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오랜 공방(攻防)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잠시 말없이 나를 기다리던
루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움직이려 했다.
“ 조금만 기다려줘. ”
“ 아니, 시간이 없어. ”
“ 그걸 모르는 거 아니잖아. 애들이랑
몬스터가 어디로 갔는지 부터 알아
내서... ”
“ 그건 내가 할 일이야. ”
“ 루이? ”
“ 지금부터 우리는 각자 행동하기로 해. ”
“ 말도 안 되는 너 설마 경비대에
제 발로 찾아가겠단 소릴 하려는 건
아니지? "
“ 아이들은 이미 여기서부터 겁에 질려
날 애타게 찾고 있을 거야. ”
“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너라도 살아
남아야지~! ”
“ 내가 무슨 수로. ”
“ 그건 내가... ”
“ 네가 구해줘. ”
“ 뭐? ”
“ 어차피 나와 같이 있으면 너도 같은
취급을 받게 될 테고 자칫 일이 잘못
되면 그땐 진짜 아무것도 못할지 몰라.
그러니까 내가 안에서 시간을 끌고
있을 테니. "
“ 경비대에서 매 좀 맞고 끝나는 거랑
감옥에 갇히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
“ 넌 똑똑하니까 우릴 빨리 찾을 거야.
그리고 숲 속 집보다 바람은 덜 들어
올 테니 오히려 나을지도. "
“ 너 진짜. ”
“ 널 믿어. 분명히 해낼 거니까 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알았지?~!! "
그렇게 그 말을 끝으로 냅다 달려버리는
루이. 난 돌아오지 못하는 기운 탓에
녀석을 잡지도 못하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애꿎은 화풀이를 해 댈 수밖에
없었다.
“ 생각보다 빨리 왔는데? ”
“ 일이 생겨서 계획을 조금 앞당겨야
할 것 같아요. ”
“ 끌려 다니는 것보다야 앞서면서
베는 게 재미있긴 하지 기다려. "
그렇게 날짜를 전달했고 초조하게 칼의
답을 기다렸다.
“ 이거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가? 안 그래도 궁금해서 내 쪽에서
널 찾으려 했었는데. "
“ 경비 대장이 제가 아는 이들을 모조리
잡아 갔어요. 거기엔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포함되어 녀석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거에요. "
“ 어린애들이 손아귀에 힘을 줘봐야
고작 꺽을 수 있는 거라곤 강아지풀이
다일 텐데. 경비 대장이 독하게 마음을
먹었나 보군 아님 제대로 미쳤던 지 "
“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해요
최대한 빨리. ”
“ 섣불리 도구를 사용하면 탈이 날
텐데. ”
“ 상관없어요. 그 정도 각오 없이 일을
벌리진 않으니. ”
“ 좋아. 내일 이 시간에 여기 적힌
주소로 가도록 해. 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귀족으로 만들어
줄 인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
“ 알겠어요. ”
그렇게 주소를 받아 들고 내 온
차도 들지 않은 채 곧장 밖으로
나섰다.
“ 너무 즉흥적인 게 위험해
보입니다만. ”
“ 그래서 재미있는 거지. 실패하면
그것대로 녀석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
실패할 확률이 높음에도 기대가
되는 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는데
이상하게 녀석을 다른 인간에게
뺏기기 싫은 욕심이 불쑥 거려
오랜만에 두근거리기까지 한
칼이었다.
“ 난 너에게 귀족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양 및 문화를 가르칠 티처다. ”
“ 어머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미인이잖아? 반가워요 난 꼬마
아가씨에게 춤과 의상을 담당한
아나나스 부인이에요. 편하게
마담이라고 부르셔도 상관없어요. "
칼이 알려준 주소에 도착하니 커다란
저택 하나가 나를 반겼고 집사의
안내로 날 바꾸어 줄 사람들을 소개
받았다.
“ 으흠. ”
“ 머리로 하는 티처의 가르침에
숨 쉴 공간이 부족하겠지만
가슴으로 작업하는 저와의
수업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요. "
웃으면서 티처를 고지식한 노인네로
만드는 아나나스의 미소 아무래도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 두 분의 가르침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그 전에 부탁을 따로
드릴 것이 있는 데. "
“ 무언가? ”
은색 테가 움직이는 주름에 걸려 내려
간 것을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며
묻는 티처의 질문에 부푼 가슴을
조심스레 손으로 가린 후 내게 가까이
다가온 아나나스 부인.
