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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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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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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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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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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는 날 (16)

DUMMY

160화


전신의 모든 뼈마디가 뒤틀리는 고통에 하지운은 그냥 땅바닥에 등을 대고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지난번 환골탈태의 경험에 의거해 마법 벨트는 진작에 벗어서 수납장에 넣어 놓았다.


먼저 손바닥, 발바닥을 시작으로 뼈들이 생살을 냅다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운의 쇠심줄 같은 피부를, 푸딩에 찻숟갈 꽂듯이, 부드럽게 찢어발기며 각종 뼈들이 세상 구경을 나왔던 것이다.


하지운이 조금만 더 배려심이 있었다면, 좀처럼 햇빛 보기 힘든 뼈들을 위해, 두어 달 정도 기다렸다 꽃이 만발할 무렵에 환골탈태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을 영 잘못 만난 하지운의 뼈들은 우중충한 늦겨울에 바깥 구경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런지 뼈들의 움직임이 지난번보다 훨씬 거칠고 격렬했다.

찬바람 맞아 가면서 일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몸 주인에게 다 발산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었다.


처음 겪는 환골탈태가 아니었기에 수반하는 고통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냐면, 그건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이건 적응이 가능한 종류의 고통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운의 정신력이, 이런 때는 특히 짜증날 정도로, 지나치게 강해져서 기절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맨정신으로, 전신의 뼈마디가 모조리 다 분리된 상태에서, 모든 뼈다귀 하나하나가 실시간으로 급성장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안 그래도 아파서 뒈질 것 같은 상황에 ‘신체 재생’ 능력까지 속을 썩여 댔다.

두개골의 윗부분을 제외한 전신의 모든 뼈들이 지랄 발광 중이었다.

즉 눈썹 위를 제외한 하지운의 전신이 벌집처럼 난도질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 지경이 되자 하지운의 육신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기 시작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제발 좀 가만있어라, 이 븅신아!’라는 뇌의 명령을 개무시하고, 몸이 제멋대로 재생을 거듭해 버리는 것이었다.

뼈다귀가 다 자라지도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재생하자마자 뚫리고 다시 그 위로 재생하고 그러다가 또 뚫리는 고통의 악순환이 초 단위로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육신에 대한 통제를 포기해 버린 하지운이 희멀건 하늘을 보며 시원하게 곡을 해 버렸다.

승아에게는 한 삼십 분 정도만 내려다보지 말고 다른 업무에 충실하라고 당부해 놓은 상태여서, 홀가분하게 발광을 해 버릴 수 있었다.


눈물, 콧물, 침, 똥오줌을 뿜어 대며 시원하게 디톡스를 하는 하지운이었다.

사실 이맘때쯤 돼서 노폐물 제거를 위해서라도 한번 육체를 갈아엎을 필요가 있기는 했다.

승아랑 같이 다닐 때만 해도 엄마 같은 여친이 해 주는 균형 잡힌 영양식을 매 끼니마다 섭취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삼시 세끼를 짐승의 통구이 같은 거나 처먹고 있던 하지운이다.


혈뇨와 혈변에 체내의 온갖 찌꺼기까지 다 섞여 나와서, 미칠 듯한 악취를 풍겨 대고 있었다.

아직 날씨가 많이 쌀쌀한데도, 괜히 실내가 아닌 마당에서 이러고 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얼어 죽는 것보다 호흡 곤란으로 죽는 것이 더 겁났던 결벽증 환자 하지운이다.


삼 년 같은 삼 분이 지나고 이번에는 신경과 혈관이 교체되기 시작했다.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은 뼈가 박살 나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의 고통을 선사했다.

쉬지 않고 싸질러 놓은 한 무더기의 똥오줌 때문에도 충분히 호흡이 힘든 마당에, 전신의 신경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숨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한 번의 간단한 동작마저도 힘겹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말똥말똥한 정신에, 하지운은 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머릿속에 있는 온갖 쌍욕을 속사포 랩처럼 쏟아 내 버리고 말았다.

주변에 산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에게 보였다면, 족히 수천 년은 이불을 걷어찼을 숭한 꼬라지였다.

다 큰 어른이 홀딱 벗은 채 가랑이 사이에 똥을 한 무더기나 싸 놓고는, 쩍벌 자세로, 오열을 해 대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십 년 같은 삼 분마저 지난 후 이번에는 육질 개선의 시간이 도래했다.

