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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058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2.0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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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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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20쪽

14화.3 깜짝 멘붕이야

DUMMY

“하아암.”



나른하고 지루한 여름 보충. 딱 한 가지, 학교가 좋은 건 에어컨이 나온다는 점. 에어컨을 쬐며, 따분한 선생님의 수업과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면 그야말로 잠이 쏠쏠하게 온다. 얼마나 좋은가, 방학의 자유마저 빼앗겼는데 돈까지 내는 보충수업! 하하! 똥이야, 똥이라고! 이제는 점점 미쳐가는 것 같다.



“심심한데. 뭔가, 재미있는 일 있으면 좋겠는데.”

“보충수업 끝나고 놀았으면 좋겠다.”

“오, 그거 좋지. 작년에…… 하핫.”



지루해하는 내 혼잣말을 듣고 성빈이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말을 이으며 헛웃음을 지은다. 작년 여름에, 놀러갔던 게 생각나서. 사실 벌써 1년 전 일이라 조금 가물가물 한데. 뭐랄까, 굉장히 찜찜하면서 행복하면서 무언가 애매했던 것 같은 기억이…… 모르겠다.



“음. 왜 이렇게 심심하지.”

“다른 애들하고 다른 반 돼서 그런 거 아닐까?”

“그렇긴 한데. 뭔가 결정적인 원인이 있는 것 같은데.”



성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충수업은 왠지 반이 달라져서, 나, 성빈이, 희세 이렇게 같은 반인데. 성빈이는 짝꿍이지만 딱히 어떤 재미있는 일을 물어오거나 하지는 않는 타입이니까. 희세는 나와 두 자리 앞에 앉아 있는데, 역시 먼저 시비를 걸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내가 가서 얘기하면 몇 마디 얘기하는 수준. 그나마도 리유와 한바탕 벌인 뒤에는 조금 서먹서먹해진 것 같은 느낌이니까. 단순히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성빈이 말대로, 나머지 다른 애들하곤 별로 마주칠 일이 없다. 보충수업은 평소와는 다르게 수준별 수업도 안 하니 반을 이동할 일도 없으니. 그런 고로 유진이, 민서, 미래와는 평소보다 많이 못 본다. 점심시간에 보긴 하지만. 미래…… 미래? 미래!



“잠깐 C반 좀 갔다올게.”

“응.”



생각난 김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머리를 굴리다보니 큰 깨달음을 얻어서. 미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요즘 미래 녀석이 별다른 사건을 물어오질 않아서. 굉장히 짜증나긴 하지만, 이 녀석이 이런저런 사건 물어오고 일 일으키는 데에는 출중한 재능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나도 이제는 마조이스트가 다 돼 가는구나. 골치아픈 사건을 스스로 일으키기 위해 미래를 찾아가는 날이 다가오다니. 근데 정말 요즘, 미래 녀석 나한테 별로 시비도 안 걸고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가서 말이지. 점심시간에도. 재미없게.



“뭐 해?”

“아! 어, 응, 아무것도 아니야.”

“……반말? 설정 꼬인 거 아냐?”

“아! 맞네, 맞아요! 그냥 있었어요! 왜요!”

“아니, 나도 그냥 놀러온 건데.”



보충수업은 쉬는 시간이 20분이라 어느 정도 시간에 여유가 있다. 멍 때리고 있는 미래. 가만히 말을 거니 흠칫 놀라 대답한다. 분명 동갑이고 같은 학년인 미래지만, 1년동안이나 나한테 존댓말을 쓰니 이제는 반말을 쓰는 게 도리어 어색하다. 나이부심이나 선배부심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순수한 어색한 느낌. 애초에 나이 동갑에 선배도 아닌걸.


미래는 물리엔진 꼬인 게임 모델링처럼 버벅거리며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한다. 뭔가 어색한 느낌에 기묘한 기분을 느낀 나. 찬찬히 대답하니 미래는 정신없는 느낌으로 휴대폰을 책상서랍에 넣으며 뭔가 경계하는 느낌으로 말한다. 뭐야, 얘.



