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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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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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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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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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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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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8쪽

16화. 왕의 귀환.

DUMMY

“여러분, 정웅도입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흐흥. 잘 돌아왔다.”



‘여러분’은 개뿔. 보는 사람이라곤 성빈이랑 사감 선생님뿐인데. 기숙사 앞, 정중한 목소리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선생님은 방긋 악의적인 웃음을 띄우며 대답하신다. 뭔가 기분이 묘한데. 사필귀정이랬던가, 결국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구나. 이 여자 기숙사에, 유일한 남자 학생으로. 다시금 변태 씨의 전설이 시작되는 것일까. 개뿔, 그럴 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 딱히 기숙사에서 변태 같은 짓 해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없고.



“그래, 어땠어. 1년 간의 자유는.”

“……달콤했죠. 그만큼 인생은 망해버렸고.”

“하핫.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정신 차리는 것보단 낫네. 고 3때 정신 차린 것보다는 100배 나으니까. 가서, 공부해야지.”

“아뇨, 오늘은 아직, 학기 초니까.”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게, 자취 하게 된 게 1년 전이니. 정확하게는 1년 조금 안 됐지만. 작년에 축제 끝나고 그랬으니. 내 쓸쓸한 대답에 선생님은 만족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신다. 결론은 그렇다. 공부. 오로지 그것 뿐이니까, 우리나라 학생의 의무는. 권리까지 포함되나. 공부할 권리라, 하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너무 늦었다. 선생님 봐. 혼기 훌쩍 넘겨서 이러고 있잖아.”

“서, 선생님답지 않게 왜…… 정민 씨는 어떡하구요.”

“……헤어졌어.”

“네?!”

“……그냥 그렇게 됐으니까! 나쁜 놈아!”

“죄, 죄송합니다!”



사감 선생님이 본인 입으로 본인이 노처녀인 걸 인증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의아해 물어봤다가 잘못 건드린 부분. 아니, 그렇게나 금슬(?) 좋던 두 분이 어째서?! 도시락까지 만들고 아주 깨가 쏟아졌었는데, 불과 저번 학기만 해도?! 차마 왜 헤어졌냐는 것까지 물어보면 선생님께 잔뜩 까일 것 같아서 그렇게는 못 한다.



“이제는 공부 열심히 할 거야?”

“뭐, 그래야지. 그러려고 돌아왔는데.”

“열람실 같이 가자. 웅도 너 1학년 때엔 열람실 한 번도 안 왔잖아.”

“……그래야지. 하하. 하기 싫지만. 해야지.”



성빈이는 가만히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선생님의 갈굼이 끝나고 빼꼼 고개를 내밀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확실히, 공부 때문에 돌아온 기숙사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참 막막하고 하기 싫다. 머리로는 이해하지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하지만 사람이 단순하게, ‘음 나는 이걸 해야할 필요성이 있네. 그럼 해야지.’ 하고 그렇게 되질 않잖아. 그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1만 시간의 기적대로 전문가가 되고 잘 살겠지.



“짐이나 다 풀어. 내일이면 여자애들 들어올 테니까. 너도 내일 오고.”

“네. 내일 봐, 웅도야!”

“으응. 고마워.”



선생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뭐, 짐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지만. 기숙사엔 지금 아무도 없는 상태. 방학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뭐, 2일 후면 2학기 시작이긴 하지만. 진짜 말 그대로 내일 모래구나, 개학이. 선생님의 말에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돌아간다. 보통 기숙사생들은 내일 들어오니까. 나는 특별히, 남자이기도 하고, 특별취급일까.



“……그럼, 이제 이 넓은 기숙사에 너와 나 단 둘 뿐이네. 부적절한 관계를 마음껏 만끽해볼까.”

“무, 무슨 소리에요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되죠, 교육자가!”



문득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시는 선생님. 흠칫 놀라 뒷걸음질치며 말한다. 드립이라고 해도 좀 무서울 정도. 선생님, 안 그래도 방금 전에 그리 말씀하셨잖아.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헉……! 설마, 남자친구와 헤어진 슬픔과 외로움을 나를 통해 풀으시려는……!? 아니, 그런 일은 절대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 그치만,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원하신다면 나, 어떡해야 하지. 아니 무슨 소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데?!



“……무슨 상큼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네가 생각하는 그런 엄한 짓은 안 한단다. 선생님이 미쳤니?”

“제, 제가 무슨 이상한 생각 했다구요! 따, 딱히 여선생과.남제자의.불순한동거.avi 같은 생각은 안 했어요!!”

“흐흥, 1년이 지났어도 여전하구나, 네 불끈불끈함은. 하긴, 오히려 더 발전했으려나. 여자애들 사이에 있으면서 분출은 못 하니. 후후, 꼬꼬마.”

