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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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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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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92,898

작성
15.10.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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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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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20쪽

12화 - 2

DUMMY

“어…… 그러니까, 지금 뭘 하는 거죠.”

“뭘 하긴. 요리 하자니까.”

얼떨떨한 내 물음에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대답하신다. 뭐, 앞에 차려진 것들을 보면 요리하자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흰 봉투에 잔뜩 들어있는, 여러 요리 재료들. 선생님이 사오신 것들. 희세와 성빈이도 조금 어이없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본다.

평화로운 주말. 학교는 무척 조용하다. 뭐, 학교에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기숙사에 여자애들 있을 테고, 앞동 건물 3학년 교실에선 3학년들이 공부하고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기숙사는 학교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3학년 교실도 지금 있는 곳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 다른 건물이니까. 실질적으로 여기엔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 셈.

“이렇게 멋대로 써도 되는 건가요.”

“뭐가. 선생님 있고, 학생들 있는데. 교실에 선생님, 학생 있으면 주말이어도 상관 없는 거 아니야?”

“아뇨,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렇네요. 선생님이 다 책임지신다면.”

내 말에 선생님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 납득하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기가실. 기술·가정이라는, 마이너한 과목의 교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휴일이라지만, 이렇게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걸까. 선생님은 확실히 선생님이 맞지만, 영어 선생님이잖아. 아무리 기술·가정이 마이너 과목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쨌든, 재료랑 시설은 다 갖추었으니까. 이제 제대로 요리 배우기만 하면 되겠네.”

“뭐…… 너무 확실하게 갖춰서 도리어 당황스러운데요.”

“언제까지 태클만 걸 건데. 빨리 알려줘, 너희도 귀한 주말 쪼개서 온 거 아니야?”

“네, 뭐. 천천히 하죠.”

선생님의 말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뭐, 그런 생각 들기도 했는데. 선생님이 자취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요리를 배우시려는 걸까 하는 생각. 설마, 우리 집에 쳐들어온다거나 하진 않겠지 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설마 이렇게나 당당하게 기가실을 쓸 수 있을 줄이야.

기가실은 이래봬도 꽤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개수대는 물론 도마, 칼, 가스레인지까지. 물론 가스레인지나 도마, 칼 같은 건 위험해서 가정 선생님 지도 하에만 쓸 수 있지만. 지금은, 가정 선생님은 안 계시고 왠 영어 선생님만 한 분…… 정말 이렇게 써도 되는 거야?!

“근데, 뭘 배우시겠다는거죠?”

“뭐…… 뭐긴 뭐야. 도시락, 배운다고 했잖아.”

“도시락이라.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잠자코, 두 손을 개수대 앞 공간에 두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무슨 엄청난 셰프라도 되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게, 이런 식으로 공간을 갖추고 하려니까 꼭 요리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잖아.

선생님은 머뭇거리며 대답하신다. 남을 놀릴 때에는 머리가 재깍재깍 빠르게 돌아가는 나. 사악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선생님, 늘 완벽하고 잔뜩 어른스럽지만 적어도 어제 보여준 모습을 보자면, 요리 쪽은 전혀 모르는 쑥맥 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방면을 놀려주지 않으면 감히 제자된 덕목이 아닐 수가 없지! 우하하! ……뭔가 그냥 사악한 나쁜 남자애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선생님, 기본적인 요리 솜씨는 어떻게 되시죠?”

“라, 라면 정도는…….”

“라면은 요리가 아니죠. 겨우 그 정도라면 힘들 것 같은데.”

“그, 스팸 구워먹을 정도는!”

“하. 그건 진짜 아니죠. 썰어서 후라이팬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초등학생도 하겠네요.”

“……으으.”

