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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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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5.12.1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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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5화 - 5

DUMMY

“으음…….”

“일어나.”



아침에 눈을 뜰 때, 되게 졸리고 피곤하고 결코 일어나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전날 충분히 자지 않았다면 이런 느낌이 드는데. 돌아누워 눈 감으면 그대로 다시 잠들 것 같은, 무척 피곤한 느낌. 그걸 노련하게 다시금 깨우는 희세. 아침에 날 깨워주는 희세는 적어도 우리 엄마보다 더 스킬이 많으니까. 내 볼을 세게 꼬집으며 낮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으응. 아침부터 되게 부지런하구나. 여행 왔는데도.”

“이모님이 아침 안 먹냐고 여쭤보시니까. 다 일어났거든. 너 빼고.”

“아 진짜. 일어나야겠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간신히 희세를 보고 말했다. 어제 담력체험인지 뭔지 한다고 그 이상한 짓을 하고선 늦게 잤으니 일어나기 힘들 수밖에. 근데 여자애들은 왜 이렇게 부지런한지,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났구나. 희세의 볼멘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린다. 아침부터 뭘 이렇게 부산하게 움직이나 싶은데.





“바다다! 아핳! 막 이래!”

“흐음.”



눈 앞에 펼쳐진 눈부신 바다. 어제 성빈이와 봤었던 그 바다인데. 밤에 보는 거랑 날이 밝고 아침에 보는 거랑 또 느낌이 다르구먼. 바다에 놀러온 지 하루만에 기어이 바다에 왔구나. 뭔가 순서가 이상하긴 하지만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바다에 온 게 어디야. 이제 놀면 되니까. 지나간 시간은 미련을 가지지 말고.


아침을 챙겨주신 이모님. 이어서 자동차로 우릴 바닷가까지 데려다주신다. 되게 고마운데. ……차는 5인승인데 사람은 8명이라 미친 듯이 꾹꾹 눌려서 압축되어서 온 건 그다지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자! 다들 벗긔벗긔!”

“미, 미친년아?!”

“에헷☆ 갑자기 벗는 정신나간 여자애인줄 알았나요? 유감이네요! 안에 수영복 입고 왔답니다!”



갑자기 옷을 훌쩍 벗어 던지는 미래. 흠칫 놀라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나도 남사스럽지만 무엇보다 다른 애들이 다 보고 있는 앞에서 뭘 하는 거야. 나는 둘째로 치고─둘째로 치면 안 되고 남자애 앞이라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은데.─ 아무리 같은 여자애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부끄러움이란 게 없는 거냐, 근미래 이 녀석은!



“초, 초등학생이냐!”

“제 몸매가 초등학생이라구요?! 이래봬도 작년보단 좀 커진 것 같은데에! 이게 어떻게 초등학생이에요! 이만큼 있는데??”

“왜 혼자 제발 저리는데!! 아 진짜…… 여자애면 좀 부끄러워하고 그래라 좀!!”



이어지는 드립 연타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얘는 대체…… 가면 갈수록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뭐, 당당하게 가슴을 앞으로 내민만큼 작년보다는 확실히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 것 같은데. 확실히 초등학생 가슴은 아니다. 작년까진 유아체형이었는데. 침착맨한테 사랑 받아서(?) 그런가. 최근에.



“자, 오빠는 트렁크에서 파라솔이랑 돗자리 꺼내서 세팅이나 하세요! 여자애들은 할 게 많으니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미래의 말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따른다. 이런 건 남자의 역할이지. 난 뭐, 수영복도 안 가져왔고, 입고 있는 반팔 반바지 그대로 물에 들어갈 거니까. 여자애들은 삼삼오오 공중화장실로 간다. 아무리 수영복을 안에 입고 왔어도 미래처럼 바깥에서 벗기엔 좀 그렇잖아. 선크림 같은 걸 바를 수도 있으니. 남자는 선크림 따위 바르지 않는다!



‘퍼석.’

“아. 낙원이 따로 없구먼.”



패기 있게 파라솔을 땅에 꽂고 적절한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바로 눕는다. 조금 습하지만 나름대로 시원한 바닷바람. 햇살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강렬하지만 파라솔이 막아주니 무슨 걱정이 있으랴.



