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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님의 서재입니다.

중세 판타지에서 과학적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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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1
작품등록일 :
2022.10.31 13:13
최근연재일 :
2022.12.2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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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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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새로운 불꽃(5)

DUMMY

-꽈앙!


굉음을 내며 화포가 불을 내뿜었다.


300피트(91m) 전방에 나란히 세워놓은 개당 3피트, 총 너비 30피트의 나무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날아갔다.


매캐한 화약연기가 걷히자, 모든 나무판에 수없이 많은 구멍들이 우수수 뚫린 것이 보였다.


조선에서는 조란환, 서양에서는 포도탄(Grapeshot)이라고 불린 재래식 산탄이었다.


[꿀꺽! ]


시연장의 조나선과 잭슨, 프란츠가 동시에 숨을 삼켰다.


“마치 수백 발의 화살들이 한꺼번에... ”

“심지어 한발 한발의 위력마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

“신이시여. ”


입을 다물지 못하는 세 사람 옆에서, 요즘은 거의 내 비서가 된 릴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기, 저번에는 저런 거는 못 만드신다고... ”

“그때 말했던 고폭탄 같은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탄과 똑같이 생긴 철환을 크기만 작게 만들어서 여러 개를 뭉쳐 넣었을 뿐이니까요. ”

“굉장하군! 저걸 쓰면 적들을 그야말로 한 방에 쓸어버릴 수 있겠어. ”

“비록 사정거리는 화살 수준으로 줄겠지만 대신 몰려오는 적군 수십 명을 한꺼번에 처치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현 수준의 조악한 화포로는 마모와 내부압력을 못 견디고 몇 발 쏘면 망가져버릴 가능성이 높지만요. ”

“말하자면 최후의 수단 같은 거로군. ”

“실제로 쓸 일은 없겠지만 대비는 해 놔야겠지요. ”


나는 말하면서도 스스로를 비웃었다. 이렇게 말해 놓고 실제로 안 쓴 적이 내 역사에 몇 번이나 있었지?


“하하! 정말 고생 많았네. 덕분에 안심이 되는군. ”


수시로 전쟁이 일어나는 이 세계의 사람답게, 프란츠는 소년임에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눈치였다.


하긴 내 나라가 아닐 뿐 내 세상에서도 그런 곳은 많았지.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 인생 정도면 축복받은 편이었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그렇게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릴리가 머뭇거리다가 말을 꺼냈다.


“저, 저기! 미르 씨. ”

“왜요? ”

“진짜 괜찮으신 거 맞죠? ”

“벌써 몇 번을 묻는 겁니까? 되니까 쉽시다. ”

“네... ”


그녀가 침울해진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바람에서 그쳤다.


그리고 일주일 후,

결국 라구나 강이 얼어붙었다.



* * *



전운이,

본격적인 전운이 마침내 호손성 주변을 맴돌았다.


첫째로, 늘 호손 쪽에서만 풍기던 생선 굽는 냄새가 밤의 육풍을 타고 토런스 쪽 진지에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둘째로, 야음을 틈타 몇 명의 기사들이 라구나 강 바로 앞까지 와서 얼음의 두께를 확인하고 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셋째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성병기들이 도착했다.


파성추(충차), 운제(사다리차), 정란(공성탑), 투석기와 방패차까지. 불과 한 달 만에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와 숫자가 과연 은의 도시 토런스다웠다.


“여신이시여... ”


여태까지는 허구한 날 낄낄대며 곧잘 농담을 하던 성벽의 병사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3천 명의 군세와 수십 대의 공성병기들이 위풍당당하게 도열한 가운데, 한 달 전 도망치듯 돌아갔던 아르노 백작의 사절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몰고 나왔다.


“자비로우신 아르노 드 토런스 백작 각하께서 가라사대 호손의 꼬맹이에게 마지막 기회를 줄 것인즉! 당장 성문의 열쇠를 넘기고 무릎을 꿇는다면 알량한 목숨만은 보전할 수도 있으리라 하셨다! ”

[전쟁이 나기 전부터 이쪽을 굶겨 죽이려고 작정하셨던 분이 잘도 그딴 소리를 지껄이시는군? ]


확성기 너머로 울려 퍼진 프란츠의 말에 사절이 대꾸하지 못한 채 얼굴을 구겼지만 아주 잠시였다.

사실 아르노 백작은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까.