“흐음~ 실망이네, 가장 먼저 놀러온 게 미래라니. 역시 미래가 1순위인가?”

“장난에 있어선 1순위지, 미래가.”

“뭐, 내가 뭐!”



유진이가 옆에서 은밀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유진이가 아무리 드립형 캐릭터로 컨셉을 옮겼다 한들, 그 짓을 1년 넘게 하고 있는 미래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경력과 요령에서부터 현저하게 옮기는데. 막상 멍석을 깔아주면 마다하는 건 미래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얼굴까지 살짝 붉히며 대답한다.



“왜, 왜 왔어!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고?!”

“그러니까 왜 대화엔진에 버그가 생긴 건데. 반말 존댓말 왔다갔다 하는 캐릭터였나, 미래 너?”

“아, 그, 시끄러워요!”

“이상하네.”



뭐랄까, 이런 식의 새침데기형 대답은 희세가 주로 보이는 반응인데. 물론 미래라면 얼마든지 컨셉을 바꿀만한 위인이긴 한데, 다년 간의 경험으로 미래의 컨셉 정도는 능숙하게 파악할 수 있는 내가 되었기 때문에 이 반응이 어색하단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정말로 새침한 느낌이니까.



“흐음~ 확실히 요즈음 미래, 이상하지? 말도 잘 안 하고, 농담도 잘 안 치고.”

“그러게. 방학 초기에는 괜찮았는데, 요 며칠 드립도 영 안 치고. 예전 같으면 나한테 놀러와서 시끄럽게 앵앵댔을 텐데. 섹드립도 치고.”

“내, 내가 언제요?! 그렇게 안 해거든요?”



유진이의 매기는 말에 나는 자연스럽게 받는다. 이 맛에 놀려먹는구나 싶네. 미래의 드립력에 조금은 이해가 가는 입장이 된다. 당혹스러워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게 무척 즐거워. 근데 이 녀석, 진짜 이상한데. 이제는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는 기묘한 언행을 보인다.



“확실히 언어팩에 패치가 필요한 것 같은데. 하여튼 마이크로소프트 놈들, 언어팩 좀 재깍재깍 패치 좀 하지. 잠깐 패치내역 좀 보자, 미래야.”

“뭐, 뭐야 어딜 만져?!”

“머리 만졌다 머리. 드립을 치면 받아 줘야지, 진짜 이상하네 너?!”



무슨 로봇이라도 다루는 것처럼 미래 뒤로 가 뒷목 쪽을 버튼 누르듯 꾸욱 누르며 말한다. 흠칫 놀라 몸을 돌리며 정색하고 말하는 미래. 정말 이상하다.



“흐음~ 이런 증상의 기초적인 건 역시, 남자일까나?”

“히엣?! 무, 무슨 소리야 미친! 마,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눈을 반쯤 뜨고 놀리는 듯한 말투로 살짝 떠보는 유진이.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미래는 퍼뜩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친다. 어찌나 목소리가 우렁찬 지 다른 애들이 힐끔 쳐다볼 정도.



“어머? 너무 대놓고 티 내니까 읽을 필요도 없는데. 웅도는 아닐테구. 설마, 다른 애?”

“……아니거든!! 시끄러!! 으아아아앙!!”

“허허허. 이건 뭐 대놓고 광고를 하네.”

“흐흥, 귀엽잖아?”

“아니라까아아─! 빼애애애액!!”



지레짐작이지만 적중률 100%를 자랑하는 유진이의 정곡 찌르기. 유진이가 용하다기보단 미래가 너무 뻔히 드러나 보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미래는 발악하며 소리를 지른다. 나도 어이가 없어 허허 웃으며 대답한다. 미래의 발악에 더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교실로 돌아온다.




--




“뭐해? 밥 먹으러 가자.”

“후후후. 있잖아. 우리 미행하지 않을래?”

“미행?”



