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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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결국은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마련이지 않겠나? ”
역시나 피카스의 말대로 그냥 넘어가기
않는 재판관의 물음에
“ 발트호수는 연인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지요. ”
뜬금없는 내 말에 수석행정관이 참견을
하려 하자 재판관이 제지하며 계속 말을
하도록 허락했다.
“ 남녀의 농밀한 대화를 나누기에
울창한 나무가 넓게 분포되어 있는
그 곳이야말로 안성맞춤이지
않을까요? "
“ 훗... ”
“ 재판관님이시라면 많은 이들 오가는
공원 입구 쪽에서 한숨만 쉬겠습니까
조금 더 들어가 원 없이 우시겠습니까? "
언젠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무슨 고민에서인지
남들이 즐겁게 뛰놀 때 혼자서 다른
표정을 짓던 그래서 기억에 남았는데
지금에야 누군지를 알게 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던졌다.
“ 이런... 감정을 끌어내는 게 사기꾼
못지않군. ”
“ 아니죠. 저는 증인석에 선서까지 한
사람입니다. 신을 속일 순 없습니다. ”
“ 그렇다면 공녀가 영식의 휴식을
방해한 셈이군. 허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자네가 차라리 남들 눈에
띄었다면 오히려 나았을 수도. "
콧대 위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도수
높은 안경을 집게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선한 얼굴과는 상반된 강한
악센트가 실린 어조로 말하지만
눈빛은 파이와 다를 거란 기대로
가득했다.
‘ 기회를 주려는 걸까? ’
어투와 달리 나를 대하는 태도며
표현하는 제스처가 확실히 파이랑은
다르다. 칼이 이어준 헥터가가
생각보다 힘이 있음을 느끼며 이
기세를 몰아 티처에게서 배운 대로
행동에 포인트를 주며 말을 이었다.
" 페고니아가 참 예쁘게도 흐드러지게
피어 슈테른공을 조르길 잘했단 생각이
들더군요. "
“ 그럼 슈테른공 역시 함께 였단
말인가? ”
“ 아쉽게도 다른 약속이 있어 먼저
자리를 떴고 전 하인에게 데리러 올
시간을 정해준 뒤 조금 더 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독서를
하던 중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제
귀에 들리더군요. "
“ 그 때 보았던 것인가? ”
“ 아닙니다. 조용하던 공간을 다소
시끄럽게 만들긴 했으나 굳이 나서
한 소리 할 정도도 아니었고 몸이
불편 하다 보니 움직임이 다소 둔해
귀찮은 것도 있어 확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
“ 그럼 어떻게 공녀라는 걸 알았나? ”
“ 호기심 많은 공녀를 연신 부르는
하녀의 목소리만으로도 누구인지
알겠더군요 그래서 혹여 제가
나들이를 방해하진 않을까 하여
자리에서 일어서려 던 그때 무어라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
“ 무슨 말을... ”
“ 공녀는
「 걱정 하지 마 세실. 내 말 한마디면
유모도 집사도 꼼짝 못하는 거 알잖아.
넌 그냥 내가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돼. 」라고. "
" 네~! 맞아요~~흐....흐..흑 공녀께서
분명...그리..흑.. 제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리.. 흐흑...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재판정 안
청중석 맨 끝 자리에 앉아있던 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 때가 떠오른 듯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울어버렸다.
‘ 노출을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파이. ’
울음을 터트리는 하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확실히 내가 그 곳에 있었음을
입증해주었다. 허나 자칫 하녀와 내가
짰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어 난 청중석에 칼이 심어 둔
수하들을 바라보니
“ 앞선 재판에서 쓰러져 자리 보전하던
이가 대공가 하녀와 말 섞을 시간이
있었을 라고. "
“ 하기야 그것 때문에 서쪽 별장으로
요양까지 갔으니까. ”
난 첫 재판 날 쓰러지긴 했어도 며칠을
자리 보전 하진 않았다. 하지만 파이의
생각을 비롯해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읽고 그 힘을 버틸 시간이 필요했기에
칼을 찾았다.
“ 시간이 필요 하다라... ”
칼의 눈초리가 가늘어지며 곧장
모엘신부를 떠올리기에
“ 제가 긴장한 탓도 있지만 전혀 예상
못한 이의 등장에 당황하고 싶진
않습니다. "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간임을
강조하며 칼의 괜한 생각을 재빨리
끊어냈다.
