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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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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연재수 :
2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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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글자수 :
916,378

작성
24.03.2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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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도버의 봄 (11)

DUMMY

172화


열여섯 복제 인간들이 꽁꽁 언 구덩이 속에다 염동력 펀치를 갈겨 대고 있는 동안, 반란의 수괴 하지운은 마지막 남은 삼백여 명의 왕성 수호자들을 향해 느긋한 걸음을 내밟았다.


“이야... 처음에는 목록에 있는 이 많은 놈들을 어느 세월에 다 죽이나 했었는데... 그런데... 막상 거의 다 죽여 놓고 보니, 고작 열 달도 안 걸렸네. 중간에 놀 거 다 놀고 할 거 다 했는데도, 벌써 여기까지 왔지 뭐야. 그만큼 너희가 쓸모없는 병신들이라는 얘기가 되겠지. 너희 생각은 어때?”

“......”

“됐다. 네깟 놈들 생각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냐? 얼른 팔다리 뜯어 버리고, 험프리나 보러 가야지.”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삼백 결사대 앞에 새카만 마법진 이백 개가 출두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공포 분위기 조성도 충분히 했다 싶었는지, 급속도로 의욕을 상실해 버린 하지운이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엘리트 전사 삼백여 명과 소머리 좀비 이백 마리의 세기의 대결을 벌여 놓고, 열의를 잃은 하지운이 구덩이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 부쉈어?”

“거의 다 했어.”

“잘게 잘 부숴 놨네. 나중에 할 거 없으면 너희 데리고 마늘이나 다져서 팔아먹어야겠다.”

“미친 새끼...”

“야, 됐다. 이제 그만해라. 이 정도면 묻어도 되겠다.”


구덩이를 다시 원상태로 되돌려 놓고 나니, 세기의 대결도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야, 나 먼저 들어갈 테니까, 일 호랑 이 호 둘이 남아서 얘들 좀 통제해 줘.”

“어, 먼저 가라. 정리하고 따라갈게.”

“아, 맞다. 얘들 잘 감시해라. 이것들이 사람 불알에 맛 들렸더라. 잠깐만 한눈팔면 바로 뜯어먹으려고 하더라니까.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싹 다 정리 해고를 한 다음, 전부 신입으로 교체하든가 해야지. 근데... 맛있나, 그게?”


일 호를 대신해서 수행 비서 역할을 맡게 된 삼 호가 자신의 추론을 제시해 보았다.


“쟤들도 성생활이 가능하잖아. 일종의 해구신 같은 게 아닐까? 정력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쟤들은 시체잖아? 정력 걱정을 한다고?”

“아, 맞다! 쟤들 시체였지. 요즘 애들이 부쩍 청결해져서 깜빡했네.”

“이해해. 나도 요즘은 가끔 헷갈려. 다시 지저분한 상태로 되돌려 놓을까? 멀리서 대충 보면 구분이 안 간다니까. 저게 내 졸개인지, 쳐들어 온 괴물인지 말이야.”

“쟤들도 애완견처럼 상의라도 만들어서 입혀 보는 건 어때?”

“왜 상의야?”

“왜라니? 애완동물들은 원래 상의만 입히는 거 아니었어?”

“저게 어딜 봐서 애완동물이야? 그리고 기왕 옷을 입힐 거면 팬티를 만들어서 입혀야지. 안 그래도 보기 싫어 죽겠는데.”

“모자이크 기능 켜 놓고 있잖아.”

“아이씨, 그 모자이크 때문에 멀미 날 것 같다고. 모자이크가 존나 격하게 움직여서 속이 울렁거린다니까.”

“넌 어떻게 환골탈태를 해도 비위 약한 건 여전하냐?”

“아, 그러니까!”


잡소리들을 주워대다 보니, 어느새 시가지를 지나쳐서, 왕궁을 둘러싼 외성벽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제는 해도 다 떨어져서 어두컴컴해진 상황이라, 그럴듯한 공성전 따위는 더더욱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더 이상 성벽을 지키는 수비 병력 따위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시가지를 지키던 병력이 방어가 뚫리기 직전 이곳으로 도주했어야 했는데, 하지운의 손에 한 명도 남김없이 망가지거나 해방되었으니 더 이상 세워 둘 놈이 남아나질 않은 모양이었다.


말을 탄 채로 오른손만 앞으로 내민 하지운이 손가락만 구부려 허공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러고서는 다짜고짜 확 잡아당겨 버렸다.

옆에서 보기에는 미친놈의 느닷없는 헛손질에 불과했지만, 수반된 사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였다.


외성의 게이트하우스와 주변 성벽 일부가 해자 위로 반듯하게 엎어져 버린 것이다.

뿌옇게 덮쳐 오는 흙먼지는 바람 마법으로 왕궁을 향해 날려 보냈다.


십오 미터가 넘는 높이의 성벽을 해자 위에 자빠뜨린 것으로도 부족해서, 흙 마법으로 곳곳의 빈틈까지 다 메워 버렸다.

금세 폭이 삼십 미터가 넘는 비포장 진입로가 뚝딱 만들어진 것이었다.


탄식하는 뭇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얼마 후 이 건물의 새로운 소유주가 될, 개레스 먼틸리의 낯짝이 한층 더 참담하게 일그러져 갔다.

불과 두 달 전 개레스 먼틸리는 똑똑히 목격했었다.

하지운의 분신들이, 문짝만 깔끔하게 날려 버리고는, 거버스네 고향 집을 마치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꼴을 말이다.