내 강압적인 태도에 선생님은 전혀 처음 보는, 약간 위압된 표정으로 자신 없게 말씀하신다. 정말 요리 쪽은 전혀 자신이 없으신 모양이다. 이런 선생님 처음 본다. 묘하게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이번에는 열심히, 스팸 굽기를 가지고 자신의 요리 실력을 어필하는 선생님. 놀리는 것과는 별개로 선생님 말대로라면 요리 실력은 없는 거나 다름없다.

“기본적으로 요리 실력이 있어야, 도시락 정도도 만들 수 있지? 그치, 희세야? 성빈아?”

“뭐…… 그렇지.”

“예쁘게 싸는 건 힘드니까, 도시락.”

“으…….”

은근슬쩍 시선을 희세와 성빈이 쪽으로 돌리며 말한다. 눈썹을 움찔움찔, 신호를 보낸다. 의외로 이런 장난에 눈치가 빠른 성빈이는 웃으며 대답, 희세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사실대로 말하는 것 같은 눈치다. 둘 다 예쁘게 앞치마를 입었다. 사복 차림에 앞치마 두른 것도 예쁘구나. 가정적인 여성 같아 보이잖아. 교복 위에 앞치마를 두르는 게 내 취향 쪽에 더 가깝지만. ……뭔데 갑자기 취향 얘기인데.

“뭐, 그러니까 별 거 없이 성빈이랑 희세가 힘을 합쳐서 도시락을 만들어 드리면─”

“그건 싫어!”

“……?!”

양 손을 들어 보이며 미국인 같은 제스쳐를 취하는 나. 심드렁하게 말을 잇는데 가만히 내 말을 듣던 선생님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대답. 흠칫 놀라게 된다. 소리 질러서가 아니라, 선생님이 이렇게 귀여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나 싶어서. 선생님, 여자임에도 꽤 저음인 목소리 톤이니까. 그게 매력이지만. 하지만 지금은, 꼭 한창 전성기(?) 시절 소녀 같은 높은 음색이었다. 꼭 다른 사람처럼.

“……정민 씨한테는, 내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주고 싶단 말야……!”

“……우웨엑.”

“뭐, 뭐야?! 왜 토해?! 너흰 안 그럴 것 같아?! 너희도 이 나이 먹어봐!”

“그 나이 먹어서 그럴 것 같진 않은데.”

“……씨, 니네 임용 합격 해 봐 잡것들아!!”

잠시 머뭇거리다 말하는 선생님. 거의 울 것 같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한다. 어느 만화의 아리땁고 고운 여주인공처럼 말한다. ……와, 진짜 안 어울려. 키도 가슴도 저렇게나 큰 선생님이, 게다가 안경까지 쓴 지적인 선생님이 저런 말씀 하시다니. 오죽하면 선생님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희세가 ‘우웨엑’ 하는 거친 리액션을 선보이겠어.

선생님은 잔뜩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넌지시 태클을 거니 잔뜩 화를 내며 말하는 선생님. 에이, 선생님 때랑 저희랑 임용고사 난이도가 같지가 않죠. 저희는 공무원 1:몇백 경쟁률로 달려가는 미친 사회인데(웃음). 뭐, 선생님 대학 시절에 공부하느라 별달리 놀지도 못 했다니까, 그거 말씀하시는 거겠지.

“어쨌든, 너희한테 만들어달라고 할 거면 이렇게 거창하게 부르지도 않았어! 직접, 직접 만들어주고 싶어.”

“흠…… 생긴 거랑 다르게 되게 예민하시네요. 까다롭고.”

“뭐! 나처럼 생겼으면 뭐, 김밥지옥에서 대충 김밥 두 줄 사가서 던져줘야 해?!”

“네.”

“대답이 너무 단호하잖아?!”

선생님은 이미 부끄럼 모드가 충실하게 발현중이다. 예전부터 나를 놀리는 그 어른스러움과 근엄함은 없어진 지 오래. 한 번 허당 끼가 발견되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어야 하는 게 이 바닥(?) 생리다. 선생님의 소녀스러운 발언에 한 마디 더 태클. 선생님의 볼멘소리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의외의 모습에 희세도 성빈이도 싱긋 웃는다.

