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063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2.10 23:23
조회
976
추천
17
글자
19쪽

15화. 여름이고 방학이면 어딜 가야겠어요?!

DUMMY

‘쓰쓰쓰쓰쓰─’

“덥네.”

“그러게.”

“에어컨도 안 틀어주니까 특히 그러네.”



한여름인데도 어째서 이렇게나 가혹한 것일까, 이 놈의 학교는. 에어컨 실외기가 고장났다는 건 핑계야. 그게 고장난 지 일주일이 지났는 데도 아직도 안 고쳐주는 건. 그러면서 교무실은 여자 선생님들은 가디건 걸칠 정도로 쌀쌀하게 계절이 다를 정도로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있으면서. 학교의 주인은 학생들이라면서, 실제로 더 좋은 대우는 선생들이 다 받고 있어.


8월의 폭염은 뭐, 구태여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잘 알리라. 땀을 질질 흘리며 축 쳐져서 지친 표정으로 말하는 나. 책상에 엎드려 있을 수도 없다. 땀 날 것 같아서. 오죽 더우면 더위가 수면욕을 이기고 있어. 희세도 무척 더운지 간만에 머리를 한데 모아 묶은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예쁘네.

반면 성빈이는 곧은 생머리를 그대로 내린 채 대답한다. 와, 보는 것만으로 더워 보여. 정작 성빈이 본인은 그렇게 엄청 덥지는 않은 듯 나보다 땀을 적게 흘리고 있다.



“바다다! 바다에 가자!”

“……점심 뭐 먹을까.”



문득 교실로 들어오며 큰 소리로 외치는 미래. 교실에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점심시간이라 꽤나 소강상태인 교실이긴 하지만. 점심시간, 성빈이와 희세와 함께 다른 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미래의 말을 듣고 쳐다보는 나.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점심 얘기로 넘어간다.



“귀찮으니까 도시락 시켜먹자.”

“그래, 걸을 힘도 없는데.”

“이보세요─!! 왜 제 말은 자연스럽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겁니까!!”



미래 뒤에서 유진이가 방긋 웃으며 이어 말한다. 유진이도 놀리는 거 좋아하는 편이라 잘 받아준다. 의도한 반응을 보이며 잔뜩 난동을 부리는 미래. 성빈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미래를 보며 미소 짓는다.



“남자친구 있는 사람은 어차피 남자친구랑 여생 보내느라 바쁘지 않나? 친구가 우선이간, 남자친구가 우선이지.”

“그…… 그렇지 않아! 친구가 우선이라고! 나카마가 이룬다요!”



비아냥거리는 투로 피식 웃으며 말한다. 금세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는 미래. 요즈음은 이게 참 편하다. 남자친구 얘기가 미래에게 있어선 아킬레스건 같이 돼서, 뭐가 됐던 남자친구 얘기만 꺼내면 우물쭈물 저렇게 당황하게 되는 미래니까.



“글쎄~ 전혀 믿기지가 않는데. 어제도 막 소녀티 팍팍 내면서 휴대폰 보고 좋아라 했잖아.”

“아아악! 내가 언제! 나는 그냥, 그런 거 처음이니까!”

“흐흫! 완전 귀여워.”



옆에서 지원사격을 해 주는 유진이. 딱히 누구 편을 들어서 드립을 치거나 하지는 않는 유진이기에, 재미만 있으면 어느 쪽이든 극딜을 넣는다. 어떻게 보면 이 구역 미친년 타이틀(?)에 걸맞긴 하구나. 자기 재미만 있으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니. 미래는 잔뜩 당황해서 더욱 얼굴이 빨개져서 허둥지둥 변명한다. 싱긋 웃는 유진이.



“어쨌든! 바다에 가요 바다에! 여름방학인데 이딴 교실에만 가둬져 있고, 너무한 거 아닙니까!”

“다른 애들 의견도 들어봐야하지 않겠어. 나야 상관없지만.”

“보충수업 끝나고 다 시간 되지?! 어엉?! 얼른 대답해!”

