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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060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1.23 22:24
조회
827
추천
14
글자
22쪽

13화 - 4

DUMMY

“흐읍. 결전의 날이구먼.”

“공부 많이 했어?”

“그냥 하루만에 다 봤으면 좋겠는데, 모의고사처럼. 왜 중간 기말은 쓸데없이 3일에 나눠서 보는 걸까.”

“그러면 망하잖아. 오늘 볼 과목에만 집중해야지. 너, 공부 안 했지??”



희세와 함께 하는 등굣길. 밥은 같이 먹지 않았다. 어째 안 온다 싶더라니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희세. 본의 아니게 주말에 성빈이에게 들키고 나서 그런가보다. ……신혼부부처럼 보인다는 말이 그렇게 충격이었나. 두런두런 얘기하며 골목길을 걷는다.


오늘부터 시험날. 기말고사는 3일에 걸쳐 나누어 보니까. 장점이라면, 오전에만 시험 보고 점심 먹기 전에 끝난다는 점. 단점은, 그 고통스러운 시험을 3일 동안 질질 끌면서 느껴야 한다는 점. 나처럼 공부를 별로 안 좋아하는 녀석들은 차라리 하루에 몰아서 다 봤으면 싶은데. 뭐, 아예 공부를 놓은 막장인 녀석들은 ‘학교 일찍 끝나잖아?! PC방이나 가지!’ 할 텐데. 그 정도는 아니지, 아직은.



“별다른 말이 필요가 있나. 공부한만큼 나오겠지. 잘 봐! 찍는 것도 다 잘 나오고!”

“응. 너도 잘 봐. 찍어도 신빙성 있는 걸로 찍구.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시험시간에 잠들지 말고.”

“응, 그건 걱정마. 어제 9시 반에 잤으니까!”

“으유, 자랑이다.”

“하핳.”



복도에서 희세와 헤어지며 말 한 마디 건넨다. 희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덕담을 나눈다. 내 의기양양한 대답에 눈을 흘기며 새침하게 미소 짓곤 교실로 들어간다. 나도 웃으며 교실로 들어간다.



“좋은 아침─”

“아아. 아침부터 훈훈하네~? 희세랑 또? 응응?”

“‘응응’이 뭔데 ‘응응’이! 아침부터 뭐!”

“헤에~ 여고생 입으로 그런 걸 말하게 하다니, 웅도 응큼하네♡??”

“내가 뭐!!”

“오빠가 그렇죠 뭐. 원래 그래요. 오빠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 쓰레기에요.”

“넌 뭔데 또 갑자기 낙인 찍는데!”



기분 좋게 교실로 들어오지만 유진이와 미래의 연합 공격으로 순식간에 좋던 기분이 망가진다. 유진이는 아침마다 희세가 오는 걸 대강 알고 있기에 저런 섹드립을 친다. 미래는 왠지 모르게 미래답지 않은 시리어스한 분위기로 잔뜩 나를 까내린다. 시험인데도 얘네들은 똑같구나.



“하. 그냥 하루에 다 봐 버리지. 미쳤다고 3일을 괴롭게 하냐.”

“내 말이.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이구나.”

“어멋, 되게 불쾌하거든요?! 웅도 씨가 뭔데 저랑 같은 생각이에요?! 같은 생각 = 천생연분 = 결혼까지 생각했어 = 프로포즈 = 결혼 = 임신 = 출산 = 경력단절 = 정리해고 라구요? 웅도 씨 지금 여성차별발언 하신 거에요?!”

“창의력도 가지가지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나갈 수 있어?! 그 머리로 공부를 하라니깐?!”



한숨 쉬며 말하는 미래의 말에 공감하며 자리에 앉는다. 미래는 대번에 눈을 치뜨고 나를 쳐다보며 날카롭게 대답한다. 정말 가관이다. 그래도 이렇게 태클 거는 건 평소의 미래 모습이기에 밝게 웃으며 미래 어깨를 툭 치며 대답한다. 미래는 더욱 정색하고 ‘꺄악!! 지금 만지셨어요?! 성희롱으로 신고할 거에요! 빼애애액!’ 하며 더욱 미친년처럼 군다. 아무리 장난이라지만 너무 심한데.



