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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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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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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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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8
추천수 :
512
글자수 :
91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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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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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청소하는 날 (14)

DUMMY

158화


“저놈 말고는 쓸 만한 것들이 더 없었어?”

“응, 그냥 정보 길드 애들하고 비슷한 수준이야. 엉망은 아닌데, 굳이 거둬서 써 볼 만한 가치는... 뭐 그닥.”

“아깝네... 원수도 아니고 살려 둬서도 안 되는 것들이라 주워다 쓰기에 딱인데... 고작 한 놈이라니... 이 영감탱이야, 애들 똑바로 안 키우고 뭐 했냐?”

“그러게! 증손녀뻘 되는 애들한테 잠자리 시중이나 시키고 자빠졌지, 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증손녀는 무슨! 본체가 새벽에 이 영감탱이 방에서 쫓아냈던 그 계집애들 말야. 막내 증손녀보다도 한참은 더 어리더라.”

“야, 그걸 굳이 물어봤어?”

“궁금하잖아! 엔간히 어려 보여야, 안 물어보지!”

“그래서 몇 살이라는데?”

“놀라지 마. 씨발, 제일 연장자가 무려 아홉 살이래.”

“아이... 씨발... 더러워서...”

“어, 본체야. 너도 몰랐어? 안 보고 있었어?”

“아, 이 새끼 머리에다 장난치느라 한창 바빴잖아.”

“이 동네 노인네들 트렌드인가 봐. 거버스 새끼도 그렇고, 칠팔십 살 정도는 우습게 극복하는 진정한 사랑의 투사들이야. 존나 존경스러워. 본체야, 너는 늙어서 그렇게 살지 마라. 존나 개역하다.”

“야, 이 결벽증 환자 새끼가 그게 가능하겠냐? 거기다 저승에 있는 그 존나 무서운 애가 그 지랄을 보고만 있겠냐고? 밤마다 꿈에 나와서 주리를 틀겠지.”


어느 정도 제정신이 돌아온 모리스 옹이 검을 움켜쥐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뭐 하게, 이 영감탱이야? 그냥 자빠져 있어. 그 나이에 무슨 용사 놀이를 하겠다고. 때리는 내 생각도 좀 해라.”

“로저 드레이시! 이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내던져져야 마땅할 악랄한 살인마야! 대체 내가 네놈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있다고 이러는 것이냐? 우리 가문이 멸문을 해야 할 만큼 네놈에게 해를 끼친 것이 무엇이 있냐는 말이다!”

“없어. 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굳이 이유를 대자면, 내 사업 파트너들을 죽이려고 한 거. 그리고 쓸데없이 왕위를 욕심낸 거. 일단 이 두 가지 정도가 주요한 이유야.”

“내, 내가 왕위를 욕심내다니... 그게 무슨 망발이냐...”

“이봐, 제프리 왕의 사생아이자 버클랜드와 앨버퍼드의 백작인 모리스 피츠로이 옹. 아머릭 왕가 삼백육십여 년 역사에서 최초로 서자 출신 군주를 꿈꾸는 야심가 올드버러의 모리스. 네가 이 상황에서, 그것도 굳이 내 앞에서, 네 오랜 꿈을 감출 이유가 무에 있지?”


일순간 말문이 막혀 버린 모리스 영감이 석상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 짧은 순간에 살기등등하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날아가 버리고 만 것이다.


“일평생 왕이 되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우리 반역의 꿈나무 모리스 피츠로이. 하녀의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동안 열등감에 시달려 와야만 했던 반쪽짜리 늙은 왕자.”

“그만!”


비명을 연상시키는 외마디를 내뱉은 노검객이, 하지운의 명치를 향해, 전광석화와 같은 찌르기를 날렸다.

굼벵이가 기어 오는 듯한 공격에,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피할까, 고민하던 하지운이 오른 다리를 뒤로 슬쩍 빼면서 검을 지나쳐 보냈다.


물론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병아리 좆만큼도 없는 하지운이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흉기를 단순히 피하기만 할 리가 없었다.

어느새 오른손으로 칼날을 움켜쥔 물욕의 화신이, 왼손 수도로, 노인의 목울대를 최선을 다해 살살 후려쳐 버린 것이다.


잠시 후 양손으로 목을 틀어쥔 채로 흙바닥을 뒹구는 노인에게 하지운의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가 전해졌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고맙소! 내 공의 살뜰한 마음은 잊지 않으리이다!”

“본체야, 축하한다. 검에 이것저것 박힌 것 좀 봐라. 많기도 하다. 득템했네그려.”


숨통이 틀어 막혀 요단강이 어른거리는 상황 속에서도, 검에 대한 노인의 집착은 결코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 손으로 모가지를 틀어잡고 나머지 한 속으로 바닥을 기면서도, 안 나오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며, 애원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 그궈언 내, 내으 그어야! 도을려 돠으. 그거윽마느윽 안 돼에흐억!”

“뭐라는 거야? 이 영감탱이가.”

“그, 그건 내 거야. 돌려 다오. 그것만은 안 돼.”

“번역해 줘서 고마워, 분신아.”

“고맙기는 뭘. 이런 거 하라고 내가 있는 거잖아.”


모리스 영감과 눈높이를 맞춰 주기 위해 껄렁하게 쭈그리고 앉은 하지운이 다정한 목소리로 노인네를 위로했다.


“좆 까고 있네. 야, 이 정신병자야. 이게 어딜 봐서 네 거야? 대대로 대관식 때만 쓰던 왕실의 보검이 왜 네 거냐고? 이 눈부신 보검으로 주둥이를 콱 썰어 버릴까 보다.”

