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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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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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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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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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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도버의 봄 (3)

DUMMY

164화


하지운의 임무 목록에 남은 오백십일 인 중 팔십사 인과 그들의 피붙이 칠백여 명이, 에일즈버리주 러필드에서, 하지운이 이끄는 행렬에 합류를 완료했다.

왕성에 기어 들어가서 결사 항전을 준비 중인 놈들을 제외한 나머지, 로저의, 원수들이 모조리 잡혀 온 것이다.

직계 존비속까지 죄다 대동하고 말이다.


잔당들이 버티고 있던 열세 개 주에, 열흘 먼저, 출발했었던 분신들이 각자 한 개 주씩을 작살내고 가져 온 결과물들이다.


“오라버니, 이들은 모두 어찌 하실...”

“뭘 어찌 해? 싹 다 죽여야지.”

“이들을 모두... 말이옵니까?”

“이것들도 다 추려서 끌고 온 것들이다. 번식이 불가능한 늙은것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것들, 지나치게 촌수가 먼 것들 등등은 전부 솎아 내고 반드시 처분해야 할 것들만 끌고 왔다는 말이다. 물론 어린것들도 암수 할 것 없이 체내의 알을 다 손상시켜서 번식이 불가능하게 해 놓았지만.”

“예... 예?”

“뭘 그리 놀라느냐? 내가 원수 놈들이 대를 이어 새끼 치는 걸 허락할 줄 알았더냐? 네 표정을 보니, 그냥 깔끔하게 다 죽여 버릴 걸 그랬나?”

“아, 아니! 그게 아니옵고...”

“전에도 말했지만 넌 이제 그저 그런 아이가 아니다. 한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는 걸 잊지 마라.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얘기를 하거라. 집 근처에 수녀들만을 위한 수도원을 크게 하나 지어 줄 테니, 거기서 평생을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 작위는 래널프 저놈에게 물려주면 된다. 왕성에서 정식으로 혼인을 올리기 전에 확실히 하여라.”

“그건 아니옵니다! 절대로 그럴 생각은!”

“그럼 흐리멍덩하게 굴지 마라! 콘체스터시의 인구가 만 팔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몇 놈이나 남아 있느냐? 고작 만 이천이다. 삼분의 일이 죽거나 끌려갔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이 정도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지금이라도 귀족 놀음은 때려치워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정도도 못 견딜 것 같으면, 그냥 수도원에나 처박혀 있는 것이 네게 가장 좋을 것이다.”

“며, 명심하겠사옵니다! 오라버니!”


본전도 못 건지고 호통만 들은 소피아가 고개를 푹 숙이고 물러났다.

그런 그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래널프가 부리나케 달려와 꼭 안아 주었다.


“어이구, 저 어린것들...”

“미친놈아, 저 아이들이 정상이다. 네가 지나치게 미친 것이고.”

“영감, 한 대 맞을 거야? 우리 집안일에까지 끼어들고 말이야. 지금 당장 언데드가 되고 싶은 거야? 영감이 내 가신이 되면, 마음껏 끼어들어도 되기는 하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가 주제넘었다. 자중하마.”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하지운과 정보 길드 영감탱이들 앞으로 복제 인간 일 호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본체야, 인원 점검 끝났다. 쟤들은 어디서 처리할 거냐? 여기서 할 거냐? 왕성 앞에서 할 거냐?”

“왕성 앞에서 하지 뭐. 험프리랑 그 피붙이들도 뒈지기 전에 신기한 거 많이 보고 뒈져야지. 그래도 명색이 왕족들인데.”

“본체 새끼 배려심이란... 넌 너무 신경 써 주는 게 많아. 하아, 그러자. 어차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이곳에서 왕성까지의 거리는 이십 킬로가 안 된다.

천천히 걸어도 네다섯 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물론 하지운은 천천히 걸을 생각도 전혀 없고 말이다.


“배려심이 얼어 뒈졌구나.”

“어허, 이 영감이 진짜!”

“내가 실언을 했구나. 반성하마.”

“이 영감이 요번 주에만 반성을 몇 번째 하고 있는 거지?”

“......”


반성 중인 노인네를 뒤로 하고 언짢아진 하지운이 갈 길을 재촉했다.

저녁 식사는 왕성 안에서 편안하게 즐기고 싶었던 하지운이다.

험프리를 의자에 쿠션 대신 깔아 놓고, 왕성의 요리사들이 해다 바칠, 각종 짐승의 통구이에 최고급 와인을 곁들여서 대차게 즐길 작정인 것이다.


이제 막 출발하려는 그들 앞에 한 무리의 전사들이 들이닥쳐 길을 막았다.


“멈추시오! 폐하의 명을 받잡고 나온 사자요. 공은 걸음을 멈추고, 폐하의 칙명을 받드시오.”

“지랄 염병하네. 야, 금방 갈 테니까, 집 앞에서 얼굴 보면서 얘기 하자고 해.”

“무엄하오! 공은 어서 예를 갖추고 칙명을 받드시오!”

