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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066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1.24 23:20
조회
995
추천
14
글자
20쪽

14화.1 저랑, 사귀어요!

DUMMY

“오빠가, ‘정웅도’ 인가요.”

“아…… 어.”



쉬는시간, 여유롭게 민서와 미래와 얘기하고 있는 때, 문득 모르는 여자애가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조금 당혹스러워하며 대답하는 나. ‘오빠’ 라는 말이 이렇게 어색하게 들릴 수가 있다니. 미래에게 항상 ‘오빠’ 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진정으로 ‘오빠’ 라는 말을 듣게 되면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게 다 미래 때문이다.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어어. 어…….”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여자애는 당돌하게 내 이름을 물어보고, 인사하고, 그대로 뒤돌아 나간다. 수줍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묘하게 창피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참 애매한 느낌의 여자애다. 분명 ‘오빠’ 라고 하고 존댓말을 했으니 후배겠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도 2학년이잖아? 2학년 된 지 6개월 지났거든?! 너무 금방 지나가서 얼굴도 잘 못 본 것 같다.



“뭐야, 쟤?”

“헤↘에~? 오빠는 역시, 인기쟁이네요. 후배한테까지 이름을 알린 건가요?”

“모르는 애라니까. 후배인지도 모르겠고. 전혀 모르는 앤데.”

“나도 처음 보는 애라 잘 모르겠어.”



영문을 몰라 하는 내 반응에 미래는 그저 놀려먹기 바쁠 따름이다. 민서도 알 턱이 없지. 전혀 처음 보는 애가 저런 식으로 인사만 하고 가는 건 또 처음 있는 일이라, 기분이 참 묘하다.




--




“음. 오케─이.”



가만히 휴대폰을 보며 혼잣말. 희세에게 톡을 보냈었다. ‘보충수업은 늦게 시작하니까 안 갔는데. 왜, 아쉬워?’ 하는 답변. 고개를 끄덕이며 ‘아니, 천하의 나희세 답지 않게 늦잠 잔 줄 알고 ㅋ’ 하고 보냈다. 그렇지, 보충수업은 늦게 시작하니까, 굳이 희세가 와서 깨워주지 않아도 되지.



“흠흠─”



교복을 하복으로 입어도 덥기는 마찬가지. 한참 더워지는 6월 말이니. 혼자 걸으며 후텁지근한 대한민국의 거지같은 여름 기온을 즐긴다. 그리고, 방학 임에도 학교를 가야 하는 거지같은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 또한 즐긴다.


분명 「방학」이다. 근데 왜, 학교를 가야 하는지. 가뜩이나 여름방학은 겨울방학보다 짧다. 그 짧은 방학에 보충수업을 해 버리면, 정말,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가는구나. ……겨울방학이 여름방학보다 길다고, 더 많이 쉬거나 하진 않지만. 그에 비례해서 보충수업도 길어지니. 정말, 학생들 한 숨을 쉴 틈을 안 주는구나. 변태 아닐까, 교육부의 높으신 분들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방학」의 정의는, 평소보다 1시간 늦게 등교하고, 정규 수업이 아니라 좀 더 여유 있는 분위기의 수업에, 9교시 안 해서 오후 5시에 끝나고, 야자가 없다는 점 정도. 그것만으로도 한숨 내쉬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뭐, 이런 생각은 예전부터 줄곧 해왔지만. 1년이 지났어도 변함없는 환경에 절망할 따름이다. 그래도 어쩌랴, 웃으며 살아야지.



“안녕하세요!”

“아…… 안녕. 누구……?”

“저번에 인사 드렸는데. 교실에서.”

“아, 아아. 너구나. 그…… 음?”

“1학년, ‘류시아’에요.”

“아, 그래. 응.”



툭, 옆에서 내 팔을 치며 채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인사를 하는 밝은 목소리. 모르는 여자애의 인사를 받는 건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이다. 우선 인사는 받고 솔직하게 물어본다. 방긋 웃으며 말하는 여자애. 아, 저번에 반에서 뜬금없는 인사를 했던 여자애구나. 자연스럽게 자기 이름을 밝히는 여자애.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고 대답한다. 이 애는 내 이름 아는 것 같으니 내 소개는 생략해도 되겠지.


어깨까지 오는, 치렁치렁한 느낌의 웨이브 머리. 초롱초롱한 동그란 눈. 예쁘다기보다는 귀여운 느낌이 팍팍 드는, 귀여운 여자애다. 마침 키도 미래 수준으로 작고. 리유 정도로 작지는 않고. 교복이 잘 어울리는, 순수하고 앳된 귀여운 여자애다. 그런 애가, 나한테 무슨 용무가 있어서.