점심시간, 유진이와 미래, 민서 반으로 갔다. 평소라면 애들이 먼저 찾아올 텐데, 영 오질 않아 셋이서 데리러 갔다. 교실에 들어온 우리를 보고 싱긋 웃으며 나에게 말하는 유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봐봐. 누구 없지 않아?”

“미래?”

“응. 정~말 이상하지 않아?”

“어디 갔는데?”



유진이는 두 팔을 들며 빙그시 웃으며 말한다. 유진이, 민서. 미래가 없다. 바로 대답하니 유진이는 은근한 표정으로 눈을 찡긋 하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아까 그 당혹스러워하는 미래의 모습과 상황과 연동되는 부분인 건가, 지금 이 상황은.



“휴대폰 보고 황급히 나갔는데. ‘나 오늘 점심 따로 먹어!’ 하면서. 나는 미래랑 친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겠지만. 미래, 딱히 점심 같이 먹을 만한 친구 있어?”

“……좀 씁쓸하지만, 없지. 확실히. 다른 아는 거 있어? 성빈이나 희세 너희는?”

“없어.”

“미래…… 딱히, 다른 친구랑 노는 건 못 봤는데.”

“그렇다면~ 후후후.”



유진이는 추리하는 탐정이라도 된 양 엄지와 검지를 턱에 대고 말한다. 나와 희세, 성빈이의 대답에 실마리를 찾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사악한 미소를 띤다. 유진이가 이러면 꽤 무섭다. 또 어떤 사악한 계략을 짤 것만 같아서. 예전 일이긴 하지만.



“예상이긴 하지만, 아까 찔러서 반응 나오기도 했지만, 혹시, 남자애 만나는 거 아닐까?!”



유진이는 악마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추리를 모두에게 말한다. 저런 표정은, 이런 장난은 확실히 미래의 포지션인데. 지금은 미래가 당하는구나.



“에에?! 미래가…… 남자애를?”



성빈이의 지극히 당연한 반응. 나도 같은 생각인데. 미래가 남자라니.



“전혀 상상이 안 가는데.”



냉정한 희세의 대답. 나만큼이나 희세도 미래를 오래 봐 왔으니까. 하긴, 누구라도 전혀 상상이 안 가는 게 맞겠다.



“전혀 상상이 안 가니까 재미있을 거 같잖아!”

“그, 그치만, 미행하는 건 조금…… 안 되지 않을까?”



악동같은 천연덕스런 미소를 띠고 말하는 유진이. 확실히, 구미가 당기긴 한다. 민서의 조심스런 표정과 대답에 양심이 조금 찔린다.



“뭐, 한 번 미행해보고 남자 아니면 바로 돌아오면 되지 않을까.”

“응, 그러면 되겠네. 찬성하는 사람~?”

“…….”



내 말에 유진이는 격한 공감을 표하는 고개 끄덕임을 보여준다. 그러더니 애들을 쭉 둘러보며 묻는다. 무언의 압박이랄까. 나는 뭐, 저런 의견을 제시한 시점에서 이미 암묵적 동의이고. 서로 눈치를 살피는 성빈이와 민서. 희세가 먼저, 가만히 ‘찬성.’ 하고 말한다. 흠칫 놀라는 성빈이와 민서를 보고, 희세는 씨익 웃으며 ‘재미있을 것 같잖아.’ 하고 속삭인다.


나머지는 뭐, 군중심리랄까. 5명 중 3명이 찬성했으니 그냥 먹고 들어가는 거지. 군중심리가 이렇게 무섭구나. 유진이의 선동에 휘말린 우리 다섯 명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점심이고 나발이고 미래의 흔적을 캐기 위해 바삐 움직일 따름이다.





“어, 저기!”

“쉬잇! 후우, 들킬 뻔 했잖아.”

“……이건 스킨십이에요? 이제 사귀는 거에요, 저희?”

“아니거든! 목소리 낮추고!”



