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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0 12:00
연재수 :
3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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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24,521

작성
20.07.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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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추천
29
글자
10쪽

고무보트 9

DUMMY

시범의 구라는 그렇다.

제정신이면 묻는다.


해척조가 불러서 본대가 들어왔는데, 해척조 군장은 어디 있어? 해척조는 슈트와 총 칼 탄창 하나 그게 다야? 당연히 군장은 보트에 있다. 시범에서는 뺀다. 시범에서는 해척이 입에 나이프를 물고 물속에서 나와 바닷물 줄줄 흐르는 k1a 자동 및 반자동 한국형 자동소총을 들고 뭍으로 눈깔 부라리며 나온다.


전시에도 그러라고? 만약 해척이 아무 문제가 없어 본대를 부르고 총 한 방 안 쏘고 올라가면 문제없다. 그런데 만약 아직 물이 줄줄 흐르는 총을 쏴야 할 경우, 그것도 자동으로 갈겨야 할 경우. 누가 책임 지냐? 개스 덩어리가 노리쇠뭉치 같은 데 순간 떡이 되어 기능고장 일어나면 누가 책임지나? 물이 혼탁해서 기타 잡물과 모래 알갱이 같은 게 총 안에 들어올 수도 있다.


리북 정찰국 해안침투조도 총은 방수로 싼다. 진짜 전투가 일어나면 물과 열기와 개스가 혼합되어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나도 모른다. 그런 실제 상황을 안 겪어 봤으니까. 그건 시범이다. 시범 사진의 핵심은 고래도 때려잡을 부리부리한 눈깔이다. 니미 소프트 덕과 하드 덕 구라도 책 한권 되는데 말야...


해상훈련에서는 뭐 값 싸게 시장서 비닐 사다가 청 테이프로 밀봉하지만, 전시라면 바스락 소리 난다. 이런 걸로 무지하게 지휘관들과 언쟁했고, 담배 하나 원사가 오면 피한다. 난 위장도 불만이었다. 자꾸 애들이 위장을 전위예술로 승화시키려 한다. 그냥 꺼먹 판타지가 최고다. 머시기한 사선 스트라이프 위장은 뭐 팀원들끼리 알아보기는 편할 거다. 하얀색 사선? 아니 담당관님 아니십니까... 그걸 본 북한군 경계병이 마귀를 봤다고 착각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하는 일도 가능할까 몰라. 뭔 그렇게 위장을 공들여 하는지.


그냥 꺼먹으로 하면 되는데, 또 예술이 목과 귀와 손등은 별로 신경도 안 쓴다. 부대가 너무 시범적이 되었다. 귀와 목도 정말 철저하게 칠해야 한다. 장갑을 껴도 일단 칠해야 한다. 장갑을 벗을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준비 때 별에 벌 것을 다 물고 늘어진다고 야단이었고, 한원사도 나더러 주둥아리 좀 줄이라고 했다. 무슨 진짜 람보처럼 적이 1미터 앞으로 지나갈 것이냐고. 그런데 어쩌랴 그런 거 참고 못 넘어가는 이놈의 성격. 해군함정에 탑승하는 그 순간까지도 중대원들과 친해지지 못했고, 내가 꼭 이 분위기에서 가야 하나 의문도 들었다. 그래도 팀장대행 중위는 뭐 14촌 아저씨를 대하는 정도로 나에게는 깎듯 했다.


그러면서 나도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실전 겪어봤냐. 사실 나도 해봐야 안다. 각종 다채롭고 조잡했던 여러 시범과 훈련이 전부니까. 계급장은 두껍고 별도 떴지만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그건 너나 나나 동일하다. 그래, 그건 인정한다. 내가 바보가 될 수도 있겠지.


1번 첨병이 양팔 손바닥을 밑으로 까는 동작을 반복한다. ‘속도 줄이고,...’ 양팔을 수평으로 뻗어 손을 머리 쪽으로 꺽는 동작 반복. ‘1번에게 모이고...’ 그렇게 다섯 대가 천천히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목을 친다.


‘모터 아웃.’


필요상 해척은 우리 보트에도 탔다. 그때부터는 훈련한 대로 세밀히 잘한다. 해척이 물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나머지는 방수포를 조용히 까서 삽탄된 총을 꺼내 거총해 자물쇠를 사격으로 돌린다. 해척에 문제가 생기면 도와야 한다.


그런데 해척에 문제가 생겨도 엄호사격만으로 끝나나? 사실 돌아갈 곳이 없다. 사격 하면서 앞으로 돌격하는 수밖에. 노질을 하든 모터를 다시 켜든 돌아갈 곳이 없으니까. 이건 서너 팀이 실행하고 - 실행자보다 관여자가 열 배는 많은 퇴출까지 있는 특수작전이 아니다. 사실상 해안돌격이다.


총 끈은 최대한 늘여 각개로 걸었기에 거총하면 길이 때문에 존나 당긴다. 이런 거 하나 위에서 안 사주다니, 정찰대 대테러 전용 총 끈이 이럴 때는 최고다. 각개를 풀 수도 없다. 곧 노를 저어야 하고, 총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군장에 끼어 잘 못 찾거나 바다에 빠트릴 수도 있다. 실탄 든 총을 사격 스위치로 놓고 어디 내려놓는 것부터 이상한 것이다.


