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주변을 물들였으니 이젠 눈 앞에 드러나 완벽하게 각인시켜라
“ 늘 신중함에 있어 게으름이
없어야 할 거다. ”
하녀장의 엄중한 목소리로 키온가의
입 단속이 강화되었다.
레나의 가벼운 입으로 인해 키온영애를
둘러싼 소문이 무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다행히 영애의 너그러운
선처로 두 달 치 월급 감봉으로 해고를
면하게 되었다.
『 친애하는 키온영애께
이번 저와 관련된 소문으로 많이
곤란해졌을 영애가 걱정 되어 밤새
고민하다 침묵은 답이 아닌 것 같아
이리 서신을 보냅니다.
집에서의 결혼 압박에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단 얘기가 어떻게 그리
흘러갔는지... 영애에 대한 제 마음이
불손하지 않는 정직함이란 것을 보여
드리고 무엇보다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일에 대해 반드시 책임지고 일을
해결하도록 할 터이니 너무 심려 하지
않기를.
- 벗 헤론 』
헤나의 보고서에 섞여 있던 헤론의
편지를 발견한 엘레나는 뜻밖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렀다.
서신 여기저기에 넘치는 그의 속마음을
읽어버린 탓이다.
‘ 생각보다 더 좋은 사람일지도. ’
키온가를 보지 않고 오로지 엘레나만을
보고 있는 그의 솔직함에 엘레나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심 없이 자신을 위한 것을 두고
엘레나 역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단 생각에
『 존경하는 헤론백작님께
생각지도 못한 서신에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저의 경솔했던 행동으로
이어진 결과임에도 저를 위해 애써
주시겠단 말에 용기를 얻어 저 역시
주변을 다시 한 번 더 살펴 백작님께서
혼자 짐을 지도록 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언제고 자비원에 돌아갔을 때
더 많은 이야기로 시간을 가지길
고대 하겠습니다.
- 벗 키온 』
그렇게 남녀의 마음이 서서히 물오르듯
익어가는 것에 맞춰 연회가 드디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황녀가
주관하는 연회 이니 만큼 귀부인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뷔셀백작부인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 어머니 〈에스프리 〉만 고집하시는 지
저로선 이해가 되지 않아요. "
“ 외국에서 들어오는 최고급 원단들 중
대부분이 에스프리로 들어 가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니? 발 빠른 이들이
나서기 전에 먼저 선점해야 하니
어서 준비하도록 해. "
'에스프리' 라고 하면 대공전하의
결혼식 때 대공비께서 입으셨던
‘ 인어의 눈물 ’을 시작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의상실로
까다로운 황녀님도 흡족해 했다는
소문에 제국 내 귀족 부인들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허나 그 곳에
드레스를 쉽게 입지는 못한다.
이유인 즉
“ 잘 부탁해. ”
생글 거리는 나를 띠껍게 바라보는
이 인간 에스프리 마담의 지랄 맞은
성격 때문이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기 때문에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자신의 드레스와 어울리지
않다면 돌려 말하지 않고 그대로
까버린다. 뷔셀가 모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 약혼 연회에 입을 드레스를
맞추려 하니 이번에 들어온 것들
중 다른 이 손을 타지 않은 걸로
보여주게. "
“ 그럼 이것들 중에 한 번 골라
보시겠습니까? ”
“ 이런 흔한 걸 보려고 직접
온 거라고 보나. ”
“ 소식을 들으셨나 본데.
그 원단은 두 분의 머리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추천하지
않은 것입니다. "
"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고는
자네가 아니라 내가 결정할 문제지. "
" 에스프리로 직접 오실 정도면
제 안목을 믿는다는 것인데 다시
한 번 고려해 봐도 늦지 않을 것 같군요. "
"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 것까지야
그냥 자네는 우리 모녀를 위한 드레스를
맞춰주기만 하면 될 일을 내 섭섭지
않게 지불할 것이니. "
“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실패작을 선보여 사교계에
웃음거리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
“ 아니~! ”
“ 그리고 이미 이 원단의 가공이
들어간 상태라... ”
“ 벌써 누군가가 예약을 했단
말인가? ”
“ 어제 키온가에서 다녀갔습니다. ”
“ 하? 좌중 해도 모자를 판에
연회에 참석을 하겠다고? ”
“ 어머니 제가 뭐라 하였어요.
