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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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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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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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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0)

DUMMY

186화


“할머니는 뭐 원하는 거 없어?”

“쓸데없는 질문을 하시는군요. 그저 더 이상은 저희 아이들을 죽이지만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제 저희는 당신이 있든 없든, 인간의 왕국에 그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합니다.”

“내가 엘프를 잘 몰라서 하는 질문인데... 원래부터 거짓말을 그렇게 잘 해? 내가 없어지면, 지금 저 꼬마들만으로도 우리 왕국을 쓸어버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잖아? 그놈의 신탁 때문에 오히려 인간에 대한 경계심만 커져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염탐을 해 왔던 거 아니었어?”

“......”

“애새끼들하고는 다르게 표정 변화가 없네. 근데 그러면 뭐 하겠어? 할머니 뒤에 있는 어중간하게 늙은 졸개들이 표정 관리를 전혀 못하고 있는데.”


순간 대장로의 좌우에 셋씩 배석하고 있던 여섯 장로들이 고개를 떨구며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그동안 강도 높은 심문을 통해 할매네 종족에 대해서 많은 걸 알아냈어. 예를 들어 할매가 더 오래 살아 봤자, 대충 앞으로 십 년 정도라는 거. 역대 대장로들이 보통 사백 살이 되기 전에 신탁을 받고 그 과정 중에 회춘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대부분이 오백 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면서? 그리고 아무리 명줄이 질긴 종자도 오백 살을 넘기면, 그때부터는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어 십 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던데. 전대도 그러했고 그 이전 것들도 마찬가지였으니 할매도 다를 게 없겠지.”

“우리 아이들 입이 가벼운 편이 아닌데... 그런 것까지 알아내셨다니, 아이들이 겪은 고초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겠군요.”

“그럼, 거꾸로 매달아 놓고는 별짓을 다 해 봤지. 애들 울 때까지 입에 담지도 못할 짓들을 듬뿍 해 줬어. 연놈 할 것 없이 앞뒤로 세차게 싸 갈겨 대면서 어찌나 서럽게들 울어 대던지... 크흐흐흑... 이런, 웃으면 안 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는 얘기야.”


뿌드드득!


대장로의 좌우에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일시에 이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눈살을 살짝 찌푸리던 대장로가 오른손만 살며시 들어 좌우로 까딱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움찔하던 장로들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와 동시에 협상장을 둘러싸고 있던 엘프들도 공터 밖으로 일제히 물러섰다.

물론 하지운과 대장로만 한 자리에 남겨 두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달가울 리는 없었지만, 신탁을 받은 대장로의 명을 거역할 정도로 정신 나간 엘프는 없었던 것이다.


“안 데리고 나왔구나? 후계자로 점찍어 둔 놈이 있다기에, 어떤 놈인지 궁금해서 장난 좀 쳐 봤는데. 꼬라지 보니까, 저 안에는 없는 모양이네... 왜? 내가 보자마자 죽여 버릴까 봐, 숨겨 둔 거야?”

“맞다. 곧 죽어도 따라 나오겠다는 걸 말리느라 고생 좀 했다. 내후년에 삼백팔십 살이 되는 놈이... 대체 언제쯤이면 철이 들는지. 그런데 ‘그분’은 대체 어떤 의도로 너 같은 흉물을 세상에 내놓으신 건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군.”

“너나 나나 따지고 보면, 그저 ‘그분’의 일개 피조물들일 뿐인데. 그 잘난 분이 우리 이해까지 구해 가면서 일을 진행해야 하나?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들이는 수밖에. 하아... 그런데 말이야. 너도 모르는 눈치네. 너희가 왜 하필 이 자리에 배치돼서는, 내 손에 박살 나는 역할을 맡게 됐는지 존나 궁금했는데. 말하는 걸 들어 보니, 너도 딱히 아는 게 없어 보이네.”

“그러게 말이다. 우리가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처박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너 같은 하등한 종자에게까지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지. 그런데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아주 틀린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어. 천이백 년 전이라고 너 같은 돌연변이가 없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럴지도.”

“그런데 무슨 협정까지 맺자는 것이냐? 이 흉물아, 그만큼 죽여 댔으면 이만 만족하고 썩 꺼져라. 우리가 이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마당에, 당장 보복하겠다고 날뛸 정도로 분별력이 없는 종족으로 보이느냐? 그리고 어차피 네놈이 살아 있는 동안은 쳐들어가 봤자, 또다시 우리만 죽어 나갈 게 뻔한 일인데.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네놈이 죽은 걸 확인도 안 하고 쳐들어가겠느냐? 그리고 네놈이 뒈지고 나면, 네놈과 맺은 협정 따위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러니까 협정을 맺어야지, 이 늙은 신탁의 무녀야. ‘그분’께 우리의 이름을 걸고 말이야. 내가 숲을 넘어간 후 얼마 안 가서 뒈지기라도 하면, 상황이 골치 아프게 돼 버리잖아.”

“적당히 해라, 이 꼼꼼한 흉물아. 왜 뒈지고 난 후의 일까지 걱정하는 것이냐? 그냥 후대의 일은 후대에 맡기고, 넌 숲 너머에서 홀가분하게 뒈질 준비나 해라. 수련? 웃기고 있네. 거기가 수련장으로 보이더냐? 하등한 종자가 잔재주를 믿고 되는대로 까부는구나. 넌 저 숲 밖으로 나가는 그 즉시 뒈지게 될 거다. 그리고 버러지 같은 네놈의 동족들도, 네놈을 따라서,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찢어발겨지게 될 것이다.”

