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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과학적으로 살아남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LEV1
작품등록일 :
2022.10.31 13:13
최근연재일 :
2022.12.28 22:25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73,994
추천수 :
2,527
글자수 :
469,180

작성
22.12.2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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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진실의 옷(1)

DUMMY

“어떠십니까? ”

“좀 끼네요. 달린 것도 너무 많고. ”


공작의 명에 따라 니콜라스가 가져온 옷은 예복인 점을 고려해도 지나치게 화려하고 불편했다.


체형에 맞춰 꽉 조이는 데다 특이하게도 소매에 장갑이 달려있는 일체형이었는데, 여기저기에 새카만 보석으로 된 장식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심지어는 장갑의 손가락 하나하나에도 엄지손톱만한 놈들이 박혀 있을 정도였다.


“아무리 봐도 밥 먹기 편한 옷은 아니군요. ”

“죄송합니다. ”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제 예복도 있습니다만... 소개하는 자리라면 오히려 그걸 입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만 이곳의 모두가 외지의 복식에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공국이 자랑하는 진귀한 유물이기도 하니 이번만은 참아주셨으면 좋겠군요. ”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할 수 없네요. ”


환복을 마치고 니콜라스를 따라 성내를 걸었다.


“그런데 릴리는 어디 있습니까? ”

“아. 시녀 분이라면 방으로 먼저 돌려보내 두었습니다. 용건이 있으십니까? ”

“그런 건 아니지만... 만찬장에는 저만 가나 보군요? ”

“음... 정식으로 혼인을 하셨다면 릴리 양도 불렀겠으나 아직은 시녀로서 데리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나이도 불과 작년에 성년이 되었다고 하니 너무 어리고요. 본인에게 따로 작위가 있지 않은 이상... ”

“알겠습니다. ”

“음식은 이쪽의 시녀를 시켜 따뜻할 때 보내드리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

“그 밖에 더 필요한 건 없으십니까? ”


마침 잘 되었지 싶었다.


“괜찮다면 방을 하나 더 얻었으면 좋겠군요. ”

“방을요? ”


니콜라스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드린 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공작 전하와 그분의 방 다음으로 좋은 방을 드렸는데. ”

“아뇨. 좋습니다. 다 좋은데... ”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제 나라에서는 부부들도 흔히 각방을 쓰거든요. ”

“그렇습니까? ”

“오늘 데려온 원주민 아이도 신경이 좀 쓰이고요. 아무리 하녀라도 땅바닥에 눕히는 건 좀... ”

“...아. ”


니콜라스가 돌연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그렇군요. 하긴 공도 젊은 사내이시니. ”

“네? ”

“아니, 실례했습니다. 공이라면 그보다는 릴리 양을 위한 예행연습을 하시려는 거겠지요. 준비해 두겠습니다. ”


얘가 뭐래니, 지금?

오히려 오해가 더 늘어난 느낌이었지만 뭐라 하기도 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만찬장으로 통하는 커다란 아치문 앞에서 문지기들을 옆으로 물린 백작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양해를 하나 구해야겠군요. ”

“뭡니까? ”

“원래는 주빈이신 이미르 공께서 상석 오른편에 앉으시는 게 순리입니다만, 공국의 사정상 오른쪽 첫 두 자리는 정해진 사람이 있는지라. 실례지만 다른 자리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

“상관없습니다. ”

“대신 고기를 자르는 역할은 양보하겠습니다. ”


필요 없는데.

의자 수를 세어보니 딱 봐도 수십 번은 썰어야겠구만 그거를 손님인 나한테 짬처리 시키겠다고?


“아뇨. 괜찮습니다. 고기도 썰어본 사람이 잘 썰겠죠. 하시던 대로 하십시오. ”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천만의 말씀을. ”

“이쪽으로. ”


니콜라스의 안내에 따라 만찬장에 들어섰다.


직사각형 모양의 그레이트 홀에 세로로 기다란 40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고 가장 안쪽에 상석이, 양쪽으로 나머지 좌석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구조.


아직 비어있는 옥좌 옆에 선 어린 시종이 씩씩하게 니콜라스와 나의 도착을 알렸다.


[니콜라스 클레멘테 궁정백님과 오늘의 주빈 되신 이미르 휴브리스 공께서 오셨습니다! ]


성큼성큼 앞서간 백작이 내게 자리를 권했다.

상석 기준으로 왼쪽에서 두 번째이자 그의 바로 옆자리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칼즈베드 백작부인께서 오셨습니다! ]

[라구나 니구엘 보좌주교님께서 오셨습니다! ]


나와 비슷한 예복을 입은 참석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이윽고 상석과 그 오른쪽 앞 두 자리를 제외한 모든 좌석이 채워지자, 만찬장 안쪽의 문이 열리더니 붉은 머리카락의 귀부인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


[이사벨라 데 카탈리나 공작부인을 뵙습니다! ]


좌우로 기립한 사람들이 외치는 가운데, 살짝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미려한 동작으로 상석에 앉았다.