키온영애의 영광은 가문에서
조작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지금 돌아다니는 소문만 봐도
다 아는 것인데 이 참에 제
이야기를 무시했던 영애들은
확인 할 수 있을 겁니다. "
앞서 열린 다과회에 많은 영애들
앞에서 창피를 준 제온영애에게
굴욕을 되돌려 줄 생각에
뷔셀영애는 드레스를 맞추진
못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소득에
잔뜩 신이 난 채로 돌아갔다.
“ 고마워 루이. ”
“ 오랜만에 찾은 이유가 고작
이런 거였어? ”
“ 그럴 리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
“ 퍽이나. 그보다 저이들이 그 날
제대로 일을 만들어 낼까?
생각보다 더 멍청한 것 같은데? ”
“ 내 손으로 공들일 필요 없을 만큼만
거기까지. 한 번 쓰고 버리기
딱 좋은 패지. ”
“ 아깝네. 네가 만든 설계는 재미있는 데
말이야. ”
“ 나중에 들려줄게. 연회에 참석할 순
없어 자세한 설명은 힘들겠지만. ”
“ 뭐래~ 백작님 머리만 쓰윽 훑으면
그만인 걸. ”
나의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루이는 불평스러운 말투와 달리
눈빛은 기대로 가득 찼고 나 역시
설계를 마칠 그 날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 축하드립니다. 샤렌공작님~ "
" 하하 고맙네. "
" 황녀님께서 친히 샤렌영애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시다니 기쁘시겠습니다. "
황녀의 힘이 실린 덕분인지 여기저기서
샤렌가에 붙어 부스러기라도 주울
요량으로 아양을 떠느라 바쁘다.
이는 귀부인들과 영애들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는 지
“ 어쩜, 조만간 샤렌영애의 약혼식에도
참석 하신다 하니 이런 영광스러움이
또 있을까요. "
“ 그러게요. 모든 영애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으니 샤렌영에게
오늘이 얼마나 행복하게 기억될지. "
하지만 모든 이들의 들뜸에 합류하지
못한 이가 있었으니
“ 약혼자라 키온영애에 대한 소문은
그저 흔한 가십이라고 하지 않았나? ”
“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
------탁
들고 있던 손수건을 자신에게 내던지니
사색이 된 시녀장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 송구합니다. ”
“ 나는 가정이나 추측 따위엔 관심 없다. ”
“ 키온가가 운영하는 자비원의 일을
헤론백작이 대가 없이 돕고 있고
키온가의 자선연회에까지 얼굴을
비추었다는 말이 나와 키온영애의
소문의 남자가 헤론백작이란 말이
돌고 있는 중입니다. "
시녀장의 말에 불안했지만 아직
헤론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일이다. 소문 하나
부풀려진 것일 뿐 조금 후 자신의
말이 증명될 것이라 굳게 믿는
황녀는 침착하게 헤론을 기다렸다.
“ 하~ ”
그러나 샤렌을 위한 아니 자신의
유희를 위해 준비했던 폭죽은 불발
했다. 그가 등장으로 영식들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사려야 하는데
오히려
“ 헤론백작님. ”
키온영식을 필두로 고위 가문의
자제들이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황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으니
“ 좋은 자리에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는 것일 뿐 영식들의 속내는
알 수 없사 오니 부디 고정하시지요. "
허나 시녀장의 말과 달리 사람들에
둘러싸인 헤론백작의 환한 얼굴을
확인한 황녀가 급기야 자리를
떠나려 하니
“ 샤렌공작의 감사인사를 받고 나서
움직이셔도 늦지 않으십니다.
