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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03 12:00
연재수 :
369 회
조회수 :
221,398
추천수 :
6,908
글자수 :
2,019,328

작성
20.06.26 12:00
조회
1,817
추천
46
글자
8쪽

지역대가 14

DUMMY

서대위에게...

지나온 삶은 빠르게 눈앞을 스쳐갔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값 싼 것이라도 생일을 챙겨주던 아버지와 어머니. 부대 근처에서 놀다 수류탄 발견해서 공책 받았던 일. 관사에서 군인 자식들끼리 모여 놀던 기억. 직업군인이었으면서 간부로 입대하는 걸 한사코 반대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항상 말했었다.


‘대한민국은 육군 병장의 나라야. 육해공 병장 출신들은 기본적으로 간부를 싫어해. 장교는 장교끼리 놀 뿐이고, 별 달면 동기도 별 단 사람끼리 만나. 넌 그냥 병으로 가 전방에서 뺑이치고 병장 달고 나와. 사회생활을 생각해.’


대학 합격 때 기뻐하던 가족들. 첫 MT의 해방감. 아내를 만났던 날과 고백했던 날. 결혼. 지은이와 단풍이의 탄생. 전방 소대장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날들의 추억. 처음부터 지원했음에도 OAC 수료하고서야 떨어진 특수전사령부. 어쩌면 서대위는 자신의 강함을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생각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자, 자신이 보였다. 흠뻑 젖은 군복 상의에 아래는 팬티에 젖은 하체, 떨리는 몸. 아기처럼 웅크리고 싶어 하는 몸. 어디 기댈 곳 없는 처량한 그 누구. 베레모고 좆이고 그저 초라한 하나의 인간. 청운의 꿈과 같은 상상과 기대 속에 전장을 향해 수송기에서 몸을 날렸던 사라져간 팀원 열 명. 선택의 길은 넓지 않았다.


서대위는 몸을 웅크려 통제할 수 없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전기식 도화선 끝에 달린 수동 점화기 고리에 검지를 걸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을 본다. 그리고 왼손으로 점화기를 잡고 오른손 검지로 고리를 강하게 당겼다. 퍽! 푸지지직... 점화. 미세한 연기가 북한군에게 발각되던 말던 상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서대위는 점화기를 던지고 오하사 옆에 등을 대고 앉았다.


‘도화선에 불 붙이고 저 강물에 몸을 맡겨 병신처럼 떠내려가면서 튀라고? 나더러? 나 서영한? 나 서영한이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해? 여길 불발의 황제 비전기식에 맡기고? 가위차기 하면서 튀어? 쪽팔리게?’


서대위는 대학 시절 연극반에서 공연했던 쏜톤 와일더의 희곡 ‘우리 읍내’의 마지막 장면 에밀리의 대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대사와 비슷하게 시처럼 자신의 마음을 속으로 낭송했다.


‘무대감독님, 저를 산마루 무덤으로 다시 데려가 주십시오.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난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자꾸 지나가는데 우린 그걸 모르는 겁니다. 안녕, 우리 읍내. 어머니 아버지 안녕히 계세요. 내 아내 최아라와 어여쁜 지은아 단풍아 안녕. 아내가 해주던 맛있는 음식들도 안녕. 아이들이 내 생일날 삐뚤삐뚤 써주었던 카드도 안녕. 아내와 나의 보물 1호 졸업앨범도 안녕. 아내가 다려놓은 옷들과 내 물건들. 출근할 때 손잡고 곤히 자고 있던 내 딸들아 정말 안녕. 산다는 것과 눈을 뜨는 시간들. 이 지구와 자연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왜 우리는 살아서 느낄 수 없는 거죠? 너무 훌륭한 것이기에 그 진가를 모르는 것인가요? 왜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일분 일초의 산다는 의미를 깨달을 수 없을까요? 사람들이 살아 있는 동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까요? 마지막으로... 모두들... 안녕!’


북한제는 약간 달랐지만, 특수전학교 일반폭파 과목에서 배웠던 FM 그대로 구령했다. 전기식! 도전선 연결구 확인! 점화기 스위치 충전으로 돌려! 충전등 확인! 폭파 준비 끝! 준비된 폭파 9조!... 구령한다~~~!


“폭파! 폭파! 폭파(격발)!”