“무슨 협박질이냐.”



무안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우기는 미래.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래 성격상 제멋대로 우기긴 하겠지만. 나는 뭐, 보충수업 끝나고 진정한 방학 때가 되어도 집에 안 내려가고 잉여롭게 지낼 생각이니 시간이야 남아 돌지만. 미래의 재촉에 희세도, 성빈이도, 유진이도 민서도 다들 승낙하는 것 같다.



“저번 여름에도 바다 가지 않았었나.”

“여름엔 바다에요! 정해져 있는 거에요!”

“아, 그러냐. 잘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니.”



가끔은 미래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괜찮을 때도 있다. 나 같은 성격이면 쉬는 날이 생겨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었을 테니. 그나마 미래 같은 애들이 놀자고 우겨대기라도 하고 무슨 사건이라도 물어오니 움직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미래의 말에 수긍했다.





--





“그냥 이 주변으로 가지.”

“거 참, 계속 툴툴거리네요! 이미 버스까지 탔는데!”

“힘들잖아.”

“힘들 수도 있죠! 군대 가면 더 힘들어요 오빠는!”

“크헉, 그거는 좀 드립이라도 치지 않았으면…….”



버스에서, 나란히 앉아 투덜대는 나와 받아치는 미래. 툴툴대는 나와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반발하는 미래의 모습은 어떤 중년 부부의 사소한 다툼을 보는 것 같다. 뭐, 미래는 남자친구 있지만.


바닷가로 놀러가는 날. 보충수업도 끝났고, 비록 5일 밖에 안 되는 방학이지만 그게 어디랴. 그거라도 쉬는 날 주면 넙죽 고맙다고 쉬어야지. 그런 귀중한 방학인데, 놀러가는 곳이 너무 멀어서. 버스로 2시간 30분, 거기서 또 읍내버스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음? 버스로 타고 들어가는데 섬이야? 수상버스? 뭐, 개드립은 집어 치우고. 너무 멀잖아. 작년 여름방학 때처럼 선생님 신세를 지는 것도 아닌데. 이동시간만 몇 시간 잡아먹게 생겼다.


숙소는 미래가 아는 친척네가 운영하는 펜션이라고 한다. 좋은 곳이라고 호언장담하는 미래의 말에 수긍하는 우리. 바닷가와 숙소 찾아보는 것도 꽤나 복잡하고 힘든 일인데, 미래가 알아서 좋은 곳을 구해오니 우리는 좋을 따름이다. 내가 불만인 건 멀리 간다는 점과, 또 이상하게 여기에서 물건들을 바리바리 사들고 간다는 것. 미래의 주장은 ‘거기는 관광지니까 마트 같은 것도 없고 물건도 엄청 비싸요!’ 뭐,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기에 애들끼리 조금씩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에 탔다. 처음으로 버스 아래 열리는 칸에 짐을 실었다. 할머니들 보따리 전용칸인줄 알았는데, 거기.



“그래, 어차피 가는 거, 웅도 늘 말하는 거 있잖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래도.”



불평스런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진이, 뒤에서 꽁 내 머리를 살짝 때리며 말한다. 그렇게 쿨하지 못한 게 내 성격인지라.



“짐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건 좀 에바인 것 같은데!”

“습! 리유,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쓰지 마.”

“치, 남자친구도 아니면서.”

“아하하하핳! 맞네 맞아! 어디서 선비질이에요! 에잇, 위선자!”

“……큭.”



리유답지 않은, ‘에바’라는 단어의 사용에 나는 뒤돌아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유의 대수롭지 않은 한 마디는 치명적인 카운터가 돼 내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다. 어이, 정리유이…… 마이 컸네?! 미래는 간만에 훌륭하게 나를 놀릴만한 거리가 생겨서 좋아라 웃음지으며 내 어깨를 탁탁 친다.



“그게, 그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 여기서 이런 수고를 할만큼?”

“그렇다니까! 아 왜 다 나 무시해?!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어.”

“헤엑! 너무 단호박!”