“아이, 씨발놈이 존나 시끄럽네! 야! 너 한 번만 더 고함치면, 불알을 잘라서 주둥이에 쑤셔 넣고 입술을 꿰매 버린다.”

“그, 그러지 마시오... 제발 전언을 좀 들어 주시오... 난 그저 폐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사자일 뿐이란 말이오. 사자를 죽이는 법은 없소...”

“내가 언제는 법대로 사람 죽였어? 죽이고 싶으면 죽였지. 내가 진짜 너 한번 죽이면 안 되냐? 내가 널 죽이면 뭐 어떻게 돼?”

“제, 제발 로저 공...”

“이 미친놈아, 말이라도 좀 들어 줘라!”

“그래라, 본체야. 쟤 저러다 오줌 싸겠다.”


좌우의 아우성에 맥없이 굴복해 버린 하지운이 짜증을 풀풀 내며 마지못해 허락을 해 주었다.


“야, 본론만 짧고 간결하게 해. 너무 길면 눈알에다 불알이랑 혀까지 다 뽑아 버릴 거야.”

“허윽... 코, 콘체스터와 웨스털랜드의 백작 로저 드레이시는 들으시오. 폐하께서는 그대에게 아직 출가하지 않으신 브리짓 공주를 배필로 맺어 주고 싶으시다 하시오. 그대를 부마로 삼으신 후 두 분 사이의 혈육에게 왕위를 물려주시겠다고.”

“그만. 유연하게 스스로 좆 빠는 듯한 헛소리는 그만 지껄이고, 당장 돌아가거라. 내 자비를 베풀 터이니 즉시 졸개들과 좆 빠지게 달아나도록 하여라. 십까지 센 후에도 너희가 내 눈에 띈다면, 그땐 정말로 불알을 잡아 뜯어서 주둥이에 넣어 줄 것이니라.”

“로저 공! 제발 그러지 마시고, 폐하의 청을 잘 생각!”

“하나!”

“기어코 왕성을 피로!”

“둘!”

“나, 나는 분명히 공에게 폐하의 뜻을.”

“셋!”

“이랴!”


미친 듯이 말을 달리는 용맹한 전사들을 바라보며 히죽거리던 하지운이 다시 일행을 재촉하였다.


“병신 새끼, 몇 달을 고민해서 나온 해결책이 고작 저거야? 씨발, 진짜 웃기지도 않네.”

“이놈아, 네놈을 상대로 무슨 책략이 나올 만한 게 있기나 하겠느냐? 저것도 험프리 왕 입장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계책 같은데.”

“뭐라는 거야, 이 영감탱이야? 험프리 놈의 전처가 내 누이다. 그렇게 따지면 놈의 딸년은,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다 해도, 내 조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년과 혼인을 맺으라는 게 정상적인 제안이냐? 아무리 왕실 족보가 돼지머리들과 비슷한 수준이라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사람다운 생각들을 해야지. 아오, 진짜 더러워 죽겠네.”

“......”

“그러고 보니, 험프리 새끼 막내딸년이 올해 몇 살이지? 걔가 벌써 결혼할 나이가 되었나? 그 새끼 대관식 때 봤었던 거 같은데... 되게 어리지 않았나?”

“다다음 달에 생일이 지나면... 열두 살이 된다...”

“이런, 씨발! 정상적이라면서? 도대체 어느 부분이 정상이야? 영감! 내가 영감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천팔백 년이나 옆에 끼고 다니려고 했겠어?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날 실망시킬 거야?”

“미안하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로 경솔하게 말을 한 것 같구나.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반성하도록 하마.”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반성을 했었어야지! 아까도 대충 반성하는 시늉만 하더니! 기어코 이런 말실수를 하고 말이야! 아니, 무엇보다! 내가 변신을 풀면 걔 머리가 내 장딴지까지 오기는 하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무릎까지는 오지 않겠느냐...”


한참 롱그레이 옹을 꾸짖으며 승마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에일즈버리주의 끝자락에 위치한 파무어에 도착해 있었다.

지명에 ‘무어’가 들어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마을이 비교적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마을 자체는 조막만 한 게 별 볼 것이 없는데, 마을 뒤에 위치한 요새가 오랜 세월 동안 꽤나 그럴듯한 명성을 떨쳐 오고 있었다.


왕성 웬도버에서 삼 킬로도 안 되는 거리에 축조된, 서부에서 왕성으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경로를 통제하는, 관문 역할을 해 오던 것이 바로 이 파무어 요새였던 것이다.

아머릭 왕조 삼백육십여 년의 세월 동안 딱 한 번밖에 뚫린 적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앞으로, 그 한 번의 오명을 덮어씌운 당사자의 대리인, 하지운이 병력을 이끌고 서서히 접근해 왔다.


이번에는 오명 정도가 아닌 아예 완전 철거해 주겠다는 작정을 하고 말이다.

하지운은 이번 기회에 왕성의 방어에 도움이 될 만한 시설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철거해 버릴 속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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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도버의 봄 (3) 24.03.04 3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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