“와! 나도 누울래!”

“남자애 옆에 여자애가 함부로 눕는 거 아니다?”

“흥흥! 그러는 웅이는 여기저기 다른 여자애들이랑 함부로 같이 누워 있었으면서─?”

“내, 내가 언제?! 게다가 말이 되게 이상하다?!”

“흥흥~”



여전히 귀여운 수영복의 리유. 아마 제일 먼저 ‘다 벗었다!’ 하고 나왔겠지. 미래와는 다르게 작년과 변함없는 몸매. Aㅏ…… 성장이 끝났구나, 리유는. 이게 끝이구나. 뭐, 나쁘지 않지. 내 옆에 눕는 리유에게 은근슬쩍 장난을 걸었다 본전도 못 찾고 잔뜩 털린다.



“이, 이런 거 처음 입어보는데…….”

“민서 수영복 없다길래 같이 가서 샀어. 어때? 귀엽지?”

“어…… 귀엽, 네.”



이어 다가오는 여자애들. 이럴 때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를 모르겠네…… 어유…… 이번 년은 풍년(?)일세 풍년이야.


잔뜩 수줍어하는 민서. 다이어트의 결실을 맺는 민서의 수영복. 민서, 분명 학기 초에 봤을 때의 통통함을 기준으로 한다면 뱃살이 꽤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주 매끈하고 반질반질한 배. 그렇다고 모델처럼 아예 군살 하나 없는 건 아니고, 적당히 통통한 느낌의 매력있는 배. 좀 이기적인 게, 뱃살은 그렇게 잘 빠졌는데 가슴은 그대로. 아니 도리어 주위 살들이 빠지니 더욱 도드라져보이는 기분. 최소 C 이상은 되어 보인다.


여름 분위기 물씬, 푸른색 수영복이 잘 빠진 몸매에 꼭 댄 듯 잘 어울린다. 부끄러워하며 살짝 팔로 가리고 있지만 그것으로 가릴만한 존재감이 아니다. 귀엽다기보단, 압도적인 느낌인데.



“에효. 누구는 좋겠네, 살 빼도 뱃살만 빠지고. 나도 적어도 성빈이 정도는 됐었는데!”

“무, 무슨 소리야…….”



삶에 찌든 듯한 표정으로 민서와 성빈이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하는 유진이. 표범무늬 비키니. 고등학생이 입을 레벨의 수영복은 아닌 것 같은데!? 한 문장의 말로 민서와 성빈이를 둘 다 창피하게 만드는 유진이. 그러니까, 예전에 다이어트 하기 전에는 성빈이급(?)이었단 소리?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것 같은데. 본인은 예전에 본인 입으로 A컵이라고 했었는데. 이런 A컵(?)이면 나는 찬성이오!



“괜찮은 것 같은데. 그렇게 콤플렉스 가질만한 가슴은 아닌 것 같은데.”

“……뭔데 그렇게 빤히 보면서 품평회 여는데? 너 변태야?! 아무리 보이려고 입는 비키니라지만 그렇게 지그시 보면 창피하거든!?”

“아 미, 미안. 콤플렉스구나.”

“아니거든! 남이사 크던 작던 무슨 상관인데?!”



솔직한 감상을 말하니 막상 유진이는 부끄러운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아니, 보여서 본 건데 그게 잘못입니까?! 본인 입으로도 ‘보이려고 입는 비키니’라고 말했잖아! 이거는 뭐 내가 보기만 해도 시선 성추행이라고 뭐라 하겠네. 판사님! 쇤내는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저 왔어요! 수영복차림까지 봤으니 이제 사귀는 거죠?”

“…….”

“에? 왜 말이 없어요.”

“아, 아니야.”

“……변태.”



