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064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2.07 22:46
조회
1,035
추천
19
글자
20쪽

14화.4 - 2

DUMMY

“다 씻었어.”

“어, 응.”



그리 크지 않은 방에서, 민서의 말에 벌떡 일어나 말했다. 괜히 긴장하게 된다. 그럴 것도 없는데.


민서는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편한 옷이라고 해 봐야, 입고 왔을 때의 그 옷이지만. 여름이라 자유분방한 반팔 티와 짧은 핫팬츠. 크게 거부감 없이 펑퍼짐한 스타일이지만 도리어 그것 때문에 더욱 눈을 둘 데가 없다. 이건 뭐, 해도 X랄 안 해도 X랄이구먼. 찰싹 달라붙는 스타일이면 야하다고 뭐라 할 테고, 펑퍼짐하면 그것대로 보일(?) 수 있으니 뭐라 하고. 전형적인 훈장님 스타일 아닐까, 내 마인드가.



“…….”



훈훈한 기운이 남아 있는 화장실. 여름이면 당연히 지하 700m에서 끌어올린 천연 암반수의 차가운 물로 씻어야지! 남자인데, 엣헴! 하는 사상적 마초인 나는 이런 여름의 훈훈한 느낌의 화장실이 적응이 안 된다. 여자애들은 따뜻한 물로 씻는다니까, 그렇구나 싶다. 미묘한 은은한 향기가 난다. 여기서, 민서가 먼저 씻었으니까. ……크흠.



“스흡. 아아, 안 돼 안 돼 미친!”



은은한 향기를 깊숙한 숨결로 마셨다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다. 이러면 안 되지. 엄청난 변태 같아 보이잖아. 차라리 당당한 변태가 나아! 그보다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잖아?! 희세네 집에서 씻었을 때! 어휴, 변한 게 없구나, 나란 놈은.




“미안, 버스 시간을 미리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니, 뭐 내일도 일요일이고. 간만에 시골 놀러온 김에 푹 쉬고 간다고 치면 되지. 여기서 자는 거지?”

“응, 마을회관은 늘 빈다고 그러셨으니까.”



민서는 미안한 표정으로 샤워를 마치고 온 나에게 말한다. 싱긋 웃으며 가볍게 대답. 게임을 못 하는 건 좀 아쉽지만 뭐, 시골에서 한적하게 시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뿌듯하게 봉사활동도 마치고 쉬면 좋잖아?



“와, 근데 여기 되게 시원하네. 바람이 솔솔 불어.”

“응. 그래서 어르신들도 여름엔 마을회관 자주 오신데.”

“그럴만 하다. 에어컨이 따로 필요 없네.”



크고 아름다운 거실에 누워 말하는 나.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는 민서. 활짝 열린 문으로 서늘하고 상쾌한 바람이 솔솔 분다. 선풍기나 에어컨 부럽지 않을 정도. 집에서는 엄청 더웠는데. 에어컨 틀어야 간신히 시원한데, 그나마도 저번달에 조금밖에 안 틀었는데 전기세 폭탄 맞아서 엄마한테 잔뜩 혼나곤 아껴 트느라. 여기는 그야말로 자연풍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바람만 쐬고 있어도 기분이 좋을 정도다. 키야, 이런 게 시골의 정취구나. 기분 좋네.




--





“…….”

“…….”



방이 굉장히 덥다. 뭐랄까, 후텁지근하다고 해야 하나. 그리 좁지는 않은데, 어째서 이렇게나 후끈한지. 불을 껐지만 잠은 전혀 오지 않는데. 오늘 꽤 이것저것 일 해서 육신은 피곤함에도. ─당연하잖아, 같은 또래의 여자애랑 같은 방에서 자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자연스럽게 ‘이 마을회관은 이제 저희 껍니다. 저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일줄 알았는데, 갑자기 일련의 할머니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아까 민서가 할머니도 여름엔 회관이 시원해서 오신다고 말은 했으니,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마을회관 거실에 일제히 이불을 펴고 주무신다는 것.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왜 멀쩡히 본인들 집 내버려두시고 여기서 주무시는데!