이건 그저 관례적인 요식행위이자 ‘작전’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 3천의 군세와 병기들로 직접 그 머리를 짓밟아주러 갈 수밖에 없겠구나! 관례에 따라 파성추가 성문을 두드리는 순간부터 네놈들의 목숨과 재산을 보전해줄 이유가 없으니, 충성스러운 백작 각하의 전사들이여, 기뻐해라! 백작 각하께서 성을 점령하는 날로부터 3일간의 약탈을 허락하셨다! 감히 그분의 땅과 배를 도둑질한 저놈들을 마음껏 갈취하고, 겁탈하고, 죽여 버려라! ”


그 말에 토런스 측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 달 넘게 야영하는 동안 밍밍한 귀리죽만 먹으면서 호손에서 풍겨오는 생선 냄새에 군침만 흘리고 있다가, 며칠 전부터 마침내 물고기 맛을 보았으니 사기가 올랐을 법도 했다.


게다가 자신들이 고생하는 동안 저 성 안의 성민들은 매일같이 청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슬슬 고개를 드는 아니꼬운 마음이 적개심과 복수심으로 바뀌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들 대부분에게는 호손의 사내들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겁탈할 배짱은 있어도, 사태의 근본 원인인 아르노 백작의 과욕을 지적할 용기는 없었으니까.


“아무리 제 고향과 다르다지만 대놓고 전쟁범죄를 공인할 줄은 몰랐네요. ”

“차라리 잘 됐네. 덕분에 이쪽 병사들도 더 필사적으로 전투에 임하게 되겠지. 병력이 부족한 상황에 성민들의 도움을 구하기도 쉽게 되었고. ”

“이쪽의 죄책감도 꽤 덜었습니다. ”


고개를 끄덕인 프란츠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들었나, 제군? 저들은 전사가 아닌 그저 도적떼들이다! 하니 우리는 스스로의 재산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온힘을 다해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옛날에 스무 배가 넘는 적에 맞서 고국을 구한 이국의 성웅께서 말씀하셨기를,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 하셨으니! 우리 앞에 놓인 적들은 그때의 절반인 열 배 남짓에 불과하도다! 정의로우신 여신께서는 저 침략자들과 그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가 아닌, 고향을 목숨 바쳐 지키는 우리를 굽어 살피신다! ]

[와아아아! ]


번쩍이는 판금 갑옷을 입은 프란츠가 그의 상징이 된 기다란 창을 내지르자, 호손의 병사들이 질세라 함성을 내질렀다.


얼굴을 팍 찌푸린 토런스의 사절이 말머리를 돌려 막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 전진하라! ”


울려 퍼진 토런스의 구령과 동시에,


[전군, 방포하라! ]


-콰아앙!


30피트 간격으로 성곽을 둘러싼 20여 문의 화포들이,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을 내며 일제히 불을 뿜었다.



* * *



“이, 이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


토런스로 돌아간 아르노 백작 대신 론데일 평원의 군세를 맡고 있던 프라도 자작은, 전투 시작과 동시에 일어난 천둥소리와 파괴된 공성병기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 대의 파성추 중에 두 대의 지붕이 내려앉았고, 공성탑 네 대 중 절반이 2층의 보호벽과 사다리가 날아가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투석기 다섯 대 중 두 대가 기능을 상실했고, 사다리차 또한 절반 가까이가 중파되었다.


심지어 코앞에서 쏜 쇠뇌도 너끈히 막아내는 방패차마저, 대부분이 파괴되거나 사람 머리통만한 구멍이 뚫려서 그 기능을 반 이상 잃어버린 상태였다.


“당최 이것이 무슨 조화냔 말이다! ”

“모, 모르겠습니다! 모종의 마법 같기는 합니다만... ”

“마법? 마법이라고? 저 정도의 마법을 쏠 수 있는 마법사들이 호손에 열 명 넘게 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


사절 일을 막 끝내고 돌아온 부관을 닦달하던 프라도 자작이 이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우선 마법사는 아닐 것이다. 화살의 유효사거리인 500피트는 물론이고 최대사거리 1000피트조차 가볍게 넘어, 이런 흉악한 위력으로 공성병기들을 망가뜨릴 수 있는 마법사가 저들의 편이라면, 심지어 그 수가 10명 이상이라면 놈들이 여태까지 성문을 걸어 잠근 채 가만히 버티고 있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무기,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조달한 신무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린데.


“드워프 놈들인가? ”

“천사의 산맥 너머에 있는 난쟁이들 말입니까? ”


지금 프라도의 머릿속에서 이런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자들은 그들 정도밖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엘프만큼은 아니라도 드워프들 역시 콧대가 높기로 유명한 종족인 데다, 고고한 귀쟁이들과는 달리 욕심까지 많아서 웬만한 대가로는 자신들의 기술을 나눠주지 않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고작 소도시의 영주에 불과한 프란츠가 무슨 수로 놈들을 구워삶은 거지?


아니, 그 전에 이쪽의 포위를 뚫고 험준한 천사의 산맥을 넘어 드워프들의 도시까지 닿았다고?