“저, 오빠랑 사귀고 싶어요. 사귀어 주세요.”

“푸흡─?! 뭐, 뭐라고?!”

“사귀어 주세요! 네? 안 돼요? 왜 안 돼요? 저 싫어요?”

“아니아니! 그! 너무 급전개 아니니, 그거는?!”

“급전개 싫어해요?”

“그, 그렇잖아! 그…… 잠깐만.”



물론 모르는 귀여운 여자애가 말을 걸면, 남자라면 누구나 일말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 이 귀여운 여자애랑 이래이래 말도 놓고, 얘기도 많이 하고, 같이 잘 지내서, 사귀고, 포옹하고, 키스하고,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아니, 망상이 너무 먼 미래까지 갔나.


어쨌든, 그런 일말의 가능성을 상상할 순 있다. 그런데 이 애의 말은 너무 지나치잖아! 초면에, 이제 겨우 통성명만 한 사이인데 갑자기 사귀자니?! 설마, 얘 무슨 스토커 이런 거야!? 그런 느낌 전혀 안 받았는데? 아니, 사람은 얼굴로 판단하면 안 되지. 이런 귀여운 얼굴을 하고선 그런 사악한 짓을 할지도 몰라.



“……좋은 아침이네? 좋은 얘기 하고 있고.”

“아아! 어! 희세야, 안녕! 그, 어!”

“안녕하세요.”

“어어…… 음…… 하던 얘기 계속해? 나는 빠져줄 테니까.”

“야아아……! 잠깐만, 이건 심각한 오해가……!”



등골이 오싹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낌과 동시에 들려오는, 낮고 날카롭게 선 목소리. 냉기를 풀풀 날리며 등장하는 희세. 눈을 반쯤 뜨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와 여자애를 쳐다본다.


나는 괜히,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된 양 어쩔 줄 몰라하며 인사했다. 여자애도 희세에게 인사한다. 희세는 대놓고 차가운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냉담한 태도로 말한다. 말하는 것에 확실하게 뼈가 담겨 있다. 이런 애매한 상황에서 그렇게 말해버리고 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황급히 희세 손목을 잡으며 애걸복걸 하지만 희세는 ‘놔.’ 하고 짧게 말하곤 내 손을 뿌리친다. 아아…… 미쳐버리겠네.



“사귀어 주실 건가요?”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는 너!”

“말했잖아요, 류시아 라구요.”

“이름 알았다고 전부가 아니잖아! 대체 뭔데, 넌!”



그 와중에 눈치도 없이 낙담한 나에게 다시금 제안하는 여자애. 초면인 여자애지만 벌컥 화를 낸다. 그럴만 하잖아?! 희세가 잔뜩 오해하고 내 손을 뿌리쳤잖아! 제대로 설명해도 믿지 않을 거라고! 거짓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선 그보다 몇수십배의 증거를 들이밀어도 믿지 않는 게 사람인데! 아후.




“희세, 뭔가 화난 것 같은데?”

“음…… 그, 오해가 있어서.”

“오해?”



잔뜩 심통이 난 희세.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책에만 시선이 고정돼 있다. 터덜터덜 안타까운 심정으로 자리에 앉느니 성빈이가 나와 희세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처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상한 여자애에게 휘말려서 말이지.


밑도 끝도 없이 고백을 해 잔뜩 오해를 사게 만든 그 여자애를 뿌리치고, 앞서 달려가서 희세 뒤를 따랐다. 계속 말을 꺼내 오해를 풀려 했지만 희세는 듣지 않는다. 잔뜩 도도한 눈과 위압적인 표정으로 화가 난 자신의 기분을 강변한다. 그렇게까지 완강하게 나오는데 어떻게 더 설득하겠나. 도리어 변명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우선은 일보 후퇴다.



“그래도, 운 좋게 희세랑 웅도랑 같은 반 되었네?”

“어, 그렇지. 좋은 일이긴 한데. 아─”

“무슨 일이었는데 그래?”

“으─ 뭐부터 설명해야 하나. 모르는 여자애가, 나보다 후배인 것 같은데. 음…….”



보충수업은 반이 바뀐다. 또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성적별로 반 배치를 하지 않았나보다. 나와 성빈이와 희세가 같은 반이 된 걸 보면. 내가 성적이 올라서 같은 반이 됐다고 하기에는, 그럼 유진이랑 민서가 같은 반이 안 된 게 이상하잖아. 유진이, 민서, 미래는 옆옆반이다.



“여기 계셨네요. 한참 찾았잖아요.”

“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건데?!”