“언제 시험 끝나…… 아, 그냥 PC방 가야겠다.”

“그건 안 되지?! 막장이잖아!”

“아 그럼 어떡해요! 시험 망쳤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포기 모드인 미래. 미래 따윈 없는 건가. 내가 생각했던 가장 막장인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려는 미래. 잔뜩 태클을 건다. 이제, 시험을 본다.




--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 벌써 시험이 끝나다니!”

“으음─ 확실히. 막상 시험 보니까, 되게 빨리 지나가긴 했는데.”



시험이 끝나고 난 뒤, 세상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소리치며 말하는 미래. 그 말대로, 이번 시험은 어째 빨리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다. 시험준비하는 동안은 엄청 천천히, 지루하게, 더디게 시간이 흘러갔는데. 막상 시험을 보니까 정신없이 지나간다. 이것 수비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것 막고, 이런 느낌이랄까. 뭐, 나쁘지 않게 본 것 같다. 잘 본 건 아니지만.



“다들 시험 잘 봤어?”

“그러면 그 말 꺼내는 성빈이는? 잘 봤나보네?”

“아, 그렇게 잘 본 건 아닌데.”

“아아. 나는 망했는데. 쳇. 어려웠잖아.”



성빈이의 말에 유진이가 샐죽 웃으며 묻는다. 훌훌 털어내곤 미래와는 다른 느낌으로 태클을 거는 캐릭터가 된 유진이. 미래하고 다른 점은, 미래는 오로지 나만 노리는데 유진이는 다른 애들 전부가 타겟이라는 것. 뭐, 분산되니까 나는 나쁠 게 없으려나.



“아! 아↘아↗! 아↘아↘아↗!!”

“뭐라는 거야 미친.”

“다들 시간 어떻게 돼? 오늘?!”

“시간?”

“별로, 딱히 할 거 없는데.”



무슨 타령이라도 하듯 과장되고 인위적인 억양을 억지로 내며, 미래는 앞으로 몇 걸음 가 우리의 앞길을 막으며 말한다. 눈을 찌푸리며 시비조로 말하지만 미래는 아랑곳않고 나를 무시한 채 다른 애들을 쳐다보며 묻는다. 뭐, 이제는 이 정도로는 서로 기분 상하지도 않는 강인한 멘탈이 되었구나.



“시험도 끝났는데 뒤풀이 하자! 파티야 파티!”

“……그거, 썩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재미있을 것 같은데?”

“아하, 작년에…… 헤헤헤.”

“그, 그런 데 가면…… 살찌는데…… 가고 싶은데…….”



미래의 말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작년의 추억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아, 좋았지. 별천지였지. 아마, 미래랑 나만 기억하고 있는 추억이지. 성빈이랑 희세, 리유는 기억 못할만큼 많이 마셨거나 자버렸거나 했으니까. 유진이는 내 반응에 의아하단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하고, 민서는 머뭇거리며 애들 눈치를 살핀다.



“에이, 걱정 마시고! 작년 같은 일은 안 일어나니까! 오빠네 집에서 할 거니까!”

“미친, 내가 허락도 안 했는데 멋대로 왜 우리 집인데?!”

“에이, 다 그렇고 그런 거죠! 언제까지고 저희 집에서 할 순 없잖아요! 저도 엄연히 부모님이 계신 평범한 여고생인데!”

“그래도! 사전에 말을 하던가, 정리라도 했지 그럼!”



미래는 마치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싱긋 웃으며 자연스럽게 말한다. 정작 집주인인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인데. 벌컥 화를 내니 미래는 내 등을 팍팍 치며 웃으며 말한다. 웃음으로 넘기려고 해도 소용 없어! 뭐, 희세의 잔소리로 방 자체는 늘 깨끗하게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는 거죠? 다 가는 거지? 응? 가는 거다! 좋아, 이대로 마트로 간다!”