나는 당연하게, 민서와 다른 방에서 자려고 했다. 그게 당연하잖아, 나는 남자애고 민서는 여자애인데. 민서가 덥다고 하면 내가 작은 방에서, 민서는 거실에서. 굳이 그런 말을 안 한다면 내가 시원한 거실에서 자려 했다. 하지만 거실은 이미 할머니들이 점거한 상태. 다른 방은 잠을 잘 만한 방이 아닌지라, 결국 우리는 작은 방으로 내몰리듯 여기에서 잠자리를 펼 수밖에 없다.



“…….”



여전히 숨막히는 상황. 그렇게까지 방이 엄청 좁은 건 아닌지라, 서로의 잠자리를 조금 거리를 띄워 깔았다. 그래서 전혀 어떤 마주침도 없지만 어수선한 기분은 계속된다. 사실 아직 잘 만한 시간도 아니고. 괜히 어색해서 ‘얼른 잘까! 하하!’ 하고 이불을 깔아버린 게 문제지.


째깍째깍, 시계 초침 가는 소리만 더욱 과민하게 들린다. 내 나이 열여덟. ……절묘하게 18살이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외치고 싶은 말하고 비슷하게. 어쨌든, 열여덟 짧은 인생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 희세 가슴을 만진다거나, 성빈이에게 알몸을 보였다던가, 리유를 덮친다거나, 그런 많은 일들이 있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 되게 쓰레기구나. 아니, 이게 아니라.


어쨌든 그런 많은 다사다난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내 또래 여자애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되는 건 처음이다. 그─ 그런 말 있잖아. ‘같이 잔다’라는 말. 왜 그런 식으로 표현하겠어. 잘 때 역사가 이루어 지니까! 아아아악! 음, 내 생각엔 좀 자극적인 것 같군, 안 그래?


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니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 미래랑 별로 안 친했을 때, 미래가 오빠라고 하고 존댓말 쓰는 게 귀여웠을 때, 외지로 놀러갔다 지금과 비슷하게 버스가 끊겨서 모텔에서 같이 잤었잖아. 그 때가 상황은 더 음란한데?!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국 신경 쓰여서 잠은 못 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서 엄청 피곤했지만.



”……역시, 잠 안 오네.”

“어어. 크흠.”



먼저 침묵을 깨는 민서.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나도 살짝 긴장이 풀려 대답했다. 나만 신경 쓰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다시금 내쉬었다.



“잠깐, 바람이라도 쐴까?”

“으, 응.”



고개를 저으며 먼저 제안하니 민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다. 어둠에 비친 여자애의 몸은 상당히 요염하구나. ……그런 생각 하면 안 되지?! 아아, 안 돼. 집중 집중. 나는 부처다. 어떤 짓도 하지 않는 순전고결한 불자인 것이다. 파계승이 될 수는 없지. 민서와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하아─ 역시, 시원하네. 시골이라 더 시원한가.”

“근데 시골이라 벌레도 더 많은 것 같애.”

“그렇네. 조금만 있다 들어가자. 피 빨려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시골이라고 마냥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 매연도 없고, 확실히 공기가 좋고 시원하긴 하지만 그건 자연의 생명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민서의 말을 듣자마자 벌써 모기 한 방 물렸다. 따끔, ‘아.’ 하는 신응을 내자 민서는 입을 가리며 웃는다.



“저기, 웅도야.”

“응?”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응, 뭔데.”



산책이라도 하듯 느긋하게 시골길을 걷는다. 문득 옆에서 말없이 걷던 민서가 가만히 말을 꺼낸다.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민서는 가끔 보면 너무 착하고 남을 배려해서 할 말도 잘 못 하는 것 같다니까. 윗사람도 아니고 같은 친구인데 굳이 물어보는 걸 허락 맡고 물어볼 건 아니잖아.