잠시 주변을 살핀 그녀가 약간의 비음이 섞인 낭랑한 목소리로 좌중에게 물었다.


“오른쪽 날개의 두 분은 오늘 궐석이신가요? ”

“불참한다는 말씀은 없었으니 아마 곧 오실 겁니다. ”


니콜라스 백작이 말하기가 무섭게 벌컥 문이 열렸다.


금빛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판금 갑옷에 푸른 망토를 두른 굵은 턱수염의 사내와, 은빛 갑주 위로 붉은색의 수단을 덧입은 초로의 노인이었다.


[리조 프랑크 팔라딘이자 변경백님께서 오셨습니다! ]

[아르망 레 쥘 드 카피스트라노 드 카탈리나 대주교이자 추기공작님께서 오셨습니다! ]


상석의 이사벨라와 손님석의 나를 제외한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네. 모두들 앉지. 엄중한 시국이니 시시콜콜한 예법 따윈 생략하세. ”


노인의 말에 모두가 착석했다.

옥좌의 오른쪽, 나와 니콜라스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그들이 이사벨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도 형님께서는 안 오시는 모양이오? 부인. ”

“예. 아쉽게도. ”

“부군께서는 괜찮으신가? ”

“‘낙원’에서 받아온 치료법 덕분에 어떻게든 악화되는 것만은 막고 있습니다. ”

“그렇군. 다행이지만 좀 더 차도가 있어야 할 텐데. ”

“그러게 말입니다. 형님께서는 언제까지 옥좌의 절반을 부녀자의 엉덩이 따위에 맡겨두실 참인지, 원! ”

“리조 공. ”


니콜라스가 말했다.


“공작부인이시자 공작 전하의 대리인 앞입니다. 마땅한 예의를 갖추십시오. ”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니콜라스? ”


-철컥!


“두 번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

“해보려고? ”


동시에 칼집을 쥔 두 사람을 이사벨라가 손을 뻗어서 저지했다.


“그만둬, 니콜. 리조 변경백께서도 그쯤 하시지요. 아무리 공국의 후계자이시라고 하나 본녀는 지금 현 공작이신 부군의 대리인으로서 이 자리에 있습니다. 니콜라스 궁정백 역시 오늘은 공작부인인 본녀의 대리인으로서 여기 있는 것이고요. 또한 공국의 두 날개 사이에서 사사로운 결투는 카피스트라노 협약에 따라 엄격하게 금지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다름 아닌 아르망 대주교의 요구조건이었습니다, 팔라딘. ”

“...실례했습니다. ”

“흥! ”


니콜라스가 목례하자 리조가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돌렸다.


손을 거둔 이사벨라가 목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검은색 목걸이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들었다.


“그럼 시작하지요. 본 만찬을 주재하기 앞서 부군께서 맡긴 전언부터 들려드리겠습니다. ”


그녀가 종전보다 한층 위엄을 더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위대하고 고결하신 후안 카를로스 오수나 카탈리나 공작 전하께서 가라사대, 최근 토런스의 ‘전’ 백작이 저지른 폭거는 모두가 전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스스로도 공국의 가신 된 자가 이웃한 다른 가신의 땅을 탐해 주군께 모함과 모략을 일삼고, 그것도 모자라 신성한 화폐주조권을 남발하며 제멋대로 전쟁까지 일으켜 수많은 백성들의 생계와 목숨을 위협하였으니, 그동안 괴수 토벌에 일조한 공을 감안해도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대죄였다. ”


니콜라스를 비롯한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부분의 가신들은 침묵하거나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모든 구름은 한줄기의 은빛 섬광을 지니고 있는 법. 그의 음모를 막아내고 무고한 이들을 지키는데 앞장선 이국의 대학자 이미르 휴브리스 공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카탈리나 공국을 찾아주셨으니, 관례에 따라 환영만찬을 여는 바 공국의 두 날개 모두가 기쁘게 맞이하여 주길 바라노라. 이상입니다. ”


-짝짝짝짝!


식탁 양쪽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오른쪽과 왼쪽의 데시벨 차이는 현격했다.


‘공국의 두 날개라. ’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말이 다당제지 사실상의 양당제 국가 출신인 내겐 낯선 모습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공국의 가신들이 둘로 쪼개져 있네. 이제 보니 앉는 위치부터 그런 모양이고. ’


중앙의 상석에서 바라보는 기준으로 오른쪽에 리조 변경백과 아르망 대주교가, 왼쪽에 이사벨라의 측근이자 대리인인 니콜라스 궁정백과 그녀의 손님인 내가 나란히 앉은 것을 보니 확실해보였다.