뒤이어 등장한, 마지막 주자. 끝판왕. 요란하게 말하는 시아와, 옆에서 별 말 없이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희세. 시아가 뭐라고 말하는 건 잘 들리지 않고, 내 시선은 오롯이 희세에게 가 있다. 저…… 저거! 저 압도적 존재감! 보는 것만으로 부피와 중량감이 느껴질 것만 같은, 저거! X불,,,,,, 저거를, 여고생인디,,,,,, 아주 그냥 미춰버리겄네,,,,,,


헛. 잠깐 동안 아저씨가 된 것 같은 느낌이야. 기분 탓이겠지. 어쨌든 보이는 건 희세 수영복 뿐이다. 수영복도 하필이면 빨강색? 주황색? 계통의 야시시한 색깔에 하늘하늘한 프릴 같은 게 달린, 화려하고 예쁜 스타일. 당당한 희세의 분위기에 딱 걸맞는 옷이다. ……그리고 그 덕에 가슴이고 엉덩이고 골반이고 뱃살이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시신경이 캐치하려고 하는데. 말하는 것도 잊고 계속 보게 된다. 어째 작년보다 더 완벽해졌잖아?! 아무리 성장기라지만!



“우우우~ 너무 대놓고 보는 거 아니에요? 오빠는 ‘잠깐’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10초 이상 빤히 쳐다보고 있거든요? 이거 원, 가슴 작은 사람은 서러워서 못 살겠네. 무젖유죄! 유젖무죄!”

“……아, 무, 무슨 소리야! 나는 눈이 멀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거든? 지금도 칠흙같은 어두운 내 앞날 같은 어둠만이 보이는ㄷ─ 아악! 미X년아, 눈을 왜 찔러!”

“진짜 멀어버리라구요, 그 더러운 눈! 몇 명의 가슴을 그 망막에 담았는지.”



미래 말대로, 난 ‘잠깐’동안 빠르게 모든 것을 망막에, 뇌리에 집어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미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들의 시선이 심상찮다. 희세는 잔뜩 얼굴이 빨개져서 팔로 몸을 가리고 있고, 유진이는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민서도 성빈이도 조금 당혹스러운 모양. 미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뒤늦게 변명하는 나에게, 미래는 진짜 실명을 가한다. 아악 내 눈!



“어쨌든, 뭐 서론이 이렇게 길어요. 놀자─! 야~!!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깔깔 까르르!”



손을 쭉 뻗고 자유롭게 바닷가로 달려가는 미래. 리유와 시아와 민서가 같이 쪼르르 달려 나간다. 그 뒤로 희세와 성빈이가 같이 걸어간다. 미래에게 눈이 찔려 시야가 잘 안 보이지만, 그 와중에 눈을 들어 희세와 성빈이와 민서의 뒤태를 뇌리에 잘 새겨넣는다. 아아, 엉덩이 엉덩이 엉덩이…… 아, 안 돼!



“바다 안 들어가?”

“어, 뭐 별로. 좀 더 느긋하게 놀아야지, 어차피 오전 내내 놀 수 있는데. 아무도 없고.”

“그렇네. 우리가 전세낸 것 같아, 바닷가.”



느긋이 바닥에 누워 있으려니 유진이가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말한다. 어째서인지 같이 바닷가로 나가지 않은 유진이. 유진이도 나처럼 움직이는 것보다는 햇빛을 피하는 타입인가.


유진이의 말대로, 바닷가는 되게 한적하다. 미래와 이모님의 설명으로는 아직 개장하지 않은 해수욕장이라는데.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에도 좀 작은 바닷가다. 미래 때문에 낚였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좋네. 호화스럽게 바닷가 전세낸 것처럼 놀 수 있으니.



“!@$^!$!@#$”

“??”

“뭐야?”

“에…… 에?”



조용한 바닷가의 철썩 파도 소리와 여자애들의 깔깔 떠드는 목소리, 바닷바람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굉장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슬쩍 눈을 뜨고 보니 유진이도 의아한 표정.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다. 에…… 뭐야? 이 평화로운 바다에?



“사나이라고 다 같은! 사나이 라더냐! 사나이 중에 사나이! 검은 베레모! 조국을 위해서라면! 불 속도 뛰어들지만! 사랑에는 마음 약한! 검은 베─레─모!”

“…….”

“……몰라 뭐야 저거 무서워.”

“네 미래 아니야?”

“아니거든! 으으…… 맞긴 하지만, 난 저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이어지는 군가. 노래인지 악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러명이 부르지만 의외로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다. 군인, 그것도 해병대인 것 같다. 잔뜩 짧은 머리에, 똑같이 생긴 클론들처럼 웃통을 벗고 바지만 입은 채 열을 맞추어 뛰고 있다. 다들 하나같이 몸이 상당히 좋다. 나 같은 비실비실한 녀석들은 감히 앞에서 가슴도 못 펼 정도로.