“나참.”

“하아아─”

“많이 졸려? 파티 안 갈려?”

“아니. 괜찮아.”



미래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저 저돌적인 행동력이지. 다른 애들 의견 따위 반영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버리는 저 막무가내. 뭐, 그런 건 나나 성빈이, 민서처럼 별 의견 없이 휩쓸리는 타입인 애들에겐 즉효약이긴 하지. 미래의 단언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묵인은 곧 승낙이다. 미래는 신이 나서 앞장선다.


희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입을 가리고 눈물이 핑 고이는 희세. 졸려 죽을 것 같은 모습이 귀엽다. 넌지시 물으니 희세는 단호하게 고개를 흔든다. 안 졸리다는 듯 눈을 치뜨지만 눈에는 졸음이 가득하다. 귀엽네. 희세, 어제 또 밤샜다고 한다. 공부가 부족한 과목이 있다나.


밤새서 공부했다면 이제 모든 시험이 끝났으니 집 가서 푹 자면 좋을 텐데, 또 무슨 자존심을 부리는 건지 기어이 가겠다고 한다. 뭐, 정 졸리면 우리 집에서 한숨 자다 집에 가면 될 테니 큰 일은 아니려나. 희세네 집,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여차하면 내가 데려다주면 되니까. 그래, 뭐 괜찮겠지.





“자~ 그럼 제 2회, 기말고사배 뒷풀이를 시작합니다!”

“무슨 대회냐. 2회 씩이나 하게.”

“1회 못 참가해서 아쉽습니다~!”

“나두! 헤헷.”



각종 과자를 상 위에 올려놓고, 종이컵에 음료수를 따른 채 시작되는 뒷풀이. 다들 앉아 있는데 미래는 해설이라도 보듯 신이 나서 말한다. 유진이와 민서가 아쉬워하며 말한다. 심드렁하게 그런 애들을 쳐다본다. 감회가 새롭네. 벌써 그 광란의(?) 뒷풀이가 1년 전인가.


자취방 살면서 애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는 건 또 처음이네. 애초에 자취방이니, 한두명은 괜찮지만 6명이나 있으려니 꽤나 좁아 보인다. 뭐, 그래도 그렇게 좁은 방은 아니니 최대한의 수용범위이긴 하지만. 꽉 차 보이는 방을 스윽 둘러보다 문득 성빈이와 눈이 마주친다.



“작년에는, 어휴. 좀 그랬어.”

“기억 안 나지?”

“응, 너무 마셔서.”

“어? 뭘 마셨는데? 뭔가 뭔가~ 전혀 모범생 같지 않은 얘기였는데, 임성빈~?”

“어, 응…… 작년에는, 미래가 술 가져와서…… 맥주랑 조금 마셨어.”

“엣, 술?!”



성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짓는다. 전혀 쓰지 않은, 달콤한 콜라를 마시며 회상에 젖는다. 이 때, ‘마시다’ 라는 단어를 잘도 캐치한 유진이. 잔뜩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성빈이를 쳐다보며 묻는다. 조금 당혹스러운 듯 머뭇거리며 말하는 성빈이. ‘술’이라는 말에 민서는 상당히 민감하게 놀란다.



“헤에~ 조금은 무슨! 희세랑 다이다이 뜨고, 내 꾀임에도 넘어가서 꽤 마신 걸로 기억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아마, 소주는 2병이고 맥주는 1병 정도였나─ 그랬을걸?”

“누, 누가 그렇게나 많이 마셨어!”

“우와, 성빈이 그렇게 안 생겨서 엄청 잘 마시는구나. 난 술 한 번도 안 마셔봤는데.”

“아, 아, 아니야 그런 거!!”



킬킬 웃으며 기억조작에 나서는 미래. 미래도 이제 나만 까는 것에서 모두까기 인형으로 전환한 것일까. 미래의 말에 패스를 받는 유진이. 정말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리며 성빈이를 괴물 보듯 쳐다본다. 성빈이는 잔뜩 부끄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 그래도 올해는 건전하게 노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불렀나요~ 알코올 프리~!”