리유 옆의 희세가 나지막이 한 마디 꺼낸다. 오, 내 편을 들어주는 건가, 희세! 딱히 내 편을 들어주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의문이 든 거겠지. 미래는 불만스럽게 말하고, 희세는 단언하듯 단 한 글자로 대답한다.



“먹을 거 많이 사가니까 좋다.”

“이제 살 빼는 거 그만 뒀어?”

“으응, 그런 건 아닌데. 노는 날엔 놀아야지.”

“하핳. 좋지. 좋아.”



뭐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착하디 착한 민서. 그저 놀러가는 게 좋은 모양이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미소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는데. 얼마 전에 그랬으니까. 아니, 전혀! 아닌데! 민서 봐도 아무 마음도 안 드는데! ……젠장.



“성빈이 너는 별로 불만이 없는 것 같네?”

“나는 괜찮아. 펜션이면.”

“하아. 뭐, 재미는 있겠지.”



얌전히 타고 있는 성빈이를 보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성빈이. 음, 확실히 재미있게는 하겠네. 펜션에서 이렇게 대인원이 다같이 논다면. 펜션이니까 방이 여러 개니까 따로 잘 수도 있겠지. 뭣하면 내가 거실 같은 데에서 자면 되니까.



“바닷가 가면, 저랑 사귀는 거죠?”

“거 참 꾸준글이네! 맥락도 없이 나오는 거야, 네 드립은?”

“그치만 바닷가는 연인들이 가는 거잖아요? 마땅히 연인 역할을 할 사람은 초 귀여운 저밖에 없잖아요?”

“와…… 뭐라 반박할 말이 없네.”



꾸준하게 자신과 사귀자고 말을 꺼내는 시아. 그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거냐. 너무 당당하게 자신의 귀여움을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시아를 보고, 대답할 말이 없다. 귀여운 게 사실인지라. 리유보다 못…… 아니, 누가 누구 마음대로 사람을 급을 나누겠어. 리유랑 다른 귀여운 매력이 있는 시아니까. 리유보다 한 살 더 어리고.


나, 희세, 성빈이, 리유, 미래, 유진이, 민서, 시아. 우와, 여덟 명이나 되네. 한 명 한 명 얹다보니까 점차 이렇게 늘어나버렸네, 우리 밥 패밀리. 중학교 때 남자애들하고 놀 때에도 이렇게 많이 무리를 이루진 않았는데. 그래도, 뭔가 뿌듯하네. 여고에 와서 이렇게나 많이 여자애들이랑 친해져서 같이 바다도 가고.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 가는 거니까 또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여기서! 자, 택시를!”

“아 언제까지 가는데!”

“닥쳐요!”



2시간 30분이 걸려서,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서 섬으로 들어가는 읍내 버스를 타고 또 30분 정도 시간을 소비해 섬으로 들어갔다. 섬의 중심가 같아 보이는 곳에 내리자마자 다시금 이어지는 미래의 말에 나는 잔뜩 불만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강단 있는 미래의 격한 말투.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벌써 3시간 넘게 이동만 했는데.



“교통비만 한 3만원 나올 것 같은데.”

“남자가 돈 얘기하는 것만큼 쪼잔해 보이는 게 없거든요?! 할인카드 쓰는 남자는 밥맛이더라구요. 오호호! 국방의 의무 축하해! 멋진 남자 되는 거야 정신 좀 차리겠구나! 180 이하는 루저라고 생각합니다!”

“뭐라는 거야. 네 침착맨은 안 그러나 보네. 멋지네, 그 녀석.”

“……으으! 누구 마음대로 침착맨이에요! 그…… 그 침착한 별명은!”



