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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7 12:00
연재수 :
3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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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30,531

작성
20.07.20 12:00
조회
1,069
추천
27
글자
8쪽

고무보트 13

DUMMY

여기서, 내가 왜 군에 남아 이러고 있는지 말해볼까 한다. 이것은 내 주관이 들어간 것이므로, 사실을 나열하려 노력하나, 표현이 얼마나 올바른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사실 난 중사 때까지 잘나지도 않았지만 모자라지도 않고 평범했다. 팀에 점프마스터가 하나 떨어졌을 때, 가고 싶어 했던 동기가 있었지만, 난 좀 쉬다 오고 싶어 대본에 사바사바해서 교육단에 들어갔다. 물론 교육단에 신사적인 교육이 없다는 것쯤은 안다. 점프는 아무리 뭐래도 공포와 함께 한다. 짬마는 그걸 없애준다.


기간 내내 시도 때도 없이 하도 뛰니까. 헬기도 이것저것 다 뛰고, 수송기 뛰고, 기상 때문에 밀리면 하루 두 번도 뛰고, 그러면서 내 차례가 오면 내가 내 메인페스트 열 짬마를 섰다. 문 앞에 서서 지상의 패널 보고 풍향 풍속 고려해 내가 고! 하면 나간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교육단 전용 DZ였을 뿐이니까.


짬마 받고 와서 안전근무부터 시작했고, 팀의 짬마 자리가 비어야 실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팀은 보통 중대장이 짬마 받고 와서 하고, 훈련강하는 지역대 점프라 보통은 고참 중대장이 본다. 내가 원복해서 1년 쯤 지났나? 나에게 진짜 짬마 기회가 왔다. 전술종합은 아니었고, 그 당시 훈련하던 거부작전 점프였다.


거부작전은 만약 북에게 우리가 밀릴 경우 우리가 우리 땅에서 게릴라로 변모하는 거다. 하여간 그 점프, 나는 문에 섰다. 그때는 지금과 좀 다른 것이, 바로 C-123. 거기서 한 팀이 뛰려면 한 열에 서지 않고 양쪽 문에 각 5명 정도씩 나누어 선다. 그래야 전술 DZ가 좁아도 된다. 팀 규합도 빠르고.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한 쪽의 다섯 만 나가고 반대편은 안 나간 일도 있었다. 내가 짬마를 선 이유는 원래 짬마를 해야 할 중대장이 어디 갔기 때문이다.


충청도 어디 산악에서 이뤄진 이 점프는 쉽지 않았다. 그날따라 저 멀리 먹구름에 풍속이 무척 강했고, 내심 이거 캔슬 아냐? 생각했다. 그러나 군대는 캔슬 같은 거 안 좋아한다. 안전불감증은 군대에서 시작한다. 일단 투자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GO! 하는 게 군대 습성이다. 작전강하라고 더미 투하도 없었다.


난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무리 봐도 풍속은 강한데, 마지막 DZ 무전은 4-5노트라고 주장했다. 바람은 비행기부터 땅까지 몇 차례 풍속 풍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고, 그렇게까지 인간이 알 수는 없다. 짬마는 강하 캔슬의 권한이 있다. 그걸 지휘관들이 생각도 인정도 안 해서 그렇다. 모든 상황은 나에게 밖으로 나가라 밀어대고 있었다. 나는 감으로 타이밍 결정을 짓고, 반대편 문에 기다리던 1번에게 엄지를 들어 GO! 하고 이탈했다. 그리고 낙하산이 산개되고 느낀 것은, 이게 무슨 시베리아 돌풍이다. 둘이 순직했다.


아무리 누가 내 잘못 아니라고 말해도, 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군 병원 영안실 들어가던 때를 죽는 날까지 잊을 수가 없다. 하사 가족을 보니 하나의 뚜렷한 인간이라는 실감이 왔고, 아무도 날 욕하지 않았지만 더 무서운 게 있었다. 내가 오자 자리를 피하고 말을 걸지 않는다. 그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난 당시 희귀한 감봉 처분을 6개월 받았다. 이 과정에서 난 중사라는 계급을 달았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인간임을 깨달았고, 또한 군대가 인명손실에 무척 둔감하다는 것도 알았다. 반대편에 서 보면 내가 있던 자리가 보인다.


