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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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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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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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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도버의 봄 (12)

DUMMY

173화


말 위에서 고개만 돌린 하지운이 멀뚱한 눈으로 험프리의 활기찬 액션을 감상하였다.


“뭐 하냐, 저 병신이?”


복제 인간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험프리를 바라보며 한마디씩 하였다.


“미친 거야?”

“미칠 만도 하지.”

“이 동네에는 미친놈이 너무 많아.”

“정신 병원부터 지어야 해.”

“지으면 뭐 해? 전문의가 없는데.”

“그러네.”


그 순간,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두 근위대 전사들이 드디어 그레이트 홀에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낯이 익은 처자 한 명을 질질 끌고서 말이다.


처자의 얼굴을 보고 기함을 한 정보 길드 노인네들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저 아이가 왜 여기 있는 것이야?”

“저 아이가 납치되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모르고 있던 것이냐?”

“네놈들은 무얼 하고 있었어?”


노인네들 뒤를 바짝 따르고 있던 수행원들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숨을 내쉰 하지운이 말에서 내려 험프리에게 다가갔다.


“그만!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이년을 죽여 버리겠다!”


빛이 번쩍번쩍하는 왕실의 보검을 뽑아 처자의 목에 가져다 댄 험프리가 의기양양하게 으름장을 놓았다.


“험프리...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내가... 고작 그 아이 하나 때문에... 너를 안 죽일 거 같으냐?”

“아무리 네놈이라도 이년이 죽는 걸 바라지는 않을 것 아니냐? 네놈이! 로저 네놈이 누굴 구해 주고 어쩌고 할 인간이 아니지 않느냐! 너 같은 살인마가! 이년이 네놈에게 그저 그런 년이 아니라는 것이겠지! 네놈이 살면서 유일하게 목숨을 구해 준 년이 바로 이년이지 않느냐!”

“그래서?”


하지운의 심드렁한 한마디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험프리가 애원조로 말을 이었다.


“제발 내 딸아이와 혼인을 맺고, 다음 왕위를 물려받는 걸로 매듭을 짓자! 내 사위가 되면 정통성 있는 계승자로서 이 브리갠트를 차지하게 되는 거다! 그러면 네가 왕좌를 차지함은 물론이고, 군왕을 시해한 역적으로 기록되는 일도 없지 않겠느냐!”

“네 딸 누구? 브리짓? 저 애새끼?”

“막내가 마음에 안 들면, 저 두 아이 중 누구라도 네 마음대로 선택해라! 아니, 두 아이 다 데려가도 좋다!”

“둘 다 서방이 있잖아?”

“어차피... 그 두 놈 다... 네 손으로 죽여 버릴 것 아니냐?”

“그렇기는 하지. 그래도 난 남이 쓰던 건 별로... 그냥 그래. 궁 밖에 유부녀 좋아하는 거버스 새끼도 와 있는데, 걔가 들었으면 환장을 하면서 좋아하기는 했겠다. 어쨌든 난 관심 없어. 너나 네 딸들이나 다 죽일 것들이지, 가족 삼을 것들은 아니야.”


사지를 부들부들 떨던 험프리가 게거품을 뿜어 대면서 검을 틸다의 목에 바짝 갖다 붙였다.

잠시 후 검날을 타고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러면 이년은 죽는 수밖에! 내가 이년을 못 죽일 것 같으냐?”

“그럴 리가. 죽일 거 같아. 그런데 죽이기 전에, 이건 반드시 알고 죽여라. 걔가 죽으면 넌... 아마 후회하게 될 것이다. 너도 후회하게 되겠지만, 나도 널 더 후회하게 되도록 애써 줄 거다.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공을 들일 것이며, 너와 네 피붙이들은 살아서 지옥을 겪을 만큼 겪은 다음에야 죽음이라는 안식을 얻게 될 거다.”

“웃기는구나, 처남! 네놈이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이년이 확실히 보통 계집은 아닌 모양이구나! 크흐흑... 이년이 잡혀 온 게 언제인지 아느냐? 열흘도 전이다! 그사이에 간수들이 제법 낯짝이 반반한 이 계집을 가만두었을 성싶으냐? 크하하하! 네놈 주변의 계집들은 하나같이 비참하게 죽는구나! 그래, 네놈이 원하는 대로 당장 이 천한 년을 죽여 주마!”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반쯤 실성해 버린 왕이 틸다의 목을 사정없이 그어 버렸다.


“크하하하하하!”


잠시 후 홀이 떠나가도록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미치기 직전의 왕이 토해 내는 광소가 묻힐 정도의 처참한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특히 험프리의 등 뒤에서 말이다.


“히히히힉... 푸흡...”


사 미터 이십의 거인이 내뱉은 웃음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을 정도의 간교한 웃음이었다.

그 거인의 뒤로, 수백 명의 역도들이 기이한 표정을 지은 채 얼어붙어 있는 모습이 험프리의 흐릿한 시야에 들어왔다.


불길한 예감이 든 험프리가 힘없이 검을 떨어뜨리고서, 우측 아래를 향해, 고개를 아주 천천히 움직여 보았다.

과연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정보 길드의 천한 계집 하나가 자빠져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배가 조금 부푼 여인 하나가 피를 뿜어내며 뒹굴고 있는 것이었다.