“진정해, 뒈질 날이 얼마 안 남은 예쁘장한 노인네야. 난 너흴 처음 접했을 때부터 쭉 뭔가 거죽만 화려한 독사 떼를 보는 거 같았어. 처음부터 안전장치 정도는 만들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얘기야. 내가 왜 이 마을 저 마을 다 뒤지고 다니면서, 애새끼들을 남김없이 이곳으로 몰아넣었겠어?”

“하아... 어디서 이런 끔찍한 추물이... 설마 내가 보는 앞에서, 우리 아이들을 다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응.”

“흉측한 놈이 정말 생긴 대로 지껄이는구나.”

“저... 그런데 내가 정말 그렇게 못생겼어?”

“그렇다. 심지어 너희 종족은 거울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도대체 그런 황당한 질문은 왜 하는 것이냐? 설마... 넌 평생 거울이란 걸 보지도 않고 살아온 것이냐? 까짓것, 그거 하나 대답해 주는 게 무에 힘들겠느냐? 맞다. 넌 정말이지, 더럽게 못생겼다.”

“하아... 그냥 협상이나 마무리 짓자.”


외모 콤플렉스가 재발한 하지운이, 짙은 탄식을 뱉어 내며, 수납장에서 테이블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 위에 양피지와 깃털 펜까지 꺼내서 보기 좋게 배치해 두었다.

눈물이 새어 나올 것 같았지만, 꿋꿋하게 참아 가면서 협정서 작성 준비를 꾸역꾸역 다 마친 것이었다.


‘자기야, 자기 요즘은 진짜 아이돌 뺨치게 잘생겨졌어! 자신감을 가져! 그리고 옛날에도 자기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었어! 그러니까 내가 자기 옆에서 아예 죽치고 살았지! 개 같은 썩을 년이 빤스 바람으로 어디 뚫린 입이라고! 그 늙어서 눈깔이 삐어 버린 노망난 할망구의 개소리 따위는 무시해 버려! 이 소심한 사내자식아, 내가 잘생겼다고 하잖아! 가슴 펴!’


회의 중에 다급하게 뛰쳐나온 승아가 오랜만에 사자후를 토해 냈다.


‘자기야... 역시 나한테는 자기밖에 없나 봐. 종족에 관계없이 자기를 제외한 모든 여성은 불알 없는 영장류일 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쓸데없는 말에 흔들리고 말았어... 미안해, 내가 잠시 하찮은 일로 자기를 걱정하게 만들었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역시 자기는 생각이 제대로 박혔어. 결론이 깔끔한 것 좀 봐. 난 다시 회의에 들어가 봐야 하니까 이만. 그럼 자기야 힘내!’

‘응! 내일모레 봐!’


시말서를 각오한 우렁이 각시의 진심을 다한 응원에, 자신감을 회복한, 하지운이 테이블 위에 두 발을 얹어 놓고서는 오만불손하게 떠들어 댔다.


“양피지에다 내가 불러 주는 그대로 받아 적어. 천천히 불러 줄 테니 또박또박 적어. 알아보지도 못하게 너희 특유의 필기체로 대충 끄적여 놓으면, 진짜로 재미없을 거야. 그리고 혹시 물어볼까 봐 미리 얘기해 주는 건데, 거부하면 십 세 미만의 핏덩어리만 남기고 싹 다 죽여 버릴 계획이야. 그러고는 바로 곰머리 달고 있는 것들을 이쪽으로 끌고 올 거야. 너희가 가족이라고 바락바락 우겨 대던 놈들이, 야들야들한 핏덩이들만 남은 너희 종족을 보고도, 과연 가족 대하듯 할지가 정말 궁금하거든. 사실 그게 궁금해서라도,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 네가 반항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읊어라, 이 역겨운 흉물아.”

“아! 강화 조건을 먼저 알려 줄게. 일단 들어 보고 조정할 부분이 있으면 얘기해 줘.”

“......”

“첫째, 생명의 나무 씨앗을 많이는 말고 딱 열 개만 줘. 정말 약소한 숫자잖아, 안 그래?”

“이, 이 찢어 죽일 놈이...”

“둘째, 올해 수확해서 보관 중인 생명의 나무 열매를 남김없이 다 내놔. 어차피 내년에 또 열리잖아. 먼저 시비를 걸었다가 처밟혔으면, 그 정도는 토해 내야지.”


빠드드득!


“셋째, 백 년 동안은 쳐들어오지 마. 내가 평화를 엄청 사랑해서 하는 부탁이야.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지. 어때, 네 생각도 그렇지?”

“그렇게는 죽어도 못하겠다면?”


시무룩해진 하가 놈이 천천히 마력을 일으키며 최후통첩을 띄웠다.


“내가 몇 명을 죽이고 나면, 내 부탁을 들어줄 거야? 이 숲속에 엘프인가 뭔가 하는 게 있는지도 모르고 평생을 살았는데, 몇 분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해서,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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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역사 창조의 건아 (10) 24.04.19 2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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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웬도버의 봄 (6) 24.03.10 28 1 9쪽
167 웬도버의 봄 (5) 24.03.08 30 1 10쪽
166 웬도버의 봄 (4) +2 24.03.06 33 2 10쪽
165 웬도버의 봄 (3) 24.03.04 31 1 9쪽
164 웬도버의 봄 (2) 24.03.02 32 1 10쪽
163 웬도버의 봄 (1) 24.02.29 2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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