그때, 부대 밖 사람이 들으면 충격적일 농담도 들었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강한 군대를 원하는 곳에서는 항상 죽음을 미화하고 명예롭다고 세뇌한다. 이건 전시가 아니라 훈련이란 말이다 이 자식들아. 차라리 날 찍어. 날 낙하산 없이 맨 몸으로 공중에서 밀어버려. 내 면전에 대놓고 쌍욕을 퍼부으란 말이야. 자고 있는 내 배때지에 대검을 꼽아! 사선에서 총구를 돌려 나날 조준하란 말이야. 왜 내가 겁나냐?


예전에 책을 뒤적이다가 한 국내 소설, 제목을 읽었다. 내용을 읽어 본 적 물론 없다. 소설의 제목은 ‘무기질 청년’이었다. 그 이후의 날 대변할 수 있는 정확한 말이다.


난 별 이유도 없이, 단체로 동기들 전역지원서 쓰던 날 교실에 안 들어갔다. 어쩌면 전역지원서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많은 기수 동기들 앞에 서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모른다. 대대 상사님이 나 보고 그런다. 그래 니 맘 안다. 앞으로 같이 잘 해보자. 넌 이제 우리 편이다. 이제 넌 엔간해선 맞지 않는다. 욕도 안 할 거다....


당시는 군에 남는다는 사람이 정말 극소수였고, 대부분 때는 왔노라.... 전역지원서에 휘갈겨 서명했다. 난 무기질 중사가 되었고, 무기질 상사가 되었고, 또 원사 계급이 생기면서 무기질 원사가 되었다.


다시는 짬마에 서지 않았다. 가끔 인원 딸려 안전근무는 나가고 내가 할 점프는 했지만 짬마는 기어코 피했다. 중사 3호봉에 어디 사람 죽여봐라 유격전문에 입교했다. 정신세계가 가학적으로 오묘한 특교과 교관 조교가 사람 곤죽을 만들었지만, 난 고통스럽지 않았다.


처음에는 교관 조교들도 내 기수 보고 좀 빼는 경향이었지만, 내가 무리 없이 모든 걸 받아들이자 나도 가학의 대상이 되었고, 얼마든지 굴리라고 난 날 버렸다. 원래 특교과 조교들은 스쿠버든 유격전문이든 끝날 때, 수고했다 미안하다 말 안 한다. 끝까지 가오다.


나에게는 수료 때 그런다. 난 그냥 쳐다봤다. 뭐 어쩌라고. 내가 내 자신을 거기 내몰았는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 때리고 굴려도 난 너희들 소유물이 단 1초도 되지 않았어. 난 내 세계에 머물러 날 채찍질했을 뿐이야.


더욱 무서운 건, 그날의 사건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내 자신이다. 관심에서 무관심으로 바뀌는 간격이 매우 짧은 것은 여기 대부분 그렇다. 사람들은 그런다. 교육단서 사고 났댜. 두 명 죽었댜. 내가 듣기로는 세 명인데, 하나는 다치기만 한 건가? 지난주에는 0여단서 터지더만, 올해 왜 이렇게 꼬이냐. 그런데 말야. 내 생각에는 말야. 그냥 순대국으로 먹자. 하사 시절 생각해서 돈 아껴 자식들아 하하하.


... 생각이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와, 그리고 지금까지, 난 무기질 원사로, 저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근무하는 거야 생각이 들 정도로, 단세포 백치 아다다처럼 살아왔다.


가르치기만 하고 북으로 가지 않겠다고 누차 반복했지만, 그건 날 보내라는 말과 같았다. 대대가 그런 생각을 안 하는데, 왜 날 보내려 하냐고 반복해서 귀에 떠들며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한원사와는 전혀 달랐다. 대대장 찾아가, 나 가겠소...는 무기질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날 늪으로 끌고 가는 건지, 나를 제외한 모든 걸 늪으로 만드는 건지 몰랐다.


계급 원사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것도 아니다. 같은 원사끼리 바라보면 하사 때 하던 짓과 똑같이 나이만 처먹었다. 하사 시절 나에게 뒤지게 맞아 구부린 놈은 원사 되어도 함부로 못한다. 청년은 짬밥 먹으며 늙었다. 그 중간이 단 몇 년도 되지 않는 것처럼 실감이 안 난다. 무언가 휙휙휙 지나갔고 난 갑자기 50이 넘어 여기 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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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7 hi******
    작성일
    20.07.21 14:56
    No. 1

    어제 괜찮았으니 오늘도 괜찮을 것이고, 지난 번에별 일 없었으니 이번에도 별 일 없을 것이고... 그렇게 무뎌지는 그 순간 사고가 나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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