“………짐이나 정리할게요.”



선생님의 그윽한 눈빛의 대답에 괜히 내가 더 무안해진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드립에 나는 입을 다물고 방으로 들어간다. 선생님도 여전하시구나. 하긴 뭐, 1년동안 어디 다른 데 갔다온 것도 아니고. 단순히 기숙사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건데.


1층의 작은 방. 원래는 창고였던, 내가 손수 치웠던 방. 자취하다 다시 돌아와 보니 더욱 좁아 보인다. 거의 고시원 수준. 실제로 작기도 하지만. 그래도 뭔가 정감있다. 선생님이 주워다 준 작은 침대와 책상. 나쁘지 않아. 박스를 열고 옷들을 정리한다. 앞으로 남은 1년 반 학기동안, 잘 부탁한다. 이 작은 방아.






--







“에?! 기숙사??”

“응.”



내 말에 흠칫 놀라는 성빈이. 희세 또한 의외로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도 그럴 게, 조금 충격적인 말이니까. 자취를 포기하고, 제 발로 기숙사로 들어가겠다는 말이니. 놀러 갔다와서, 희세와 성빈이 둘만 불러서 카페에서 얘기하고 있다. 다른 애들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다른 애들은 이미 리타이어 했으니까─ 가 아니라. 그, 기숙사에 대한 건은 꼭 기숙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다짐에 대한 이야기니까. ‘공부’에 대한, 나의 다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기숙사를?”

“그냥. 요즘 이것저것 생각했는데, 음…… 자취하면 역시, 공부가 잘 안 될 것 같아서. 기숙사 들어가면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응, 그렇긴 하지! 기숙사엔 열람실도 있고, 아무래도 면학 분위기 더 조성되긴 하니까.”



희세의 말에 솔직한 심경을 밝힌다.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암담하기만 하니까. 내가 정확히 무얼 하고 싶은 지도 잘 모르겠고, 생각한다고 딱히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잖아.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공부라도 열심히 한다면 이 씁쓸함과 공허함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자취의 자유로운 마음을 버리면서까지 기숙사행을 결정한 것은 순수히 내 미래를 위함이다. ……근미래 말고.


내 말에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무엇이든 긍정적인 좋은 반응인 성빈이 답다. 실제로 성빈이 말과 비슷하기도 하고, 기숙사가. 물론 나는 그런 기숙사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공부, 제대로 할 거 같지 않은데. 웅도 너.”

“너 너무 나를 잘 아는 거 아니야. 하하, 그렇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가서 있는 게 좋을 거 같으니까.”

“음…… 뭐.”

“응, 기숙사 와! 같이 공부하면 되겠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진리를 말하는 희세.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희세는.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어. 내 심드렁한 반 포기의 대답에 별로 탐탁지 않아 하는 희세. 별다른 태클을 걸지는 않지만, 내가 기숙사에 들어가는 게 그리 좋지는 않은 것 같은 눈치. 그리고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성빈이 때문이려나. 정작 성빈이는 굉장히 좋아하는 눈치. 방긋 웃으며 재촉한다.



“언제 들어오려고?”

“방학 전에 들어가야지. 미리 엄마랑 학교에 말 해보고.”

“응, 정말 잘 생각했어. 고 2니까 이제 열심히 공부해야 하잖아?”

“……뭐, 네가 공부하는 거 내가 신경쓸 처지는 아니지만.”



성빈이의 물음에 심드렁한 대답.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성빈이.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뭔가 내가 들어오는 게 상당히 좋은 듯한 성빈이. 그 이유를 눈치채지 못하면 정말 병X이겠지. 며칠 전의 여름 여행 때, 성빈이가 나한테 고백했었는데. 희세는 그런 나와 성빈이가 못마땅한 지 살짝 헛기침을 하며 말한다.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말하지만 실제로는 되게 신경 쓰는 것 같은 눈치. 음…… 괜히 이 둘로 불렀나 싶은데.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두 사람이 제일 공부 잘 하니까. 조언 같은 거 잘 해줄 줄 알았거든.



“2학기 때부터는 같이 다니겠네?”

“그렇지, 아무래도?”

“아, 짐 옮길 때 도와줄게! 그래도 상관없지?”

“아 뭐…… 딱히 짐 옮길만한 것도 없지만.”

“에이, 그래두! 도와주면 훨씬 낫잖아.”



계속되는 성빈이의 적극성. 나야 나쁠 게 없지만 계속되는 희세의 눈치에 괜히 내가 다 겸연쩍다. 성빈이도 희세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건만 알고 그러는 지 모르고 그러는 지 계속 더 말한다. 덕분에 둘 사이에서 나만 잔뜩 눈치밥 먹고 있다.



“흠! 그럼, 나는 갈 테니까.”