“누구……?”

“안녕하세요, 류시아라고 해요. 1학년이에요.”



아까 전에 뿌리치고 온 여자애, 시아. 아무렇지도 않게 천연덕스럽게 내 자리 앞으로 와 말한다. 벌컥 화내듯이 소리쳤다. 절로 희세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희세는 도끼눈을 뜨고 이쪽을 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책으로 돌린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나도 굉장히 당혹스럽다.


성빈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자애를 쳐다보며 말끝을 흐린다. 그도그럴 게, 나나 성빈이나 딱히 후배 중에 아는 애가 있지는 않거든. 그런데 갑자기 후배로 추측되는 여자애가 나한테 아는 척을 하니, 궁금할 수밖에. 여자애는 상당히 자연스럽게 성빈이에게 인사하며 자기소개를 한다. 붙임성 좋은 여자애구나.



“응, 만나서 반가워, 임성빈이야. 웅도랑 아는 사이?”

“네, 곧 사귈 거에요.”

“에, 에에에에엣?!”

“미친 누가! 멋대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니까! 오늘 처음 만났는데!”

“그치만, 이렇게 귀여운 제가 고백했는데, 보통 남자애들이면 거절하지 않을 텐데요?”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데?!”



성빈이도 한 친화력 하기에 방긋 웃으며 화답한다. 자연스럽게 엄청난 말을 내뱉는 여자애. 성빈이는 기겁을 하며 놀란다. 애써 책을 보며 외면하던 희세의 시선도 또한 느껴진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강하게 부정한다. 이거 완전 폭탄 같은 여자애잖아?! 게다가 자뻑(?)도 심해! 뭐, 귀여운 건 사실이지만, 어지간한 남자애라면 거절하지 않을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다 사실이긴 하지만!



“그, 그, 그런 거야?! 두, 둘이 사귀는…… 거야?”

“네.”

“아니라니까! 뭘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고 있어?! 얘가 멋대로 이러는 거야! 나 오늘 얘 처음봤어!”

“그, 그치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말해!”

“그러니까 내가 미치겠다는 거지!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이상한 애니까!”

“사귀는 거, 아니에요?”

“넌 좀 조용히 있어!”



성빈이는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한 티를 팍팍 내며 말한다. 대답은 내가 아닌 여자애가 먼저 한다. 잔뜩 태클을 걸며 벌컥 화를 낸다. 아무리 봐도 변명 같아 보이지만 열심히 나를 변호한다. 성빈이는 얼굴이 약간 상기돼서 나와 여자애를 번갈아 쳐다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여자애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눈치가 없는 건지 어쩐 건지. ……괜히 그렇게 올려다보니까 정말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나라고 그렇게 강철멘탈은 아닌지라, 이만큼 귀여운 애가 갑자기 사귀자고 하면 정말 마음이 이상해지기도 하니까.





“류시아에요. 1학년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귀엽고 예의 바른 여자애네. 그래, 너는 웅도의 몇 번째 첩?”

“그런 거 아니야!”

“응? 웅도가 데려온 여자애면 다 그런 거 아니었어?”



비꼬는 데에 이제는 미래를 능가하는 유진이. 점점 그런 쪽으로 컨셉을 잡는 것 같다. 묘하게 성숙한 어른스런 미소를 지으며 나를 농락하는 유진이. 뭐랄까, 농염한 마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능숙한 개드립을 날린다. 내 대답에 더욱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유진이.


점심시간, 자연스럽게 밥 패밀리 6인이 모여 점심을 먹으려 하는데─ 오늘 처음 만난 여자애, 시아가 끼어들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예의 바르고 붙임성 있게 인사를 하는 녀석.



“첩이요? 저는 오빠랑 사귀는데. 오늘부터 1일 째에요.”

“아…… 그, 그래…… 그렇구나…… 나는 그렇게 가지려 해도…… 가지지 못했는데…… 아주…… 쉽구나…….”

“아니아니! 전혀 아니거든!? 왜 멋대로 허위사실 유포하는데?! 이제는 사귀는 게 기정 사실이냐?!”



천연덕스럽게 유진이에게 치명타를 날리는 시아. 호락호락한 녀석은 아니구나. 그 유진이가 큰 심적 대미지를 받고 얼굴에 그늘이 가득한 채 옆으로 빠진다. 나는 또 잔뜩, 시아에게 태클을 걸 수밖에 없다. 얘는 대체 어디까지 막 나가는 여자애인지. 미래와는 다른 느낌의 똘끼이다.



“핳! 보아하니 꽤 하는 것 같은데! 만나서 반갑다, 나는 근미래, 이 구역의 미친년는 나니까! 주의하도록 해!”