“ 이거 실망인데. ”
“ 서운합니다. ”
“ ...?? ”
“ 기대를 하실 생각에 들뜬 접니다.
그런데 능력을 보지도 않고 판단
하시니. ”
“ 큭큭큭, 좋아 네가 그리 원한다면
나야 치를 값만 셈하면 그만이니까.
헥터가의 서쪽 별장에서 며칠 간
요양하는 것이면 마음에 들까? "
“ 그리 간단히 해결될 수 있을까요? ”
“ 헥터가의 주인들이 정부를 두던
곳이니 헥터가 차남의 숨겨진 자식인
네가 있기엔 안성맞춤이지. "
“ 좋습니다. ”
그렇게 난 성당과 별장을 오가며 이중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 도착
했을 때 난 제일 먼저 마을 지주와 몇몇
영향력 있는 이를 골라 불렀다.
“ 내가 여기 온 것은 요양을 위한
목적이니 거슬리는 게 없었으면
좋겠군. ”
“ 별장 내 사용인들은 머무실 동안만
쓸 것이라 말이 새어나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
몇 년간 별장을 관리한 덕인지 지주는
눈치 껏 입을 봉했다. 그런 그들에게
난 조금은 과할 만큼의 선물을 밀어
주며
“ 기왕 잠시 쓰는 것이라면 내가 데리고
온 이들을 부렸으면 하는데. ”
“ 어이구 뭘 이런 것을. 쉬러 오시는
것인데 당연히 편하게 보내실 수
있어야지요. ”
그렇게 난 자연스럽게 칼의 수하들을
내 목적에 맞게 이용했다.
“ 하? 저를 감시할 자로 붙인 이들을
이렇게 써먹을 줄 이야.”
“ 수장님의 눈과 귀에는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
“ 귀여워. 큰일이야 벌써부터 매달리고
싶어지니. ”
그렇게 난 별장과 성당을 오가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고
칼에겐 수하들을 통해 치료를 위한
이동 정도로 보고 되었을 것이다.
“ 어차피 내가 거기 있었다는 건 칼에게
보고될 정도로 사소한 것이니까. ”
거기에 입이 가벼워 바람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낼 줄 알았다. 덕분에 난
공녀 일로 불려 온 이들 중 가장 불안해
할 하녀 한 명의 기억만 훔치면 되었다.
“ 자네, 사람들을 좀 조용히 시키게. ”
웅성거리는 관중들이 짜증 난
수석행정관은 옆에 있던 행정관에게
지시했다.
" 아.. 네.. 모두들 정숙, 정숙
해주십시오. "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돈되자 재판관이
나에게 진짜 궁금한 것을 물었다.
" 공녀를 보필한 하녀에 의해 영식이
그 자리에 있었음이 증명되었으니
그 날 그대가 본 것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도록 하게. "
" 네. 그 날 공녀는 누군가에 의해
떠밀린 것이 아니라 실수로 물에
빠졌습니다. "
---------웅성웅성
이건 제일 큰 사실이다. 라쿤의 훔친
기억엔 분명 공녀가 그를 피하려다
빠진 것이니까 라쿤이 내게 화난
이유도 직접 밀지 않은 걸 들킨 것에
있으니 그렇게 난 파이가 정성스럽게
짠 공녀 살인사건의 판을 완전히
뒤집었다.
‘ 네가 순수하게 몬스터를 무너뜨리고
싶어서였다면 나도 도왔을 거야 파이. ’
그렇게 난 일그러지는 파이를 향해
비웃음과 동시에 칼을 살폈다.
‘ 내게 흥미를 가진 건 순전히
모엘신부님을 끌어 내기 위한 것일
테지. 절대 그럴 일은 없어. 이제부턴
내가 방패가 되어드릴 거니까. '
그렇게 칼의 관심을 따갑게 받으며
주변을 살피니 역시나 예상대로 나를
비난하며 누구를 구하려고 한 거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경비 대장 역시 매서운 눈초리로 내게
해명을 재촉했지만 난 잠시 침묵했다.