“제프리 새끼 자식 사랑 보소. 하녀가 싸지른 것도 꼴에 제 새끼라고 대관식 때 쓸 보검을 선물로 쾌척하다니. 그래 놓고 난리 통에 유실됐다고. 참 눈물겨운 부성애로다.”

“그러니까. 왕 노릇 잘하고 있던 제 조카는, 좆을 까고 눈깔 두 개를 다 파낸 후, 탑에 가둬 놓고 굶겨 죽인 놈이 제 자식 위하는 마음 하나는 기똥차네.”

“정보 길드에다가 보검까지 얹어 준 걸 보니, 네 아비가 진정으로 사랑한 건 하녀 짓을 하던 네 어미인가 보다. 좋겠네. 모자가 사랑이라도 듬뿍 받아서. 그걸로라도 위안 삼고 맘 편하게 죽어.”


하지운과 유쾌한 분신들의 비아냥거림에 겨우 숨통이 조금 트인 모리스 옹이 한 맺힌 절규를 쏟아 내 버리고 말았다.


“사랑! 빌어먹을 사랑! 어머니와 내가 그 집구석에서 얼마나 천대를 받아 왔는지 네가 아느냐? 그놈들이 우리 모자를 얼마나 괄시하고 괴롭혔는지! 끄아아악! 반드시 놈들의 위에 서서 처절하게 갚아 주려 했는데! 네놈이 내 평생의 노력을! 네놈이!!”

“아아, 그 복수를 또 내 도움을 받아서 하려고? 그러려고 방해되는 길드의 늙은이들을 죽이려고 한 거야? 험프리도 그렇고, 길드의 영감들도 그렇고, 너도 마찬가지고. 뭐만 하면 나더러 도와 달라고 징징거리는 것이 너희의 프로토콜인가?”

“프, 프로 뭐?”

“널 죽일 명분이야 만들려면 한도 끝도 없지. 미성년자 성 착취에 납치, 협박. 거기에다 살인 교사까지. 그럼에도 내가 영감과 지금까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고 있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의도가 순수하지 못해서야.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이든 결국 내가 영감을 죽이려는 이유는, 뭐 그냥, 내가 편하게 일을 하고 싶어서이니까.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영감의 한풀이라도 받아 주려고.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저 해.”

“왜 내가 아닌 것이냐? 네가 직접 왕을 할 마음이 없다면서? 왜 개레스 먼틸리인 것이냐? 그놈도 교활하기 짝이 없는 위선자이지 않느냐? 어딜 봐서 그놈이 왕의 재목이라는! 왜 나를 두고 놈을 선택한 것이냐는 말이다!”

“이 영감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고 자빠졌어. 모리스, 네가 아무리 부정하고 싶다 해도 넌 결국 아머릭이야. 네 성부터가 왕의 자식새끼라는 뜻의 ‘피츠로이’잖아. 아머릭을 지워 버리려는 마당에, 너희 집구석을 남겨 두고, 심지어 왕으로 옹립해 달라고?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야? 모리스, 너는 곧 죽을 거야. 그러니 날 웃기려고 하지 말고, 가는 마당에, 진지하게 좀 해 봐.”

“내, 내 말이 웃기더냐?”

“응, 엄청.”

“내가 너 같은 미친놈과 일을 도모할 생각을 했었다니... 내가 어리석었지... 이런 인간 말종을! 이런 정신 나간 미친놈을!”

“사실 내 처음 계획대로라면, 네가 왕을 하든 말든 크게 상관없었을 거야. 그런데 롱그레이 영감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예물이라고 정보 하나를 넘기더라고. 아 글쎄 귀여운 우리 막내가 살아 있다는 거야. 어쩐지... 명단에 갑자기 컬버트 브리즌 그놈이 등장하더라니... 존나 기특한 새끼! 최대한 잘 먹이고 오래오래 살려 둘 거야. 뭐 어쨌든! 계획을 처음부터 다 뜯어고쳐야만 했지.”

“......”

“일단 서부와 북부의 균형부터 맞춰야 했어. 우리 가문과 원수들이 모두 작살이 나는 바람에, 서부의 전력이 북부에 비해 너무 밀리게 되었거든. 그래서 북부의 전력 일부를 죽여 버리든, 어딘가로 강제 이주를 시키든 뭐라도 해야 했지. 먼틸리 놈과 그 졸개들을 중앙으로 이주시키는 건 애초부터 필연적인 수순이었다는 말이야.”

“크윽...”

“이해가 되지? 북부에서 무려 삼백육십 년을, 괴물이나 상대하면서, 굴러먹던 촌놈들이 왕성을 장악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냐고? 왕성에 빌붙어 있던 놈들과 지지고 볶고 하느라고 하세월 날리게 될 거야.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해. 그사이에 우리 막내가 큰 문제없이 서부를 완전히 장악해 놓을 거야. 그러고 나면 나도 맘 편히 이곳을 떠나, ‘그분’의 곁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러면... 나는...”

“음... 이래저래 그냥 걸림돌 정도. 정보 길드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먼틸리 놈이 위태위태하면서도 왕위는 지켜 낼 수 있도록 만들어 놓기 위해서라도. 영감과 영감네 집안은 없어져 줘야겠어. 아무리 사생아라도 먼틸리보다는 계승 서열이 높은 너인데, 그런 너를 살려 놓을 정도로 내가 바보는 아니잖아. 미안해, 영감. 나도 별수 없는 씨발놈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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