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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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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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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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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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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17)

DUMMY

161화


높이가 사 미터 이십씩이나 되는 알몸의 거인을 올려다보며, 이십 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한 가련한 젊은이가 구슬프게 애원을 하였다.


“씻는 중에 미안한데, 언데드는 진짜 싫다. 그냥 나도 마저 죽이고, 네 가던 길 가라.”

“싫어, 네가 이 동네에서 본 놈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 놓치지 않을 거야.”

“너 혹시 남색가냐? 나는 사내놈 따위에게 엎드려 줄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다. 헛꿈 꾸지 말고 그만 날 죽여라.”

“그건 걱정 마라. 네놈 똥구멍에는 빈대 불알만큼의 관심도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다음 주에는 비키니만 입고 놀러 올 것을 스포하고 간, 존나 예쁜 약혼녀가 있는 사나이다. 네가 눈물로 애원한다고 해도, 네 똥구멍에 뭔가를 해 줄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냥 날 죽여라.”

“아, 좀! 제발 씻고 나서 얘기하자. 좀 닥치고 있어, 이 예의 없는 놈아.”


다른 놈도 아닌 미친놈의, 예의 없다는, 질책에 큰 충격을 받은 젊은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잠시 후 그는 실어증에 걸리기라도 한 듯, 바닥이 보이지 않는 침묵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길고 긴 세척의 시간이 지난 후 정화 마법까지 두 번이나 시전하고 나서야 의복을 갖춰 입는 하지운이었다.

황금색 수탉이 그려져 있는 괴상한 복장을 착용한 거인에게 침울해 있던 청년이 힘없이 말을 걸었다.


“미친 살인마 새끼 주제에 징글맞게 깔끔을 떨어 대는구나. 정말 알면 알수록 더욱더 꼴 보기 싫은 놈이로다.”

“많이 기다렸어? 미안.”


팔다리의 신경이 많이 손상된 상황에서도, 쉽사리 굴복할 마음이 없던, 청년이 단검을 뽑아 들고 하지운의 오른 허벅지 안쪽으로 내질러 버렸다.

일격에 동맥을 끊어 버리려면 목을 노리는 게 가장 상책이긴 하나, 하지운의 대갈빡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곳에 처달려 있어,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몸뚱어리의 사정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샤워 중인 괴수 놈의 목덜미를 노렸겠지만, 볼드윈 경의 몸 상태를 생각했을 때 이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볼드윈 경은 제 나름의 정성을 들여서, 세상만사 다 포기해 버린 듯한 명연기를 펼쳐 냈다.

다가오는 괴수 놈의 방심을 유발하기 위해서라면, 청년에게 못할 짓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볼드윈 경의 성심을 다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매몰찬 하지운은 속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볼드윈 경의, 단검을 든, 오른 손목을 낚아채 버린 하지운이 위로 쑥 잡아당기면서 음모 한 가닥을 가시로 만들어 세웠다.


수탉이 그려진 괴상한 의복을 뚫고 나온 굵은 꼬챙이 한 자루가 순식간에 청년의 상체를 관통해 버렸다.

명치를 뚫고 들어간 꼬챙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척추를 부수고 등판까지 찢어발기며 청년을 허공에 매달아 버리고 만 것이다.


아무리 정상인들 중 군계일학의 엘리트 전사인 볼드윈 경이라 해도, 명치를 뚫린 상태에서까지 절륜한 무용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피를 줄줄 게워 내면서 죽어 가던 청년이, 자신의 급소를 꿰뚫은 가시를 내려다보다, 느닷없이 상판대기를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울분을 억제할 수가 없던 젊은 용사가 고개를 들어 하지운을 올려다보며 눈깔을 희번덕거렸다.

꼬챙이가 튀어나온 부위가 영 좋지 않은 곳이란 걸 깨달은 볼드윈 경이, 울화가 치밀어,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새끼 끈질긴 것 좀 보소. 그런데... 너 설마 이게 내 자... 털이란 걸 눈치챈 건 아니지? 앗, 이런 실수를! 내 입으로 말해 버렸네. 미안해! 원래 배레나룻에 있는 걸 쓰려고 했는데 위치가 어중간해서...”


청년이 입을 뻐끔거리며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불현듯 그의 전신에서 기력이 쭉쭉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볼드윈 경이 좁쌀만큼 남은 기력을 쥐어짜 저항을 해 보려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그만둬 버렸다.

문득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멋대가리 없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죽음을 앞둔 청년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말든, 쥐똥만큼도 관심 없던, 하지운이 갑작스레 기력 흡수를 멈추고 염동력으로 청년의 목을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청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망설임 없이 목을 분질러 버렸다.


세 번째 환골탈태 이전까지는 언데드로 만들 재료에 ‘기력 흡수’를 발동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하지운이다.