게다가 버스에서 내려서 짐까지 다들 바리바리 싸들고 있으니 더욱 피곤하다. 리유는 벌써 힘들어 보이는 표정. 시아도 마찬가지로 시무룩. 희세는 애써 참고 있지만 짜증이 슬슬 치밀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유진이는 묘하게 일진 누나 같은 느낌으로 짜증을 부릴 것 같아 감히 말을 걸 수가 없다. 민서와 성빈이만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택시에 짐을 실으며 가만히 말하니 미래는 남자를 무시하는 발언 3종 세트를 있는 그대로 콤보로 쑤셔 넣는다. 이 녀석 성격이면 일부러 어그로 끌려고 저런 말을 한 거겠지만. 자연스럽게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니 다시금 얼굴이 상기돼 당혹스러워하는 미래. 이야, 이거 만능인데!? 고마워요, 침착맨! 미래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 네, 여기, 그…… 여기인 거 같은데요. 그…… 아닌가요?”

“보통, 아는 친척이면 저렇게 존댓말은 안 쓰지 않냐. 남 대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아는 친척이 아니고 모르는 친척 같은데.”

“헤에. 미래 거짓말쟁이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시, 시끄러! 전화하잖아!”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갔는데. 여기가 아닌가벼, 하고 미래는 전화를 걸었다. 분명 잘 아는 친척인 것처럼 말했는데 막상 전화를 하는 말투는 마치 남을 대하는 듯 무척이나 공손한 말투. 뭐, 친척이랑 꼭 많이 친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저 말투나 느낌은 타인을 대하는 느낌이잖아. 심드렁한 내 말투에 싱긋 웃으며 받아주는 유진이. 리유까지 천연덕스럽게 미래를 디스한다. 미래는 벌컥 화를 내며 다시금 전화를 한다.




--




“여기입니다!”

“설마, 아닐거야. 민박은 아닐거야. 분명히 펜션이라고 했는데. 아, 아닌가.”

“하아. 근미래. 진짜 너.”

“아니 왜요?! 이렇게나 좋은 숙소인데! 이 가격에 이런 데 흔하지 않아요! 저희 이모 할머니의 명예를 걸고! 정말 좋은 곳이에요!”

“…….”



한 번 잘못 들렀던 택시를 다시 돌려, 마침내 도착한 숙소. 무언가 느낌이 쌔하다. 보통 팬션은 2층이잖아. 거기에 바닷가 근처고. 하지만 택시가 향하는 곳은 미묘하게 내륙(?)이다. 도착하여 내린 건물은 명백하게 시골집. 누가 봐도 민박이다. 1층의 꽤 큰 집. 3공화국 때 초가집에서 바꾼 듯한 슬레이트 지붕이 인상적이다. 통나무로 지은 분위기 있는 펜션을 생각했던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쉽게 구할 리가 없나, 이런 성수기 마지막 자락의 펜션은.


오죽하면 그 희세가, 잔뜩 힘준 목소리로 눈을 치뜨고 미래를 쳐다보며 말한다. 한숨은 덤. 미래는 허둥대며 갈 곳 잃은 손을 신속하게 움직이며 변명모드로 진입하고. 하하. 정말, 개판이군. 덥고, 힘들고, 놀기도 전에 잔뜩 지친 것 같은데 숙소마저 이러니.



“……펜션. 펜션. 펜션.”

“야. 성빈이가 펜션좀비가 됐어. 나 이렇게 생기 잃은 눈을 한 성빈이는 처음 보는데.”

“……펜션. 펜션. 통나무로 된 펜션. 2층 펜션. 1층에 부엌 있는 펜션.”

“아니이! 여기 분명히 좋습니다! 우선 들어가요, 짐 들고 있기 힘드니까! 제가 보장한다니까요! 아 참, 좋은 게 좋은 거라구요! 이제 와서 돌이킬 순 없으니까! 어쩔 거에요, 여기서 자야 한다니까요!?”

“하아. 가자.”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모두 허탈한 표정. 다만 리유랑 시아만은 천연덕스럽게 저 쪽에서 강아지와 까르르 놀고 있다. 어린애들(?)끼리 동물하고 친하구나. 귀여운 애들이 귀여운 거하고 노니까 미친 듯이 귀엽네.


