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특집 번외편 - 3
‘띵동.’
「뭐야. 벌써 왔어?」
“아니, 왜 빨리 와도 뭐라 그래. 빨리 보고 싶어서 빨리 왔구만.”
「알았어, 한 대 치겠다?!」
초인종을 누르고, 심드렁한 그녀의 말을 힘들이지 않고 받아친다 피식 웃으며 신경질 내는 그녀. 곹 철컥, 문이 열린다. 꽤나 오랜기곤, 나와 그녀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유지됐으니까. 친한거지, 이런 거 보면? 아니면 그냥 나 싫어하는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희세는 나, 되게 좋아하거든.
“오늘도 예쁘네, 희세는.”
“……어디서 개수작이야.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그냥 예쁜 걸 예쁘다고 한 건데 왜!”
편한 옷차림의 희세. 집에서 입는 펑퍼짐한 옷을 입어도, 희세는 빛이 나는 듯 예쁘고 음란(?)하다. 아니, 옷을 편한 걸 입는다고 가슴이 작아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 내 칭찬에 희세는 미동도 않고 시큰둥한 반응으로 말한다. 예전 같으면 되게 부끄러워하거나 츤츤대거나 하는 반응을 보였을 텐데. 나나 희세나 서로의 드립과 대화 패턴에 너무 익숙해졌다.
“왜 왔어.”
“네가 불렀잖아. 집에서 데이트 하자고.”
“시, 시끄러.”
심드렁한 내 대답에 희세는 일순간 할 말을 잊었다. 분명 어제 저녁 야자 끝나고 돌아갈 때, 희세가 먼저 ‘내일 우리집에서 놀자. 집에서 데이트.’하고 기분 좋은 듯이 말했는데. 아침이라 저기압인가?
“앗, 나쁜 오빠다!!”
“월!”
“희나 오래간만이네. 오빠 나쁜오빠 아닌데?”
“흥흥! 나쁜 오빠 맞으면서!”
방에서 쪼르르 나오는 희나와 케이나인. 여전히 귀여운 희나와, 여전히 듬직한 케이나인. 희나가 나한테 이렇게 뾰로통해선 뻗대는 건 예전에 희세랑 약속 불발 됐을 때의 일 때문이겠지. 일이 꼬여서 희세랑 못 놀았는데, 그 날 저녁 희나가 방까지 찾아와서 ‘우리 언니 울리지 마요!’ 하고 따졌으니. 그 언니에 그 동생이랄까. 기개와 패기가 넘쳐. 어린데도.
“오늘, 별다른 일 없지?”
“별다른 일이 있었다면 여길 안 오고 그 별다른 일을 했겠ㅈ─”
“시끄럽고, 어쨌든 별 일 없는거지?”
“……네.”
희세의 질문에 대답하다 도중에 끊긴다. 물어보길래 대답하는 건데 어째서. 주저리 주저리 말하는 내 스타일을 싫어하는 희세인지라 늘 이런 대화패턴이지만 또 늘 삐치는 게 나다. 아무리 여자친구라지만, 저런 태클은 사람 팍 무시하는 것 같잖아.
“그럼 오늘 늦게까지 놀다 가. ……뭣하면 자고 가도 되고.”
“어…… 드디어 부모님이 합방해도 된다는 싸인을 보내준 부분입니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아니라, 오늘은 늦게까지 안 자야 하니까. 어차피 너 자취니까 아무 상관 없잖아.”
희세는 힐끔 나를 쳐다보며 볼멘소리로 말한다. 잠시동안 그 말의 진의를 파악해보는 나. 이내 드립을 친다. 여자친구네 놀러 갔는데 여자친구 쪽에서 먼저 늦게 가라고 하다니. 희세 요거요거…… 너무 좋아. 이래서 희세가 좋지. 내 가당찮은 개드립에 희세는 정색하고 대답한다.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2박 3일 여행.”
“금슬 좋으시네.”
“어쩔거야.”
“네, 저야 마나님이 하자면 하잔대로 해야합죠. 응, 뭐. 상관없어.”