“어... 어...”


그 자리에 주저앉은 왕이 온몸을 덜덜 떨어 대면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왕자들 뒤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 아내를 바라보았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왕비가 우물쭈물하면서 입을 열려는 순간, 왕비의 뒤에 시립해 있던, 시녀가 왕비의 머리끄덩이를 틀어쥐고는 순식간에 하지운의 옆으로 날아들었다.


“내 갑옷 줘, 본체야.”

“너 다음에 또 헤드 스핀 하면, 그때는 진짜 소멸이야! 이런 시답잖은 벌칙으로 봐주는 건 이번 한 번 뿐이야! 알아들었어?”

“아이씨... 알았어...”


얼굴만 본래대로 돌아온 아담한 몸매의 복제 인간 십팔 호가, 왕비 사칭녀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가죽 갑옷을 챙겨 든 채 종종걸음으로 홀을 빠져나갔다.


홀 안의 모두가 정신이 나가 버릴 지경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먹을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왕비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저, 저년은...”

“로더릭 윌러벌의 첩년이잖아!”

“갑자기 안 보여서, 그새 죽여 버린 줄 알았더니...”


틸다의 안부가 염려되었던 정보 길드의 영감들이 하지운에게 몰려와 질문을 쏟아 냈다.


“틸다 그 아이는 어디 있느냐? 무사하긴 한 것이냐? 혹시 잘못된 건 아니겠지?”

“말 좀 해 보아라!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냐?”


영감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하지운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질책을 시작하였다.


“지난달 초에 틸다에게 청혼을 한 놈이 하나 있었다. 알고 있었나?”

“그런 일이 있었어?”

“아, 톰이라고... 벨램튼주에서 돼지 키우는 놈이었나?”

“돼지머리?”

“아니, 진짜 돼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는 노인들을 바라보며, 짜증이 치민, 하지운이 중간에 말을 끊고는 호통을 쳐 버렸다.


“내가 영감들더러 애들 관리 똑바로 하라고 말을 했어? 안 했어?”

“아이고, 이놈아. 살살 좀 얘기해라. 우리 아직 귀 안 먹었다.”

“그 톰인지 뭔지 하는 놈이 거절을 당하고는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설마...”

“왕성으로 쪼르륵 달려와서는, 허비 먼퍼드의 집사 놈에게 은화 두 닢을 받고, 틸다의 사연과 거처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겼다.”

“......”

“할링튼에서 영감이 내게 말했었지, 그 아이의 사연이 길드 내에 쫙 퍼졌다고. 내가 그 말을 듣고도 뱀을 영감들 옆에만 붙여 둘 줄 알았나?”

“면목이 없다...”

“우리가 아이들 관리를 잘못했구나...”


노인네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동안, 길드 소속의 전사들은 이미 홀을 빠져나가서 말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 살기가 줄줄 흐르는 것이, 조만간 톰은 자신이 키우는 돼지들의 사료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길드의 노인들을 침울하게 만든 하지운이, 수십 배는 더 침울해져 있는, 험프리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내가 너 후회하게 될 거라고 분명히 말했잖아. 그러게 왜 내 말을 안 듣고 지랄이야, 이 병신아. 근데 너... 임신한 마누라를 또 죽였네. 하여튼 살벌한 놈이라니까.”

“도, 도대체 어떻게...”

“내 모습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갈취한 능력 중에 외형을 변형시키는 능력도 있거든. 그 능력이 극에 이르면 타인의 몸뚱어리도 변형시킬 수 있지. 물론 완벽하게 제압한 놈에 한해서. 네가 주워들은 정보를 가지고 날 곤란하게 만들어 보겠다고 까불기에, 네 버르장머리를 한번 호되게 고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마침 전임 워스터 백작의 딸년을 죽이면서 타인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도 얻었고 해서, 네 새 마누라를 가지고 이런저런 장난을 쳐 뒀지. 이년은 뒈지기 직전까지 본인이 틸다인 줄 알고 뒈졌을걸.”

“그, 그런... 말도 안 돼! 왕비는 혼례를 올린 후 단 한 번도 궁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대체 언제?”

“푸흡... 야, 이 병신아. 이 건물 말이야. 지지난달 말일부터 이미 나한테 점령당한 거나 마찬가지였어.”

“무, 무어라?”


어린 아내의 시체를 보고서 침 범벅이 되어 있던 주군의 입가를, 신발 바닥으로, 정성스럽게 닦아 준 충직한 신하가 숨겨 왔던 진실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


“내가 그날 너희 집안에서 만든 사생아를 하나 죽였거든. 걔네 집이 여기서 가깝잖아. 온 김에 여기도 들렀었지. 당연히 자는 네 낯짝도 보고 갔었어. 그러고는 가기 전에 내 권속들을 쫙 깔아 놓고 갔었지. 네 침대 밑에도 아직 세 마리나 남아 있어, 그날 놓고 간 독사가.”

“......”

“걔들 통해서 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가, 심심하면 수시로 놀다 가곤 했지. 네가 그동안 본 악령들 말이야. 그거 사실 헛것이 아니었어. 크흐흑... 그거 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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