나는 지형을 훑었다. 정확히 온 건지 나도 감이 잘 안 온다. 그저 특징을 잡으려 노력하는 거다. 육감. 뭔가 있을 때.


이제는 추대위가 직접 수기한다. 지역대 해척은 총 3명으로, 탑승한 배는 다르나 동시에 나간다. 추대위가 오른 손을 높이 들어 오리발 출렁이는 흉내를 낸다. ‘해척!’ 그리고 해안을 향해 검지.


‘GO!'


이런 수기는 교범에 따라 자세히 나와 있는 게 아니다. 여단마다 대대마다 지역대마다 통일된 수기를 만드는 것일 뿐. 우리 뽀드 해척이 타고 넘어가기 직전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자세히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그냥 느껴진다. 그 눈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리고 본인도 그때의 기분을 말이나 문장으로 재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속에 어떤 플래시백이 겹치면서 뭔가 야구 방망이 같은 것이 올라온다. 이빨을 깨문다. 침착해야 한다. 우리 목숨이 달려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해척은 현재 내 지시를 받고 물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이미 명령은 났다. 난 아주 빠르게 손으로 OK! 동그라미를 만들어주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손을 펴서 손바닥으로 천천히 몇 번 밑으로 눌러주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나이 먹은 내가 하는 그런 행동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 친구 심리에 필요한 것이다.


예감이 들었다. 난 뽀드 감시만 못한다. 이게 훈련이냐? 너므 귀한 집 자식들이 이 이국의 황망한 고도 같은 곳에서 돌아갈 방법도 없이 무엇에 직면했다. 난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하는 거다! 야전식량 몰아다가 물이나 부어주라고?


나도 그저 그런 인간이지만 순간 전선 어디에 보병으로 있을 자식 놈이 떠오른다. 영원히 초딩 같은 녀석이 군인이라고 총 들고 이런 걸 겪어야 하나? 특부후 들어가겠다는 걸 다리몽댕이 분질러 버린다고 막아서 논산 수용연대 자리에 패대기치고 돌아왔다. 드가서 후방낙법 존나 치거라이. 전쟁에서 거나 여나 뭐. 뽀드 안에 다 비슷비슷한 나이다. 특전용사라는 이 녀석들이...


해척이 온 몸에 힘을 쓰는 게 보인다. 풍덩! 소리 안 내려고 뽀드 안전줄을 정말 끝까지 잡고 있다가 놓는다. 최초 소음은 피했으나, 각개로 걸고 있는 방수포로 결속한 K-7이 2차로 덤벙 물을 때린다. 앞에 거총한 놈이 움찔.


스르륵 물로 들어가고 스노클이 나오고 아마존의 민물장어가 조용히 좌우로 흔들며 나간다. 나는 속으로 빈다. 제발 접안에서만 문제없어라. 이 상태에서 기관총 만나 개꼴 나고 싶지 않다. 제발 위성에서 본 그 기관총좌는 저 앞이 아니기를 빈다.


이 북한 놈들이 무서운 것 중에 하나는 중기관‘포’ 같은 게 있다는 거다. 그런 구경 큰 기관포 종류는 구닥다리지만 갈기면 얼마나 강할까. 상상이 안 된다. 지도와 위성사진을 아무리 겹치려 해도 여기와 중첩되는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선다. 우리의 계획은 어떤 구역 어떤 초소 간격 50미터 구간을 개통한다... 이렇게 되어 있다. 옛날 휴전선의 북한 침투조는 그 50미터가 5미터가 되어 그걸 개통되었다고 말하고, 보통 서너 차례 사용하고 조금만 이상하면 다른 통로를 개척했다.


불안은 하지만, 추대위가 해척 내보내기 전에 GPS를 찍었을 테니 뭐 믿는 수밖에. 그러나 그 GPS로 정확한 계산까지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사실 안 믿는다.


모터를 꺼도 작은 해류 때문에 뽀드는 돌아가기 마련이라 키는 놓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난 조용히 방수포를 풀어 총을 꺼냈다. 대대에 내려왔을 때, (사실 그건 편제가 달라졌지만 내가 근무한 대대 혹은 막사다.) 나는 농담처럼 본부 상사에게 혹시 K1a 요러요러한 총번 있냐고 물었다. 설마 없겠지... 했는데, 다음 날, 김상사가 ‘진짜 짜옹을 하게 됩니다.’ 하고 주었다. 놀라웠다.


하사 중사 시절을 같이 했던 내 총번 그 총이... 이게 기적인가 현실인가. ‘이거 마이 낡아서 짱박아 놓고 있던 건데...’ 김상사가 총열덮개를 구멍 슝슝 뚫린 놈으로 바꿔주고 거기 조준경을 달아주는데, 나는 별로였다. 떼고 싶었다. 상대와 20미터 안쪽으로 들어오면 조준경 개뿔된다. 그리고 야간사격은 반딧불이 나에겐 여전히 최고였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제 총열은 말 거기시가 들어갈만큼 너덜너덜해졌겠지? 그러나 넌 날 배신할 수 없다. 잉카의 관념처럼, 모든 물건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면 넌 날 잊었을 리가 없다. 난 너를 다시 찾았다. 내가 너를 잊지 않았음은 내 피와 땀으로 이미 너에게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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