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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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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16,378

작성
24.02.2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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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도버의 봄 (1)

DUMMY

162화


삼월의 셋째 날 오전 열 시경에 콘체스터시 외부 성문의 도개교가 내려갔다.

코끼리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거대한 전투마를 탄 하지운을 필두로 총 백팔십팔 인의 관광객이 성문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각종 야생화가 만발하는, 봄날에 드레이시 가문의 새로운 구성원들이 왕성 나들이를 떠나는 참이다.

새로운 주인 부부의 이른 성년식 겸 결혼식도 치르고 얼마 전에 채용된 신입 사원들의 단합 대회도 가질 겸, 왕성을 통으로 빌려 쓸 생각이다.

물론 해당 건물주의 승인은 받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받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비록 왕성이 오랜 세월 동안 이벤트 개최에 최적화된 건물로 개량을 거듭해 온 건 사실이긴 하나, 아무리 그래도 일개 지방 영주가 사전 협의도 없이 사적 용도로 사용한다는 건 어불성설인 일이다.

심지어 그 와중에 건물주를 폭행한 다음 피로연을 겸한 똥꼬쇼에 강제 출연시킬 계획까지 일방적으로 다 잡아 놓았다니, 그 극악무도함이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시대를 대변하는 폭력의 수호자, 흉물들의 군주, 마왕 하지운은 쓸데없이 들러붙은 군식구들을 잔뜩 거느리고 한창 봄나들이를 즐기는 중이다.

그런 하지운의 곁으로 방해꾼들이 하나둘 접근했다.


“이 미친놈아, 내... 그곳에 무슨 미친 짓거리를 해 놓은 것이냐? 이게... 이게 도대체 뭐냐?”

“왜? 우람하고 늠름하게 만들어 줬잖아. 뭐가 불만이야? 그러지 말고, 바지 벗고 앞장서서 걸어. 내 장담하건대 왕성에 도착할 때쯤이면 연서가 족히 백 장은 도착해 있을 거다.”

“그냥 죽어! 나도 당장 소멸돼 버리게! 지금 당장 죽어 버리라고! 이 더럽게 미쳐 버린 마왕 놈아!”


급피곤해진 하지운이 손짓을 하자, 복제 인간 일 호가 짜증을 내며 볼드윈 경의 말고삐를 잡고 행렬의 뒤로 끌고 가 버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롱그레이 옹을 비롯한 여섯 명의 노인네들이 슬슬 접근해 왔다.


“왜 또? 좀 조용히 가자. 영감들도 꽃구경이나 실컷 해. 알록달록 예쁜 게 얼마나 좋아. 살날도 얼마 안 남은 것들이. 이제 좀 주변의 익숙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인생의 마무리를 차곡차곡 해 나가야 할 거 아냐.”

“이 어린 미친놈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우리더러 얼른 죽으라고 덕담을 하고 있지 않느냐.”

“거 어린놈이 참 못되게 컸어. 저놈이 어릴 적에, 주변의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매를 드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놈이 고작 열 살 무렵이었다고 했던가... 어쨌든 소 피도 처먹기 전에 돼지머리를 때려 죽였다고 하지 않느냐. 누가 감히 저놈에게 매를 들 엄두를 낼 수 있었겠느냐?”

“아이고, 그러니 애가 저 모양이지.”


노인네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떠드는 통에, 짜증이 치밀 대로 치민, 하지운이 다정하게 웃으며 응대를 하였다.


“날짜는 받았어?”

“날짜라니? 무슨 날짜?”

“죽을 날짜.”

“......”

“왜 갑자기 용감해져서 날 피곤하게 만드는 거지? 또 뭐가 불만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왜 또 사람을 이렇게 지치게 하는 거야?”

“롬니 성 말이다!”

“아이...씨...”

“도대체 어떻게 싸우면 그 지경을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는 거냐?”

“왕국 남동부에서 왕성을 빼면 가장 큰 성이 그거였어! 꼭 그 꼴을!”

“아, 진짜! 사나이가 싸우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근처에 새로 하나 지으면 될 거 아냐!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런 무식한 놈! 너 그 성이 어떤 가치!”

“아, 됐어. 그까짓 게 가치는 무슨. 언제 적 롬니야?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낡은 건물 따위에 비싼 값을 매겨서 땅값을 후려치려고? 내가 언제 쓸데없는 의미 부여를 해서 땅값을 부풀리려고 한 적 있어? 그냥 각 장원의 징수액에 맞춰서 감정하라고.”

“뭣이!”

“아니, 그렇잖아. 지진이 난 다음에는 그 주변의 땅이 죄다 바다가 됐잖아. 언제 적 교통의 요지고, 언제 적 방어의 거점이냐고? 그런 변두리 촌구석에 그렇게 큰 요새가 왜 필요해?”

“......”

“지진이 나기 전이야 루아레로 통하는 길목 중 하나였다지만, 그게 언제 적 얘기냐고? 삼백 년이 넘었어. 이제는 내분이 일어나도, 도와주겠답시고 우르르 몰려와서는, 왕위를 냅다 가로채는 비열하고 파렴치한 외세 따윈 없다고.”

“뭐, 뭐라!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그... 외세가 바로 네놈과 우리의 선조님들이다! 말 좀 곱게 해라, 이놈아!”