“그럼, 간단하게라도 만드는 법 알려 드릴게요. 꼭 어렵게 힘든 요리 할 필요는 없잖아요? 유부초밥이나, 계란말이 같은 건 예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쉬우니까!”

“오오, 고마워! 역시, 넌 착하게 생긴만큼 착하구나. 성빈이……였나?”

“이름도 못 외우셨나요, 1년이 지났는데. 그보다 ‘착하게 생겼다’니, 방금 전에 자기보고 외모 보고 판단했다고 뭐라 하셨으면서.”

“‘자기’라니, ‘자기’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정민 씨 뿐이야 이 멍충아!”

“끄악!”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야무진 눈을 들어 선생님을 보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하는 선생님. 또 태클을 안 걸 수가 없다. 한 번 피를 보인 신은 더 이상 신이 아니지. 조목조목 태클을 걸지만 짜증스럽게 주먹으로 내 정수리를 팍 때리며 간단하게 나를 제압하는 선생님. 이건 장난식 꿀밤이 아니라 그냥 폭행이야, 폭행!!


“아…… 하하.”

“으읏, 한 번 더!”

“네, 괜찮아요 아직 많이 있어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정녕 이게 계란말이란 말인가. 「황천의 뒤틀린 무리어미 내장」 같은 게 아니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계란말이에서 저런 모양과 저런 색깔이 나올 수 있는데. 어이없는 헛웃음을 짓는 사이,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며 계란을 푼다. 옆에서 성빈이가 기운을 북돋아준다. 그리고 개수대 위 접시에는, 벌써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황천의 뒤틀린 무리어미 내장’ 같은 실패작 계란말이들이 그득그득.

선생님의 요리실력은 생각보다 절망적이다. 과연, 자랑스럽게 할 수 있는 요리를 ‘라면’이나 ‘스팸 굽기’ 같은 걸 말한 게 아니다. 계란말이, 어려운 듯하지만 그렇게 또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적절하게 계란에 파, 당근 따위를 넣고, 소금도 조금 넣고 미원도 조금 넣고 섞어주고. 계란 후라이 하듯이 후라이펜에 약불로 굽다가 조금씩 말아주면 되는 거잖아. 뭐, 말로야 누군들 못하겠냐만은. 적어도 나 정도는 할 수 있다. 희세는 아주 능숙하고, 성빈이도 잘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은.

“으익! 아오, 짜증나.”

“좀 더 약하게, 천천히 뒤집으셔야 해요.”

“계란이 설익었잖아?! 뒷면을 익혀야지!“

“아뇨, 그냥 뒤집다보면 익어요.”

“계란으로 감싸는데 어떻게 익어?!”

이상한 데에서 섬세한 선생님. 솔직히 계란 좀 덜 익어도 되잖아. 날달걀 먹기도 하는데. 게다가 뒤집는다고 해도, 후라이팬의 열 때문에 알아서 익는데. 뭐랄까, 멀고도 험한 느낌인데.

“다음은 유부초밥이에요. 유부초밥은 엄청 쉬우니까, 괜찮을 거에요.”

“응, 이것 쯤 뭐 밥 채워 넣으면 되는 건데 뭐.”

성빈이의 말에 선생님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하신다. 정통 유부초밥은 어떻게 만드는 지 모르겠지만, 마트에서 간단히 살 수 있는 유부초밥 레시피는 정말 간단하지. 유부초밥을 사고, 거기 들어있는 소스랑 가루 같은 걸 적절하게 흰 밥에 섞고, 동봉된 유부에 예쁘게 넣어주면 끝. 와, 이거야말로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레시피다. 레시피랄 것도 없지, 그냥 밥 뭉쳐서 넣으면 되는데. 명절 때 송편 만드는 느낌으로 나, 희세, 성빈이, 선생님 넷이서 옹기종기 모여 유부초밥을 만든다.

