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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0 12:00
연재수 :
3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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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24,521

작성
20.07.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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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0쪽

고무보트 10

DUMMY

축축하다. 가슴이 축축하다.

이게 뭐지?

내가 땀을 흘리고 있구나.


상당히 추운데 어떻게 이런 차가운 땀이. 아주 오래 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훈련에서 겪었는데, 그게 독수리였는지 T/S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나이 먹고 개 땀? 앞을 본다. 거리는 얼마나 되지? 해척이 신호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팀원들이 가르쳐준 대로 양쪽에 한 명 씩 노를 잡고, 뽀드 돌아가면 노로 긁으면서 해안선 방향 수직을 유지한다.


하사와 중사 놈이 스윽 날 본다. 여지없구나. 훈련이든 시범이든 두렵고 불안한 시간이 오면 꼭 키잡이를 본다. 팀장 뽀드는 모두 중위를 주시할 거다.


보면 뭐해? 나도 훈련만 해봤지 뭘 더 이상 바래. 그러나 연기는 해야 한다. 내가 불안하면 애들은 급격히 흔들린다. 난 웃으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몇 번 흔들어주었다. 알콜중독 아버지 보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모르지? 너희들. 이런 것도 효과가 있는 거야 빙신들아. 김신조 부대도 침투 중에 농담 했어. 잘 생각해. 믿을 건 자신 밖에 없어. 나 같은 노땅 믿느니 널 믿고 과감해져 봐. 내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냐? 니미 뽕이다.


그나저나 저 개 같은 벙거지 위장모 좀 안 바뀌나? 옛날 미군 부니햇 디자인이라도 카피해서 만들지 정말, 아무리 봐도 개 같은 모양이다. 아무도 이걸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니 군인정신 정말 제정신 아니다. 차라리 옛날 야구모자 위장모를 들이던지.


난 군 생활 동안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멍해지는 사람을 가끔 보았다. 차분한 사람이 잘한다. 하느님이 계신지 어쩐지 난 모르지만, 절대자에게 전적으로 의탁한 사람들이 그래도 위기에서 덜 흔들린다.


기억한다. 장거리 행군에서 일개 병사로 전락한 중대장을 바라보던 우리들 눈빛. 그러면 팀원들 눈은 중대장이 아니라 당시 명칭 팀 선임하사에게 간다. 그래도 장교는 짝패 확률이 낮다.


부사관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날 스쳐갔다. 내게 연락하는 사람 거의 없다. 부대 밖으로 나가면 난 그냥 아저씨다. 그게 편하다. 이제 부평의 밤거리에는 동기도 선배도 후배도 없다. 밖에서 군복에 술 먹은 거 한 15년은 넘은 것 같다. 부대 나가면 사복 입는다.


다만 차 몰 때 베레모는 계기판 구석에 짱박아 놓는다. 다른 부대 들어갈 때 보여주면 신분증 없이도 보통 통과된다. 나를 누차 반복해서 설명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옛날에는 그거 보고 교통경찰이 많이 봐줬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거의 뭐 한 패였으니까.


난 장기를 박은 원사가 아니다. 예전에는 그 개념도 없었다. 그저 떠나는 놈과 남은 놈이 정확한 표현이다. 전역지원서를 안 썼을 뿐이고, 자연적으로 장기가 되었다. 글쎄 난 여기서 무엇일까? 잔소리 많은 사람? 체력 떨어지고 날개 꺾인 깜용?


내가 만든 가정을 내가 붕괴시켰고, 집이란 것에는 이제 나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부동산은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었고, 나는 셋방에 산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 주임원사 시키는 건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 대대장은 아버지 주임원사는 어머니라는데 난 그런 거 못한다. 대대장과 맞짱 뜨고 보직해임될 거다.


솔직하게 말해서 난 군에 남아 있고 싶어서 남은 것도 아니요. 그냥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실망 엄청 하겠지. 문제가 많은 놈이지만, 이제 날 숨기는 짓은 안 한다. 왜? 웃기니까. 날 약하게 만드니까. 쪽팔려도 날 인정하는 것이 날 강하게 만든다. 왜 강해야 해? 강한 것이 날 기분 좋게 만드니까. 뭐 다른 이유 있어?


바다. 나에게 바다는 입대 전과 후로 나뉜다. 입대 전에는 그저 여름에 해수욕장 놀러가는 낭만, 입대해 이 드래곤으로 오고 나서 바다는 일터이자 고통의 산실이었다.


내 아이들은 해수욕장 가 본 적 없다. 해상훈련장에 군인가족 한번 오면 그 다음에는 안 오려고 한다.


바다는, 한여름 살이 익을 정도로 지옥처럼 뜨거운 고무보트 표면에 엎드려 있는 나, PT로 부들거리던 내 코에 날아오던 소금기 소라 냄새와, 내 대가리에 올라탄 조교 때문에 보던 침묵의 바다 속. 흉기로 변한 놋대와 오리발의 스윙, 결국 니 몸으로 니가 살아나라는 고독감. 컴컴한 바다에서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취침과 오침에서 식용유처럼 바닥을 칠하던 흥건한 내 땀. 그 뜨거움 속에서 하루 세 번 나오던 뜨거운 식기 국물. 그렇게 바다는 모든 낭만을 나에게서 차압해 가져가 돌려주지 않았다.


배치기 PT 하는 사람에서 서 있는 사람이 된 것은 키잡이 시절부터다. 키잡이 짬밥이 된 것은 동기들 나가고 부터. 키잡이는 모터와 젓는 보트에서 약간 역할이 다르다. 보트훈련 하면,


노 차려, 노 담궈.

