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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쟁이 은서우입니다

휘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은서우
작품등록일 :
2012.11.04 23:01
최근연재일 :
2016.02.15 21:0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58,282
추천수 :
5,772
글자수 :
162,057

작성
13.11.05 00:49
조회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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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6쪽

2부: 제1장. 독수리의 지친 날개.(03)

DUMMY

술맛이 좋기로 유명한데다가 고운 자태에 작시, 서화, 악기연주에 능한 기녀들이 많아서 영경 최상의 기루라고 손꼽히는 운향각(雲香閣). 소문이 자자한 만큼 이곳 기녀들과의 하룻밤은 다른 곳보다 곱절로 비쌌다. 여기서도 화대(花代)가 가장 높다고 손꼽히는 기녀, 홍주(紅珠)는 몇 달 전부터 운향각에서 가장 화려하고 좋은 방에서 귀인을 모셨는데, 그가 바로 황태자 신유성이었다.


유성에게 황궁의 대극전에서 반복되는 분란과 내리의 청량전에서 나누는 탄식일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것은 오로지 정부와의 운우지락이었다. 방을 채우는 질퍽한 내음 가운데 탄탄한 근육과 매끈한 살갗이 맞부딪히는 소리는 퇴폐성을 더했다.



“하아……하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계집은 자신의 몸을 사랑해달라고 보챘다. 사내는 계집을 만족시켜주고자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고, 계집은 황홀경에 빠진 표정을 지으며 달뜬 소리를 흘렸다. 정말 절정에 이르렀느냐는 계집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남자가 보여준 희락의 세계에 자기가 진심으로 만족했다고 비쳐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하아……, 전하, 어떠하시옵니까? 제가, 제가 진명, 그 계집보다……, 훨씬 낫지 않겠사옵니까? 진명, 그 계집은 사내들을 호령하는 방법은 알아도……, 사내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법은 모를 것이옵니다. 하악……!”



계집은 정작, 지금 본인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까지는 몰랐다. 요사이 사내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사안을 야무지게 꼬집고 말았다.



“…….”



유성은 멈칫했다. 홍주의 몸에서 벗어났다. 금방 전까지만 해도 교태를 부렸던 홍주는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전하?”



유성은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당장에 옷을 입기 시작했다. 홍주는 그제야―황태자가 무엇 때문에 잔뜩 뿔이 났는지는 모르지마는 어쨌든―저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저, 전하! 설마 이대로 가실 요량이시옵니까?”


“흥은 이미 깨졌다.”



최근에 들어서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쌀쌀함이다. 홍주는 오싹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붙잡아보자는 심산으로 그를 불렀다.



“전하!”



홍주는 알몸으로 팔을 붙잡았다. 유성은 오물을 떼어내듯이 거칠게 그 손을 뿌리쳤다.



“흥은 이미 깨졌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년이 호되게 혼나봐야 이 손을 놓겠느냐?”


“화, 황태자 전하…….”



유성을 잡지 못하였다. 그는 냉기를 남기고 방밖으로 나가버렸다.


홍주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본디부터 곰살궂은 남자가 아니었다. 허니, 새삼스레 서러워할 것도 없는데 눈물이 났다. 얼굴을 곱게 발랐던 분이 눈물에 지워져간다. 행여 울음소리가 입술 밖으로 새어나갈까 봐 더욱더 세게 이를 악물었다.



‘이 무정한 사람아. 그래, 그 계집을 언급한 것은 내 실수다. 나도 인정한다. 허나, 내가 왜 그랬는지도 아시는가? 당신과 그 계집과의 혼담이 얼마나 마음에 쌓이고 또 쌓였으면,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말해버렸을까?’



서의 진명 공주를 황태자비로 맞이하려고 국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황태자로부터 직접 들었을 때, 홍주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필이면 뜨거운 정사를 나누는 순간에 그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는 점에서 성질났다. 무엇보다도 생각하면 할수록 진명 공주에게 샘났다.


비록 기루의 여자나 세상사에 관해 알 것은 다 안다. 서의 진명 공주가 누구인지도 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일국의 왕자를 뛰어넘을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는 계집이 아닌가. 기루에 출입하는 공자들의 말로는, 사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다는 지상 최고의 꽃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 정인의 내실이 된다는데, 세상 어느 여자가 돌부처처럼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남몰래 속상해하다가 마침내 겨우 한마디 꺼내본 것을 가지고, 저리도 매정하게 가버리나. 몇 달간, 아니 금방 전만해도 격정적으로 정을 나눈 남정네가 맞긴 할까?