황녀님의 평판을 쇄신함을 물론
그것을 공고히 할 수 있음을 인지
하시어 부디 자리를 지켜주십시오. "
남성 편력이라는 꼬리표를 오늘의
온정으로 조금이나마 가릴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걸 시녀장이 거듭 확인 시키어
황녀는 어쩔 수 없이 억지 미소를
띄우려는 데
" 떳떳하지 않은 걸음이라니요? "
" 항간의 소문이 제국을 덮을 정도로
커졌는데도 좌중 하시긴 커녕
이리 행동하시는 것이 걱정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날선 목소리들.
궁금해진 황녀가 시녀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다가가니 키온영애가
앳된 영애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다.
" 사실도 아닌 고작 소문 하나에 제가
숨을 이유는 없습니다. "
“ 물론 소문은 소문에 그칠 수도
있지요. 허나 오늘은 황녀님께서
친히 배동인 샤렌영애를 위해
시간을 만든 자리입니다.
자칫 영애의 경솔한 행동이
샤렌가는 물론 키온가에까지
누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
주셨으면 하네요. "
“ 뷔셀영애 말에 무게를
얹을 때는 뱉고 나서의 결과에
책임을 가졌을 때 가능 한 것이니
신중하도록 하세요. "
아무래도 두 사람의 감정 싸움으로
번질 것을 염려한 제온영애가
사이에 들어와 제동을 걸어 말리니
“ 가문의 후계를 이어 정계로
나설 만큼의 똑똑하신 분께서
이런 중요한 일을 정으로 덮으려
하시다니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셔야 할 겁니다. "
“ 뷔셀영애~!! ”
“ 오호~ 일이 재밌어지겠는 걸? ”
처음 시녀장에게 약혼 이야기를
들었을 땐 사실이 아니었으면 했다.
그래야 자신의 말에 힘이 실릴 테니
허나 이미 허사로 돌아간 마당에
뷔셀영애의 멍청한 행보로 차라리
사실이 되어 아끼는 영애가 망신을
당한다면
“ 어차피 엎어진 일 그들의 관계가
사실이면 좋겠군. ”
“ 네? ”
황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시녀장이
고개를 갸우뚱하니
“ 그럼 적어도 자신으로 인해
저 영애가 곤욕을 치르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될 테니까. ”
“ 하오나 백작님께서 두고 만
보시진 않을 겁니다. ”
“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뼛속까지 귀족인 헤론백작이 한낱
여인과의 인연을 위해 체면을
버리는 짓 따윌 할 리 없어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가문과
직결된다는 걸 알고도 명성을
스스로 내던지는 어리석은
짓을 할 리가... "
헤론을 건드리든 그의 그녀를
괴롭히든 결과만 만족스러우면
되는 황녀는 흡족한 미소를
띄우며 기다리는데
" 키온 영애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으십니다. 그러니 모두들
그만하시지요. "
전혀 예상 못한 헤론백작의
등장에 당황한 황녀와 영애들은
들리는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연회 참석 하루 전.
“ 저번 제가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십니까? ”
“ 내 선택에 의해 결과가 달라질 순
있단 그 말을 말하나? ”
" 네. 원래는 샤렌가에 키온영애의
불참 의사를 넣으려 했으나 제가
저지하였습니다. "
“ 대체 무슨 연유로? ”
“ 누구보다도 떳떳한 영애께서
굳이 피할 이유가 없어서 입니다. ”
“ 자네가 곤경에 빠뜨린 게 걸리긴
한가 보군. ”
여전히 나를 원망하는 헤론백작이
귀엽기만 하지만 지금은 단호할
필요가 있어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나타나는 법입니다. 칭송을 받았다면
시기 역시 받게 됨을 말이죠. 분명
이번 연회에서도 영애의 소문을
들먹여 영애의 명예를 해하려는
이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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