“…….”

“음, 이건 「지옥불 종기 덩어리」잖아! 퀄리티 좋은데요?!”

“유부초밥이야!”

“끄악!”

나의 반응에 선생님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정수리를 주먹으로 콱 때리신다. 여전히 꿀밤이 아닌 폭행 레벨의 주먹. 꽤나 주먹이 호쾌하신 선생님이다.

정녕 이것이 유부초밥이 맞─ 아니, 그냥 밥을 유부에 넣으면 되는 거잖아, 유부초밥은?!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가 있는데! 나, 희세 성빈이의 유부초밥은 그럭저럭 보통의 유부초밥이다. 특히 희세와 성빈이 것은 가게에서 파는 것처럼 정갈하고 동글동글한 모양. 과연 희세와 성빈이구나 싶다. 반면 선생님의 유부초밥은…… 일단 너무 커서 유부가 터질 것 같고, 울퉁불퉁한 모양이 상당히 기괴하다. 성게?

“음, 맛은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히잇, 미, 미안.”

“왜 소리 지르고 그래?! 쓰레기야 너?!”

“아니, 그게 아니라.“

선생님이 만든 유부초밥을 하나 집어먹고 말하는 성빈이. 선생님의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함이었겠지만 태클 거느라 텐션이 오른 나는 그만 성빈이에게까지 소리지르고 말았다. 사격중지!! 아군이다!! 이미 늦었지만. 희세가 성을 내며 도끼눈을 뜨고 나를 쳐다본다. 아아, 여자애한테 소리치다니, 쓰레기 맞지.

“좀 못 만들어도 정성이 들어가면 괜찮은 거 아닐까요? 맛은 괜찮은데. 생긴 건 이래도.”

“안 돼, 예쁘지 않으면!”

“……의외로 소녀 감수성.”

“그러면 안 돼 난?!“

성빈이는 실패한 황천의 뒤틀린 무리어미 내장을 조금 뜯어 맛보며 말한다. 과연, 천사같은 마음의 성빈이. 그 고운 마음씨에 뒤에 후광이 비춰지는 것만 같다. 날개 같은 게 달리지 않았을까, 성빈이? 어쩌면 정말, 천사일지도 몰라.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한다. 의외의 면에서 섬세하고 까탈스러운 게 참 색다르다. 새침한 그 대답에 희세가 넌지시 말한다. 잔뜩 짜증스럽게 대답하는 선생님. 오늘은 정말 잔뜩 털리는 날이구나, 선생님.

“이렇게 해서…… 이렇게요.”

“오, 요령이 있구나. 넌 고2밖에 안 됐는데 되게 아줌마같이 잘 하네?”

“……아줌마라뇨, 누가 누구보고.”

“뭐?! 나 아직 한참 젊거든?!”

“전 고등학생이거든요!”

제대로 하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희세. 희세는 말을 조리있게 잘 하는데다 실력도 있기 때문에 꼭 선생님 같다. ……선생님이 한 명 있긴 한데. 영어 선생님이잖아.

선생님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신다. ‘아줌마’라는 자극적 어휘에 희세는 삐죽, 모난 태도로 말한다. 그 단어에 더욱 예민한 건 다름아닌 선생님이다. 때아닌 아줌마 논란에 두 사람은 투닥투닥 서로 노려본다. 어째 오늘은 선생님이 한 10살은 어려진 것 같다. 정신연령이. 희세는 원래 좀 노숙(?)해 보이기에, 둘이 그렇게 티격대니 동 레벨처럼 보인다. ……선생님이 더 크지만.


“새우튀김도 해 주고 싶은데.”

“새우튀김…… 하, 그건 레벨 높지 않아, 희세야?”

“튀김은 아무래도 좀.”

“그치만, 그래도 내가 해 주고 싶어.”