“뭐, 내 팔자가 원래 이러한가 보지.”



홍주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이불 끄트머리로 닦아냈다. 임이 오늘은 매몰차게 나갔지만은 내일이 되면 언제 박정하게 굴었느냐고 반문하듯이 살갑게 이름을 불러주시리라. 허니 자신은 오늘 밤도 행복하게 잠자리에 들면 된다. 꿈속에서만 일어나던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리라는 달콤한 꿈을 그리면서.



“홍주 여어(女御)…….”



홍주는 자기 입으로 꺼낸 말이어도 듣기가 참 좋아 배시시 웃었다. 여어(女御)—황후를 제외하고 황제의 후궁들 가운데 서열이 가장 높은 자리로, 우대신 이상의 고관의 여식에게만 허락되었다. 장차 황제가 될 황태자가 얼마나 총애하느냐는 차치해두더라도 출신신분 때문에 일개 기녀 따위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목표다.


하지만 갈망한다. 오로지 자신만이 황태자의 여자로 존재하여, 황태자가 황제로 즉위하면 자기가 그 자리에 오르기를.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어떻게든 황태자의 사랑을 계속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내 팔자가 이러한가 보다―라고? 아니다. 그 말은 취소하겠다. 나의 시작은 남들이 무시하는 기루였을지라도 나의 마지막은 남들이 우러러보는 고귀한 후궁이다. 그 사람의 진정도, 권세도 모두, 그래 모두 다, 내 손안에 넣으리라!’



홍주는 이불을 걷고 일어섰다.



‘그러고 보면 하늘도 야박하시지만은 않으시다. 그 잘나신 진명 공주가 우리 황태자 전하와의 혼담을 거절했다지 않으냐?’



거울에 비친 농염한 육체는 자기가 봐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만족스러운 것은, 목덜미와 젖무덤, 허벅지……자기 몸 곳곳에 붉게 남은 그의 순흔(脣痕)이었다. 사내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랬다. 계집들처럼 당신을 연모한다느니, 열애한다느니 같은 사랑타령을 늘어놓지만 않았을 뿐, 흩뿌려놓은 꽃잎들처럼 직접적인 접촉으로 그의 마음을 드러내놓았지 않았나. 그의 진심이 자기에게 있다는 뜻이렷다.



‘황태자 전하. 진명 공주와의 혼담이 틀어진 것에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옵소서. 전하께서는 이, 홍주가 있지 않사옵니까?’



황태자와 함께 보낸 뜨거운 시간의 흔적들을 물에 흘려보내기가 다소 아쉽다. 하지만 내일에 또다시 이어질 즐거운 만남을 위해서는 오늘 밤부터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장미꽃잎을 뿌린 목욕물에 몸을 씻고, 얼굴에는 오이쪼가리도 붙여야 한다. 얼굴피부를 꼼꼼하게 관리해야 내일 화장이 어여쁘게 잘 먹는다.


홍주는 놋쇠종의 손잡이를 잡고서 딸랑딸랑 흔들었다. 운향각 최고기녀의 부름에 여종 금령(金鈴)이 금방 응했다.



“예, 아씨. 쇤네를 부르셨나요?”



문을 열고 들어온 금령에게 홍주는 거만하게 말했다.



“몸을 씻어야겠어. 목욕간에 물을 받아놓아. 그리고 방 정리도 해줘, 깔끔하게.”


“목욕물이야 진즉 받아놨지요. 목욕하시기에 적절하게 따뜻합니다. 방 정리는 아씨께서 목욕하실 때 그때 금방 해놓겠습니다.”



싹싹한 금령은 홍주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백색의 얇은 비단욕의(浴衣)부터 그녀의 몸에 입혔다. 홍주는 금령의 시중에 만족스러워하며 우아하게 말했다.



“황태자 전하의 부름을 받아 입궁하게 되는 날이 오면, 내 너를 잊지 않으마. 꼭 널 궁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예, 그럼요. 쇤네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홍주가 황태자의 후궁이 되리라고 철썩 같이 믿는 금령은 더욱더 넉살스럽게 굴었다.







“아앗!”


“이런!”