세 번째 신탁의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추가목표 ‘좁지만 곧은 길’이 주어졌습니다. ]

-불리하더라도 자신의 신념에 맞는 진영에 서십시오.

-달성 시 500MP가 추가로 정산됩니다.

-상태 : 진행 중


‘내가 서야 할 곳은 어느 쪽이려나? ’


당장은 ‘왼쪽 날개’에 앉아있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상관없을지도. 이번 적은 사람이 아니라 괴수이니. ’


지난번과 달리 이번 신탁의 메인 미션은 인간들 사이의 싸움이 아닌 괴수 토벌이다.


거기에 필요한 것은 특정 정파의 승리보다는 더 많고 우수한 자원과 무기와 인재의 확보일 것이니, 어느 쪽이든 공국의 힘을 한 곳으로 모아 발전시킬 수만 있으면 그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은 지켜보며 단서를 모아야겠지. ’


마음먹은 순간 이사벨라가 말했다.


“그럼 손님께서 시장하실 테니 식사들 하시지요. ”


그녀의 손짓과 동시에 음식이 올라왔다.

확실히 호손에 비해서는 호화로운 식단이었다.


잡곡이나 호밀빵 대신 제대로 부푼 하얀 밀빵이 나왔고 수프도 귀리죽이 아닌 밀가루와 버터(루)로 만든 포타주였으며, 역한 냄새가 나는 말라비틀어진 햄이나 소시지 대신에 노릇노릇 구운 통돼지를 비롯한 각종 요리들이 상을 장식했다.


데커레이션 겸 후식으로 나온 과일도 반쯤 마른 사과가 다였던 호손과 달리 딸기, 귤, 석류 등 종류가 다양했다.


가장 감동이었던 점은 딱딱한 빵그릇(트랑쇼와르)이 아닌 은으로 만든 개인접시가 주어졌다는 것이었다.


호손성이나 ‘피에르의 온도’에도 주석 쟁반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메인디시를 담기 위한 것이었지 개인용 그릇은 아니었다. 숟가락도 요리를 배분할 때 쓰는 국자가 전부였고.


그러나 이곳 후안성의 만찬장에는 개인접시와 스푼은 물론 그동안 존재를 잊고 있던 포크까지 있었다.


의외로 나이프는 없었는데 니콜라스가 요리를 자르려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한 소녀가 헐레벌떡 뛰어온 탓에 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야, 미르! 거기 있어? ”

“멈춰라! ”


입구 양옆에 선 문지기들이 도끼를 X자로 겹쳐서 달려온 니아를 막아섰다.


“저기, 미르! 잠깐 나 좀 봐! ”

“이 더러운 야만인 년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

“꾸엑! ”


도끼자루에 이마를 맞은 녀석이 발라당 넘어졌다.

그녀가 들고 있던 물건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한 쌍의 막대기 사이로 비치는 은빛 섬광.


“저, 저건! ”


사람들이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 칼이다! ”

“야만인들이 보낸 암살자인가? ”

“뭣들 하느냐? 당장 저 불경한 년을...! ”

“오, 오해하지 마! 이건... ”

“다들 멈추십시오! ”


나는 소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석에 앉은 붉은 머리카락의 귀부인과 동시였다.


“귀한 손님을 모신 자리에서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

“부인! 자리를 피하시오. 야만인 놈들이 암살자를... ”

“아, 아냐! 이 칼은... ”

“제 칼입니다. ”


좌중의 소란이 겨우 가라앉았다.


“공의 칼이라고? ”

“네. 호손의 장인이 저를 위해 만들어 준 단검입니다. ”

“맞아! 나, 난 그냥 미르 네가 나이프를 두고 갔다기에 가져다주려고. 여기 사람들은 칼로 음식을 먹으니까... ”


나는 니아의 말을 통역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제가 나이프를 놓고 와서 갖다 주려 한 모양입니다. ”

“그, 그랬군. 공의 하녀였을 줄이야. ”

“이거 오해를 했네. ”

“멋진 칼이구먼. ”


아무래도 식사용 나이프는 개인지참인 모양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붉은 머리의 귀부인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이미르 공.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군요. 저 원주민 아이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

“그러겠습니다. ”

“아니, 부인이 왜 사과를 하시오? 다 저 야만인 놈들이 자초한 일인데! ”


내 맞은편의 사내가 식탁을 탕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조 변경백. ”

“안 그렇소이까? 애초에 놈들이 먼저... ”

“리조 번경백. ‘남방의 원주민들을 같은 휴먼으로서 존중한다.’, 카피스트라노 협약을 그새 또 잊은 건가요? ”

“하! 제대로 지켜질 때나 협약이 협약이지. ”


콧방귀를 낀 그가 탁자가 흔들릴 만큼 거친 동작으로 자리에 앉았다.