미래를 발견하고 꽤 높은 톤으로 큰 목소리로 발견한 사실을 알리는 시아. 용케 미래를 찾은 건 대견하지만 큰 소리로 말하는 건 미스. 들키잖아! 황급히 시아의 입을 텁 손으로 막고 귀에 속삭였다. 뒤돌아 나를 보며 은밀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시아. 이런 와중에도 그 놈의 사귀는 거 얘기냐. 얘한테는 무서워서 뭘 못 하겠네.


시아에게까지 말해서 여섯 명이 된 우리. 미행하기에는 굉장히 부적합한 대인원 같다만. 여기에 리유까지 부르면 어마어마한 대인원이 되겠지만. 리유는 학교에 안 나왔으니까, 따로 부르지는 않았다. 집에서 나오는 동안 미행 끝나겠다야. 요즘 리유는 자유인이라, 자기 놀러 나오고 싶을 때 학교로 놀러 오는 편이니까.



“남자다!”

“진짜진짜!”

“사귀는 건가요?”

“우리도 자세히는 몰라.”

“야, 이렇게 수다떨면 다 들키겠다. 전부 쉿.”



희세와 유진이, 성빈이까지 합세해서 모퉁이에 숨은 채로 속닥인다. 작은 목소리지만 뭔가 웅성거리는 어수선한 분위기. 내 주의에 다들 입을 다물고 숨을 죽인다.


학교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 골목길이다. 거기에, 미래는 어떤 남자애와 마주한 채 서 있다. 마악 만났는지 적막한 분위기. 미래는 안절부절 못 하며 남자애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 한다. 오, 정말 유진이 말대로 남자애를 만나는 건가.



“나와줬네.”

“……네.”

“아핫, 동갑인데 왜 존댓말 써.”

“……응.”



주위는 적막하고 조용하여 우리 모두 입을 다물고 있으니 나지막한 남자애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 미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흠, 1년 이상 미래를 봐 온 내가 파악할 때, 지금 미래는 상당히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남자애는 생각보다 훈훈하게 생긴, 일반적인 고등학생. 교복을 보아하니 이웃 남고의 학생 같다. 정작 남고지만 나는 전혀 모르는 녀석이지만. 크윽, 나 ‘여고생’이잖아. 그러고보니까 그렇네? 난 여고생이냐 남고생이냐?! 고등학교는 ‘여고’니까 ‘여고생’인가. 아니면 생물학적으로 남자니까 ‘남고’생이냐. 2년동안 다녔는데 모르겠어! 이제야 찾아온 정체성 혼돈. 아니, 지금 중요한 게 이게 아니지.


슬쩍 애들을 쳐다보니 무슨 명작 영화라도 보는 듯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본다. 하긴, 나도 이런 상황이 굉장히 흥미진진한데. 다시금 미래와 남자애를 쳐다본다.



“소개 받고, 음…… 많이 생각나서. 톡도 많이 하고 그랬는데 생각보다 대답을 많이 안 해줘서…… 나, 별로야?”

“아, 아,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그…… 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 몰라서…… 그! 남자애랑은! 따, 딱히 얘기해본 적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여자애랑 얘기해본 적도 딱히 없겠지. 뭔가 서글픈데. 아니 뭐, 남자애랑은 얘기 많이 하고 있지. 나 있잖아. 뭐, ‘톡’으로 제한해본다면 그게 사실이기도 하지. 미래가 톡을 하는 건 단체 톡방에 가끔 개드립 치는 거 외엔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적이 없으니까.


남자애의 말에 미래는 잔뜩 당황해서 말한다. 얼굴이 새빨개진 게 멀리서도 확연하게 보인다. 저렇게 허둥대는 미래, 처음 보는 것 같다. 늘 실실 웃으며 구태의연한 모습의 미래만 봐 왔는데. 굉장히 신선하고 귀여운데.



“좋아해. 사귀자.”

“!!!”

“!!!”

“!!!”