전진. 좌현 노 담궈 정지,


우현 저어 등등. 절차 명칭이 어찌하든 팔이 떨어져라 존나게 젓는 거다. 방향전환은 오른쪽에 노 담궈 정지하고 왼쪽을 저으면 오른쪽으로 돈다. 키잡이는 함장처럼 맨 뒤에 앉아 가고자 하는 방향을 위해 양쪽 젓는 것을 구령으로 조정하고, 뽀드 맨 뒤 격판에 밀착해 노 하나를 수직으로 담궈 그걸 돌리며 키 역할을 한다. 나름 방향타가 된다.


존나게 갈군다. 존나게 저어! 키잡이의 최종 특징은 하나. 뽀드는 타지만 노는 안 젓는다... 능숙하면 추진력을 원하는 방향에 가장 효과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다. 요트 돛 조종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터보트는 스위치와 핸들로 조작하는 것도 있고, 뒤에 물린 모타 수평봉에 스위치/레버와 함께 모터 방향을 돌리며 직접 원하는 방향으로 추진력을 쓰는 두 가지다. 모터보트 키잡이도 역시 많이 다뤄봐야 안다.


해상여단 시절에는 특히 이 뽀드 군기도 강해서, 띄우기 전부터 뻘에서 피티와 얼차려로 곤죽을 만든 뒤에, 온 몸을 뻘 흙으로 도포하고 물에 보내준다. 사실 이 정도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없는 거였으나, 사람 목숨이 달릴 수 있는 거라고 군기 무척 잡았다. 키잡이는 보통 팀 선임하사였고, 소위 때부터 와서 온 몸으로 소쩍새를 울린 팀장 부팀장도 잡곤 했다. 난 군 생활 6년 만에 A조와 인명구조 중간이 되어 키를 잡기 시작했다. 인명구조는 너나 들어가라.


키잡이가 되고 이제 장난감에서 장난감 조종자가 되었으나, 동기들이 나간 뻘밭은 예전 같은 재미가 더 이상 없었다. 그때 1년 뒤 나와 똑같이 전역지원서 안 쓰고 나를 잘 따르던 것이 한원사다. 그나 내나 특이한 것이, 둘 다 대대 모병 기수 내 기수에 나, 다음 기수에 한원사 하나만 남았다. 여단이 변모하고 체계가 바뀌면서 그 모든 기술과 추억들이 저 편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거의 다 잊었는데, 그걸 다시 하게 된 거다. 그래도 몸으로 익힌 것은 쉽게 날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하게 되었지만, 실탄 장전하고 목숨을 걸라....


다시, 눈앞에 보이는 바다...


침묵의 시간. 내가 보는 모든 세상은 조준경과 그 안에 동그랗게 담긴 해안. 두 명만 노를 옆에 박고 있고 나머지는 의탁 엎드려쏴 자세로 해안을 본다. 뽀드 주변에서 꼬르륵과 가볍게 찰랑 철썩이는 물소리만 들린다. 과연 저기 초소는 없고, 초소 간격은? 보초들은 많아야 한 세 탄창 갖고 있겠지? 공수부대 로망 AK 습득? 그게 로망이냐 살려고 잡는 거지. 내구성은 아카보가 죽이지. 정말 실탄 떨어지고 재보급 없고 AK를 잡는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건가?


추대위도 자세를 낮추고 전방을 주시한다. 뽀드 앞쪽 고글도 바짝 엎드려 동상처럼 요동도 않는다. 나는 노를 조용히 들어 고글 등을 쳤다. 뒤돌아보자, GPS 어떠냐고 손으로 물었다. 그런데 답은 어깨 으쓱.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상황에서 미군이 쓰는 중소형 LED 디스플레이롤 보고 위치 찍어야하는데, 추대위와 1번 보트 판단만 믿고 있다. 그나저나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알 수 없는 흥미로움은 뭐지? 눅눅한 인생에서 스펙타클한 거 왔다 그건가?


20분 정도 지났을까? 시간을 보면 해척이 상당히 먼 거리를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음에 대한 피-간파 불안으로 인해서 핀 수영 거리가 늘어나 버린 것으로, 오리발과 스노클을 차고 나가는 해척은, 훈련/시범보다 훨씬 지치고 힘들다. 거기 총과 칼과 수류탄 기본무장을 해도 상당히 부하가 늘어나 대원 죽인다. 북한 해안침투조 기본군장이 한 20kg으로 들었는데, 이거 장난 아니다. 그들 체력이.


내 눈에 해안은 바다 위에 검은 유성펜으로 스윽 그은 정도로 검고 낮게 보이고, 실제 거리도 잘 모르겠고, 해척 신호가 오는 시간으로 거리를 판단할 수 있다. 신호는 생각보다 복잡한 신호다. 점멸의 숫자는 각자 제대가 정한다.


1. 안전하면 오라고 빨간 등 2회 두 번 점멸. 1분 후 똑같이 반복.

(보트는 해척에게 신호나 의사전달 수단이 없다.)

(보트가 신호나 소리를 전달했다가는 적이 본다.)


2. 만약 빨간 등이 3회 빠르게 세 번 점멸 반복이면 SOS가 된다.

(적을 봤고, 적이 모르는 상태로 위험을 알린다.)


3. 총소리와 함께 총구섬광이나 수류탄 폭발이 일어난다.

4. 해척이 총 발포나 수류탄 투척도 없고 아무 신호도 없다.


여기서 일어난 다음 장면은 한쪽만 봐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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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대가 머문 그 자리 1 +1 20.06.29 1,948 40 7쪽
15 지역대가 14 +3 20.06.26 1,827 46 8쪽
14 지역대가 13 +2 20.06.25 1,804 43 8쪽
13 지역대가 12 +4 20.06.24 1,811 39 8쪽
12 지역대가 11 +2 20.06.23 1,940 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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