길을 잃고서 두리번거리는 젊은 여인을 뒤늦게야 발견했다. 마부가 갑자기 고삐를 세게 잡아당겼다. 이히힝! 말이 당혹스런 소리를 내뱉으매 잠깐 마차가 흔들렸다. 유성은 하마터면 머리를 마차의 내벽에 부딪힐 뻔했다. 감히 이 고귀한 몸에 상해를 입힐 뻔해? 유성은 확 짜증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유성은 창문을 벌컥 열었다. 마차의 갑작스런 흔들림에 황태자께서 진노하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시종 도영복(道瀛鰒)과 마부는, 그가 문을 박차고 나오기 전에 후다닥 달려와 머리를 조아렸다.



“소, 송구하옵니다.”


“……네놈들이 감히 누구를 놀라게 했는지 아느냐?”


“화, 황송하옵니다. 부디 너그러이 처분해주시옵소서.”



황태자의 성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들은 변명하기보다는 냅다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저 소인들을 살려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다. 황태자가 콩 한쪽만한 자비심이라도 베풀어주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너그러이 처분해줘?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귀인의 존명은 모르오나, 제가 큰 결례를 끼쳤습니다.”



소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는지, 마차를 멈추게 만든 장본인이 직접 나섰다. 여인의 침착한 목소리는 황태자의 관심을 유도했고, 그녀의 수려한 미색은 황태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분홍이나 연두색 같은 계열의 오의(五衣)에 자주색의 길이가 짧은 규(袿)를 받쳐 입은 그녀는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트렸다.


은은하게 화장하였으되 깊은 눈매와 오뚝한 콧날, 붉은 입술이 도드라져 보였다. 치렁치렁한 옷자락을 움켜잡고 있기보다는 양손을 살짝 맞잡은 채로 반듯하게 서 있다. 마치 인간의 눈앞에 내려온 아름다운 선녀인 양 우아하고 기품 있게.


유성은 다채롭고 고급스런 옷차림새을 통해 그녀가 보잘것없는 평민 계집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봤지만,



“본의 아니게 소녀가 공자님을 놀라게 해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쩐지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만드는 세련되고 고상한 분위기는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정체불명의 이 여인은, 대귀족가의 영애인가. 허면 그처럼 귀한 신분의 아가씨가 밝은 대낮도 아닌 위험한 밤에 자기 얼굴을 훤하게 드러낸 채로 거리에 서 있을까. 본인을 호위하는 수발인 하나 없이 홀로 말이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접근하기에는 이상스러웠다. 슬금슬금 일어나는 호기심은, 평상시였더라면 쌀쌀한 눈길로 여인을 한 번 쏘아보고는 곧바로 뒤돌아섰을 그로 하여금 말을 걸게 만들었다.



“그대야말로 어느 가문의 누구기에 야밤에 홀로 도로에 서 있는가?”


“저는 본디 이곳의 사람이 아닙니다. 최근 부친을 잃고서 이곳의 친척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친척분이라면 누구?”


“실례지만 거기까지는 답해드릴 수 없군요. 오늘 처음 뵙고 또 아직 통성명조차도 하지 않은 관계에서 보호자의 성명까지 알려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상황과는 상관없는 질문을 던지시는 것은 결례라고 판단됩니다만.”


“뭐라?”



신유성은 킥 웃었다. 초반에는 본인의 신원에 관하여 순순히 털어놓을 줄 알았더니, 이제는 더 이상은 말해주기가 싫다고 딱 잘라버린다. 평범한 처자는 아닌 줄 알았지만, 계집 주제에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태도가 영 깜찍하다.



“허면 그대의 말대로 지금 상황에 상관있는 질문을 하지. 무엇 때문에 내 마차가 멈췄지?”


“전하, 그건—”



마부가 나서서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자, 유성이 손을 들었다. 너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유성은 여인에게 까닥 고갯짓했다. 문제를 일으킨 그대가 설명하라는 요구다. 여인은 바로 말문을 열었다.



“바깥세상에 관한 호기심이 쓸데없이 많은 까닭에, 하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 시간을 틈타 몰래 시항에 나왔습니다. 무작정 저지른 짓이었으나 낯선 곳에서 결국 길을 잃었습니다. 미욱한 눈으로는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찾지 못하여 두리번거렸지요. 그러다 미처 제 쪽으로 달려오는 공자님의 마차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여 공자님의 마부가 황급히 마차를 세웠지요.”