“미, 미친년아! 알코올 프리면 알코올 없는 거잖아?!”

“아아~ 이런 데에 술이 빠지면 섭하잖아요? 아직은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시원하게 식혀놓았다가~ 어이쿠, 자취방이라 냉동실이 텅텅 비어있어서 좋네요~ 헤헤헤헤헤.”

“미친……!”



성빈이는 잔뜩 당황해서 손을 흔들며 말한다. 결백하다는 입장을 결연히 표현하는 성빈이. 귀엽다. 그런 성빈이를 보며, 씨익 악마와도 같이 웃는 미래. 크고 아름다운 자신의 가방을 열며 그 안에서 초록색 병을 꺼내며 말한다. 흠칫 놀라 얼른 태클을 건다.


미래는 고개를 절레절레, 손을 까딱이며 ‘민서야, 도와줘!’ 하곤 말을 잇는다. 착한 민서는 ‘어, 응!’ 하고 미래의 가방을 든다. 무게가 꽤 되는지 ‘우읏……!’ 하고 무거워하는 민서. 가방에선 소주와 맥주가 끊임없이 나와 냉동실로 들어간다. 4차원 주머니인가, 근미래 가방은. 근미래의 기술을 사용하는 건가……! 질량보존의 법칙을 무시할 순 없을 텐데?! 개드립이 너무 과하구나. 아무도 안 웃겠어. 생각만 했으니 다행이지.



“……마시던지 말던지.”

“아! 역시, 나희세는 나희세지. 성빈이보다 훨씬 더 잘 마시잖아!”

“그럼, 임성빈 따위. 애기잖아, 술 마시고 울고.”

“뭐, 뭐라고?!”

“다시 덤비려면 덤비던가.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잔뜩 피곤하고 졸린 표정의 희세. 침대에 기대 잔뜩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래가 옆에서 더욱 성빈이의 성질을 돋운다. 성빈이는 또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피곤하고 귀찮은 지 희세는 침대에 기대 느긋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게 또 잔뜩 도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오오! 쩔어! 이러는 거 처음 봐! 재밌어!”

“으, 응! 유진이가 이간질 할 때 이후로 처음 봐.”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제 잘못이에요. 용서해주세요.”

“아, 미, 미안!”



팝콘을 먹으며 잔뜩 재미있어 하는 유진이. 민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휘익 유진이에게 돌덩어리를 던진다. 순식간에 죄악 모드가 되어 사죄하는 유진이. 간만인데, 이 모습. 잔뜩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민서. 이쪽은 이쪽대로 만담이 진행되고 있네.



“자, 그럼 시작이다!”

“아아. 잘 모르겠고, 대충 합시다.”

‘띵동.’

“어멋 네~ 아하핫 닭도 빨리 왔어!”



분위기가 잔뜩 오른 상태에서,─분위기가 오른 건가 싶지만─ 미래는 잔뜩 신난 표정으로 말한다. 마침 때 좋게 초인종이 울린다. 치킨도 시켰거든. 잘은 모르겠고, 저번처럼만 많이 마시지 않으면 되겠지. 어차피 나는 내가 술이 약한 걸 예전 일들로 깨달았으니까. 보조만 맞추다 콜라나 마셔야지. 술은 맛없잖아. 콜라가 최고야. 저런 걸 왜 돈 주고 마시는지. 미래같은 변태 녀석들이나 마시는 거야. ……변태라면 나도 한 변태 하는 것 같은데. 아니, 아니야! 이젠 자아분열까지 일어나는구나.




“쿨─.”

“으헿! 완전 잠들었잖아! 얘 갖다 치워라! 완전, 엄청 센 것처럼 굴더니! 헿!”

“아하하…… 넵.”

“오오~ 무슨 화보 찍어!? 그렇게 들면, 너무 부럽잖아! 대충 질질 끌어서 들으라니까!”