지금 하지운이 하고 있는 포악한 짓거리들의 의도를 북방의 노회한 여우가 모를 리가 없던 것이다.

선물을 줄 때 주더라도 절대 온전한 상태로 줄 생각은 없다는 걸 대놓고 어필하고 있는 마왕 놈이다.


외성과 내성 사이의 광장을 지나 내성문 앞에 선 하지운이 다시 팔을 들어 올렸다.

독하디독한 철거의 화신 하지운을 바라보며, 결국 개레스 먼틸리는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왕성 복구 비용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차기 건물주가 오열을 하든 말든 잔혹한 하지운은 내성벽도 거칠게 잡아 뜯어 버렸다.

시가지부터 왕궁 문 앞까지 시원하게 뚫어 버린 파괴의 화신이 내성 안으로 진입했다.


공들여 가꾸어 놓은 아름다운 정원을 거침없이 짓밟으며 밀고 들어가던 하지운이, 정원 한가운데에 설치된 석상들을 보고는, 갑자기 말을 멈춰 세웠다.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던 하지운이 롱그레이 옹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여기 원래 아널프의 석상만 있던 거 아니었어?”

“아... 재작년부터 만들던 건데, 작년에 승전 기념으로... 이 앞에다...”

“아! 우리 집에서 그 지랄을 하고, 그 기념으로, 제 놈 석상을 제집구석 시조 놈 석상 옆에다가 가져다 놨다는 거구나! 제 놈이 건국 왕과 맞먹는 불세출의 영웅이라 이거지? 우리 집에서 한 짓거리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나? 이 새끼가 도대체 얼마나 비참하게 뒈지고 싶어서 이걸 치우지도 않고 그대로 둔 거지? 험프리 이 새끼... 진짜 용감하네.”

“용감하긴... 정신이 없어서 이것까지는 치울 생각도 못 한 거지...”


하지운은 금 부장을 만난 날 이후로 대략 한 달 만에 손때 묻은 망치 두 자루를 다시 꺼내 들었다.

로저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둔기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하지운이 망치의 머리 부분을 잡고는 정성껏 휘둘렀다.


두 석상의 가랑이 사이에, 손잡이부터 자루까지, 망치를 깊숙이 박아 넣은 하지운이 그윽한 표정으로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봐라! 이러니까 늠름함이 더욱 배가되지 않았느냐? 원작은 너무 밋밋했다. 역시 미적 감각은 험프리 놈보다 내가 월등히 낫지.”

“과연 그렇구나! 네 말이 맞다, 본체야.”

“한층 더 사내다운 멋이 살아나는구나!”


미적 감각이 거기서 거기인 복제 인간들의 찬사를 받으며 아티스트 하지운은 왕궁의 외부 계단을 여전히 말을 탄 채로 올랐다.

복제 인간 삼 호와 사 호가 본체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문짝들을, 좌우 한 짝씩 붙잡고는, 강제로 잡아 뜯어서 옆으로 날려 버렸다.

통짜 쇠로 강화된 문짝들이 허공을 날아, 내성벽을 부수고는, 외성 안마당의 조각상들 사이에 수직으로 박혀 버렸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왕궁 전체가 흔들거렸고, 결국 금이 쫙쫙 가 있던, 스테인드글라스가 홀에 모여 있던 왕족들과 중신들 옆으로 쏟아져 내렸다.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드디어 서부의 마왕 로저 드레이시 호소인이 그레이트 홀 안으로 코끼리 같은 말을 탄 채 입장하였다.

왕족들과 중신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고, 입에서는 앓는 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험프리 이 새끼야! 나 왔어! 반가워서 미치겠지? 그런데 여기 문짝이 이렇게 낮았나? 씨발, 하마터면 마빡으로 처받아 버릴 뻔했네. 어, 표정이 왜 그래? 내가 부활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결국엔 끝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넌 직감하고 있었잖아? 솔직히, 같잖은 네 졸개들이 날 막아 낼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잖아? 안 그래? 누구보다 날 잘 아는 매제 새끼야.”


왕관을 쓴 중년 사내의 쭈글쭈글한 낯짝이 거무죽죽하게 변색되어 갔다.

다시 사 미터 이십의 본모습으로 돌아와 있던 하지운이 말을 몰고서 왕좌 앞까지 다가가, 오른발을 들어, 험프리의 오른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또 웃어 봐, 이 병신아.”

“무엄하다! 이 역적 놈아!!”


열 놈밖에 남아 있지 않던 근위대 용사들 중 여덟 놈이, 겨우 용기를 쥐어짜 내서는, 검을 뽑아 들고 힘차게 달려 나왔다.

그러고는 십 초도 지나지 않아서, 목을 움켜쥐곤 허공에서 몸부림치다가 기절해 버렸다.


“나가자, 병신아. 네 신민들이 보는 앞에서 네 생애 마지막 결혼식을 올려야지. 이번에 하면, 네 번째인가? 넌 참 병신 같은 게 복도 많다. 남들은 한 번도 겨우 하는 걸 네 번씩이나 하고.”


말 머리를 돌린 하지운이 홀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움츠리고 있던 험프리가 왕좌를 박차고 일어나 구석으로 몸을 날리면서 준엄한 일성을 내질렀다.


“그 계집을 대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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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웬도버의 봄 (3) 24.03.04 30 1 9쪽
164 웬도버의 봄 (2) 24.03.02 3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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