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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연재수 :
2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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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글자수 :
916,378

작성
24.03.2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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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웬도버의 봄 (14)

DUMMY

175화


“소문이 사실이었구려. 제 누이에게 여우머리 족장 놈을 잡아다가 먹였다더니...”

“과연... 로저 드레이시... 제 누이까지 괴물로 만들었구나...”

“당신은 저 아이가 움직이는 걸 제대로 보았소? 사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잠시 놓치고 말았소...”

“나도 마찬가지요... 과연 족장 놈의 피는... 다르군, 달라. 마법까지 익혔다던데...”

“설마... 마법도... 제 오라비가 아까 한 것처럼, 정신 나간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않겠지?”

“그럴 리가 있겠소? 저 괴수의 꼬라지를 보시오. 저놈이 어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 할 수 있겠소? 백 살 가까이 처먹은 대마법사 거버스 같은 늙은 요괴조차도 저놈의 발끝에도 닿지 못했소. 로저 저놈이 그저 홀로 특출난 것일 뿐이오.”


서부, 북부 가릴 것 없이 뭇 제후들이 입을 가리고는 의견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제 놈들 딴에는 최대한 말소리를 줄이고 소곤거렸던 것이지만, 귀 밝은 괴수 하지운과 복제 인간들이 그걸 못 들을 리가 없었다.


복제 인간 둘이 고개를 돌리고는 각자 서부와 북부 쪽 제후들을 향해 싱긋이 웃어 주었다.

삽시간에 소곤대는 소리조차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모든 제후들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입을 꼭 다물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발목이 잘린 태자를 제외하면, 가장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이는 소피아였다.

살기 탱천한 금 부장을 스파링 파트너로 삼아, 복제 인간들의, 과외를 받아 왔던 소피아는 자신의 신체 능력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할 새가 없었던 것이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살귀를 상대로 쭉 스파링을 해 오다가, 굼벵이 같은 애송이를 상대하려니 오히려 속도감과 거리감이 뒤죽박죽이 돼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하지운은 금세 그녀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 하느냐? 어서 남은 한 놈도 마저 정리하도록 하라!”


실전 경험이 일천한 그녀의 약점이 드러나기 전에, 얼른 싸움을 끝내게 하려던 하지운이 흉신악살처럼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우리가 전하를 대신해 싸우겠소!”

“그대가 먼저 대전사를 내세웠으니, 전하께서도 굳이 직접 검을 드실 필요가 있으시겠소? 우리가 대전사로 나서겠소!”


마지막 남은 두 근위대 전사가 앤서니 왕자 앞으로 나섰다.

두 놈 다 노련한 놈들이다 보니, 소피아의 상태가 대충은 짐작이 되었던 것이다.


대번에 인상을 풀고서 피식 웃어 버린 하지운이 래널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처가 무용을 떨치려 하는데, 같잖은 것들이 방해를 하려 하는구나. 네가 나서서 저 하찮은 것들을 치워 주도록 하여라.”

“네, 각하!!”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래널프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한달음에 뛰쳐나갔다.

열다섯 살짜리 아이라 해도, 키가 이 미터 사십에 가까운 거구이다 보니, 달려 나오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거기다 손에 든 무기도 꼬라지가 여간 가관이 아니어서, 두 근위대원을 한층 더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덩치가 엄청스레 큰 아이가 순식간에 달려 나와, 자신의 오른쪽 방향에 서 있는, 근위대원의 대갈통을 향해 길이가 삼 미터에 달하는 쇠기둥을 내려쳤다.


아이가 휘두르는 흉기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근위대원이 일단 손에 든 검으로 흉기를 막아 냈다.

하지만 거의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흉기의 끝에는 사슬이 달려 있고, 그 사슬 끝에는 손잡이와 굵기가 동일한 칠십 센티 길이의 쇠몽둥이가 덤으로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검을 비스듬하게 세워 쇠기둥을 흘리면서 상반신을 비틀어 쇠도리깨의 추 부분을 피하려 했지만, 그건 근위대원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검으로 버텨 낸 것까지는 용한 일이었지만, 도리깨의 추를 피하는 건 근위대원의 역량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리통은 어떻게 비틀어 볼 수 있었는데, 승모근까지는 무리였던 것이다.


브리갠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안마를 받은 근위대원이 비명도 못 질러 보고 단숨에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복제 인간 삼 호가 즉시 치료 마법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을 뻔했던 가공할 매질이었다.


그래도 그 근위대원의 희생 덕에 마지막 남은 근위대 용사가 래널프의 왼쪽 옆구리를 향해 검을 쑤셔 넣을 수 있었다.

검 끝이 가죽 갑옷을 뚫고 들어가려는 순간,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검이 멈춰 버리고 말았다.


치명적인 일격이 박히려는 순간 좌측으로 몸을 튼 래널프가 왼팔로 검날을 쳐 내 버린 것이다.

팔을 휘둘러 검을 쳐 냈는데 쇳소리가 난 것을 보니, 왼팔 전완부의 가죽 갑옷 아래에 금속 방어구까지 착용해 둔 듯했다.


