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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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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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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7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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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도버의 봄 (9)

DUMMY

170화


“다음. 다음. 다음.”


한 놈당 이 초씩 오십 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1,480명의, 개돼지 용사들이 지옥의 문턱에서 구원받았다.

끔찍하게 죽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환희에 찬 용사들이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하지운의 따뜻한 연설이 뒤따랐다.


“파무어 마을의 민가에 삼백다섯 구의 시신이 보관되어 있다. 피붙이들이 있거든 당장 가서 수습하도록 하라. 너희가 걱정하는 인질들은 이미 빼돌려서 서문 밖에 모아 두었다. 가는 길에 데려가라. 혹시라도 파무어에서 죽은 놈들의 원수를 갚고 싶은 놈들은 남아서 싸울 채비를 하도록 하라. 고통 없이 한칼에 죽여 주도록 하마. 저녁 식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굼뜨게 굴지 말고 당장 움직여라.”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떠나 버렸다.

가는 길에 무릎을 꿇고 눈물의 찬양을 하고 가는 놈도 있고, 오열을 하며 눈을 흘기다가 하지운과 눈이 떡 마주치고는 경기를 일으키며 달아나는 놈도 있었다.


별 상관없는 놈들을 다 치워 버린 자리에는, 이미 제압된 사십팔 인과 산화한 늙은 용병을 제외한, 목록에 있는 원수 440명과 그들의 피붙이 2,794명이 남아서 썩은 동태눈을 뒤룩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왕궁으로 도망친 험프리와 졸개들도 제외한 숫자이다.


서서히 번져 오는 석양을 바라보며 하지운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존나 배고프네.”


노인네들의 혀 차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배고픈 하지운이 어슬렁거리며 원수들에게 다가갔다.

화들짝 놀란 원수들이 무기를 곧추세우고 부들부들 떨어 대는 가운데, 세상 여유로운 하지운이 실실 웃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난데없이 두 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공간 옆으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구덩이는 순식간에 범위를 넓혀 가더니 금세, 반경 팔십 미터에 깊이가 오 미터쯤 되는, 거대한 원형 공간을 창출해 냈다.


“내 집에 한 번도 간 적 없는 놈들은 저기로 들어가라. 단숨에 죽을 기회를 주겠다. 아, 미리 경고하는데! 목록에 있는 놈들은 전부 파악해 두었으니까, 몰래 섞여 들어갈 생각 따위는 꿈에도 하지 마라!”


말을 마친 하지운이 먼저 구덩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뭐 해? 나 배고파! 얼른 들어와! 안 들어오는 놈은 열흘 동안 결혼식에 피로연까지 해야 할 거야! 원래부터 괴물이랑 해 보는 게 소원이었던 놈들은 들어오지 말든지!”


한두 놈씩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원수들의 피붙이 2,794명이 전원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숫자를 세던 복제 인간들이 갑자기 짜증을 내더니 정보 길드 요원들을 불러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솔직담백하게 생긴 여섯 사나이가 하늘을 날았다.


“이 병신 같은 것들이 우리를 아주 바보로 아네! 아니... 우리가 세어 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민 복제 인간들이 말채찍을 들고 와서는 진솔한 여섯 용사들에게 사정없이 휘둘러 댔다.

그걸 보고 분노한 그들의 친족들이 뛰쳐나오자마자, 그들도 염동력으로 질질 끌고 와서는 같이 무자비하게 밟아 버렸다.

어찌나 사납게 쥐어패는지 더 이상 용기를 내는 이가 나오질 못했다.


“야, 작작 패라. 그러다 죽겠다. 아직 죽여서는 안 돼. 혼인을 앞둔 것들이야.”


복제 인간들이 씨근덕대면서도 겨우 진정을 하자, 배가 많이 고픈 하지운이 슬슬 시작할 채비를 하였다.

하지운의 두 눈에서 빛이 번쩍하기가 무섭게 바닥이 쑥 꺼지더니, 오 미터쯤 되던 구덩이 깊이가 십오 미터가 될 때까지, 순식간에 하강을 하였다.


담대한 용사들이 기겁을 하면서 아우성을 쳐 대자, 시끄러운 게 질색인, 하지운이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

뼈가 박살이 나는 듯한 굉음을 요란하게 뿜어 대며, 사 미터가 넘던 거인이 신장 이 미터 오십의 비교적 아담한 사이즈로 변신을 한 것이다.

오랜만에 오리지널 버전의 로저로 되돌아간 하지운이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산 채로 묻어 버릴 생각 따윈 전혀 없으니까. 모조리 때려죽인 후에, 사체까지 다 태워 버린 다음, 이곳에 묻을 것을 약속하마. 그러니 안심하고 한꺼번에 덤벼라. 이천팔백 명이나 되는 놈들이 나 하나를 못 이겼다고 소문이 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너희와 너희의 가문을 비웃고 조롱하겠느냐. 진지하게 상대해 줄 터이니, 경들은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운의 배려심 넘치는 일장 연설에도 불구하고, 이천팔백 명에 근접한 대군이 이도 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본래 허약한 인내력을 타고난 하지운이 허기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더러운 본성을 드러내 버리고 말았다.