이어지는 내 질문에 칼 같이 답하는 희세. 뭐라 태클 걸 껀덕지도 없는 대답인지라 넙죽 고개를 숙이고 대답한다. 혹시 또 모르잖아? 크리스마스고, 분위기에 취하면…… KIA, 분위기에 취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 그거.
후후후. 밍나, 밍나 세─ 무슨 소리야! 고등학생이라고, 나랑 희세는?!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희세가 간편한 옷 입고 있어도 섹시함이 철철 넘쳐서 내 욕정을 들끓게 만들어도! 응? 어쨌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뭐야, 뭘 멍 때리고 있어.”
“아, 아니야. 딱히 야한 생각 했다거나 밤에 있을 일에 대해 혼자 망상하거나 그러지 않았으니까!”
“……하여튼, 틈만 나면. 에휴.”
혼자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고 있으려니 희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얼른 솔직하게 대답. 사실 반쯤은 드립에 가깝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드립, 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희세랑 사귀고 있고, 어느 때보다도 친밀한 사이니까. 이 정도야, 드립으로 넘길 수 있겠지.
활기찬 내 속내에 희세는 금세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아니, 나 변태인 거 몰랐나. 알고 사귄 부분 아닙니까?!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더 변태 같은 생각 하고 싶잖아. 희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간다.
“근데, 왜 늦게까지 놀자는 거야? 늦게까지 뭐 할 거 있어?”
“─크리스마스잖아. 그…… 할 거니까. 스페셜.”
“……???”
그러니까 말이지, 지금 낮인데. 밤까지 놀아도 12시간은 족히 넘을 텐데. 아 뭐, 희세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긴 하지만. 츤츤한 목소리로 매도 당하는 것만으로 가버릴 것 같지만. 아, 집에 가버린다고. 삐쳐서.
내 질문에 희세는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 슬며시 피하는 눈, 흐리는 말끝, 살짝 상기된 볼. 모든 정황이 그런 이상한 쪽으로 돌아가니 나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거, 그거 맞지 그거?!
“……감당할 수 있겠어, 희세야?!”
“무, 무슨…… 왜 이래.”
“우, 우리, 학생이지만, 그…… 학생이지만 사랑만 있으면 상관없잖아?! 희세 네가 그런 각오라면, 나는,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서!!”
“무, 무슨 개소리야! 뭔 이상한 생각 하는데 이 개 변태새꺄!!”
잔뜩 흥분한 나. 긴장한 말투로 희세의 양 쪽 팔을 붙들고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얼마나 기쁜가! 크리스마스에, 여자친구랑, 그그그─(?)! 난 살아있다! 살아있다고! 이 니X미 시X럴 것들아! I just had se──!!
그러나 내가 그걸 하는 일은 없었다. 희세와의 대화에서 모든 힘을 소진한 나는 이어지는 3회전에서 거짓말처럼…… 3회전은 뭔데, 세 번 하는 거냐. 그러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희세에게 잔뜩 폭행 당하고 잔뜩 짓밟힐 뿐이다. 좀 더 밟아줘, 좀 더 매도해 줘. ……아아, 정신 차려야지. 진짜 기분 좋은 것 같으니까. 위험하잖아. 진성변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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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 희나도 보는데.”
“아─!?”
“아─ 음. 맛있네.”
늦은 점심. 손수 만든 떡볶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나에게 내미는 희세. 나는 80년대 아저씨가 되어 보수적인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대답한다. 괜히 희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어린애의 눈은 무서우니까. 실제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잔뜩 기대하며 쳐다보고 있으니까, 희나. 내 첫 번의 거절에 희세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힘주어 말한다. 거부할 수 없는 희세의 압박에 입을 벌린다. ‘우왕!’ 하며 좋아하는 희나. 괜히 부끄럽다.
“맛있으면, 나 칭찬해 줘.”
“뭐, 왜, 너 버그 걸렸어. 왜 이래, 천하의 나희세가.”
“……해달라면 해 줘!”