“아니, 안 그러면 깨잖아.”

“싫어! 개같은!”



잔뜩 횡포를 부리는 유진이. 깊이 잠들어버린 희세를 발로 약하게 걷어 차며 만취한 아저씨처럼 말한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 억지 웃음을 지으며 순종한다. 나도 한두잔 마셔서 조금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인데. 팔로 희세의 목과 무릎을 받쳐 들려는데 상당히 무겁다. 내가 힘이 딸리기도 하고, 희세가 시체처럼 힘없이 축 늘어져서 그러기도 하겠지. 간신히 들어 잠자리 위에 올려놓는다.


술자리는 무르익었다. 처음에는 건전하게 치킨을 뜯으며 수다를 떨었지만, 참지 못한 미래가 ‘에이, 재미없어! 이걸 마셔야 재미있지!’ 하며 술을 꺼낸다. 유진이와 민서는 잔뜩 호기심에 빛나는 눈. 성빈이는 질린 표정. 희세는 여전히 피곤한 표정. 술 마시기 전인데도 몇 잔 마신 것 같은 표정이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장내의 상황은 이러하다. 몇 잔 마시다가 희세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극도의 피곤과 술기운으로 잠들어 버린 것. 내 잠자리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안쓰럽네, 밤 세고 잠도 못 자고 왔는데 술까지 마셨으니. 푹 자야지.

유진이는 만취해선 장내를 질주하고 있다. 평소의 조곤조곤하면서 일침을 날리는 흑막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대놓고 악한 모습으로 화했다. 그런 와중에도 정도는 지키는 걸 보면 아직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진 않은데.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유진이 술 약하구나. 성빈이나 미래는 아직 그렇게 많이 안 취했는데.


민서는 한 잔 마시고 ‘으─ 너무 맛없어! 너무 써!’ 하곤 그 뒤론 도저히 못 마시겠다고 얼굴을 찌푸린다. 술 자체는 약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맛이 없어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니. 민서는 그리고 또, 이것저것 맛난 게 있지만 다이어트 때문에 내 눈치를 살피며 잘 못 먹고 있다. ‘그냥 맛있게 먹어도 된다니까.’ 하고 말해도, 역시, 살 빼는 중이라 그런가 잘 못 먹는다.



“더 줘!”

“어─ 유진이는 이제, 그만 마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네가 뭔데 좋고 안 좋고를 판단해! 개…… 나쁜, 나쁜 새X가.”

“죄송합니다. 마시고 싶은 데로 마시세요. 알코올 프리니까요.”

“푸흡. 완전, 개, X나, 줏대없어. 헤헤헤헤. 주제에 귀엽네.”

“아…… 넵, 그렇습니까.”



이런 때의 여자애를 건드리면 좋을 것이 없다. 극도의 순종성을 보이며 나는 고개를 조아린다. 피식 웃으며 나를 보곤 격한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유진이. 미래는 훈훈한 표정으로 그런 유진이를 쳐다본다. 잘 성장한 딸을 보는 것 같은 엄마의 눈초리. 왜 이렇게 깽판치는 애를 보고 그런 훈훈한 표정을 짓는데?! 성빈이는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와 유진이를 쳐다본다.



“좀 더 팍팍 마시라니까?! 민서 너는 왜 안 마시는데! 개짜증나게!”

“아, 진짜 맛없어서…….”

“시끄러! 마셔!”

‘텁!’

“우읍!? 우욱! 욱! 콜록! 컥, 커헉!”



유진이는 잔뜩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갑자기 민서를 보고 말한다. 민서는 당혹스러워하며 손을 흔들며 거부의사를 표한다. 하지만 유진이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주병 들더니 그대로 민서의 입에 넣곤 강제로 먹인다.



“야, 야! 뭐하는……! 아이, 미래야, 잠깐만 유진이 좀.”

“유진아, 이러면 안 되지? 녹음본 또 애들 앞에서 틀어재낀다? 너 개나쁜년이라고?”