잠시동안 그런 미래를 쳐다보던 남자애. 대뜸 믿음직하고 멋진 목소리로, 떨리지도 않는 태도로 말한다. 흠칫 놀라는 미래. 흠칫 놀라는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질 것 같다.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놀라는 다른 애들. 유진이는 눈이 커졌고, 성빈이는 깜짝 놀라 쪼그리고 앉은 채 뒤로 살짝 넘어질 뻔했다. 민서도 성빈이 따라 넘어질 뻔 하다 땅을 짚고 간신히 버틴다. 희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입을 가리고 뚫어져라 남자애와 미래를 쳐다본다.


나도 흠칫 놀랐다. 저렇게 밑도끝도 없이, 맥락도 없이 멋있게 고백할 수 있다니. 멋있잖아, 저 녀석! 떨리지도 않나?! 여자애가 자기 좋아하는 거 알아도 한 마디 말도 못하는 병X같은 어떤 여고 다니는 남자애보다 100만 배 낫잖아! ……자아성찰이 너무 뼈아프구나. 아니, 딱히 내 얘긴 아니지만. 화자인 ‘나’에게 하는 말이겠지. ‘나’야.



“……아, 그, 어…… 어, 후우, 으…….”

“……바로 대답 못 해주겠어?”

“……어어, 응, 으우…… 응.”



미래는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얼굴은 모든 피가 다 몰린 것처럼 새빨개져서, 손은 안절부절 못하며 어떻게 대답은 못 하고 신음 같은 소리만 내며 허둥대고 있다. 남자애는 그런 미래를 묵묵히 쳐다보다 묻는다. 여전히 허둥대며 겨우 대답하는 미래. 확실히, 저런 식의 뜬금없는 고백에는 대답하기 굉장히 애매하겠지. 무엇보다 그런 쪽에는 아무런 면역도 없는 미래니까. ……근데 그 미래가, 나한테 고백했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 기분 탓이겠지.



“그러면, 이번 주 주말에…… 먼저, 데이트…… 해줄 수 있겠어? 토요일에.”

“……어, 응…… 어어. 어어어 언제?”

“토요일 아침에 볼래? 음, 10시 정도? 별 건 아니고, 영화 보고 점심 먹고 그럴까 해서.”

“어어, 응, 응, 나, 주, 주말에는 이, 잉여인간, 이니까, 응, 평소에도 잉여, 인간이야. 하핳, 흐헣, 으우.”



남자애는 심각하게 고민하다 말을 꺼낸다. 저 녀석, 엄청난 녀석이네. 이런 상황에서도 별로 부끄럽지 않은지 담담한 투야. 정말 본받고 싶은 멘탈이다. 반면 미래는 완전히 멘탈이 붕괴되어 고장난 로봇처럼 더듬거린다. 뭔가 드립 같이 치다가 더 부끄러워져서 말을 못 잇고 웃는다. 그러다가 또 부끄러워서 그런지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떨군다.



“……그럼, 그 때 볼게. 지금은, 좀 너무 정신없어 보이니까. 학교까지 데려다줄까?”

“아, 아, 아니야! 혼자 갈 수 있어! 아핳! 갈게! 나, 갈게!”



원래는 같이 점심을 먹을 예정이었나보다. 하지만 저런 상태의 미래를 데리고 점심을 먹는다면 미래, 진짜 고장나버릴지도 모르니까. 나와 같은 판단을 했는지 남자애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한다. 흠칫 놀라는 미래. 다급하게 말하더니 양 손을 격하게 흔들며 얼른 자리에서 벗어나려 한다. 남자애와 같이 학교 앞에 왔다가 다른 애들하고 혹여 마주칠까 두려운 모양. 황급히 인사를 채 받지도 못한 남자애를 뒤로 하고 뒤돌아 얼른 뛰어가는 미래.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

“……아하하.”



뛰어가며 모퉁이를 지나치는 미래. 문득 엉거주춤하게 벽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6명의 아리따운 인원들과 마주친다. 왜 하필 도망쳐도 이쪽으로 온 걸까. 미래는 뛰다 말고 눈이 엄청 커졌다.



“……보, 봐, 봤어?!”

“아…… 그렇네.”



더듬거리며, 여전히 붕괴된 멘탈인 채 묻는 미래.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유진이 쪽으로 돌린다.