' 어때? 네가 잡아 넣은 고기들이
이젠 어망 속을 빠져 나가려고 해.
이걸 그대로 지켜만 보면 넌 나한테
지는 거야. 그러니까 생각해 뭐든
닥치는 대로. '
다른 사람들의 반응 따윈 지금은 관심
없다. 내가 궁금한 건 파이의 반응.
역시나 나와 같이 대기실 문이 활짝
열린 채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그림자.
"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지만 공녀는
안타깝게도 발을 헛딛었습니다. "
" 지금 증인들의 말이 엇갈리는군. “
" 허나, 하나는 그러할 것이다고
하나는 그러하다 이니 현명하게
판단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
자신을 대놓고 틀렸다 말하는데도
생각보다 참을성이 있는 듯 해
난 이제 대 놓고 대기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얻어 걸린 파이 녀석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 히야~ 상상만 해도 짜릿한데? ”
라쿤은 파이가 생각한 계획엔 관심
없고 그저 몬스터를 뭉개버릴 것에
한창 들떴다.
" 그럼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먼저
물어볼 것이 있어. "
" 얘기해. "
" 넌 그날 공녀에게 왜 접근한 거지? “
파이는 라쿤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물었고 라쿤은 잠시 머뭇거리다 별거
아니라는 듯 바로 내뱉었다.
' 고작 그런 이유로. ‘
라쿤에겐 별명이 하나 더 있었다.
미친 까. 마. 귀
반짝이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써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집착했다.
그래서 난 사람도 예외가 아닐 거라
생각해 어여쁜 공녀를 잡으려다 일이
생긴 줄로만 알았는데 공녀의 양산을
뺏으려 했다니 기가 차다.
“ 파이, 지금처럼 초조하게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며 머리를 굴려.
그럼 난 그걸 그대로 써 먹어 줄
테니까. "
그렇게 잡아당겨 불안하게 만든
파이의 속을 끝까지 파낸 뒤 그것을
내 이야기에 덧 입혀 준비했다.
" 공녀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일어서려는 데 부정하는 공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라도 확인을
하고 도움을 청했다면 그리 황망하게는
..... "
" 자네가 본 것만을 말하도록 하게. "
재판관은 약간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 듯
언성을 살짝 높여 재촉하였다.
“ 그게 처음은 그저 하녀에게
투정이라도 부리시나 하고 별 생각
없이 들었었는데 그것이... "
“ 자네를 여기서 책망하는 이는
없을 것이니 사실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 하면 되는 것이야. "
급기야 아이 다루듯 하는 재판관의
상냥한 말에 난 확신을 느끼며 떨리던
음성을 잡아 차근차근 이어갔다.
" 그저 투정이라 하기엔 꽤 다급한 듯
해 확인하고자 고개를 드니 공녀에게
감히 다가가는 것도 모자라 손을
뻗는 것에 몸을 일으켜 가려했지만... "
내 몸이 이미 불편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재판관과 관중들은
아쉬움에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 그래도 공녀를 위험에 빠뜨린
이라도 제대로 살피기 위해 일어서
보니 누군가 그 자를 잡고 씨름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
나는 공녀를 위험에 빠뜨린 이를
공격한 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처음 보는 이를 내가 알 리가
없으니 그렇게 파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파이가 라쿤과
몸싸움을 벌였다는 것으로 녀석의
증언과 나의 증언을 이었다.
‘ 둘 중 하나를 택할지 둘을 다 살릴지
궁금할 거야. 더더 애가 타서 매달려봐
사정 하면 더 좋고. '
추측과 사실 중 무게는 당연히 확실하게
책정된다. 재판관이 날 다정하게
달랜 것만 보아도. 판단력이 흐려지면
결국 손을 잡는 건 같은 귀족일 뿐이다.
“ 혹여 이들 중에 영식이 본 이와
비슷한 자가 있는가? ”
재판관의 물음에 난 곧장 답하지
않고 시선을 라쿤에게로 향했다.
이에 녀석은 나머지 눈들이 자신을
향할 것을 직감하고 드디어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
" 헥터영식~ 공녀가 익사 사고를
당하게 된 원인을 제공한 이가
이 둘 중에 있는가? "
“ 물론입니다. ”
" 그럼 대답해 보게 나. "
" 그 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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