결정적인 한 방이 막히긴 했지만, 노련한 전사는 금세 잊어버리고는 검을 소년의 왼팔에 붙인 채로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도리깨를 피한 근위대원이 검을 움직여 래널프의 왼 팔꿈치를 자르려는 찰나, 거구의 소년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몸을 회전시켰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근위대원이 바닥에 처박혀 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홀이 떠나갈 듯한 비명이 근위대 용사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의 왼 무릎이 으깨진 채 왼 다리가 좌측 방향으로 접혀 있던 것이다.


도리깨로 내려친 후 로우 킥까지 날리는 것이 하지운이 가르쳐 준 연속 동작이었고, 소년은 무서운 형님이 알려 준 기술을 밤낮으로 연습해서 완벽하게 숙지했던 것이었다.


이윽고 앤서니 왕자도 양 손목이 잘린 채로 비통한 울음을 터뜨렸다.

대전사랍시고 튀어나온 것들이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리자, 손발이 어지러워진 왕자가 소피아의 속도에 제대로 반응도 못해 보고 양손이 잘려 나가고 만 것이다.


왕자들과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 차이에 오히려 당황했던 소피아가 곧 침착성을 되찾고는 두 청년을 모두 제압할 수 있었다.

특히 남편이 옆에서 같이 싸운 것이, 싸움이 익숙지 못한,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울부짖는 두 왕자를 내려다보는 소피아의 표정이 꽤나 혼란스러워 보였다.

검을 꽉 쥐고 있는 것이 뭔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는 그녀의 귀에 오라비의 음성이 때려 박혔다.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지은 죄가 더 많은 놈들이라고 이미 말을 하지 않았느냐. 쓸데없는 자비를 베풀겠다고, 경솔한 결정을 하지 마라. 나중에 모든 것을 알고 나면,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될 것이니라. 이 오라비 말을 믿어라.”


깨끗하게 고민을 털어 버린 소피아가 미련 없이 뒤로 물러섰다.

맏오라비가, 경박한 면이 조금 있다고는 해도, 뭔가 경고를 할 때만은 절대로 흘려들어선 안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밥 먹는 것만 빼면, 해 둬야 할 일을 거의 다 끝마친 홀가분한 상태의 하지운이다.

새로운 드레이시 가주 부부가 얼마나 훌륭한 전사의 재목들인지 차기 권력 집단에게 각인까지 확실하게 시켜 주었으니, 하지운에겐 육체 제공자를 위해 더 이상 해 줄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봉사료로 로저 놈이 꿍쳐 둔 걸 거둬 갈 일만 남았네. 크흡... 내 에메랄드...’


이 자리에 모인 변경의 백전노장들이 눈알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팔푼이들이 아닐진대, 괴물 피를 먹은 지 한 달밖에 안 된, 아이들의 진면목을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것까지 다 감안하고 헤아려 본 후에 감탄했던 것이다.


특히 소머리 족장의 피를 획득했다고 허풍을 떨어 왔던 서부의 영주 몇 명은 겸연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보니 그들이 자식들에게 잡아다가 먹였던 건 사실, 그저 발육이 조금 남다른, 일반 소머리들의 피였던 것이다.

래널프 브리즌의 몸뚱어리와 움직임을 보고도, 구분을 못할 정도로 눈이 대충 달려 있는 이는 다행히 단 한 명도 없었다.


소머리 족장의 털빛이 검다는 것도 모르고 있던 그들이다.

그들도 처음부터 긴가민가하는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잡는 과정이 험했다 보니, 그냥 믿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이었다.

무엇보다 소머리 족장은 테일강 동부 지역에 서식하지도 않는다.

그 덕에 서부 변경의 가문들 대부분이 아직도 명맥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뭐 어쨌든. 이제 슬슬 정리를 해 볼까.’


“어떻게... 오늘 하루 구경들은 잘하였소? 내 한때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옛 기억을 떨쳐 내지 못해, 험프리 왕과 그 피붙이들에게 최소한의 수치만 주려 하였건만. 쯧쯧, 그대들이 기어코 동행하겠다고 우겨 대기에 내 마지못해 동의하였소. 서부, 북부 할 것 없이 먼 곳에서 어려운 걸음들 해 준 여러 신사분들. 그래, 어떻게들 보았소? 이런 무능한 병신들이 계속 왕성에 틀어박혀서는 시답잖은 장난질이나 쳐 대는 걸! 그저 좌시하고만 있는 게! 진정 신하 된 도리라고, 어디 내 앞에서, 결연하게 부르짖을 마음이 들더냐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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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 24.04.02 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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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웬도버의 봄 (3) 24.03.04 30 1 9쪽
164 웬도버의 봄 (2) 24.03.02 32 1 10쪽
163 웬도버의 봄 (1) 24.02.29 2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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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청소하는 날 (16) 24.02.25 24 1 9쪽
160 청소하는 날 (15) 24.02.24 26 2 10쪽
159 청소하는 날 (14) 24.02.22 3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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