성빈이는 또 색다른 귀여움을 보여준다. 잔뜩 멘탈이 나간 표정으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안 그래도 버스 안에서, ‘멀어도 펜션이니까 괜찮다’고 말했던 성빈이인데. 오로지 펜션 하나만 보고 이 힘들고 피곤한 여정을 버텨냈는데, 막상 도착한 현실은 민박이니까. 민박도 민박 나름인데,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 민박이니까.



“이이이이 이게! 자! 보세요! 선풍기! 아, 얼마나 시원한 문명의 이기입니까! 게다가 바람도 잘 통해요! 자연풍! 자, 요즘 얼마나 건강에 안 좋습니까, 에어컨 바람 때문에! 목도 켁켁, 냉방병에! 여긴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 시원한 냉풍림의 바람이 그대로! 밤에는 추워서 문 닫고 자야 할 정도니까요?!”

“펜션…… 펜션…… 에어컨…… 에어컨…….”

“그만 포기해, 성빈아.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으아아아! 이게 뭐야아아─!!”



들어가자마자 후텁지근한 느낌. 신속히 방으로 들어가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무슨 세일즈라도 하듯 설명충이 된 미래. 잔뜩 설명하지만 가당찮은 소리인 건 직접 방의 온도를 느끼고 있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더워, 이 방. 에어컨도 없고, 덜덜거리는 선풍기 하나 뿐이고. 이불장도 없이 구석에 이불이 잔뜩 쌓여 있다. 그것도, 1980년대 가정집에서 보던 것 같은 고전적인 이불과 베개들이.


성빈이는 여전히 펜션좀비인 상태에서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한다. 옆에서 그녀의 어깨를 탁탁 쳐주며 현실을 깨닫게 해주니 그대로 주저앉아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얼마나 기대했으면, 성빈이. 이런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네. 희세는 털썩, 짐을 내려놓으며 ‘뭐 됐어. 냉장고에 넣을 거 얼른 넣고, 짐 풀고 쉬어야지. 여기까지 오는데 세 시간 넘게 걸렸는데.’ 하고 말한다. 오옷, 리더쉽. 역시 어른스러운 희세다.




“…….”

“…….”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다 정신줄을 놓고 <자리비움> 상태이다. 그럴 수밖에, 엄청 피곤하니까.



“미쳤어. 여기가 무슨 바다야.”

“아하하. 하하하하. 에헤헤.”



오후 2시. 가장 뜨거울 때. 우리는 뜨거운 민박에서 천천히 삶아지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원래 계획은 그랬다. 점심은 섬 들어가기 전에 버스 기다리면서 읍내에서 대충 때우고, 펜션에 도착해서 짐 풀고 조금 쉬었다가 바로 바다에 나가서 ‘야, 여름이다~’ 하면서 흥청망청 놀 생각.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아까 오면서 내륙지방(?)이라고 했잖아. 아무리 살펴봐도 바다의 느낌이 없기에 미래에게 물어보니 바닷가는 이 민박집에서 꽤 먼 거리라고 한다. 그 얘기에 다들 털썩, 어떤 힘도 기력도 없다. 이건 뭐 이중 삼중 트랩도 아니고.



“똑바로 서라, 미래! 어째서 바닷가는 없는 거지?!”

“바닷가로 가려고 했는데, 이모님이 읍내에 나가셔서…….”

“너희 남친 있는 놈들은 항상 말이 많아! 분명히 바닷가로 놀러간다고 했잖아?! 이런 게 어디 있나! 이런 데는 네 남친이랑 둘이서 오라고!”

“……그, 그거는! 친척집인데 어떻게 그, 그런 짓을 해요! 그그그…… 모텔 가야죠!”

“고등학생이 모텔은 무슨! 무슨 짓 하려는 건데!?”



가볍게 드립을 친다. 물론 받아주지 못할 미래는 아니다. 유일하게 애들 중에 기력이 남아 있는 미래니까. 이어지는 남친 드립에 미래는 다시금 당혹스러워 하며 어쩔 줄 몰라한다. 무슨 야한 생각을 했기에. 이런 애가 또 의외로 실전(?)에서는 약할 지도 몰라. 미래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



“자?”