“……섹X 해본 적 있어……?”

“잠깐잠깐잠깐만! 뭘 물어보는 거야 넌 지금?!”

“히익! 미, 미, 미안, 이상했어?”



착해서 할 말 못 한다는 거 취소! 갑자기 뜬금없이 이 상황에서 그 말은 왜 묻는데! 단순히 그냥 시골길을 걷는 중이라면 상관없는데 밤에, 그것도 방금 전까지 같은 방에서 단 둘이 있었던 중에! 게다가 민서가, 그 착하고 순박한 입으로 그런 말을! 섹X라고! ○스라고! 잠깐만, 이러면 가리는 의미가 없잖아.



“가, 갑자기 그런 말은 왜 묻는데! 나, 내가 아무리 편해도, 나도 남자애잖아! 게다가 같은 방에서 그런…… 거시기한 상황이었는데!”

“아으…… 미, 미안. 여, 역시, 껄끄러운 거였구나……. 미, 미래가, 남자애들은 그런 얘기 하면 좋아할 거라고 해서.”

“크으…… 역시, 범인은 근미래였나. 이 년을 내가 그냥……!”



더듬거리며 당황한 상태로 말하니 민서 역시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그나마 부끄러워할 자각은 있는 거냐. 민서의 말끝에 주범의 이름이 거론된다. 과연, 순박하고 착한 민서가 그런 걸 혼자 생각할 리 없지. 저번부터 미래랑 같이 놀더니 그렇게 된 건가. 근묵자흑(近墨者黑), 역시 사람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해. 미래 이 년을 진짜!



“……그, 그래서, 해본 적 있어?”

“아니이이!! 왜 구태여 물어보는데 그걸!!”

“구, 궁금하니까. 해, 해보지 않았을까 싶어서.”

“내가 왜?! 그런 이미지야 나?! 겁내 양아치니 나? 나 찌질이야 겁내! 찐따새X인데!”



민서는 전혀 의외로 끈덕지게 물어본다. 괜히 내가 더 당황스러워 소리치게 된다. 아니 왜 여자애가 그런 걸 계속 물어보는 건데! 이러니까 내가 더 부끄럽게 되잖아! 정작 민서는 나만큼은 부끄럽지 않은지 그다지 빨개지지 않은 얼굴색이다.



“……해보면, 무슨 느낌일까……?”

“…….”



하나님. 저에게 이렇게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에게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시고 다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가 평화에 임하옵니다. 아멘.


민서는 그 말을 하곤 내 눈을 피한다. 순식간에 붉어지는 그녀의 얼굴. 침을 꿀꺽,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하게 된다. 시골길, 어두컴컴한 배경, 여자애와 나. 민서는, 살이 빠져서 몸매가 되게 좋아졌구나. 편한 바지 임에도 드러나는 골반라인과, 흰 목덜미. 크고 아름다운 그…… 거.


뭐라는 거야?! 저 망가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는 뭔데! 마침 배경도 시골이겠다, 이대로 야외 플레이 직행이냐?! 갑자기 너무 수위가 쎄잖아! 안 되겠어, 이 녀석 어떻게 하지 않으면.



“크흠. 저기, 민서야.”

“으, 응.”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고리타분하다고 할 수도 있고, 병X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린 학생이잖아. 학생 신분에선 할 수 없는 게 있잖아. 게다가, 나는 그…… 성관계는, 사랑하는 연인 간에 그 사랑의 증표로서 하는 어떤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해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어. 적어도 고등학교 신분에서는.”

“……응, 그렇구나.”



헛기침을 하고 말을 꺼내니 민서는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횡설수설, 두서없이 지껄이는 대로 말한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줘도(?) 못 먹네!’ 또 누군가는 말할 수 있겠지. ‘에유 저 병X, 고자 아니야? 남자새X도 아니네.’ 하지만, 하지만! 진정한 남자라면, 자기 책임을 다하고! 모든 것이 완벽할 때! 적어도 축복 받을 수 있는 X스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고?! 그렇게 죄 지으면서까지 할 건 아니잖아! 내 말이 틀려?! 나 누구한테 얘기하니.