“응? 희세는 같이 안 도와주게?”

“……짐 별로 없데잖아. 이번 주말에 옮기는 거 아니야? 그 때 나, 가족여행 가니까.”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 잔뜩 심통이 난 심정을 대놓고 밝히며 말을 꺼내는 희세. 성빈이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희세에게 말한다. ……유진이를 겪고 나니까, 어째서인지 성빈이의 저 말도 뭐랄까, 분명히 의도하고 말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그런 거 있잖아, 여자애들 사이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알력이랄까. 나를 사이에 두고, 둘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은.


희세는 성빈이를 쳐다보지 않고 나를 흘겨보며 대답한다. 괜히 내가 더 위축된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안 된다고 할 이유나 명분은 없잖아. 딱히 성빈이에게 매몰차게 대할 이유가. 희세는 그대로 카페를 나선다. 찬바람 쌩쌩 풍기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이겠지.



“짐 옮길 때 말해줘.”

“응.”



성빈이도, 희세가 나가니 그것까지는 조금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살짝 미소 지으며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며 대답. 어쨌든 애들에게 내가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 이렇게 흐지부지한 분위기가 되고 끝났다.





『여보세요.』

“응. 왜?”



집. 이제는 마지막 밤이 될, 자취방에서의 밤. 엄마에게 나의 의지를 표명했고, 학교에도 말을 끝냈다. 기숙사에 들어가는 건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애초에 나는 집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이런 불쌍한 영혼을 받아주지 않으면 대체 기숙사의 존재 의의가 무엇인데.


혼자 자취방에서의 마지막 밤을 만끽하려는데 문득, 희세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일까, 하고 전화를 받으니 차분하고 낮게 잠긴 희세의 목소리. 나는 심드렁한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기숙사. 들어가기로 했어?』

“응, 그렇지. 별로 못 들어갈만한 이유가 없으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척 했지만 결국엔 신경 쓰고 있었구나. 굳이 전화까지 해서 물어볼 정도라면. 정말, 희세도 새침데기라니까. ……이런 거 말로 했다간 잔뜩 쳐맞겠지. 아니, 실제로 그런 걸 어떡해.



『……성빈이. 좋아해?』

“어…… 어?!”



갑작스런 돌직구. 예상치 못한 희세의 기습 질문에 나는 흠칫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물론 어제 그제의 그 심기불편한 반응이나, 성빈이와의 미묘한 알력을 통해 은연중에 느끼곤 있었지만, 설마 그 자존심 센 희세 쪽에서 먼저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상상을 아예 못 한 부분이라 그에 대한 대답 또한 어떻게 쉽게 준비가 되질 않는다.



『……망설이는 건 역시,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거? 정웅도 답네.』

“아니, 그…… 음…… 어…… 응. 그런 거 같애.”

『뭐가 그런 거 같애?』

“……그…… 정확하지 않은 거.”



대답이 없는 내 반응에, 희세도 조금 기다리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하지만 희세 목소리도 조금 떨리는 게 분명히 느껴진다. 나는 더듬거리며, 머뭇거리며 중언부언 하다 뜸들이며 대답한다. ……희세한테 그걸 말할 순 없지. 성빈이가 나한테 고백한 거. 그건 나만의 일이 아니라, 성빈이의 일이기도 하니까. 나도 희세도 별다른 말 없이 침묵이 오간다.



『……리유는. 아직 못 잊었어?』

“……뭐. 원래 첫사랑은 못 잊는 법이래잖아. 남자는.”

『……피이. 핑계는 하여튼 청산유수야.』

“내가 그렇지. 입만 살았잖아.”



애써 너스레를 떨며 희세의 질문에 대답하는 나. 이제는 이런 능청 떠는 것만 늘어서 민감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회피하는 기술만 늘었구나. 희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한다. 그나마 조금은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 같은 느낌.



『……그냥. 나도 쿨하진 못하네.』

“뭐가.”

『아니야, 그냥.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네가 기숙사 들어가면, 성빈이랑 더 자주 마주칠 수 있잖아. 나한테는 더 불리하고.』

“뭐…… 그렇지.”



성빈이가 적극적으로 변했듯, 희세도 더 이상 예전 희세처럼 마냥 도도하지만은 않다. 솔직하게 심정을 밝히는 희세에게,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기숙사를 들어가게 되면 확실히. 나는 성빈이랑 더 어울리게 되겠고, 늘 아침마다 와주던 희세는 더 이상 그럴 일이 없어지고, 나랑 마주칠 일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겠지. 그리고 그게 신경 쓰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희세. 그게 신경 쓰여서 전화를 했다는 말인가.