“히익, 히이익!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뭐든 할 테니까……!”

“그렇지, 착하지. 그럼 우선 블라우스 단추부터 풀까. 네 손으로 직접. 아저씨는 카메라를 돌릴 테니까. 옳지. ‘채유진, 18살, 처음이에요’ 라는 말도 하고.”

“미친년아 뭘 시키는 거야!?”



정도를 벗어난 유진이의 행각에 나는 얼른 제제에 나섰다. 강제로 먹이느라 흘리고, 민서가 저항하느라 뱉어내고, 발버둥 치느라 여기저기 튀고. 난리도 아니다. 얼른 유진이를 떼어내고 미래에게 제재를 부탁한다.


미래는 싸늘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고 말한다. 유진이는 잔뜩 질린 표정이 되어 바닥에 쓰러져 울먹이며 말한다. 만취상태여도 적용될만큼 죄책감이 크구나. 미래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변태 아저씨처럼 말한다. 엄한 걸 시키고 있어?!



“민서야, 괜찮아? 토할 것 같애? 토해도 돼, 화장실 갈까?”

“……헤헤헤.”

“아아. 이미 늦었네. 왜 이렇게 약효가 빨리 도는 걸까, 소주는.”



꽤 많이 뱉어내긴 했지만 마신 것도 꽤 되는 것 같다. 내 말에 민서의 대답은 웃음.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아아. 맛이 갔구나. 성빈이는 이 틈에 휴지를 많이 뽑아 흘린 소주를 닦는다. 나도 성빈이를 도와 바닥에 흘린 소주와 민서의 몸에 묻은 소주도 닦는다.



“좋아, 좋아해~ 웅도, 많이많이 좋아~”

“뭐?!”

“아아, 좋지. 나도 민서 좋아. 자, 잘까? 희세 옆에서 자면 될 것 같은데.”



더듬거리며 눈을 반쯤 뜨고 말하는 민서. 성빈이가 흠칫 놀라 민서를 쳐다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민서를 들어 올리려 힘쓰며 말했다. 제정신이 아니니까. 술이라는 게 그래서 무섭지. 근데, 들 수가 없네. 희세가 가벼운 편이었구나. 자존심 상할 것 같아 우선은 부축하는 것처럼 일어났다. 민서는 내 팔을 뿌리치며 ‘나 안 취했어! 씨!’ 하고 자리에 도로 앉는다. 누가 봐도 명백히 취한 것 같은데.



“민서, 민서어는~ 웅도 좋아해?”

“응! 마니마니 조아해~”

“왜에~?”

“잘 해주구, 잘 생겼구, 헤헤헤헤. 헤헤헤헤. 몰라. 그냥 좋아.”

“…….”



상에 팔을 쭉 뻗고 엎드려서 꼬인 혀로 물어보는 유진이. 마찬가지로 꼬인 발음으로, 민서는 어린아이처럼 대답한다. 유치원 선생님이 질문하는 것 같은 유진이의 물음에, 민서는 유치원 아이처럼 수줍게 대답한다. 저렇게까지 말하니까 취해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조금 뜨끔 하게 된다. 유진이가 했던 말도 생각나고. 성빈이도 표정이 굳었다.



“헤에~ 오빠 인기 많네여~ 취중진담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냥 취한 거잖아.”

“에이~ 하긴, 뭐, 눈치 없는 게 오빠 매력이긴 하지만. 이미 두 명은 리타이어 해서 시도도 못 하지만. 아, 그러면 우리의 희망은~ 민서네! 민서가 열심히 해야겠다! 양 날개에 우리 이름 박고! 좌익은 근미래, 우익은 채유진 해서!”

“응! 열심히 할게! 헤헤헤.”

“어, 어우. 괜찮아?”

“헤헤, 헤헤, 헤에. …….”



