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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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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7.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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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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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어떤 이의 꿈 6

DUMMY

편중령 자신의 생각보다 부상이 약하지 않았다. 총알은 한 방이 아니었다. 아마도 같은 총에서 나온 총알 같았는데, 하나는 왼팔 상박을 관통하고, 하나는 바로 붙어 있는 갈비뼈 부근 살을 뜯고 지나갔다. 김중사가 압박붕대를 풀어 겨드랑이를 눌러 지혈하며 부축했고, 소총도 받아서 걸었다.


혼전. 편중령과 김중사는 그런 장면을 볼 줄 상상도 못했다. 전사자는 으레 목격이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부하들 시신을 봤다면 이미 중간에 적이 있고, 뒤섞였다는 의미였다. 지역대장 시신을 봤을 때, 둘은 깨달았다.


이제부터 길을 가면 죽는다. 대대장은 힘들었지만 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지형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길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길에서 뛰는 발자국 소리 여러 개를 들었다. 편중령과 김중사는 시선을 교환했다. 적이 분명했다.


만약 대대장이 부상 상태가 아니면 대대장을 한 20미터 앞서게 하고, 뒤따라 뒤를 봐주면서 김중사가 가고 싶었다. 이 전시에, 사람의 마음은 ‘후미는 제가 맡겠습니다!’가 어떠한 뜻이며 결심인지 알게 되었다.


전우를 위해 팀원을 위해 지역대원을 위해 무수하게 자원한 대원들이 ‘후미’에 섰다. 후미는 죽음과 가까웠고 외로운 자리. 짬밥이 되는 장교들은 항상 걱정했었다. 요즘 들어오는 젊은 부사관들의 좀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다. 옛날처럼 모여서 술을 퍼먹기도 하지만, 안 먹겠다고 빠지는 사람도 많았고, 숙소에 돌아가 인터넷을 하거나 휴일에 인터넷 게임 동호회 모임에도 나가는 걸 보고, 이렇게 개인적으로 흘러도 되나 내심 불안했다. 북으로 오기 전에도 살짝 걱정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기우였다. 그들이 사는 세대의 문화가 다를 뿐, 부대 전통에 따라 할 바는 하고 책임감도 예전에 비해 떨어지거나 모자라지 않았다.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신세대들의 행동을 보면서 오히려 놀랐고, 부정적인 고정관념 때문인지 몰라도 어떨 때는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걸으면서, 추격자들이 주는 공포와 여러 사념들이 스쳐갔지만, 편중령은 오히려 자기 자신에 관해 생각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고통이 몰려와 눕고 싶었지만 - 그래도 자기 자신에 관한 생각은 끊임없이 몰려왔다. 속으로 ‘내가 죽으려고 그러나?’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사념은 대대장으로 부임하던 바로 그때의 기억이다.


정말로 기뻤다. 소위로 온 사람이 지역대장까지 이어지는 것도 참 보기 힘들지만, 사령부 인사명령을 보는 순간 믿기지 않았다. 여단은 옮겼지만 원적 여단 부사관들이 취임식까지 와서 축하해주었다. 자신을 지역대장으로 모시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편중령은 정신을 잃었다...


어두운 곳, 아마도 길고 긴 해변의 한 구석. 그리고 판자집 같은 사선으로 이어진 건물 같은 곳에 떨고 있는 사람. 이유는 모른다.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려면 아마도 먼 길을 가야할 것 같다. 지금 여기 내가 왜 있는지 모른다. 도망자인가? 난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안다. 어둡다. 다른 것이 안 보인다. 근처에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흑청색 하늘과 대기의 눅눅함은 마음에 든다.... 저 멀리 갓에 도포를 입은 사람이 천천히 걸어온다. 하늘 때문에 그런지 갓과 도포는 검은색이다. 그 자는 걸음걸이만으로도 매우 견고하고 확고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총을 쏜다. 총을 쏜다. 익숙한 총소리...


편중령에게 정신이 돌아오게 한 것은 총소리였다. 힘겹게 눈을 떠 보니, 산이 조금 내려다보인다. 왜일까? 궁금했다.


‘아, 내가 지금 비탈에 누워 있구나.’


총소리가 궁금하다. 주변에서 고함 소리가 들린다. 북한 말이다...


중령은 몸이 조금은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얼굴이 불편했다. 왼손을 들려다 통증이 오면서 푹 떨어졌고, 다시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얼굴의 땀을 씻어냈다. 다시 총소리. 따다다당. 어둠 속, 아래 위 옆에서 섬광이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이 번쩍인다. 빠른 발걸음 소리. 상황은 어떻게 된 건가. 일대에서 계속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그때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누군가 옆에 붙는 것을 편중령은 느꼈다. 옆에서 속삭였다.


“괜찮으십니까?”


“김석환?,,,”

“예, 대대장님. 괜찮으십니까?”

“본진은?”


“얼마나 살았는지 모르나 근처에서 일탄 퇴출했습니다.”


“자네 나 때문에 안 가는 거야?”

“저희는 한 조입니다.”


“날 보호하다 자네까지 죽어... 어서 은거지로 가.... 아마도 추격당하고 있겠지만...”


“전 작전장교님 명령에 따라 여기 있습니다.”

“너, 작전장교 위 직속상관이 누구야?”


“지금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명령이 뭔지 정확히 인지하지?”

“다시 명령하지 마십시오.”

어둠 속에서 눈을 보니 말문이 막힌다.


“난 직속상관 대대장으로써 김석환에게 명령한다. 이 자리를 떠라. 내 명령을 취소할 수 있는 건 여단장 밖에 없다.”


“..... 불복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도 안 되나?”