“하여간! 전하께서 강녕하실 때는 야만인 놈들 따위 한 주먹 거리도 안 됐건만! 상냥함은 부녀자의 미덕이라고 하나, 국사를 논할 때는 때로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내려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외다! ”


리조의 눈길이 내게로 향했다.


“안 그렇소? 바다 너머에서 오셨다는 대학자 양반? ”


나는 깜짝 놀랐다.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젊은 꼰대 같은 귀족 말고 이 ‘실시간 번역’이란 녀석이.


독순술은 전혀 할 줄 모르지만 방금 저 리조라는 사내가 한국말로 ‘학자 양반’이라고 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애당초 이런 유사 중세랜드에 ‘양반’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단어가 존재할 리 없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가 의심과 비아냥을 반반 담아 내뱉은 말을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전달받았다.


내 세상의 최신 번역기와 비교해도 몇 세대는 앞서나간 수준의 오버테크놀러지. 진짜 마법이 따로 없었다.


“리조 공? 그만 하시지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

“그래서 하는 말이네, 니콜라스! 이럴 때라도 하지 않으면 도통 부인께서 들어주시지를 않으시니까. 이 사내답지 못한 요사스런 기물은 또 뭔가? 신께서 내려주신 멀쩡한 손을 두고 음식을 찍어먹다니 이런 불경한 사치가 또 어디 있냔 말이야. 가뜩이나 괴수들과 야만인들 때문에 세상이 흉흉하거늘! ”


만찬장을 쭉 둘러보며 한 리조의 말에 식탁에 앉아있던 귀족들 대부분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테이블의 오른쪽뿐만이 아니라 왼쪽까지.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이사벨라였다.


“그걸 알고 계신다면 변경백께서도 괴수 토벌에 손을 보태주시는 건 어떨지? ”

“하! 또 그 얘기신가? 괴수들의 침공은 지난번 대반격 이후로 잠잠해지지 않았소? ”

“네. 여기 이미르 휴브리스 공께서 발명하신 화포 덕분이었지요. 하지만 이제 겨우 국경 밖으로 몰아냈을 뿐 저들의 본거지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놈들이 주춤해진 지금 하루라도 빨리 두 날개가 힘을 합쳐서 후환을 없애야 해요. ”

“그 말 자체에는 동의하는 바요, 부인. 하니 이참에 사태의 원흉인 야만인들부터 쓸어버리는 건 어떻소? ”

“괴수 사태의 원인이 그들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

“없기는! 놈들이 보낸 마녀가 사특한 저주로 성스러운 대성전의 지붕을 무너뜨리고, 그걸 빌미로 공국의 촉망받는 인재들을 ‘악마의 구멍’으로 끌어들여 몰살시킨 일을 잊으셨소이까? ”

“단지 그 마녀가 남쪽에서 왔다 해서... ”


설전이 계속될 조짐이 보이자 붉은 수단의 노인이 다시 나섰다.


-땡땡!


“두 분 다 그만하시구려. 이곳은 손님을 맞이하는 자리이지 국무회의장이 아니올시다. ”

“크흠! 크흠! ”

“예. 그러지요. 니콜라스? ”


이사벨라의 부름과 함께 벌떡 일어난 그가 능숙한 솜씨로 돼지 통구이를 썰어서 분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자 앉아있던 모두가 품속에서 각자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나도 니아가 갖다 준 조나선 작(作) 칼의 뚜껑을 열었다.


‘근데 이거 식사용 나이프라고 하기에는 서슬이 너무 시퍼렇네. 까닥하면 흉기로 돌변하는 거 아냐? ’


그때,

칼날 위로 붉은 글씨들이 떠올랐다.


[진실의 올가미에 걸려든 이여. ]

[진실의 옷을 입은 자여. ]

[손짓 한 번조차 조심할지어다. ]

[숨결 한 번에도 주의할지어다. ]

[박동 한 번마저 경계할지어다. ]

[모든 것이 그대가 입에 담은 거짓의 증거가 되리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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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나침반이 향하는 곳(1) +3 22.12.21 419 18 19쪽
62 정산의 날(4) +2 22.12.20 445 20 12쪽
61 정산의 날(3) +3 22.12.19 432 2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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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정산의 날(1) +3 22.12.16 495 22 13쪽
58 새로운 불꽃(7) +1 22.12.15 526 21 16쪽
57 새로운 불꽃(6) +1 22.12.14 498 22 14쪽
56 새로운 불꽃(5) +1 22.12.13 515 19 13쪽
55 새로운 불꽃(4) +2 22.12.12 541 2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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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새로운 불꽃(2) +2 22.12.10 584 24 14쪽
52 새로운 불꽃(1) +3 22.12.09 618 2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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