“아, 씨발! 배고프다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지운의 왼손이 바깥쪽으로 거칠게 휘둘렸다.

수용 인원에 비해서는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 속에서, 끼리끼리 뭉쳐 있던, 용사들에게 끔찍한 재해가 들이닥쳐 버렸다.


하지운과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한 무리의 용사들에게 세 가닥의 벼락이 내리꽂혔다.

시원하게 잘 떨어져 내리고 있던 벼락 세 자매는, 용사들의 대갈통에 충돌하기 직전, 난데없이 저희들끼리 들이받아 버리고 말았다.

눈이 빠개질 것 같은 엄청난 섬광이 터져 나온 후 굉음까지 따라 터진 자리에는, 폭발해 버린 백여 구의, 새카만 시체들이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이천칠백여 명의 데스 매치 참가자들과, 원형 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천백여 명의 양측 인원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합동으로 격렬한 비명을 토해 냈다.


압도적인 공포심과 약간의 경외감, 증오, 경멸, 안타까움 등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공간에서 이질적인 두 인간이 한층 더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구에서 건너 온 다른 두 이방인인 컬버트 호소인과 루시아 호소녀가, 동공을 미친 듯이 드리블하며, 혼란스러운 정신을 다잡으려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미친놈이 콜로세움을 만들어 놓고, 사람 죽이는데 열과 성을 다하는구나! 저런 게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니... 그분께서는 도대체... 어쩌자고 저런 걸...’

‘저 미친놈이 또! 또... 저 짓을...’


탄식을 하며 안타까워하는 컬버트 호소인과는 달리, 번개 충돌에 대한 트라우마가 폭발한, 루시아 호소녀는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실신해 버리고 말았다.


“크하하하하! 얌전히 있으면 더 편하게 죽을 거 같으냐?”


호탕한 웃음과 함께 이번에는 시뻘건 불덩어리 세 개가 하지운의 면상 앞에 출현했다.

불덩어리들은 등장과 함께 허공으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더니, 이내 삼십여 미터 상공에서, 폭죽처럼 터짐과 동시에 들이붓듯이 퍼부어 버렸다.

세 곳에서 일시에 쏟아져 내리는 불비에 이백 명이 훌쩍 넘는 전사들이 순식간에 재 가루로 변모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좌중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의 음역대도 한층 더 상승하였다.


불꽃 확산탄의 위력에 만족한 하지운이 이번에는 바람의 원소들을 불러들였다.

내심 기다리고 있던 원소들이 신이 나서 달려들기가 무섭게, 높이가 무려 백 미터에 달하는 토네이도 한 쌍이 튀어나왔다.


“끄아아악! 신이시여! 어찌 저희에게 저런 악마를 보내셨다는 말입니까? 저희가 무슨 대죄를 지었다고!”

“신이시여! 제발! 저 마귀를 거두어 가 주시옵소서! 제발!”


간이 콜로세움 안을 산지옥으로 만들고 있던 하지운이 뭇 용사들의 구슬픈 절규에 참지 못하고 빵 터져 버렸다.


“그러지 말고! 내가 금방 보내 줄 테니까, 직접 찾아뵙고 ‘그분’ 면전에서 꼭 좀 물어 봐 다오! 솔직히 너희들이 지금 궁금해하고 있는 것은 나도 엄청나게 궁금해하고 있던 것이니까, 잊지 말고 꼭 물어 보고는, 내 애인을 통해서 좀 알려 다오!”

“무, 무슨...”

“그, 그럴 필요 없!”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맺은 하지운이 바람의 원소들에게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보라고 불의 원소들도 동행시켰다.

두 원소들은 서로 썩 내키지 않아 하는 눈치였지만, 자랑스러운 집주인 오빠가 시키는데 마냥 생떼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둘은 억지로 친한 척하면서 손잡고 같이 놀러 나가야 했다.


“으아아아... 저, 저게 뭐야?”

“지, 지옥이다... 이, 이곳은 지옥이야!”


살 떨리는 속도로 회전하는 불기둥 두 개를 바라보며 용감무쌍한 전사들이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인간이 낼 수 있는 용기의 한도를 아득히 넘어서 버린 이적들에, 더 이상 견뎌 낼 재간이 남아나질 않은 것이다.


한 쌍의 불 회오리가 덮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다 포기해 버린 용사들의, 시커먼 시신 이백여 구가 남아 있다가 봄바람에 흩날려 날아가 버렸다.


몇 분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백사십 명에 육박하는 전사들이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전사답게 멋지게 죽을 놈은 없는 거냐? 오늘 일을 사서에 기록할 놈들이 나와 우리 가문의 눈치를 안 볼 것 같으냐? 너희들 자꾸 그렇게 자빠져서 울기만 하면, 내가 직접 압력을 행사해서, 정말 추잡스럽고 너저분하게 기록해 버릴 수도 있다! 어차피 오늘 반드시 죽을 건데, 죽고 나서도 영원히 수치스럽고 싶은 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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