“ 칼에게 말하지 않은 걸 우리에게
요구하는 걸까요? ”
“ 약속이랑 틀린 데. ”
“ 어머~ 티처. 답답하군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음을 늘 염두
해 두셔야죠. 나이 탓만 하는 건
변명에 그친답니다. "
“ 아.나.나.스 부인. ”
아무래도 신경전이 예상되는 인물들
사이에 잘못 걸린 것 같아 난 최대한
불편한 지금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답했다.
“ 많은 변화를 원하는 게 아니니 너무
노여워 마시고 저를 혹여 알아보는
이가 있을 것 같아 여자애라는 걸
숨겼으면 해서 나이는 15살,
완벽한 귀족가의 영식으로
분하길 원합니다. "
“ 어머~! 사랑스러운 영애가 아니라
영식이라니 뜻밖인데요? ”
“ 뭐 예의에 있어 남녀가 다를 것은
없으나 조금 손을 보아야겠군. ”
“ 너무 기력을 빼진 마세요. 춤을 추다
쓰러지면 제 탓만 하게 되는 건 바라지
않으니. "
“ 쓸데없는 걱정은 쯧, 나를 따라오도록
해라. ”
부인의 말에 기분이 나쁜 듯 곧장 몸을
돌려 앞장섰다.
“ 나랑은 맞지 않는 건 별개의 문제이니
신경 쓰지 말길~ 칼이 직접 데려온
이들은 고르고 고른 인재라 결코 우리
꼬마 아가씨, 아니 이젠 도련님이 될
그대에게 절~대~ 손해 되는 시간은
아닐 테니 잘 견뎌보도록 하세요. "
“ 아..네.. ”
“ 난 그럼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크라바트를 보러 가도록 할까~ ”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티처와 달리
부인은 꽤 들뜬 모양이다. 왠지 티처는
몰라도 부인과의 수업은 즐거울 지도.
“ 는 무슨 도대체 몇 번을... ”
고리 타분한 티처보다 발랄한 부인의
수업이 즐거울 거란 상상은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갔다. 생글 거리던 첫
인상과는 달리 수업이 들어가자
얼굴부터 달라지는 부인은 동작 하나
하나에 집중하도록 쏘아붙였고 무수히
많은 턴에 헛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 보기는 그러해도 아나나스가 배출한
귀족 자제들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이니
믿을 만 할 거다. "
“ 살아남았다면 아마도. ”
“ 큭큭, 빠르게 배우려면 속부터
게워 내야 하는 거다. ”
자기 일 아니라고 재미있다는 듯
말하는 피카스. 몸에 기운이 남았다면
주먹이라도 날렸을 텐데.
" 지금까지 한 수업을 절대 잊지 않도록. "
“ 명심하겠습니다. ”
“ 우리 도련님의 활약이 너무나도 보고
싶은데 아쉬울 뿐이네요. ”
“ 하하... ”
드디어 끝났다. 시간이 많지 않아
밤새도록 한 탓에 벌써부터 나가
떨어질 것 같은 이 시간을 도대체
귀족들은 무슨 생각으로 견딘 건지.
“ 절대 돈 주고 귀족작위 사는 짓은
없을 거야. 이런 목줄을 채우느니
그들 비위나 맞추는 칼과 같은
일을 택하는 게 낫지. "
그렇게 저택을 나온 난 그 길로
서쪽 숲 루이의 아지트로 향했다.
확실히 사람이 없다고 들짐승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영역 표시마냥
남겨져 있다. 난 그것들을 뒤로
벽난로부터 뒤졌다. 어차피
몬스터가 붙잡혀간 이상 이건
쓸모없을 테니 혹여 만에
묻는다면
“ 목이 붙어 있는 이유라 말해두면
알아듣겠지. ”
* 재판정.