민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뭔가 씁쓸한 듯 외로운 듯한 표정. ……뭐야, 진짜 여기서 해(?)야 하는 부분이었어? 그런 거야? 그냥 내가 병X이었던 건가! 아니잖아! 세상이 그렇게까지 타락한 건 아니지 않아?!



“……사, 사랑을 많이 하는 연인이면, X스 하는 거야?”

“진짜 끈질기네! 설령 그런 연인이 생겨도, 대학교 가기 전까지는! 할 수 없어. 하지 않아! 왜 자꾸 끈질기게!”

“내, 내가! 그런 연인이 되고 싶으니까……!”

“……!”



계속해서 성관계에 대한 얘기를 끊이지 않고 하는 민서. 미래에게 너무 악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벌컥 화를 내며 말하는데 그 순간 민서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소리치듯 말한다. 움찔 멈추게 된 나. 에? 뭐라고? 하고 넘기기에는 너무 확실하게 알아 들었다. 게다가, 너무 충격적으로. 그러니까, 섹X를 할 수 있을만큼 사랑하는 연인이 되고 싶다고, 민서가, 나랑……? 그러면 이거. 고백……인가?




─고백이여? 고백이네?

─내가 봤어. 이 X끼 훼이크 치는 거 똑똑이 봤다니깨?!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얘기 안 들어봤나? 뭐하냐, 너네 형님 손모가지 안 날리고.

─이 X벌새X끼가!




잠깐잠깐. 망상이 뭔가 이상한 쪽으로 가잖아. 아무리 기라성 같은 영화였다고는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멈춘 그대로 민서를 쳐다본다. 민서는 잔뜩 빨개진 얼굴로, 그러나 시선은 돌리지 않고 나를 쳐다본다.



“그,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나…… 좋아한다……는 말이야?”

“응! 왜, 안 돼? 나, 웅도 많이많이 좋아해!”

“!!”



더듬거리며 마음을 진정하고, 침을 꿀꺽 삼키고 민서에게 말한다. 친히 확인사살을 해 주는 민서. 큰 소리로 마음에 팍 꽂히게 고백을 해 준다. 놀라서 왈칵 붉어지는 볼. 어멋, 멋진 여자……! 나한테 이렇게 고백한 여자애, 네가 처음이야. 아니 지금 이런 드립 칠 때가 아니잖아!



“어, 그…… 잠깐만, 나…… 생각 좀.”

“응.”



평소라면 민서가 조금 말을 더듬는 편인데, 지금은 내가 당황해서 더듬거리고 민서는 차분하게 대답한다. 이런 때에 뒤로 미루는 게 최악이라는 것은 경험 상 알고 있다. 참 좋은 경험이네. 인간은 겪은 만큼 성장하는 법이니까.



“……내가, 왜 좋아?”

“……처음으로 말 걸어줬고, 친구가 돼 줬고, 다른 친구들하고도 친구가 되게 해 줬고, 오해도 풀어줬고, 살도 빼 줬어. 그런 남자애한테, 호감 가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아? 그 호감이 좋아하는 마음이 되는 게 당연하잖아. 나도…… 여자앤데.”

“……그렇구나. 응. 그렇네.”



뜬금없이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 이런 거 물어봐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아는데도. 민서는 망설임 없이 곧장 말한다.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민서의 말에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구나. 그럼 남은 건, 내 마음인데.



“……나는 잘 모르겠어. 음……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응.”

“잘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애. 이성적으로.”

“……응, 알았어.”



너무 잔인한 처사일까. 너무 단칼에 거절한 것일까. 짧은 시간동안, 수십, 수백, 수억의 생각을 가속한 결과가 저것이다.