군인이니까 여자애들을 보고 헤벌쭉 하기도 하건만 의외로 애들 쪽은 쳐다도 안 보고 직진해서 나아간다. 군인 입장에서는 너무 어린애들로 보이나. ……저게 어딜 봐서 어린 애들이냐?! 특히 희세·민서·성빈이 3대장(?)은 누가 봐도 대학생 이상 급인데!


유진이는 피식 웃으며 깊고 어두운 내 미래를 점친다. 군인…… 하아…… 대학교 1학년 끝나고 보통 간다니까, 그럼 스물 한 살이니까, 앞으로 3년 남았나…… 3, 3년이면 길지! 아핫! 그 때까지 통일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죠. 김정○ 개X끼!



“어제 성빈이랑 둘이 있을 때, 뭐 한 거 없어?”

“뭐, 뭘 하겠어. 성빈이 다리 삐었었는데.”

“에이, 그래두. 업혀서 왔잖아? 엉덩이랑 많이 만졌어?”

“미, 미쳤어. 유진이 너까지 왜 그래.”

“으흥♡ 그치만 웅도, 이런 주제에 부끄러워하는 거 귀엽잖아.”



이런 섹드립 치는 애가, 어째서 아까 전엔 부끄러워 했는데. 성빈이 엉덩이는 남의 엉덩이니까 괜찮고, 자기 가슴 얘기는 자신이니까 안 된다 그런 뜻인가. 괜히 부끄러워하며 말하니 유진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혹적으로 웃는다. 여전히 속을 알 수가 없는 유진이다.



“별 일 없었구나─ 성빈이도 희세도 웅도 못지않게 답답이들이네. 너무 오래 있어서 적응된 걸까? 아니면, 그거 있잖아. 납치범들한테 납치되면 그 납치된 사람이 납치범한테 동정심 느끼고 따르게 된다는 거. 그런 걸까.”

“……내가 왜 납치범 포지션인건데.”

“아핫☆ 그냥.”



천연덕스런 웃는 표정으로 악담을 퍼붓는 유진이. 조용하게 태클을 거니 유진이는 싱긋 웃으며 대답. 뭐라 말할 수가 없구먼.



“……그, 성빈이가 고백했는데.”

“에? 고백? 무슨 고백?”

“……좋아한다고.”

“와!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했지.”

“에에. 역시나. 진짜 희망고문이네, 정웅도. 여자애가 고백할 정도면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 그걸 아무 말도 안 해?”

“……하아.”



바닷가의 애들과 나와 유진이와의 거리는 꽤나 멀다. 게다가 애들은 시끄럽게 떠들며 놀고 있고, 우리는 조용히 얘기하고 있으니. 저기까지 들릴 일은 없다. 넌지시 유진이에게 사실을 말하니 유진이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한다. 그래도 호들갑을 떨지는 않고 조용히 사실만을 물어본다. 내 대답에 금세 실망스런 표정으로 잔뜩 폭언.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뭐, 어느 떡이 더 최선의 선택일지, 더 합리적인 선택일지 고민하고 있다면 그건 말리지 않겠다만. 어젯밤에도 얘기했었으니까, 모두에게 상처주기 싫다고. 그치만 그건 알아둬, 이렇게 미루다가. 결국엔 아무것도 못 하고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다는 거?”

“……알지, 아는데.”



유진이는 웃음기 싹 빼고 진지한 투로 말한다. 늘 같은 패턴. 나도 안다. 이성적으로는, 생각으로는 다 아는데. 지지부진한 선택장애에 우유부단한 이 성격 탓에. 아니, 이제는 핑계를 댈 거리도 없는 것 같다. 생각은 합리적으로 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안 드니. 이런 걸 전문용어로, 병X이라고 하죠. 아마.



“하, 정말. 성빈이는 뭐라고 안 해?”

“……기다리겠다고, 대답해줄 때까지.”

“아 진짜 너무 천사잖아?! 이 쓰레기! 인간 쓰레기!”

“……제가 잘못한 거죠. 백 번 잘못한 거 맞죠.”

