근의 작은 숲속에서,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지옥의 연회를 즐겨야만 했다.

육신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소머리 시체들에게 비역질을 당하면서, 팔다리까지 물어뜯겨야만 했던 것이다.


용병 놈들은, 으레 그래 왔듯이, 상황 봐서 갈아탈 생각을 하며 여유를 부려 왔다.

안 되겠다 싶으면, 항복을 한 후, 오히려 상대 쪽에 붙어먹는 것이 용병 놈들의 상투적인 행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제 놈들의 관례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에게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물론 상식적인 사람들도 심정적으로 좋아서 받아들여 온 것이 아니었긴 하지만 말이다.


용병 놈들이 자꾸 뭐라고 씨불여 대서, 한 놈만 남기고, 모조리 다 혀를 뽑고 눈알을 터뜨려 버렸다.

까칠한 하지운은 초지일관하게 시끄러운 걸 질색했던 것이다.


이튿날 눈알과 혀가 멀쩡히 붙어 있던 그 용병이 주둥이로 고삐를 물고서 말을 재촉했다.

친절한 하지운은 그 용병 친구가 말에서 떨어질까 우려가 되어, 자신만의 노하우로, 그 친구의 하반신을 안장에 고정시켜 주었다.

양팔이 없는 젊은 용병이, 달리는 말 위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건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임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 용병 친구가 길을 떠난 후 열흘 만에, 용병 길드의 길드장과 간부급 용병 이십이 인이 콘체스터시로 들이닥쳤다.

하지운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젊은 친구의 외견이, 수신자들의 나태함을 결코 용납지 않겠다는, 발신자의 굳은 의지를 물씬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생식기가 말안장에 꿰매져 있는 모습은 용병 길드의 간부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십여 년 전에 개봉했던 모 걸작에서 유래된 명대사처럼, 이 동네에선 상대방의 인내가 계속되면 관습인 줄 아는 사회 풍조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상태였다.

특히 용병 놈들이 그런 경향이 강해 보여서 하지운의 안타까움을 거칠게 불러 일으켰다.


용병 놈들 대부분이 날건달, 불량배 출신인데 점령지에서의 행실이 고울 리가 없다.

그래 놓고 ‘우리가 뭘 잘못했냐? 원래부터 우리는 늘 그래 왔다. 그냥 상대보다 더 많은 돈을 주면 당신 밑으로 들어가 봉사하겠다. 우리가 네 적의 땅에 들어가서, 더 악랄하게 보복해 주면 되지 않냐?’라는 쌉소리를 씨불여 댔던 것이다.


하지운이 그 안타까운 인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랑의 매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열흘 만에, 차기 길드장을 지목해 놓은, 놈들의 경영진 전부가 자진 납세하러 하지운을 찾아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가족은 살려 주겠다.’라는 약속을 받아 내고, 용병 길드의 경영진 전원이 스스로 목을 그어 버린 것이다.

용병이고 나발이고, 로저의 눈에 거슬리면, 가차 없다는 것을 왕국 내의 모두가 깨닫게 되는 주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오 일째 되는 날 콘체스터시의 광장에 체험 마차가 당도했다.

광장의 한복판에 옥좌 비스무리한 것을 설치해 놓고, 그 위에 널브러져 있던 하지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차를 인솔한 복제 인간 일이삼사오는 살짝 움찔했지만, 결코 당당함을 잃지는 않았다.


“존나 잘했다, 이 씹새끼들아.”

“뭘,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

“고맙지, 본체 새끼야? 우환덩어리 하나를 해결해 줬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유능해.”

“본체야, 눈을 왜 그렇게 떠? 우리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소환 해제해.”

“맞아, 좆같으면 우릴 당장 소멸시켜. 그러고 나서 또 새로운 분신을 만들어... 크흑... 또 다른 널 닮은 미친 새끼가 끝도 없이 나와서... 키킥...”


한숨을 내쉰 하지운이 옥좌를 닮은 의자로 돌아가 앓아누워 버렸다.

분신을 무려 열여덟 개체나 만들어 봤지만, 멀쩡한 놈이 하나도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조상님 말씀이 틀린 게 하나 없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더니... 미친놈의 분신은 여지없이 미친놈이구나...”

“본체야, 우릴 탓하지 말고, 네가 계룡산에 들어가서 면벽 수련이라도 좀 하는 게 어때?”

“맞아, 일단 네가 사람이 되는 게 우선이야. 본질을 회피하려 하지 마. 결국 문제의 근원은 너야.”

“충고 고마워. 이제 그만 닥치고, 가서 할 일이나 해. 아, 잠깐! 존 펀트니랑 찌끄러기들은 어네스퍼드에서 같이 처리하지, 뭐 하러 여기까지 끌고 왔어? 수레 운반할 놈만 남기고 다 없애 버리지 그랬어?”

“섭섭하다, 본체야. 요즘 네가 스트레스가 많아서인지, 기가 허해 보여서 우리가 신경 쓴 건데...”

“그래, 시원하게 기력 흡수해. 경험치도 붙이고 좋잖아? 일석이조네, 일석이조.”

“우리밖에 없지? 우리가 널 이렇게 아껴. 지지고 볶고 해도, 결국 우리만큼 널 아끼는 놈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야.”

“선물 고마워. 놓고 꺼져.”


이제 로저의 본가 탈환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사실 하지운 본인은 애저녁에 성안을 제 집처럼 들락거리고 있긴 하였다.

하지만 공식적인 공성전은 이 자리를 빛내 줄 주역들이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치러져야, 더 뜻이 깊을 것만 같았던 모양이다.


외성문 위에서 장남의 부축을 받으며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로더릭 윌러벌의 광대뼈가 빛이 났다.

살이 피둥피둥하던 왕의 총신이 고작 두어 달 만에 걸 그룹 몸매가 된 것이다.


기적의 다이어트를 성공한 로더릭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형틀에 묶인 채 보름째 거친 사랑에 몸부림치는 차남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중년 사내의 멜랑콜리한 감성이 자극을 받아 버린 것이다.


로더릭은 과거에 네 명의 장성한 자식을 둔 적이 있었다.

첫째와 둘째는 아들, 셋째와 넷째는 딸들로 이남 이녀의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딸이 죽어 아들만 둘 남은 상황이다.


죽은 두 딸 중 차녀는 지지난달에 노상에서 로저 드레이시라고 불리는 폭력배에게 맞아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서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장녀마저 리들스덴이라는 곳에서 시댁 식구들과 함께 동일 인물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견뎌 내고 있는 와중에, 외부 성곽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차남마저 저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고작 쉰도 되지 않은 사내의 몰골이, 일흔을 앞둔 촌로의 그것을 연상시킬 정도로, 망가져 버린 것도 딱히 이상할 게 아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고통스러운 마당에, 열흘 넘게 지속 중인 폴터가이스트 현상까지 더해져, 잠 한숨 제대로 못 자고 시름시름 앓아 왔던 로더릭이다.

그런 그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보고가 올라왔다.

악명 높은 체험 마차가 드디어 콘체스터 성 앞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데 하지운이 뭘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못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마차와 신규 포로들을 세팅 중인 하지운의 분신들을 바라보며, 윌러벌 가문 사람들의 눈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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