편하게 먹는 새우튀김. 결혼은 하셨는지? 이럭저럭 유부초밥과 계란말이에 익숙하게 된 선생님. 대뜸 말씀하신다. 튀김이라니…… 우리가 어찌 알았겠는가. 튀김은 좀 어렵지 않아? 희세에게 물어보니 희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선생님은 불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은근히 묘한 데서 고집 있으시네.

“기름하고 새우는 여기 있어. 튀김가루랑 빵가루도 샀어.”

“언제 샀어요 그런 건?! 아예 작정하셨구먼요.”

아까 전부터 놓여 있던 수상한 검은 봉투에서 생새우와 튀김가루와 빵가루를 꺼내는 선생님. 새우튀김을 하기로 이미 시작하기 전부터 결심하고 계셨구나. 선생님은 나름대로 귀엽게 ‘정민 씨가 새우튀김 좋아한다고 해서…… 헤헷.’ 하고 혀를 쭉 내민다. ……30 먹은 선생님이 그렇게 귀엽게 교태부리지 마세요. 제자 앞에서.

“선생님, 남자친구랑 사이 좋으신가보네요.”

“……무슨 의미야?”

“아뇨아뇨, 놀리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이렇게 정성껏 도시락 싸 줄 정도면 되게 많이 좋아하시는 거잖아요?”

“……응, 그렇지.”

기름을 달구고 새우를 손질하는 동안 선생님께 말한다. 잔뜩 눈을 치뜨고 나를 노려보시는 선생님. 딱히 놀리거나 비꼬려고 꺼낸 말이 아닌데. 너무 태클을 많이 걸면 이런 부작용이 있구나. 얼른 태세를 변환해 말하니 선생님은 금세 사춘기 소녀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단순히 ‘남자친구랑 사이 좋네요?’ 하는 말만 했을 뿐인데 금세 행복한 소녀의 모습이 되는 선생님.

“……결혼할 거야.”

“아아. 하긴, 선생님은 어른이니까. 결혼이라. 힘들지 않을까요. 정민 씨가.”

“……뭐가 힘든데, 뭐가! 요리 좀 못 한다고 뭐! 사 먹으면 되잖아!”

“아이으억,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재정적으로! 집값이나 맞벌이 이런 거 말한건데 왜 혼자 찔려서 그래요!”

선생님은 수줍게 고백하는 소녀처럼 말한다. 오늘, 선생님의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많이 보는구나. ‘결혼할 거야’ 하는 선생님의 말은 진심처럼 들린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하니 선생님은 불문곡직 내 정수리를 주먹으로 콱 때린다. 벌써 세 번째! 딱히 요리 못 한다고 놀리려는 게 아니라구요! 집값이나 아이 문제나 그런 거 있잖아요! 억울하네, 정말.

……뭐, 선생님 정도 매력이면 남자친구인 정민 씨가 결혼하고 한 달 이상 힘들 수 있겠지만. 아니 뭐 그냥 그럴 것 같다고 선생님이면. 아니 뭐 내가 아는 건 아니고 그냥…… 데헷. 그렇잖아. 선생님, 야하니까(?).

“네, 그렇게 노릇노릇하게.”

“튀김은 쉽네.”

“태우지만 않고 기름 조절만 잘 하시다면. 드셔보세요.”

“하앗, 하악. 오. 잘 익었어. 짱인데, 너?”

“……짱이라니, 초등학교도 더 전에 쓰던 말을.”

“그래 나 늙었다 늙었어?! 넌 애가 왜 그래?!”

튀김용 젓가락까지 사 오신 선생님. 이것저것 돈 꽤 들었을 것 같은데. 보글보글 거품이 오르는 새우튀김. 적절한 타이밍에 희세는 튀김을 집어 빼며 말한다. 한 입 베어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선생님. ‘짱’이라는 고대어 출현에 희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한다. 젓가락을 딱 개수대에 놓고 잔뜩 짜증스런 표정으로 희세에게 말하는 희세. 희세도 지지 않고 선생님께 맞선다. 어째 두 사람, 전혀 친하지도 않은데 대치하는 사이가 되었네.