사람이 절대 그래선 안 되지만 나, 아직까지 제대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혼돈스러운 상태니까. 리유에 대한 것도 아직 쿨하게 다 잊지 못 했고, 그런 와중에 흔드는 희세나 성빈이에 대한 마음도 확실하게 정하지 못 했으니. 그런 와중에, 솔직하게 말하자면, 민서에 대한 것은 내 마음에 어떤 자리를 잡지는 못 했다. 그저 나한테는 착하고 귀여운 친구였을 뿐인걸. 나쁘게 말하자면 나, 그렇게밖에 보지 않았는걸, 민서를.


민서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하게 대답한다. 민서의 반응에 나까지 마음에 차분하게 가라앉는 듯하다. 가만히, 말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고 있다.



“역시, 웅도는 쉬운 남자가 아니네. 유진이가, 그렇게까지 애써서 손에 넣고 싶을 정도로.”

“……그 정도는.”

“흐응~!”

“!”



민서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말. 민서가 어른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라, 뭐랄까 순박해서 저런 말은 어울리지 않는데. 뒷머리를 긁으며 어색하게 말하니 민서는 순간 나에게 성큼 다가와 나를 꼬옥 껴안는다. 흠칫 놀라 굳은 몸으로 ‘뭐…… 뭐야??’ 하고 물으니 민서는 ‘잠깐만, 안아줘. 그 정도는 친구 사이에 괜찮잖아?’ 하고 말한다. 조금 껄끄럽지만, 그 말대로 살짝 안아줬다. ……엄청 말캉거리잖아. 아니아니 그냥.




“모두에게는 비밀. 어색해하지도 말기. 평소처럼 대하지. 그치만 역시, 조금은. 힘들겠지?”

“아무래도. 내가 쿨하지 못한 성격이라.”

“유진이랑은, 잘 지내잖아?”

“그거는, 뭐.”



방으로 돌아와 이야기. 그래도 훨씬 홀가분한 기분이다. 이런 것도 알량하게 경험이라고 많이 겪어본다고 는 건가. 사후처리가 훨씬 부드러운 느낌. 미래 때는 최악이었지만 미래가 금방 털고 일어나서 복구, 유진이 때는…… 이런저런 사건 때문에. 희세와는…… 생각해보니까 내가 스스로 복구한 게 아니라 다 여자애들 쪽에서 먼저 얘기해준 거구나. 찌질하기도 하지, 나란 놈은.



“좋아해줘서, 고마워. 나처럼 못난 녀석.”

“으응, 그렇지 않아. 웅도, 못나지 않으니까.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 있어.”

“……그렇게 말하니까 부끄러운데.”



이런 상황이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자기 비하로 빠져버린다. 그걸 막아주는 민서. 굉장한 위로가 된다.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구나. ……되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인데.



“그러면, 그, X스 어떤 느낌인지…… 알려줄래?”

“갑자기 왜 또 그 쪽으로 빠지는데!!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민서 너?!”

“아하하핫. 농담농담. 진짜 다가오진 말구! 무, 무섭잖아!”

“남자를 멋대로 유혹하고 가지고 놀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지─ 아하하, 농담. 진짜 그렇게 무서워하는 표정 짓지 마! 나 X신이니까! 미안 미안! 다시는 안 그럴게!”



이제는 이런 식으로 섹드립을 칠 정도로 분위기가 완화됐다. 좀 장난 치고는 너무 심하다 싶지만.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뭐 싸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좀 더 많이 얘기하고 더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다. 확실하게 선을 긋고 친구 관계로 확정했으니 이제는 긴장하거나 하지 않고 잘 잘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





─“피곤해 보이는데?”

“……타고난 천성을 바꿀 수는 없는 법이지, 사람이. 아하하.”