“아, 언니가, 저 언니가 말했던 「첩」 인가요?”

“……아니, 나는 첩 축에도 못 끼지…… 예전에 리타이어 했으니까…… 응…… 이제는 너처럼 젊은 애들한테 한참 발리는, 그런 퇴기(退妓)니까…….”

“누구 맘대로 처첩제를 만드는데?! 그런 거 아니라니까!”



뭐야 이 녀석! 한순간에 그 또라이, 미래를 리타이어 시켰다?! 미래의 영압이…… 사라졌어!? 그만둬, 미래의 HP는 이미 0이야! 류시아, 이 무서운 아이……! 처음 본, 호락호락하지 않은 또라이 두 명을 순식간에 쓰러뜨렸어……!



“……둘이 밥 먹지 왜 우리랑 같이 먹냐!”

“에에! 미친! 우리 보고 질투하라고 그러는 거냐! 흥흥!”

“아니, 좀 내 말 좀 듣고 화내고 그래. 밑도끝도 없이 나와서 말하는 얘 말이, 1년이나 보고 지낸 내 말보다 더 믿음직해? 나에 대한 신뢰가 그 정도밖에 안 돼?”

“……나는 6개월 밖에 알고 안 지냈거든?!”

“에에! 네 신뢰는 그 정도다! 변태 고자 호구새끼!”

“작작해!”



순식간에 잔뜩 토라져서 어린아이처럼 생떼를 부리는 유진이와 미래. 미래야 그럴만한 똘기의 소유자인데, 유진이까지 저러는 건 좀, 보기 흉한데.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역시 사람은 친구를 잘 만나야…… 아니, 미래가 나쁜 친구라는 건 아니고, 착한데 조금 이상한 친구지. 내 말에 잔뜩 태클을 거는 두 사람에게, 결국 무력을 사용해 콩 콩 머리를 살짝 때렸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서 제멋대로 고백하더니 사귀는 걸로 자꾸 말을 꺼낸다, 그런 얘기에요?”

“어. 너도 봤잖아, 저번에 기말고사 끝나고 반 갑자기 나와서 인사하고 사라지는 애. 얘가 걔야.”

“아~ 그러고 보니. 자세히는 안 봐서 기억은 안 나지만. 얘 같네요?”



이런 일의 해설 역할은 이제 미래로 고정돼 있다. 장황하게 나의 사정을 변호하고 최후진술(?)을 하니 미래가 알아서 정리해서 말한다. 말하면서 걸어서 어느새 학교 근처 분식집까지 왔다. 7명이나 되는 대인원이다보니 테이블 2개를 붙여서 앉았다.



“그래서 아침에 그 장면을 딱 희세가 봐서 오해가 생겼고. 교실 와서도 갑자기 그런 말 해서 성빈이까지 오해했고.”

“……만나서 인사하려는데 대뜸 그러고 있는데 그럼 어떡해.”

“미안해, 괜히 오해했구나. 너무 충격적이라서.”



겨우 애들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된다. 희세는 언짢은 표정으로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성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좋아, 이제야 좀 분위기가 내 쪽으로 돌아오는구나.



“그럼, 너는 왜 그런 유언비어를 퍼트리려는 거야? 역사서를 뒤져봤니?”

“……네?”

“아, 근대 시절의 역사에, 그런 일이 있었거든. 어떤 여자애가, 막 애들 사이를 이간질해서, 사이 파탄내고 자신이 모든 것을 한 손에 거머쥐려고 했던, 어떤 야심가의 비참한 말로가─ 아하핫! 농담이야 농담!”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그 얘기 좀 그만 꺼내, 이제 그만할 때도 됐잖아.”

“……그만할 때는 없어.”

“아아, 원칙주의도 좀 유하게 가고.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미래는 실실 웃으며 말한다. 의아한 표정의 시아. 미래의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유진이. 다시금 사죄 모드가 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주문을 되뇌이듯 말한다. 언짢은 표정으로 미래를 꾸짖으며 말한다. 뭐, 미래는 숫제 장난 본위지만. 내 말에 희세는 정색하고 말한다. 원리원칙주의자인 희세의 심기를 건드렸나보다. 이것저것 삼천포로 빠지는 게 많네.



“1학년 들어오고부터, 오빠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학교 유일의 남자니까요. 잘생겼다고, 좋아하는 애들도 꽤 있는 것 같지만. 걔네들은 다 쭉정이에요. 좋아만 하고 실제로 행동하진 못 하거든요. 그래서, 행동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고백했어요. 오늘.”