“음─ 따, 딱히 남자애랑 있는 거는─ 못 본 것 같기도 하고?”



애써 미래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하는 유진이. 대놓고 봤다는 말이잖아.



“머, 멋있다, 고백하는 거.”



민서는 입을 가리고 말한다. 얼굴이 빨개진 게 퍽 소녀틱하다. 근데 이제는 대놓고 말해버리잖아, 고백한 걸 지켜본 걸.



“사귀는 건가요?”



시아는 오로지 사귀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굳이 나한테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구나. 하긴, 뭐 저거는 완벽하게 사귀는 각(?)이니까. 정황 상.


“……칫. 누구는 바보 멍충인데.”



희세는 이 와중에 고백 못 하는 누군가를 돌려 깐다. 아, 그 새X 누구야! 어떤 바보 멍충이야! ……칫. 나도 부럽다고, 저런 고백하는 남자애는. 내가 여자애여도 덜컥 ‘어맛 멋진 남자!’ 하면서 사귀겠다. 생긴 것도 꽤 훈훈했고.



“……흑!”

“야야야야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하다, 우리가 잘못했다.”

“……흣, 흡, 으으으……!”



빨개진 얼굴 그대로, 울음이 차오르는 미래.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양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흐른다. 급격히 당황한 나. 얼른 엉거주춤한 몸을 일으켜 미래에게 다가가 어깨를 토닥여준다. 그러면서도 남자애가 혹시라도 달려올까봐 주위를 경계한다. 만약에 미래에게 고백했던 남자애가 이 기묘한 상황을 보면 단숨에 주먹을 나에게 날릴 거잖아. 내가 울린 것처럼 되니까. 뭐, 정확하게는 ‘우리’가 울린 거지만. 다행히 남자애는 터덜터덜 저 멀리 걸어가고 있다.



“아아, 어떡하지.”

“왜 미행을 해서 미래 기를 죽여!”

“아니 처음에 제안한 건 너잖아!”

“‘미행 해보고’라고 말한 건 누군데에!”



난처한 표정의 나를 보고 얼른 책임회피를 하는 유진이. 와, 얘 좀 보소. 과연 계략과 잔머리의 채유진이구먼. 누가 먼저 하자고 선동했는데 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하다니. 내 대답에 유진이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대답한다. 와, 진짜! 분명히 유진이가 먼저 하자고 했다고!



“어휴, 지금 싸울 때가 아니잖아. 미안해, 미래야. 친하다지만 너무, 민감한 장면인데. 미안, 미안.”

“……아, 아으, 나, 으으 어떡해? 어떡해?! 뭐야 쟤, 왜, 왜왜왜 나같은 거한테?! 어떡해야 해?! 뭐야뭐 나 어떡해야 해!”



희세는 어른스럽게 나와 유진이를 꾸짖으며 미래를 토닥여준다. 미래는 희세 품에 안겼다가 금세 울음을 그치고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더듬거린다. 여간 멘탈이 붕괴된 게 아닌 모양이다. 이만큼이나 허둥대는 미래는 본 적이 없다. 고개는 절레절레, 눈은 데굴데굴, 손발은 안절부절. 진짜 저런 게 멘탈붕괴구나. 희세와 성빈이는 그런 미래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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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13화 - 2 +2 15.11.20 787 17 20쪽
197 13화. 기말고사 치고는 너무 밝은 거 아닙니까?! +9 15.11.19 867 19 20쪽
196 촬영은 다시. +8 15.11.17 703 13 15쪽
195 촬영이 끝나고 난 뒤 ----- 휴재 +10 15.10.17 916 17 19쪽
194 -동결- +8 15.10.15 849 12 1쪽
193 12화 - 4 +10 15.10.14 982 18 25쪽
192 12화 - 3 +8 15.10.13 862 17 18쪽
191 12화 - 2 +10 15.10.12 839 17 20쪽
190 12화. 먹어 줘! +12 15.10.10 999 2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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