“……더워.”

“선풍기 고정해줄까?”

“……그럼 다른 애들은. 괜찮아, 누워 있으면.”



눈을 감고 반듯이 누워 있는 희세. 꼭 잠든 것 같아 넌지시 말을 거니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한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듯하다. 나라고 허허 바보처럼 무작정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 여기서 나까지 짜증내면 분위기 폭발이니까, 애써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건데. 애들이 너무 지쳐 있다. 나도 슬슬 힘들고.



“아아. 참 좋은…… 좋은 방학이다. 이렇게 놀고.”

“보드 게임 하고 놀래요? 가지고 왔는데.”



떨떠름하게 늘어지는 투로 말하는 나. 명백하게 비꼬는 목소리다. 미래는 비위도 좋게 말을 건다. 싱긋 웃으며 미래를 바라본다.



“와아. 신난다. 재미있겠다.”

“아 좀 영혼 좀 챙겨서 말해요!”

“누구 때문인데.”

“히익! 성빈이 무서워!”



영혼없는 내 대답에 미래는 왈칵 소리친다. 벽에 기대어 멍하니 허공을 보던 성빈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핵심을 찌른다. 저렇게 무서운 표정의 성빈이, 나도 처음 봐서 상당히 무섭다. 확실히 화날만 하지, 성빈이. 그렇게나 기대했는데.



“야! 에헤헤, 이겼다!”

“……하하. 재미있네.”

“아 좀 반응 좀 해요! 그게 뭐에요! 게임 왜 해요!”

“……네가 하자고 했으니까.”

“아 때려 쳐요! 에이씨.”

“…….”



와르르 무너지는 나무탑. 미래는 나를 보며 신나는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영혼없는 대답을 한다. 짜증스럽게 말하는 미래. 나무조각들을 도로 상자에 넣으며 말한다. 그나마 게임도 나, 성빈이, 미래, 리유 정도만 했다. 나머지 애들은 누워서 눈 감고 있거나 휴대폰 쳐다보고 있고. 아아, 정말 좋은 여행이다.



……내 방학!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으아아아! 안 돼! 이런 오후는 나는 감당할 수 없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9 16화 - 2 +6 15.12.31 713 13 21쪽
218 16화. 왕의 귀환. +4 15.12.29 889 13 18쪽
217 슬럼프 특집 번외편 - 3 +20 15.12.26 781 13 18쪽
216 2015 크리스마스 스페셜 ///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7 15.12.25 871 8 17쪽
215 슬럼프 특집 번외편 - 2 +12 15.12.24 837 15 20쪽
214 슬럼프 특집 번외편 - 1 +7 15.12.22 971 15 19쪽
213 15화 - 5 +6 15.12.18 1,001 17 18쪽
212 15화 - 4 +6 15.12.16 816 16 20쪽
211 15화 - 3 +6 15.12.14 1,084 25 20쪽
210 15화 - 2 +4 15.12.12 981 17 19쪽
» 15화. 여름이고 방학이면 어딜 가야겠어요?! +4 15.12.10 977 17 19쪽
208 14화.4 - 2 +4 15.12.07 1,035 19 20쪽
207 14화.4 그런 일은 없어요. +4 15.12.05 954 21 20쪽
206 14화.3 - 2 +2 15.12.04 962 13 21쪽
205 14화.3 깜짝 멘붕이야 +6 15.12.01 787 25 20쪽
204 14화.2 - 2 +8 15.11.29 977 15 19쪽
203 14화.2 여제의 귀환 +9 15.11.27 856 17 21쪽
202 14화.1 - 2 +4 15.11.25 932 18 22쪽
201 14화.1 저랑, 사귀어요! +8 15.11.24 995 14 20쪽
200 13화 - 4 +8 15.11.23 828 14 22쪽
199 13화 - 3 +2 15.11.21 719 21 21쪽
198 13화 - 2 +2 15.11.20 787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67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3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16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49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2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2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40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999 24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