“내가 틀린 말을 했어? 첫째랑 둘째가 왕위 다툼을 하고 있는데, 셋째의 장인이 쳐들어 와서는 첫째와 둘째를 죽이고 셋째를 왕으로 옹립한 게 잘한 짓이야? 그래도 거기까지만 했으면 내가 이런 말을 안 하지. 그걸로도 부족해서 나중에는 그 사위까지 죽이고 제 아들놈을 왕으로 만들었잖아. 그게 무슨 버러지 같은 짓거리냐고.”

“제발... 좀... 말 좀...”

“이놈아, 그때 그 첫째, 둘째를 차례로 격파했던 지휘관이 누군지 모르고 하는 소리냐? 괜히 너희 집안이 대대로 그런 권세를 누려 온 줄 아느냐!”

“아니까 하는 소리지. 아머릭 같은 좆같은 집구석을 그 자리에 올려놓았으니까, 영감들 집안이나 우리 집안이나 그 꼴이 났던 거 아냐.”

“......”

“이 어린놈아... 어떤 놈을 왕으로 만들어 놓든... 시간이 지나면 여러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죽는 사람도 나오고 망하는 집안도 나오고는 하는 게다. 그게 세상 이치야.”

“누가 몰라? 그냥 그렇다고. 어쨌든 영감들이 롬니 같은 촌구석의 쓸데없이 거대한 성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한다고 해도, 받아 줄 마음이 전혀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되었다... 네놈을 상대로 말싸움을 해서도 이길 수가 없구나... 그렇다고 몸싸움을 할 수도 없고... 우리가 네놈 수발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그 정도는 좀 져 줘도 괜찮지 않느냐? 이 인정머리 없는 괴수야!”

“항상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어. 우리 사랑스러운 정보 길드.”

“말만이라도 고맙다, 이 미친놈아.”

“할 말 다 했으면 뒤로 가서 증손녀들하고 놀아. 죽기 전에 열심히 놀아 줘. 안 그러면 죽고 나서 많이 후회하게 될 거야. 내 말 귀담아들어. 이미 한 번 죽어 본 이 몸만이 해 줄 수 있는 천금 같은 조언이야.”

“충고 고맙다, 이놈아.”

“뭘, 우리 사이에.”

“그런데... 방금 그놈... 정말 언데드가 맞는 것이냐?”

“감쪽같지? 산 사람과 전혀 구분을 못 하겠지?”

“그, 그렇더구나.”

“아직 가까이 가지는 마. 쟤가 아직은 많이 혼란스러운가 봐. 확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수도 있으니까 항상 조심해.”

“네놈이 저번에 했던 농담... 말이다.”

“뭔 농담? 내가 평소에 농담을 하나?”

“설마... 그럼 그걸 진심으로 말했던 거냐?”

“아니, 뭘?”

“우리더러 계속 세상 구경을 하고 싶으면 얘기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네놈이 말이다.”

“어, 했어. 그거 농담 아니야. 농담인 줄 알았어?”

“이런 미친...”

“왜? 나 따라서 한 천팔백 년 정도 더 돌아다녀 보고 싶지 않아? 영감들 쓸 만해서 내가 먼저 영입 제안을 하는 거야. 내 밑에서 공짜로 일해.”

“공짜?”

“그럼 당연히 공짜지. 시체가 돈이 왜 필요해? 밥을 먹을 거야? 자식을 낳아 키울 거야? 뭘 할 거야? 살 집이야 내가 구하면, 영감들은 거기서 같이 살면 되는 거고.”

“그, 그건... 그렇기는...”

“거기다 저놈 생식기 얘기 못 들었어? 하녀들 떠드는 건 무조건 영감들 귀로 다 들어간다면서? 그럼 들었겠네.”

“......”

“영감들도 회춘시켜 준 다음, 쟤처럼 만들어 줄게. 상상만 해도 기쁘지 않아? 미치겠지?”

“......”

“노인네들아... 그만 실실 웃고 신중하게 한번 잘 생각해 봐. 살 만큼 산 영감들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거야. 참고로 이건 저승에서 내가 직접 확인하고 온 확실한 정보야. 대부분의 영혼은 한 번 쓰고는 바로 폐기 처분이야. 나같이 재활용되는 경우는 극도로 희박해. 영감들이 나처럼 저승에서 되돌아올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있기는 한지,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서, 곰곰이 생각해 봐. 영감들은 모두 죽는 순간, 그 즉시 소멸이야.”

“크흑...”

“그리고 언데드가 되었다고 영혼이 타락하고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고, 뭐 그딴 거 없어. 내가 원수들 겁주려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다닌 거야.”

“뭐... 뭐라고?”

“그거 다 내가 지어낸 헛소리라고. 내가 죽는 순간, 나에게 속박되어 있던, 언데드들은 모조리 다 자연 소멸이야. 다른 거 없어.”

“이놈은 입에서 거짓말이 숨 쉬듯이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놈이야. 지금 하는 말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방금 건 거짓말 아냐. 솔직히 말해서 영감들이 거짓말까지 해서 낚아채야 할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잖아? 안 그래? 가서 거울들 좀 봐. 내가 지금 영감들 증손녀들을 후리려 하는 게 아니잖아? 쟤들은 예쁘기라도 하지.”

“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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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웬도버의 봄 (3) 24.03.04 30 1 9쪽
164 웬도버의 봄 (2) 24.03.02 3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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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청소하는 날 (14) 24.02.22 3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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