미래는 아직 덜 취해서 평상시의 비꼬는 목소리로 말한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민서의 등을 툭툭 치며 격려해주는 미래. 민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휘청거리다 그대로 바닥에 눕는다. 잠들었다. 아아, 벌써 두 명이나 만취해서 쓰러진 건가. 힘겹게 민서를 들어 희세 옆으로 데려다 놓는다.






“……으으.”



미간을 찌푸리며 뜬 눈. 내 방. 어둡지 않다. 커튼을 치고 자지 않았다. 햇빛이 방에 비쳐 눈부시다. 휴대폰을 보니 9시 30분. 늦잠이네. 아, 어제 그대로 잠들었구나. 민서 재우고, 곧 유진이도 잠들고, 최후의 3인인 나, 성빈이, 미래 셋이서 얘기하고 마시고 놀았던 것까진 기억나는데.


상체를 일으켜 방을 둘러본다. 죽은 듯 자고 있는 희세와 민서, 유진이. 가장 좋은 잠자리를 차지한 셋과,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자고 있는 성빈이와 미래. 과자와 닭 부산물과 술병들이 즐비한 방. 우와, 지옥이면 이럴까. 엄청 더럽네. 마침 예쁜 여자애들까지 있으니. 얘네들은 서큐버스인가. 그나마 다행인 건, 저번에는 뒷풀이 다음날이 휴일이 아니라 미친 듯이 뛰어가서 지각을 했지만, 오늘은 임시 공휴일이라 여유 있다는 거.



“으으…… 죽겠네. 오빠 일어나셨네요?”

“……뭐.”

“해장국 먹으러 갈래요?”

“미친년아! 그냥 집 가!”

“에에…… 해장라면이라도.”

“에효. 내 팔자야.”



어째서인지 학기 말은 꼭 이런 것 같다. 전혀 고등학생 같지 않잖아. 나는 이런 생활은 대학생 때 이룰 줄 알았는데. 엄마 덕분에 이런 방탕하고 즐거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긴 하다만, 좀 그렇잖아. 뭐, 복에 겨운 말이려나. 일어나 얼른 부산스럽게 방을 정리하고 큰 냄비에 물을 담아 불을 얹힌다. 애들 라면이라도 끓여 줘야지.







이렇게, 이번 학기도 끝이 났구나. 이제, 방학인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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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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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16화 - 2 +6 15.12.31 713 13 21쪽
218 16화. 왕의 귀환. +4 15.12.29 888 13 18쪽
217 슬럼프 특집 번외편 - 3 +20 15.12.26 780 13 18쪽
216 2015 크리스마스 스페셜 ///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7 15.12.25 871 8 17쪽
215 슬럼프 특집 번외편 - 2 +12 15.12.24 837 15 20쪽
214 슬럼프 특집 번외편 - 1 +7 15.12.22 971 15 19쪽
213 15화 - 5 +6 15.12.18 1,001 17 18쪽
212 15화 - 4 +6 15.12.16 816 16 20쪽
211 15화 - 3 +6 15.12.14 1,084 25 20쪽
210 15화 - 2 +4 15.12.12 981 17 19쪽
209 15화. 여름이고 방학이면 어딜 가야겠어요?! +4 15.12.10 976 17 19쪽
208 14화.4 - 2 +4 15.12.07 1,035 19 20쪽
207 14화.4 그런 일은 없어요. +4 15.12.05 954 21 20쪽
206 14화.3 - 2 +2 15.12.04 962 13 21쪽
205 14화.3 깜짝 멘붕이야 +6 15.12.01 787 25 20쪽
204 14화.2 - 2 +8 15.11.29 977 15 19쪽
203 14화.2 여제의 귀환 +9 15.11.27 856 17 21쪽
202 14화.1 - 2 +4 15.11.25 932 18 22쪽
201 14화.1 저랑, 사귀어요! +8 15.11.24 995 14 20쪽
» 13화 - 4 +8 15.11.23 828 14 22쪽
199 13화 - 3 +2 15.11.21 719 21 21쪽
198 13화 - 2 +2 15.11.20 787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67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3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16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49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2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2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40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999 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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