" 자자~ 정숙들 하십시오. 재판관님
나오십니다. "
경비 대장은 재판이 열리기 이틀 전
서신 한통을 받았다. 대공가의 일에
매진해도 모자를 판에 또 다른
사건인가 싶어 미루 려던 찰나 봉투에
찍힌 낯익은 인장에 눈길을 두고 보니
최근 황실과 연이 닿아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신귀족들의 우두머리인
헥터가의 인장이었다.
“ 귀찮은 일만 아니면 좋겠는데. '
되도록 무시할 수 있을만한 일이길
바라며 서신을 열어보니 거기엔
뜻밖에 내용이 담겨 있었다.
“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모양이군.
덕분에 재미있는 구경을 빨리
할 수 있겠어. "
그렇게 칼에게서 경비 대장의 답신을
받은 난 재판정에 증인으로 나와
대기실에서 내 순서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 * * *
" 집안에는 꼭 한명씩 골칫덩이가
있기 마련이지. 비네 인토르 헥터.
그게 너의 새 이름이다. "
" 사생아란 거네요. "
" 진짜 귀족이 아니어서 아쉽나?
이참에 너의 양아비인 자의 약점이라도
들쑤셔 제대로 된 가족을 만들어줄까? "
" 아니요. 제 반응을 오해 하셨나 본 데
꽤 마음에 듭니다. 집에서 신경 쓰지도
않고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가문의 성을 가진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위치. 딱 적당해요. 치고 빠지기.. "
" 이거 아까운데. "
" 네? "
" 아니~ 그럼 재판날 보도록 하지. “
거길 오겠단 소리인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쳐다보니
“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지 궁금해서. ”
“ 좋으실 대로. ”
어느 덧 자신에게 익숙한 듯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는 아이의 행동에서 칼은
오랜만에 기분 좋은 예감이 들어 재판이
무척 기대됐다.
“ 대공녀 실종 사건에 관한 재판을
이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수석행정관의 목소리에 웅성대던
좌중들이 조용해지자 내 심장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 긴장 하지 마. 집중하자~ ”
수석 행정관의 목소리에 용의자로
지목된 라쿤과 몬스터가 차례로
등장했다. 라쿤은 몬스터를 보자마자
죽일 듯 노려봤다. 아마도 몬스터가
자신을 끌어들인 것으로 착각한 듯.
“ 우우우~~!! ”
관중석 여기저기서 그들이 등장하자마자
비난의 목소리와 야유가 흘러나왔고
이에 수석행정관은 곧바로 제지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는 그칠 줄 모르고
“ 대공각하내외분께서 우리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면 너희들은 우리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어도 싸~! "
“ 감히 겁도 없이~~!! 우리를 속일 순
있어도 신까지 속일 순 없을 거다~! "
제국민들이 라쿤과 몬스터에게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건 당연했다.
아이를 위한 일이라 했지만 대공비가
한 좋은 일들은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쳤으니. 나 역시 그녀에게서 도움을
받은 이 중 하나였다.
“ 다행이구나.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동생이 많이 놀란 듯 해 쿠키를 주어
달랬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것을
마저 가져가서 나눠 먹도록 하렴. "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루이와 날 놓친
레이가 울며불며 길거리를 헤매다
대공비의 눈에 띄어 녀석을 무릎에
앉혀 달래고 있던 것을 우리가
찾은 것이다. 그때 손이 더러워 쉬이
벌리지 못하니 거리낌 없이 나의 손을
잡은 이가 바로 대공비였다.
“ 구하진 못했지만 최소한 원은 풀어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
아이의 시신을 찾고 그렇게 만든 이들을
처벌해 대공비의 눈물이 조금이라도
마르길 기도하며 조용히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웅성웅성
몬스터 하나만으로 지목되었던 것이
새로운 증언으로 인해 용의자가 추가
되면서 둘을 향한 목격담과 그동안의
행실들이 연이어 쏟아지며 재판이
길어질 무렵,
“ 증인을 요청합니다~!! ”
아무래도 답이 나오지 않고 공방만이
이어질 것 같아 행정관 측에서 먼저
증인을 요청했고 이에 준비를 하던
나의 대기실 쪽에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을 두고 무슨 일인가 싶어 밖을 나서
증인석을 바라보는데
“ ......!! ”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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