『됐다, 뭐. 기숙사 들어가면 더는 너 늦게 일어나거나 칠칠치 못하게 밥 못 챙겨 먹고 그런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좋잖아? 나도 덜 귀찮고?』

“응, 그렇지. 너한테 신세 지는 기분이었는데, 기숙사 들어가면 네 수고로움 없이도 다 되니까.”



희세는 갑자기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신경 쓰이던 부분을 본인 스스로 말함으로써 떨쳐내려는 심산일까. 나는 같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신경 써주는 게, 그렇게 귀찮지는 않았지만.』

“응?”



실은 다 알아 들었다. 희세가 하는 말. 그럼에도, 나는 ‘에? 뭐라고?’를 시전했다. 다 알아 들었으면서, 어째서 난 그랬을까.



『아니야. 됐어, 잘 들어가 기숙사. 난 내일 못 도와주니까. 성빈이만으로 충분하지?』

“어, 응, 그렇지. 실은 혼자 해도 되는데.”

『그럼 잘 들어가. 잘 자고.』

“응.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는 희세.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목소리는 최대한 밝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뭐랄까. 이 전화가, 희세와의 마지막 통화가 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아닐 거야. 기분 탓이겠지. 잘 모르겠다. 컴퓨터나 하다 자자.






--







“와. 벌써 옮길 준비 다 됐네?”

“옮길만한 게 별로 없으니까. 기숙사에 컴퓨터를 가져갈 순 없잖아?”

“응, 그렇긴 하네.”



다음날 아침. 성빈이가 오기 전에, 학교 구석에 있던 리어카를 끌고 내 자취방 앞까지 왔다. 그리고 준비한 짐들을 리어카에 싣고 있는 중에 성빈이가 왔다. 편한 사복 차림의 성빈이. 도와주기 위함이니 그렇게 꾸며 입고 오진 않았다. 그래도 성빈이는 예쁘지만. 내 말에 성빈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기숙사에 가져갈만한 짐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나머지 짐들은, 다음주에 아버지가 차 가지고 오실 때 그 때 옮기기로 했다. 원룸도 단번에 내가 기숙사 간다고 방을 빼는 건 아니니까.



“아…… 그럼 내가 할 게 없네?”

“뒤에 붙잡아 줘. 가볼까?”

“응!”



성빈이는 조금 미안한 표정이 되어 말한다. 도와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왔는데 막상 모든 일이 끝나 있으니. 내 딴에는 성빈이 힘들지 말라고 미리 일한 거지만. 저 가녀린 팔 좀 봐, 뭘 옮기겠어. 노예같은 내가 무던하게 다 해야지. 그래도, 성빈이의 저 미안한 표정을 보자니 그건 그것대로 괴롭다. 해서, 별로 필요하진 않지만 뒤를 붙잡아 달라고 성빈이에게 말했다. 자신의 효용가치(?)가 생긴 성빈이는 금세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덜거덕 덜거덕.’

“우리 되게 거지 같다. 고물상.”

“아하하하. 나중에 폐지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 되는 거야?”

“모르지.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학교까지 가는 길은 평지인지라 딱히 뒤를 붙잡아주지 않아도 되지만. 성빈이랑 도란도란 얘기하며 가니 그래도 덜 처량하다. 그러면서도 괜히, 성빈이의 대답에 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할머니 할아버지 될 때까지 백년해로 해서 같이 폐지 주우러 가겠다는 얘기인가.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 멋지지도 않고!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냐. 김칫국도 정도껏 마셔야지.



“어이구. 제대로 이사 오시네.”

“안녕하세요! 되게 오래간만인 것 같네요!”

“그래, 잘 왔다. 방문 열어놨으니까. 여기, 열쇠.”

“네!”



성빈이와 함께 즐거운 리어카 라이딩. 기숙사 앞까지 금세 왔다. 기숙사 앞에는, 내 연락을 받고 나와 계신 선생님. 언제나와 같은, 한데 질끈 모아 묶은 똥머리와 헐거우면서 팽팽한 낡은 티셔츠.짧은 핫팬츠. 기숙사 전용 패션의 선생님, 되게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내 활기찬 대답에 선생님도 호기롭게 답하신다. 열쇠를 건네는 선생님의 손을 호쾌하게 잡는다. 이제 다시, 시작이구나. 뭔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비록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들어왔지만, 내 스스로 택한 미래니까. 열심히 해보자!


작가의말

으으. 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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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슬럼프 특집 번외편 - 2 +12 15.12.24 837 15 20쪽
214 슬럼프 특집 번외편 - 1 +7 15.12.22 971 15 19쪽
213 15화 - 5 +6 15.12.18 1,001 17 18쪽
212 15화 - 4 +6 15.12.16 816 16 20쪽
211 15화 - 3 +6 15.12.14 1,084 25 20쪽
210 15화 - 2 +4 15.12.12 981 1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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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16 17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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