“어! 얼른 맞아! 미소녀의 발길질을 받으면서 잔뜩 좋아하라니까?!”

“무, 무슨 말인데!?”



유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손을 올리고 훈계하듯 말한다. 그래, 차라리 혼을 내라. 그 편이 내 마음에 더 편할 것 같으니까. 훈계에 이어 유진이는 나를 발로 밟으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S?! 나 그런 거 아니거든! 특정계층은 좋아하겠지만 나는 이런 거 싫다고! 난 나한테 순종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 좋다고! 잠깐 그 취향도 너무 남녀차별인 거 아니냐?! 아니 취향인데 뭐!



“에이, 잘 모르겠고, 나도 놉시다!”

“에잇!”

“우왘!”

‘첨벙!’

“크헉, 살려줘 으앜!”

‘첨벙!’



답답한 마음에 잠시동안 유진이에게 그대로 짓밟히고 있던 나. 털어버리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애들에게 달려간다. 다 잊어 버리고, 바다에서 놀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겠지. 으아아아! 여자애들 7명이랑 노는 나는 인생의 승리자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자!


그렇다기엔 너무 격한 환영. 아무리 여자애들이라지만 네 명이서 내 다리를 꺾고 물에 쳐넣으면 어떻게 상대할 수가 없다. 첨벙거리며 나온 나를 다시금 바닷가에 쳐넣어 물을 먹이는 애들. 이제는 애들이 귀여운 여자애들이 아니라 악마처럼 보인다. 게다가 바닷물이라 너무 짜다고!?



“하하. 독한 녀석이군요. 이제 기지의 위치를 말할 기분이 되었습니까?”

“푸흡, 내가 죽어도, 동료를 팔아 살진 않겠다!”

“좋은 기골이군요. 그렇다면 더욱! 해줄 맛이 나지요!”

“아 미친! 작작 하라니까! 우핰!”



이런 상황극에 빠질 수 없는 미래. 잔뜩 즐거운 듯 내 머리채를 잡고 물고문을 하듯 머리를 바다에 담궜다 들었다 다시 담구며 말한다. 너무 괴로워 발버둥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실 그렇게 깊은 바다는 아니니까. 다들 깔깔 까르르 웃는다. 뭔가 흐뭇하다. 그래, 그냥 재미있게 놀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어. 적어도 우리는 지금은, 바다로 놀러 온 거니까.





--





“개피곤해─”

“다 자자. 어차피 몇 시간이나 걸릴 텐데.”

“리유는 이미 잠들었네.”

“쿨─”



버스 안. 유진이는 불평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말하는 희세. 성빈이가 대답한다. 이미 잠든 속 편한 세 사람, 리유, 시아, 미래.


오전 내내 피곤할 정도로 실컷 놀고 이모님 댁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때엔 차가 없어서, 뙤양볕에 40분동안 걸어서 고생이 심했지. 씻고, 점심으로 컵라면 먹고 이제 섬을 나선다. 동네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우리. 굉장히 피로하다. 조용한 버스의 분위기와 진동은 금세 잠이 오게 만든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데다 바닷가에서 놀았으니 당연히 졸리려나.



“?”

“…….”



졸리지만 뭔가 몸이 피곤해서 쉽사리 잠들지 않는 나. 힐긋 애들을 쳐다본다. 리유, 시아, 미래는 버스에 타자마자 즉시 잠들었고, 어느 정도 버스가 출발하고 슬슬 유진이와 희세, 민서도 꾸벅꾸벅 졸거나 의자에 기대 잠들었다.


문득 눈이 마주친 성빈이. 살짝 졸려 보이는 눈으로,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색하게 웃음 지으니 마주 웃어 보이는 성빈이. ‘안 졸려?’ 하고 입모양으로 물어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졸려’ 하고 대답. 성빈이는 방긋 웃으며 혀를 쭉 내밀고 요망하게 미소 짓는다. 그리곤 눈을 감는다. 나도 의자에 기대 눈을 감았다.




재미있었네. 고생이 심했지만. 그리고, 나한테는 더욱 심적 고민을 안겨주는, 성빈이의 고백이 짐처럼 내 어깨에 실렸네.



……대답, 꼭 해줘야지. 심사숙고해서, 깊이 생각해서. 나는, 나는 성빈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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