“아, 알았슈.”
내 입에 떡볶이를 넣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는 희세. 희세답지 않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뭐…… 라고?! 에, 뭐라고? 천하의 나희세 씨가 ‘칭찬’을, 그것도 ‘직접’ 요구한다구요? 그·천·하·의·나·희·세·씨·가.
저기, 나희세 씨 자리비움 상태 해놓고 정리유 씨가 부계정으로 접속하셨나요? 얼씨구, 이어지는 생떼까지. 내가 아는 신여성 페미니스트 나희세 씨가 분명 아닌 것 같은데. 당황스럽지만 어쩌겠는가, 여자친구가 해 달라는데. 별이라도 따다 드려야지, 하물며 칭찬 정도야. 어화둥둥 내 여자친군데.
“자, 잘했다아. 희세 우리 엄마보다 요리 잘하니까. 맛있어, 고마워.”
“응! 히힛.”
“……!”
희세 머리를 쓰담쓰담. 결이 좋은 머리카락을 느끼고. 주절거리는 건 내 성격. 희세는 정말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방긋 아이처럼 웃는다.
쿨럭. 뿅가죽네! 희세가 저런 얼굴 할 수 있었다니! 희나가 성장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은 듯한, 완전무결한 미소……! 희세, 네가 다 해 먹어라. 예쁜 거, 섹시한 거, 도도한 거, 진지한 거, 거기에 귀여운 것까지. 내 여자친구지만 너무 귀여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 이거, 아직도 하는구나. ”
“‘아직도’라니! 50주년 넘어서도 엄청 잘 나가고 있거든?! 오늘 스페셜 하니까, 너도 같이 정주행 해. 그래야 같이 볼 거 아니야.”
“네, 넵.”
점심을 먹고나서는 뻔하게 이어지는 DVD 시청. 희세, ‘그 드라마’ 광팬이니까. 예전에 희세네 놀러왔을 때에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그 드라마 몇 편이나 봤는데. 오늘도 그렇게 될 거 같다. 뭐,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막 드라마만 보는 게 아니라 과자도 먹고 희세랑 얘기도 하고 그러긴 하지만. 물론 말 많이 하면 ‘시끄러.’ 하면서 드라마에 집중하는 희세지만.
“크리스마스 스페셜인 뭔데.”
“9월 즈음부터 정규 시즌 드라마 하는데. 12화 정도가 한 시즌이거든. 저저번 시즌은 파트 1 파트 2 나눠서 방영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고 스페셜이 두 편 있는데, 크리스마스 스페셜하고 부활절 스페셜하고─”
“……하하.”
한 마디 잘못 꺼냈다가 줄창 이어지는 희세의 설명을 듣는다. 내가 저렇게 길게 말하면 대번에 끊어버리면서. 하지만 잔뜩 열중해서 설명하는 희세가 귀여워서 어떻게 끊을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것도, 일종의 오타쿠인데. 희세가 하니까 귀엽기만 하다. 외모지상주의가 판을 치는구나.
“그래서, 그 크리스마스 스페셜이 언제 하는데?”
“영국 시간으로…… 음…… 시차가 있으니까. 우리나라 시간으론 대충 새벽 2시 30분? 3시?”
“프리미어 리그냐?! 왜 영국은 새벽에 드라마해요! 너무 늦잖아, 거의 밤샘이잖아!”
“어쩌겠어. 난 꼭 실시간으로 봐야겠는걸. 조용히 하고 이번 시즌 정주행이나 해. 부지런히 봐야 이번 시즌 다 보니까.”
“으으으…….”
아니, 그러면 그냥 혼자 보면 될 거 가지고 왜! 그런 늦은 시간까지 게임도 못 하고 여자친구랑 있는 건……! 아니, 나쁜 건 아닌데. 싫은 건 아닌데. 이 드라마 보면서 그렇게까지 버티라는 건 좀…… 신음하는 나를 보며 ‘싫어?!’ 하는 희세를 보니 저항할 기력도 없다. ‘아니야, 드라마 보자.’ 하고 대답한다.