“어쨌든, 너희 덕분에 이렇게나 잘 만들었네. 고마워.”

“뭐…… 다 선생님이 사신 건데요. 이렇게나 많은 실패작들이 있지만.”

“시끄러. 넌 한 것도 없잖아. 요리 알려준 건 성빈이나 희세 얘네 둘인데. 중간에서 입만 살아선.”

“큭…… 할 말이 없네요. 네, 사실입니다.”

그럴 듯 해보이는 요리들. 접시에 담긴 유부초밥, 계란말이, 소시지 야채볶음, 새우튀김. 이 정도 비주얼이면 꽤나 훌륭하다. 맛은 직접 먹어보며 봤지만 괜찮다. 팔아도 될 것 같다. 희세와 성빈이의 대단한 지도 덕분에, 그 요리치이던 선생님이 자력으로 이 정도 만들게 만들다니. 내 말에 선생님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하신다. 뭐, 중간에서 태클만 잔뜩 건 건 사실이니까.

“이건 다 어떡하죠?”

“점심이지.”

“이 완성본은 어쩌죠?”

“그것도…… 먹어야지.”

“단순한 연습용으로 이런 짓을 벌이다니.”

“……시끄러. 다 싸서 밖으로 나가.”

아까 전, 연습하며 생긴 이런저런 실패작들과 완성본 도시락을 가리키며 선생님께 묻는다. 잠자코 말씀하시는 선생님.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다. 단순하게 ‘도시락 만드는 연습 해야지!’ 만 생각하신 것 같다. 정말, 선생님답지 않은 면이네. 꼼꼼하실 줄 알았는데. 선생님 말대로 남은 재료들과 이런 것 저런 것 다 정리한다. 기가실도 깨끗이 정리하고 청소하고 나왔다.


기숙사와 강당 사이의, 놓여져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벤치 두 개. 아마 애들 쉬라고 만든 것 같은데, 애들이 이런 데까지 와서 굳이 벤치에 앉아서 쉴 필요성이 있을까. 문학소녀 느낌 충만하게 내려면 좋을 것 같긴 한데, 문학소녀는 멸종한 지 오래지. 덕분에 우리들 네 명이 적절하게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밖에서 점심 먹는 거야. 좋잖아? 선생님 사감 하면서 이렇게 다른 애들이랑 주말에 밥 먹고 이런 거 없었어, 한 번도.”

“네. 비주얼은 정말 최악인데 맛은 괜찮네요.”

“……끝까지, 진짜 죽을래?!”

“아아! 그만 좀 때려요!”

“……아줌마 되니까 때리는 거지.”

“너 뭐라고 했어!?!”

선생님의 말에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이미 1학년 때부터 익히 들었던 말이니까. 선생님, 되게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에 여자애들 싫어하니까. 나만 예외였지만, 이제는 성빈이랑 희세도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것 같다. 아까도 그렇고, 보면 이름 외우신 것 같으니까. 거기에 희세랑은 저렇게 투닥거릴 정도로 친해진(?) 것 같으니. 어째 희세 도발에 넘어가면 희세랑 동급이 되는 것 같은 선생님. ……물론 선생님이 더 크다.

그렇게, 주말 하루는 덧없이 지나간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요리도 하고 선생님 놀리기도 했으니, 무의미한 건 아니려나. 어차피 별 일 없었다면 할 일 없이 집에서 게임이나 하는 허무한 주말이었을 텐데.

점심 다 먹고, 선생님의 인사를 받고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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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3화 - 4 +8 15.11.23 827 14 22쪽
199 13화 - 3 +2 15.11.21 719 21 21쪽
198 13화 - 2 +2 15.11.20 787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67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3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16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49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2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2 17 18쪽
» 12화 - 2 +10 15.10.12 840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999 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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