상대의 육체를 붕괴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기력을 뽑아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 번째 진화를 마치고 나서는 왠지 어렵지 않게 될 거 같다는 근자감이 차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이미 능력을 발동해 버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는 단 한 번 만에 성공했다.


슬쩍 차오르려는 허탈감을 피식 웃으며 날려 버린 하지운이 ‘사령술’을 발동했다.

마법과 마찬가지로 사령술도 염불 같은 걸 외우는 과정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의지력만 이용해서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운의 눈에서 일순간 칠흑같이 새까만 불길이 치솟으며, 소름 끼치도록 음울한 기운을 뿜어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 등을 대고 일자로 눕혀져 있던, 볼드윈 경의 시체 아래서 시커먼 마법진 하나가 솟구치듯 튀어나왔다.


그러고서는 잠시 후 마법진으로부터 볼드윈 경의 시신으로 엄청난 양의 어둠의 마력이 맹렬한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죽기 직전에 체내의 기운이 죄다 뽑혀서 속이 텅 빈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던지라,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대량의 어둠의 마력이 청년의 시신 속으로 마음껏 밀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어설픈 마물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죽음의 기사’가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짐승 머리 괴물의 잡스러운 기운 따위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어둠의 마력으로만 가득 찬 흉물이 브리갠트에 최초 공개되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기운이 차고 넘치는 괴수 하지운이 그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 번째 환골탈태 이후 솟구치는 기운을 내내 주체할 수가 없던 하지운은, 사랑스러운 첫 번째 심복, 볼드윈 경에게 끓어 넘쳐 오르는 미친 사랑을 거침없이 쏟아 내 버린 것이었다.


일단 신장부터 자신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시체를 가지고 환골탈태를 시도하는 또라이 짓을 시작했다.

말이 환골탈태이고, 그저 자신의 미칠 듯한 의지력과 마력으로, 볼드윈 경의 육신이 터져 나가지 못하도록 강제로 붙들어 놓은 상태에서 어둠의 마력을 멈추지 않고 계속 때려 넣었던 것이다.

꼭 풍선이라도 불듯이 말이다.


‘못해도 키가 삼 미터는 넘게 만들어야지. 그래야 이 자식 눈높이가 내 거시기 위치보다는 높아지지. 거기다 외모도 좀 더 신경 써 주고. 특히 그곳을 중점적으로. 그래야 깨어나서 덜 징징거리겠지.’


혼자 중얼중얼하면서도, 흉물들의 군주 하가 놈은 거침없이 전신 성형을 집도했다.

청년의 신장을, 4.0버전의 하지운보다 십 센티 작은, 삼 미터 이십까지 벌크업시킨 죽음의 성형의가 본격적으로 남성 전문 수술까지 시행해 버렸다.


원래도 평균은 되었던 청년의 그곳을 그곳인지 팔다리인지 구분이 안 가도록 확장을 시킨 후, 한층 더 사악한 마력을 불어넣어, 그곳의 둘레에 둥근 모양으로 튀어나온 혹들을 띠처럼 둘러 버린 것이었다.


해님만 일편단심으로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충신이 되라는 뜻으로, 부하에게 직접 해바라기 수술을 해 주었던 것이다.

어둠의 마력을 실리콘처럼 사용해서 말이다.


“씨발놈아, 내가 이 정도까지 해 줬는데! 징징거리기만 해라! 그럼 넌 진짜 사람도 아니다!”


해바라기 포경 수술까지 완벽하게 끝마친 천인공노할 성형의가, 마지막으로, 볼드윈 경의 영혼에 각인 작업을 실시하였다.

이건 솔직히 일도 아니었다.

그냥 자신의 의지력으로 영혼을 굴복시켜, 영원히 지속될 종속 관계를 강제로 맺어 버리는 작업이었다.


환골탈태를 세 번이나 한 요괴 하지운의 흉악한 의지에 반할 수 있는 영혼은 적어도 브리갠트 내에선 없다.

그건 용맹한 청년 볼드윈 경조차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이었다.


---


아직 스물세 번째 생일이 되기도 전에, 죽는 것으로도 부족해, 괴수가 되어 버린 청년이 원수와 원수의 동업자들을 향해 열 자루의 단검을 한 호흡 만에 다 날려 버렸다.

원수 놈 누이의 결혼식을 ‘피의 결혼식’으로 만들기로 작정한 볼드윈 경의 손속에 인정사정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볼드윈 경의 쿠데타는 순식간에 제압돼 버리고 말았다.

만사가 귀찮은 십팔 호가 대충 되던진 열 자루의 단검이 젊은 용사의 전신에 자루까지 박혀 버렸고, 그의 등 뒤에는 어느새 십육 호와 십칠 호가 다가와 목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분신 셋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나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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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웬도버의 봄 (2) 24.03.02 32 1 10쪽
163 웬도버의 봄 (1) 24.02.29 2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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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청소하는 날 (15) 24.02.24 25 2 10쪽
159 청소하는 날 (14) 24.02.22 3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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