“……응?”
“헤헤헷.”
“흐흥.”
몇 시간이나 드라마를 봤을까. 벌써 어둑어둑, 저녁이 되고 있다. 중간중간 과일도 가져다 먹고 지금은 감자칩을 사다 먹으며 보고 있다. 억지로 보는 드라마, 어차피 보니까 그냥 보는데 생각 외로 재미있어서 즐겁게 보고 있다. 문득 내 쪽으로 몸을 밀어 붙이며 붙는 희세. 의아해서 쳐다보니 아까 점심 먹을 때 보여준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이는 희세. 귀여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더욱 좋아한다.
“왜 이렇게 애교 떨어? 희세답지 않게.”
“아~”
“자.”
‘와작.’
잠자코 물어본다. 혹시라도 역린을 건드리는 게 아닌가 하고 뒤가 서늘하긴 하지만. 희세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쩍 벌린다. 과자를 달라는 건가. 감자칩을 집어 희세 입에 넣어준다. 맛나게 먹는 희세. 과자 먹는 것도 예쁘네, 희세는.
“왜, 나는 귀여우면 안 돼?”
“아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한테만큼은 귀여워도 되잖아? 여자친구인데.”
“……아유, 왜 이렇게 귀여워 오늘!”
“아핳! 간지러어! 아, 어디만져!”
새침하게 흘겨보는 눈으로 나를 보며 말하는 희세. 당혹스러워 얼른 대답한다. 귀여워도 되죠, 물론! 고백하듯 넌지시 말하는 희세. 그 모습이 정말, 너무 귀여워서 충동적으로 희세를 꼬옥 껴안으며 말했다. 쇼파에 애매하게 기대 앉은 자세라 안기가 애매하다. 희세는 꺄르륵 웃으며 내 손길을 거부한다.
“……희세야.”
“……응.”
문득 눈이 마주친 나와 희세. 진지한 표정으로 희세를 쳐다본다. 괜히 이름도 불러본다. 마찬가지로 엄숙한 표정이 된 희세.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천천히, 희세에게 다가간다. 살며시 눈을 감는 희세.
“……흡.”
“……읏.”
이어지는 키스. 단순히 입을 맞추는 게 아니라, 굉장히 끈적하게, 혀와 혀가 얽히는 진한 키스. 이런 건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 건가 싶은데, 그냥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이렇게 하게 된다.
솔직히, 잔뜩 야한 기분이 됐다. 크리스마스에, 저녁이고, 여자친구랑 단 둘이 있는 데에서 키스하고 있으면, 어떤 남자가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겠어. 패기 있게 손을 들어 살며시, 한 쪽 손은 허리에, 한 쪽 손은 가슴에 가져다댄다. 움찔 살짝 놀라는 희세. 그 이상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음미하듯 만진다.
“……후으, 하앗…….”
“……으흣……!”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흥분이 고조되는 나. 갈증이 나는데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해소되지 않고 더욱 텐션이 오르기만 한다. 그래, 이 괴로운 것을 떨쳐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키스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계속 희세를 밀게 돼서 어느새 내가 희세의 위에서 덮치고 있는 것처럼 됐다. 그 상태로도 한동안 계속 진한 키스를 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거친 호흡과 신음. 마찬가지의 희세. 온 몸에서 열이 나는 듯하다.
“……자, 잠깐……!”
“……응!?”
“……아, 안 돼, 여기까진.”
“……어, 어! 어어, 응…….”
내친 김에 더욱 과감하게 뻗어가는 손. 마치 전세계 땅끝까지 과감히 식민지를 넓히던 영국처럼, 내 손은 기어이 가장 은밀하고 소중한 그 곳까지 가려 한다. 움찔 몸을 일으키는 희세.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급격하게 돌아오는 이성. 온몸으로 느껴지는 수치심. 당혹스러움. 부끄러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하지만 이미 너무나 창피해 어떻게 희세를 볼 수도 없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 얼른 희세를 덮친 자세에서 벗어나 바로한다.