‘신체 재생’ 능력과는 관계없이, 뼈의 성장이 끝남과 동시에, 새살이 돋아나 모든 상처가 이미 다 아문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튀어 나와 있는 뼈들 위에 살점을 채워, 임시로 가림막 따위를 쳐 둔 상황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뼈다귀만 멀대같이 자랐다고 환골탈태라 할 수는 없다.

당연히 확장된 골조에 걸맞은 내외장 공사가 뒤따라야 할 것이었다.

혈관과 신경이 교체된 직후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근육과 피부가 갈리기 시작했다.

전신의 근육을 저미는 듯한 고통에, 하지운의 입에서 또다시 울음 섞인 쌍욕 랩이 쏟아져 나오고 말았다.


근육이 찢기고 늘어나다가 다시 조여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자, 마지막으로, 수백 마리의 모기떼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물어뜯긴 듯한 가려움의 시간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가려움의 시간은 일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끝을 맺어 버렸다.


환골탈태 풀코스에 고작 십 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물론 하지운은, 집단 구타를 한 백 년은 족히 당한 사람처럼, 피폐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폭식의 시간이 남은 것이다.

저장 공간을 대폭 확장했으니, 새로 확보한 빈 공간에 내용물을 채워 넣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안 그래도 환골탈태 풀코스를 즐기며 주변 환경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주고 있던 하지운이다.

일단 노폐물이 가득 함유된 똥오줌을 싸 갈겨서, 한정된 범위나마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건, 그다음에 저지른 잘못들에 비하면, 죄질이 구질구질한 수준의 경범죄 따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주위를 떠돌고 있던 자연의 에너지를 끌어다가 신체 업그레이드에 내내 써먹고 있던지라, 하지운 주변의 대기와 지반이 이미 매우 불안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지운의 몸뚱어리가 본격적으로 블랙홀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반경 백 미터 안의 모든 에너지가 하지운의 몸뚱어리에 급속도로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하지운 둘레의 바닥이 쑥 꺼지면서, 지척에 있던 아성 전체가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갔다.

각 변의 길이가 오십 미터가 넘는 거대한 건물이 십 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무너지고 있음에도, 하지운의 육신에 그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를 못하였다.

건축물을 구성하고 있던 석재와 목재가, 부딪히면 바스러질 만큼, 이미 바짝 말라비틀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대략 지름이 이백 미터 정도 되는 원형의 공간을 생물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놓고 나서야 모든 과정이 끝이 났다.

화산재 같은 퇴적물로 가득 찬 삼십 미터 깊이의 크레이터 속에서, 붕괴의 원흉, 하지운이 어기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사지 육신은 날아갈 듯이 가벼운데, 대갈빡이 운석에라도 깔린 것처럼 무겁기 짝이 없었다.


한참을 멍한 눈으로 텅 빈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던 하지운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크레이터 밖으로 몸을 날렸다.

내성벽도 일찌감치 가루가 되어 버린지라, 착지하고 보니 외성 안마당이었다.


물 마법과 불 마법을 발동해 임시 샤워장을 만든 하지운이 머리에 물을 묻히려는 순간, 열려 있던 외성문으로 복제 인간 둘과 짐짝 하나가 꺼덕꺼덕 기어 들어왔다.


초점이 없던 하지운의 눈에서 빛이 번쩍했다.

짐짝을 곱게 내려놓던 복제 인간들이 진심으로 쫄아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땀범벅이 된 두 복제 인간 중, 머리에까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십팔 호에게 하지운의 서릿발 같은 호통이 내리꽂혔다.


“내가 아파서 죽으려고 하니까, 네놈들은 아주 좋아서 죽으려고 하더라. 해가 중천에 뜬 벌건 대낮에, 길바닥에서 춤판을 벌여? 특히 십팔 새끼 너, 저 새끼처럼 셔플 댄스까지만 추고 말았어야지! 헤드 스핀을 해? 이 십팔 번째 놈아!!”


순간 십칠 호와 십팔 호가, 이미 금이 쫙쫙 가 있던, 외성벽을 부수고 황야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위급한 순간에도 개념 있는 복제 인간들이, 시가지가 있는, 북서 방향이 아닌 동쪽으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민가에서 음속을 돌파하는 개짓거리를 할 정도로 정신이 나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공포에 질린 복제 인간들이 도주하고 난 후, 정신을 차린 짐짝, 볼드윈 경이 샤워 중인 하지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끄럽다, 이 새끼야.”

“너... 마귀 같은 거냐? 인간일 리는 없지 않느냐?”

“몰라, 나도. 이미 뒈졌다 살아 돌아온 놈한테 뭘 그리 세세하게 따져. 그냥 죽지도 않는 괴생물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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