[국군 정보사령부 전후 보고서 9027-45-#]


평양 북쪽 순천 안주 지역에 침투한 육군 제3091

부대(특수전사령부) 55대대에 관한 작전활동 추정보고


- 정보사령부 207전투정보분석단

제 3분견대 (평양-안주 구역)


D+3일 공중침투한 3091부대 5대대는 전투강하 수송기 1대가 위장한 다수 구형 대공화기에 피격되어 격추되었고, 이 일로 예하 10지역대와 대대본부 인원 2/3가 침투 과정 에서 희생되었으며, 대대 전투서열 10-11-12지역대 모두 DZ에서 교전이 발생했다.


지역대들은 각 담당 구역에 전투강하하고 생존 인원을 규합해 차후 타격작전에 들어갔다. (이하 표기 지역대-G) 보름이 경과한 상태에서 각 G 생존보고는 10G 15% 11G 24% 12G 45%로, 타격작전에서 가장 두드러진 효력을 나타낸 것은 여단의 마지막 지역대 12G였음.


보름이 경과한 시점에서 파편상 후유증으로 대대장은 10G 은거지에서 전사. 특수작전 타격에서 12G가 타격한 열차역과 적 보급기지 습격작전에서 엄청난 폭발이 수십 차례 일어나는 굉장히 큰 공을 세운 것으로 보임.


아군의 전격적인 북진돌파-진격작전인 북통 7호 작전이 개시되기 이틀 전, 특수전사령부는 평양 북부 전략 지점에 있던 3091 모든 G에 2일간 대대적인 보급선 습격 타격작전을 무선전문으로 명령함.


당시 전문을 받고 짧게 회신한 G는 10G와 12G 뿐이며, 11G는 지역대 호출부호에 응답하는 신호가 나타나지 않음. 이 명령문이 내려갈 때 공식적으로 보고된 대대 전투가능 숫자는 10G 14명, 12G 20명으로, 대대에서 12G가 가장 작계작전이 효력 있었고 병력이 가장 많이 생존했음.


이후 작전에 관해서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음. 현재까지 아군 진군 후 일대에서 나타난 3091-55의 생존자는 보고되지 않고 있음. 주민들 증언에 의하면 북통7호작전의 선견작전인 특수전사령부 습격파괴작전이 명령된 다음 날 밤부터 야간에 무척 많은 총소리와 폭발음이 들렸다고 함. 길가에 쓰러진 북한군 시신이 상당수 보였으며, 불 탄 트럭도 목격됨.


이후 55대대의 가장 마지막 교신은 12G로. 습격파괴작전 이틀 차에, 공군이 오랫동안 애를 먹고 있던 55대대 섹터 최남단의 대동리 교량에 관한 폭격요청이 12G로부터 들어왔음. 그러나 그 교량은 양쪽 협곡이 깊어 정밀타격이 매우 힘들고, 레이저 유도폭탄도 힘겨워 공군 CCT를 침투시키려 건의되었다 취소되었음.


그날 F-15 편대가 오전 10시 대동리 교량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고, 북한군은 항공기 레이저 유도폭탄을 의식한 듯 폭격 동안 지속적으로 계곡 상공에 연막탄을 터트려 시계를 차장했음. 마지막 폭탄을 투하한 후 가장 밑으로 내려갔던 편대장은 교량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관측하고 기수를 돌렸음.


그러나 그 다음날 재차 출격했을 때, 동일한 편대와 편대장은 교량이 반파 이상 파괴된 것을 눈으로 목격했음. 편대장은 전날 자신이 착시를 일으켜 잘못 본 것 같다고 보고함. 이로써 평양 북부 전선의 북한군 보급의 1/3을 담당하던 보급선이 이틀 동안 막힘에 따라 큰 지장을 받고 아군 공격에 퇴각을 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음.


차후, 일대 거주민과 투항한 일대 북한군 부대 출신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해 구체적인 3091-55의 전투상황을 규합하여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겠음.


추가 - 11G는 일설에 의하면 산악 은거지에 대규모 포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됨. 11G 본부 무선 교신 당시, 북한군 감청반의 삼각측량에 당한 것이 아닌가 의심됨. 12G는 교량에서 북동쪽 2km 부근 야산에서 주간에 마지막 교전을 벌인 것으로, 인근 주민 증언을 토대로 추정함.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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