“젠장! 일단 정지하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부터 알아봐! ”


잠시 후 병사 하나가 급히 막사로 뛰어 들어왔다.


“보, 보고 드립니다! 확인해 본 결과 마법사는 아니고 이 쇳덩이를 발사하는 신무기인 듯하다고 합니다! ”


그가 양손으로 들고 온 것은, 방금 호손성의 성벽 위에서 발사되어 이쪽의 투석기 하나를 망가뜨린 철환이었다.


너비 4인치(10cm) 남짓에 20파운드(9kg)에 가까운 무게, 라딘 남작이 살아있었어도 100피트(30m)나 던질 수 있었을까?


그런 묵직한 쇠구슬이 성벽에서 무려 1500피트가 넘는 거리를 날아와, 아직 써먹지도 못한 공성병기들을 박살내버렸다니 도대체 가능한 이야기인지 프라도는 알 길이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쇳덩이라고? 놈들한테 쇠가 어디 있어서 이런 걸 마구 만들어서 던진다는 말이냐? ”


이정도로 크고 무거운 쇠구슬이라면 화살촉을 못해도 200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랑돌로 만든 최신 채취기를 쓰는 야금업자가 하루 종일 일해야지 간신히 모을 수 있는 양이었다. 심지어 품질마저 토런스의 것보다 좋아 보였다.


이런 것들이 명중탄만 해도 십여 개, 빗나간 것까지 치면 그 두 배에 이를지도 몰랐다. 새로운 광산이라도 발견한 게 아니고서야, 도시규모가 토런스의 1/5에 불과한 호손이 감히 만들어 쓸 수 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광산의 존재를 감추고 있었던 건가! ’


더군다나 모양을 보니 매끈한 구형이 아무리 봐도 사람이 망치로 두드려서 만든 게 아니었다.


‘설마 철을 녹여 주조를 했다고? 청동처럼? ’


그거야말로 정말이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냥 철에 비해 선철의 용융점이 200도쯤 낮다는 것을 모르는 프라도로써는, 쇠를 녹여서 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차라리 마법에 가까운 발상이었다.


‘빌어먹을! 그 마법사의 말이 사실이었어! ’


프라도 자작은 한 달 전쯤, 한창 기도 중이던 아르노 백작의 막사에 불시에 쳐들어와 로버트 앤더슨을 던져주고 갔다던 수수께끼의 마법사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수석 사제의 증언에 따르면, 로버트를 내던지고 돌아선 마법사는 막사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했다.


[아, 가기 전에 한 마디만 더 해주자면 말이야. 정면승부로는 너희들, 승산이 없을 거다. ]


그때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린가 했었다. 10년 전의 지진 이후 유속이 느려진 라구나 강이 한겨울이 되면 얼어붙는다는 것을 모르니 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그 마법사의 말이 틀림없는 진실이란 것을.


호손은 강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다행인 것은 신중한 자신은 혹시 모를 이런 사태까지 염두에 둔 계획을 짜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아하니 바로 다시 쏴재끼지는 못하나 보군. ”

“앗! 그렇군요. 아직 병기의 절반은 멀쩡한데 가만있는 것을 보니 장전 시간이 오래 걸리나 봅니다. ”

“활과 쇠뇌의 차이 같은 거겠지. 그래서 시작부터 쏴재낀 거로구만. 좋아! 이 틈에 남은 공성병기들이라도... ”


-콰쾅!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이 또 폭음이 들려왔다.


“뭐, 뭣이이이? ”


프라도 자작의 추측은 정답이긴 했다.

내부의 찌꺼기와 화약을 청소하고 포신이 식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전장식 화포의 장전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다만 프라도가 진군을 멈춘 채 고민하는 사이 호손의 병사들이 그 힘든 일을 해내었을 뿐이었다.


“자, 자작님! ”


다급하게 막사로 들어온 기사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바, 방금 다시 온 신무기의 공격에 우리 공성병기가... ”

“어, 어떻게 되었느냐? ”


그러니까요, 공성병기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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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새로운 불꽃(6) +1 22.12.14 498 2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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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새로운 불꽃(4) +2 22.12.12 541 22 19쪽
54 새로운 불꽃(3) +3 22.12.11 581 25 14쪽
53 새로운 불꽃(2) +2 22.12.10 583 24 14쪽
52 새로운 불꽃(1) +3 22.12.09 618 26 13쪽
51 승리의 함수(7) +2 22.12.08 619 27 20쪽
50 승리의 함수(6) +7 22.12.07 633 25 15쪽
49 승리의 함수(5) +5 22.12.06 642 28 15쪽
48 승리의 함수(4) +1 22.12.05 665 25 18쪽
47 승리의 함수(3) +4 22.12.04 685 2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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