“……희, 희나 있으니까…….”
“……어, 미, 미안. 내가, 너무…… 그…… 하아. 자,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응.”
잔뜩 빨개진 얼굴의 희세. 파르르 떠는 입술로 간신히 입을 뗀다. 나는 죄인이 되어, 어떻게 잘 대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 몸에서 열이 훅훅 난다. 지금의 나는 그야말로 인간화력발전소다. 고개를 처박고 땅을 보다 고개를 쳐들고 천장을 보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아아──!!! 쪽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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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하겠다!”
“……응헝. 어, 하는구나.”
2시가 훌쩍 넘은 밤. 게임을 한다면 그 시간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새벽을 지세우기란 힘든 법. 아까 저녁에 희세랑 그렇게 하고선 어색해서 어떻게 서로 얼굴도 못 보고 말도 제대로 못 했으니까. 못할 짓을 한 것까진 아니지만, 되게 의기소침해졌으니까.
희세의 나지막한 말에 흠칫 놀라 잠에서 깼다. 살짝 잠들었던 모양. 희세는 TV와 연결된 노트북을 조정한다. 영국 방송을 직접 생방송으로 보겠다는 희세의 강렬한 의지가 담긴 모습. 네 발로 걷는 동물처럼 무릎을 땅에 짚고 노트북을 조정하는 희세. ……엉덩이.
“?!”
“……만지고 싶어.”
“……벼, 변태야.”
“지금은 희나 자잖아.”
“그,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아~!”
두 손에 가득 들어오는, 말캉말캉한 느낌. 이른 새벽이라 머릿속의 나사가 하나 빠져버렸나,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엄청 당당한 변태가 된 나. 희세의 엉덩이를 양껏 만지다가 희세에게 뒤돌려차기를 당한다. 그러고도 나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나지막이 말한다. 잔뜩 당황하는 희세. 내 뻔뻔한 대답에 잔뜩 소리친다.
“……그, 그럼, 아, 아까처럼, 분위기라도! 제, 제대로 잡던가.”
“……그럼 아까처럼 그러는 거야.”
“……뭐! 지금은 희나 자니까! 후읏…… 으핫?!”
부끄러워하는 희세. 아까 전의 어색한 상황이 방금 전처럼 떠올라 나는 냉큼 대답했다. 입술을 깨물며 말하는 희세.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다시금, 희세의 입술을 덮쳤다. 움찔 놀라는 희세. 아까보다 더 격렬하게, 못다한 키스를 이었다.
“조, 조금만 천천히……!”
“으, 응…….”
“……사랑해?”
“어어, 사랑해.”
“……읏.”
이번엔 진짜다. 더는 돌이킬 수 없다. 잔뜩 흥분해서 급히 희세의 웃옷을 벗기니 희세는 어쩔 줄 몰라하며 말한다. 속옷만 입고 있는 희세. 눈부신 흰 피부는 부끄러운지 살짝 붉은 빛이 돈다. 손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다시금 희세를 꼬옥 껴안는다. ‘사랑해’ 라는 희세의 말에 더 이성의 끈이 끊어져버릴 것 같다. 젠장, 너무 사랑스럽잖아!
하.
하앗.
으헉.
잠깐만.
뭐야 이거.
아으우우우으어어어…… 으힉?!
우앗 진짜 진짜 진짜 잠깐만!?
……아!
“저번 크리스마스 때엔 끝까지 안 했었잖아.”
“……그거 기억 나? 너 만취했었잖아.”
“흐흐흥. 다 기억 나지.”
“아…… 하하.”
“어쨌든, 이제 책임져.”
“넵. 결혼까지 생각할 게요.”
“아! 스페셜 못 봤잖아! 아 짜증나! 이게 뭐야!”
“……대신 이걸 스페셜로 했잖아. 그건 다운받아서 볼 수 있잖아.”
“……아 몰라! 작년에도 못 봤는데에!”
- 작가의말
......이게 크리스마스 특집이 돼야 할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죠.
그보다 이거, 하나도 안 야하죠?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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