“부탁해도 같을 것 같습니다. 대대장님. 이미 대대 지역대 전우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누구나 목숨을 걸었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희망 없습니다. 작전만 있습니다. 희망이 없어도 작전은 합니다.”


“그럼.... 다시 정확하게 명령한다. 똑바로 들어라. 정확히 들어. 불복종하지 마라 결코.... 0공수특전여단 01대대장 편종오는 대대원 김석환 중사에게 명령한다. 하늘이 증인이다. 난 너에게 직권명령을 내린다. 중사 김석환은 지금부터 최소 적 30명을 사살하라. 그 전에 죽는 것은 작전불이행이자 명령불복종으로 간주한다. 이 명령을 거스를 경우, 너에 대한 모든 신뢰를 박탈할 것이며, 저승에서도 대대원들 옆에 서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적 사살 30명은, 전쟁 끝날 때까지이며 여기서 죽으면 불복종이다. 수행하라. 즉각.”


김중사는 말하지 않았다. 발소리들은 여전히 저 산길을 따라 분주히 오르내린다. 저 멀리 위쪽에서 또 총소리가 난다.


“내 소총과 실탄 수류탄을 수거하라. 아 국방부 물품이다. 다만 권총은 내 지휘물품임으로 나에게 둔다.”


역시 김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착하라. 생과 사는 운명이 결정한다. 그 운명이 다 할 때까지 사람으로써 군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바를 다해.”


김중사가 조용히 읊조렸다.

“네, 실행하겠습니다.”


김중사는 소총과 실탄 수류탄을 수거했다. 편중령은 마지막으로 입을 연다.


“날 떠날 때 경례하지 마라. 게릴라는 그냥 가는 거다... 경례를 받을 만큼 여기 넘어와서 뭘 한 것이 없다. 창피하다. 마지막 부탁이 있다...”


“무엇입니까?”

“들어줬으면 한다.”

“말씀하십쇼.”

“날 좀.... 쏘고.... 가면 안 되겠나?”

“......”


“난 명이 거의 다 한 것 같다. 이대로 있다가 내가 원치 않게, 적에게 발견되어 정보를 누설할까 겁난다. 진심이다. 난 창피하고 싶지 않다.”


“죄송합니다.”

“못 해?”


“알았어... 그럼. 내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 실탄 확인하고, 오른손에 좀 쥐어줘...”


“그렇게는 못합니다. 그건 안 됩니다.”

“허허, 내가 자살할까봐 그런 거야?”

“그건 아니지만....”


“난 게릴라 대장이다. 장수야. 독전대장이다. 배수진을 친 나는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하지만, 내 명 끊어지기 전에 누군가 아군이 아닌 사람이 나타나면 꼭 쏜 다음에 가도 가고 싶다. 내 부하들을 위해 하나라도 쏘고 싶다. 믿어라.”


김중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권총을 꺼낸 다음 탄창을 빼 별빛에 탄창 윗부분의 실탄을 확인하고 천천히 대대장 손에 쥐어드렸다.


“1발 약실, 실탄 만땅...입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씀 없으십니까?”

“없다. 가라.”


발소리와 목소리들이 들리자 김중사는 마지막으로 대대장으로 보았다. 경례를 하지 말라고 했다. 김중사는 대대장과 눈을 마주한 채로 소총을 들어 공중에 몇 번 흔들었고, 멀어졌다.


한 동안,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정적을 깨고 요란한 5.56밀리 총소리가 들렸다. 편중령은 금방 이해했다. 자신이 있는 쪽으로 적이 오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사격을 했다. 김석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들이 들린다. 편중령은 미세하게 동이 터오며 회색으로 밝아지기 시작하는 대지를 본다. 다시 하늘을 본다.


‘어, 아직 십자성!... 뭐야, 영점 잡으라고?...’


편중령은 웃었다.


'난 모든 것이 군대식이야... 그런. 우스운.'


발소리가 가까워온다. 중령은 묵직한 것이 들린 오른손을 위로 올려 발자국 소리를 향해 든다. 필에 힘이 오래 버틸 것 같지 않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주 오래 전 임관하기 전 교관의 말이 떠오른다.


“권총은 원래 잘 안 맞아. 클릭 수정이 안 되니까 총마다 다 오조준 사격이야. 그러나 말이야. 당구 치는 사람 있지? 결정적인 순간에는 당구처럼... 정확히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진짜 믿으면서 당겨야 돼. 그럼 마음과 손이 일치되어 들어간다. 억지로 맞추려고 하면 타깃이 흔들리고, 맞을 거라고 믿으면 타깃이 살포시 들어온다. 인간은 참 신기한 동물이지?”


중령은 적어도 한 명은 반드시

맞출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신기하게도...


'점프 200. 실탄 2만 발.'


헌혈하듯이 권총 쥔 손을 땅에 대고

오른손 엄지를 세우며 권총을 수직으로 세워

그 수직선을 팔굽 안쪽 파인 곳으로 잇고

오른쪽 눈까지 일직선으로 일치한다

권총 들어...


권총 앞쪽 무게를 중력에 맡겨 부드럽게

턱을 오른팔 쪽 사선으로 당겨...

가늠자... 가늠쇠...

왼쪽 눈 감아...



준비된 사수...!

e3hy5yu.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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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반사 굴절 회절 2 20.09.08 677 22 15쪽
66 반사 굴절 회절 1 +1 20.09.07 743 22 14쪽
65 후미경계조 5 20.09.04 707 28 11쪽
64 후미경계조 4 20.09.03 691 24 9쪽
63 후미경계조 3 20.09.02 703 23 13쪽
62 후미경계조 2 20.09.01 716 22 13쪽
61 후미경계조 1 +5 20.08.31 788 24 11쪽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800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31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34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795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870 27 11쪽
55 Rain 6 20.08.21 816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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