그러기는 개뿔. 막상 민서가 잠들고 나니까 나는 신경 쓰여서 잘 수 없다. 민서가 무방비하게 잠들어 있는데! 무슨 짓을 해도 모를 텐데! 왜 자는 모습은 또 귀여운 건데?! 게다가 ‘그게’ 궁금하다는 말까지 한 여자애를! 아아, 안 되지 안 되지. 반야심경을 정말 알고 있었다면 몇 번 되뇌였을 정도로 긴 시간 고뇌하며 뒤척이다 간신히 3시간이나 잤나 싶다. 아침 일찍 나와 버스를 타러 간다.




“나, 역시 그래도 웅도가 좋아.”

“그러면……안 됩니다? 나 옴므파탈이야. 나 좋아하면 여자애들 다 파탄나. 아하하. 이런다, 내가.”

“에헤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지 어떡해! 차였어도 좋은걸!”

“그런 걸 그렇게 명랑하게 말하면. 죄악감 쩔어지잖아.”



버스를 기다리며,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민서. 어쨌든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심장이 덜컥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짐짓 허세를 부리며 껄껄 웃는 정도가 내 한계치려나. 더욱 웃으며 말하는 민서를 보니 죄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천진난만한 여자애를, 차 버리다니. 나는.



“헤헤헤. 더 좋아졌어! 아. 드, 들이대는 여자는, 싫어해?”

“그 걱정은 X스 얘기 할 때 생각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아앗! 그, 그렇네?! 나, 그런 여자애 아닌데……?”

“그런 여자애는 또 뭔데! 알아, 알아 그냥 호기심인 거! 들이대는 여자애는, 별로 안 좋지.”

“히에엑! 미, 미안…… 그냥, 취소하면 안 될까? 나 너 안 좋아해.”

“번복하는 게 어디 있어?!”



만담 비슷하게 드립과 드립이 오간다. 민서,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당황하는 모습도 귀엽고. 뭔가 마음이 찜찜하긴 하지만, 어쨌든 즐거운 시골 여행이었다. 엄청 당혹스러웠지만. 그 타이밍에 그런 고백은. 그래도, 시원섭섭한 느낌. 학교에 가서도, 어색하진 않을 것 같다. 민서랑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9 16화 - 2 +6 15.12.31 713 13 21쪽
218 16화. 왕의 귀환. +4 15.12.29 889 13 18쪽
217 슬럼프 특집 번외편 - 3 +20 15.12.26 781 13 18쪽
216 2015 크리스마스 스페셜 /// 웅도인 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미래랍니다! +7 15.12.25 871 8 17쪽
215 슬럼프 특집 번외편 - 2 +12 15.12.24 837 15 20쪽
214 슬럼프 특집 번외편 - 1 +7 15.12.22 971 15 19쪽
213 15화 - 5 +6 15.12.18 1,001 17 18쪽
212 15화 - 4 +6 15.12.16 816 16 20쪽
211 15화 - 3 +6 15.12.14 1,084 25 20쪽
210 15화 - 2 +4 15.12.12 981 17 19쪽
209 15화. 여름이고 방학이면 어딜 가야겠어요?! +4 15.12.10 977 17 19쪽
» 14화.4 - 2 +4 15.12.07 1,036 19 20쪽
207 14화.4 그런 일은 없어요. +4 15.12.05 954 21 20쪽
206 14화.3 - 2 +2 15.12.04 962 13 21쪽
205 14화.3 깜짝 멘붕이야 +6 15.12.01 787 25 20쪽
204 14화.2 - 2 +8 15.11.29 977 15 19쪽
203 14화.2 여제의 귀환 +9 15.11.27 856 17 21쪽
202 14화.1 - 2 +4 15.11.25 932 18 22쪽
201 14화.1 저랑, 사귀어요! +8 15.11.24 995 14 20쪽
200 13화 - 4 +8 15.11.23 828 14 22쪽
199 13화 - 3 +2 15.11.21 719 21 21쪽
198 13화 - 2 +2 15.11.20 787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67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3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16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49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2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2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40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999 24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