“아…… 그러면, 6개월동안 짝사랑 한 거네? 1학년 들어오고부터 좋아했다면.”

“……네.”



조곤조곤히 귀여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명하는 시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 얘기하듯 할 수 있다니. ‘좋아한다’는 말과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간단하게 전할 수 있는 건데! 듣고 있는 내가 다 부끄럽잖아! 아니, 그보다, 나 1학년들한테 인기 많았어?! 전혀 몰랐는데, 그런 인기? 체감할 수 없는 인기는 인기가 아니잖아?!



“헤에. 역시, 오빠. 오빠 진짜 운 좋은 거에요. 이 정도 얼굴 가지고 잘 생겼다는 얘기 듣는 거, 힘들거든요. 여자애들만 1000명 있는 와중에 유일하게 남자 한 명 있으니까 잘생겨 보이는 거지.”

“넌 갑자기 왜 나 디스하는데.

“아으이이익! 왜 꼬집어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데!”



기분 좋은 와중에 실언을 해 내 기분을 잡치는 미래. 얼른 볼을 꼬집어 입을 틀어 막는다. 괴로워하면서도 할 말은 주저리주저리 다 하는 녀석. 어휴, 이걸 미워할 수도 없고.



“그, 그래도 대단하다, 처음 보는데 고백하기두 하구.”

“그게 문제잖아. 보통, 처음 보는 사람한테 고백하진 않는다고.”

“상관없지 않나요? 어른들은 선 봐서 결혼하기도 하잖아요.”

“너무 멀리 갔잖아! 그리고 선 봐서 결혼해도 선 보고 바로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 선 보고 교재 하고 그다음 결혼한다고!”

“그럼 저희도 교재하고 결혼하죠.”

“미친!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민서의 감탄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거든. 점진적으로 증진되는 관계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이런 식의 갑작스런 전개는. 그보다 난 얘가 누군지도 모르고. 시아는 제멋대로 교재와 결혼까지 언급한다. 점점 증세가 중증이 되는 것 같은데, 이 녀석.



“애초에! 사귀는 건,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이고! 서로 호감이 생겼을 때 가능한 거잖아. 소위 말하는 ‘썸탄다’는 단계가 있어야 하잖아.”

“그냥 사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내가 그런 성격이 아니야! 나는, 점진적인 통일이 좋아!”

“어멋─ 통일 좋지요. 합☆체인 거잖아요? 오빠, 은근히 바라구 있구나─!”

“너는 정말, 그런 생각만 하는구나. 틈을 잘도 찾네.”

“데헷☆”



시아는 아무래도 쇠고집인 것 같다. 자기 의견을 흔들리지 않고 관철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어이 내 입으로 ‘나는 점진적인 게 좋다’는 말까지 하게 만든다. 미래는 그 틈을 비집고 얼른 섹드립을 친다. 뭐, 이제는 당혹스럽지도 않다. 물론 합☆체가 좋긴 하지만. 무슨 소리래.



“그럼, 오늘부터 점진적으로 친해지고 사귀면 되겠네요.”

“점진적으로 친해지는 것까진 인정하겠지만, 사귀는 건 아니지.”

“아. 그럼 오빠는 저랑 사귀고 싶지 않은 거군요.”

“인간사 모든 일을 그렇게 이분법으로 제단하지는 마. 예/아니오 이런 식으로 컴퓨터처럼 나뉘는 게 아니잖아, 세상 일이?”

“오오~ 있는 척 하면서 은근히 여지를 남겨두기? 역시, 어장관리의 달인이네요. 하긴, 그러니까 지금 여자애 여섯 명이나 주렁주렁 매달고─ 아아! 아파요!”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말하는 시아.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태클을 건다. 대번에 더욱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말하는 시아. 나는 인생의 연륜이 담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잖아, 세상 일이. 어중간한 나 같은 녀석도 충분히 존재하니까, 다채롭고 즐거운 게 이 세상이잖아.


멋대로 내 이미지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미래를 응징한다. 반대편 볼을 꼬집으니 미래는 눈물이 핑 돌며 괴로워한다. 그래도 싸, 이 년은.



“그럼, 잘 부탁드려요. 오늘부터, 친해져요.”

“그래.”



뭔가 선후관계가 상당히 뒤틀린 것 같은데, 어쨌든 처음 보는 후배 여자애와 알게 되었다. 류시아, 과연 어떤 여자애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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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13화 - 4 +8 15.11.23 828 14 22쪽
199 13화 - 3 +2 15.11.21 719 21 21쪽
198 13화 - 2 +2 15.11.20 787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67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3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16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49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2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2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40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999 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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