“즉, 내 마차의 행로를 방해했다는 소리로군.”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리되었다면 사과드리지요.”


“허면 내 마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내가 내벽에 부딪혀 다칠 뻔했던 것도 포함해서인가?”


“허나 실제로는 다치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마차가 갑자기 멈춤으로써 작게라도 상처를 입으셨다면, 집사를 통해 의원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의원 따윈 필요 없다. 이 몸을 치료할 의원들은 이미 널리고 널렸거든. 만약, 내가 그보다 다른 식의 보상을 원한다면?”



유성은 눈으로 여인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를 빠르게 훑었다. 첫눈에 보나, 이리저리 뜯어보나, 외양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인네들을 제법 안아본 솜씨로 계산해보자면 나이는 대략 열아홉에서 스물. 성숙미를 논할 나이는 아닌 듯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순진하고 맑은 느낌도 아니었다. 오히려 고혹적인 멋이 묻어나온다고나 할까. 보면 볼수록 묘하다.



“의원의 진찰이 필요 없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허면 금방 전의 일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가벼운 사건으로만 여기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쪽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꺼내놓았다. 거기다가 형식상 필요한 예의만 차리는 여인을 보면서 유성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히 황태자의 말을 무시하느냐고 화가 날 법도 한데, 도도한 기운을 풍기며 돌아서는 모양새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진다면, 한 판의 주도권은 이미 저 여인에게 넘어갔다는 의미일까.


눈치가 빠른 도영복은 목소리를 낮춰 재빨리 말했다.



“소인이 다시 모셔올까요?”



유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하인이 여인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오는 까닭도 있었지만,



“아가씨, 여기에 계셨습니까?”



정말 영복을 시켜서 그녀를 붙잡는다면 잘난 사내의 체모가 깎이지 않겠나? 오늘 처음 만난 여인에게 한판승을 온전히 빼앗길 수는 없다. 절반이면 족하다.


여인이 하인의 안내를 받으며 마차에 오른다. 하인은 마부에게 어서 출발하라고 말한다. 지시를 받은 마부는 안장의 등자(鐙子)로 가볍게 말의 몸을 쳤다. 딸그닥 딸그닥,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유성은 영복에게 말했다.



“아까 그 마차에 그려진 문장(紋章), 무엇이었는지 봤느냐?”


“얼핏 보았는데 제법 낯익어서 기억이 납니다만……, 그게 좀…….”



어느 가문의 문양인지 단번에 알아본 도영복이 갑자기 말끝을 흐리는 것이 여간 수상쩍지 않다. 유성은 영복을 노려보았다. 화들짝 놀란 그는 순순히 털어놓았다.



“붓꽃이었습니다.”



유성의 미간에는 잔주름이 잡혔다. 영경의 많은 귀족가들 가운데 붓꽃 문양을 쓰는 가문은 단 한 곳이었다. 해안 김가(家)의 김종찬 우대신. 젠장, 하필이면 그쪽 집안이냐. 영복은 황태자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뒷말을 덧붙였다.



“만약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소인이 내일이라도 그곳으로 사람을 보내겠사옵니다.”


“되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다.”



도영복이 주인을 위해서 꺼내놓은 제안을, 정작 유성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딱 잘랐다. 우대신 김종찬과 관계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묘령의 여인에 대한 관심이 반감했다.



‘허나…….’



영복은 냉정하게 마차로 돌아가는 황태자의 뒷모습을 따라 움직였던 시선을 우대신 가문의 마차가 향했던 방향으로 돌렸다. 내일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사랬다. 황태자께서 잠시 관심을 두셨던 규수가 우대신가에 속한다면 앞으로의 일을 더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규수가 황태자 전하를 대하던 태도가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했다. 마부가 불쑥 끼어들어 분명히 ‘전하’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규수는 황태자 전하를 끝까지 ‘공자’라고 칭했다. 정녕 전하라는 호칭을 못 들었나, 아니면 들었어도 못 들은 척했나.



“얼른 오지 않고 거기서 왜 멀뚱히 서 있어?”



황태자가 마차의 창문을 열고서 소리쳤다. 영복은 “예예, 지금 갑니다!”하고 후다닥, 어자석(御子席)의 마부의 옆자리로 이동했다. 마차는 환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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