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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게임

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연재수 :
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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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9
추천수 :
543
글자수 :
332,033

작성
20.03.0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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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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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60화 - 기도

DUMMY

정령계는 신기하다. 결심만 하면 영혼이 알아서 움직인다. 바라는 게 알아서 이루어진다.


‘무슨 짓이냐!’


고함소리와 함께 태화씨가 구 안으로 들어온다.


‘태화씨, 움직여도 되는 거예요?’

‘네 놈 때문이잖나!’


그렇게 외치며 나를 노려보는 태화씨.


‘네 놈, 지금...’

‘저야 잘 모르지만, 제 생각대로 된 모양이네요’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는 거냐!?’

‘어... 바치고 있는 거, 맞죠?’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음...’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한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던 걸 말로 설명하려니 시간이 걸린다.


‘태화씨 대신 제 영혼을 단아에게 바치는 거 맞죠?’

‘네 놈...’

‘그러면 단아는 인간의 영혼을 받는 거니 다시 인간이 될 수 있는 거고’

‘......’

‘태화씨는 자신의 영혼을 바칠 필요도 없고 말이죠’

‘멈춰’

‘아, 미안해요. 단아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버려서’


그래도 말이죠. 나는 단아를 꼭 껴안으면서 말을 이었다.


‘단아는 인간이 되고 싶대요. 하고 싶은 게 있었다고, 별님이랑 수애도 보고 싶다고’

‘소멸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나 아는 거냐, 그랬다가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없으니... 미안해요’


나는 태화씨의 말을 끊고 단아를 내려다보았다.


‘단아야’

‘아빠...’

‘그, 엄마 만나면 말이야’


보솜씨가 내 아내는 아니지만 이미 애들한테는 엄마나 마찬가지지.


‘부탁한다고 전해줄래? 그리고 아빠가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도’


계획대로 안 흘러간 것이 미안해지네. 사실, 정령계로 가서 단아랑 태화씨도 데려오고 엘릭서도 구해오고 그러려고 했다. 그리고 데려오면서 ‘정령이 인간이 되는 방법’을 들어서 다시 나도 살아나는 걸 노렸다. 아니 왜, 태화씨랑 단아도 정령에서 인간이 되었다면, 그 방법대로 하면 나도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잖아? 생각할 때는 완벽한 계획이었는데...

세상 마음대로는 안 되는구먼. 그렇게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눈앞에 단아가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아니, 잠깐, 단아가 눈물을 글썽이는 게 아니라...


‘울지마...’


단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서 단아도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울고 단아도 우는구나.


‘으음... 미안하다, 단아야’


아하하.

유언이 단순한 사과에, 죽기 직전에 하찮게 웃는 게 내 끝이라.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아니 뭐, 그렇게 나쁜 인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네. 마지막에 애들도 만나고 말이지.

생각보다 즐거웠다, 게임이었을지라도 가족이 생겨서 같이 살았던 것은.

어, 잠깐만, 빚은 어쩌지.

하찮은 생각을 마지막으로 내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단아도 태화씨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 자신도,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일 때 죽으니 영혼만 남았다. 그러면 영혼일 때 죽으면? 소멸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은 신기한 감각이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감각, 그러면서도 온 세상과 이어져 있는 충만함. 그 안에서 내가 서서히 없어지는 것만이 너무나 확고하다.

모든 것이 보인다. 세상은 이렇게나 작은 것이었나. 이렇게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이대로—

갑자기 별님이가 보고 싶어졌다. 별것 아닌데, 마음에 걸린다. 별님이든 뭐든, 이 작은 세상은 이제 아무래도 좋은 것인데, 왜 마음이 잡힌 것일까.

하지만.

사소한 것이라면 잠깐 살펴봐도 무방하다. 살펴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면 살펴봐도 되겠지.

그래서 별님이가 뭘 하는지 살펴보았다.


“......”


병세가 호전된 모양인지, 별님이는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기도하듯이 양손을 모으고는 간절히 무언갈 빌고 있었다.

아니다, 호전된 게 아니다. 흐르는 땀, 거친 심호흡을 들어보면 이 아이가 여전히 아픈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간절히 소원을 빌고 있다. 그만큼이나 간절하게 빌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별님이가 비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한 마음이 생기다가 끊긴다. 별님이가 숨을 거칠게 내뱉으며 자리에 쓰러진다. 그대로 앞으로 엎드린다.

불쌍하지만.

이 감정도 순식간에 풍화된다. 어차피 작은 세상 안의 작은 한 존재다. 의미는 없다. 이대로—.


“......”


그 순간, 별님이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시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은다. 간절하게 소원을 빈다.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간절히 비는 그 소원은 대체 무엇일까?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걸 보면 궁금해질 뿐이다.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을 터인데, 이 간절함이 나에게 와닿는다.

나에게 와닿는다.

나에게.


“......”


별님이의 소원이 와닿는다. 아빠를 다시 보고 싶다는 바람 속에는, 나에게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부디 별일 없이 돌아올 수 있기를.

지금 입장이 되니, 별님이의 마음이 보인다. 그대로 별님이의 상황이 보인다. 신의 딸, 신님이 내린 아이, 그래서 언제나 신님과 얘기가 가능한 아이. 별님이는 그걸 인제야 깨달았다. 신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들은 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이대로 죽게 되었다니, 그런 건 싫어요. 별님이가 항의해보아도, 신님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없다. 아니, 오히려 신님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다. 권능도 주었고 육체도 강화해주었고 그 영혼도 정령계에서 쉽게 소멸하지 않도록 가호도 했고...

그런데 왜 못 살려주나요? 별님이의 항의에 신님은 한마디 했다. 그 녀석은 자신의 의지로 혼을 단아에게 바치기로 정했다. 제 의지로 정한 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이상해요! 이건 신님이 만든 게임이라면서요! 그러면 신님은 이 게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신님은 그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건 맞아. 이 게임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 물론 세상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많은 걸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어.

그렇지만... 플레이어의 결정을 번복하는 건, 게임이 할 수 없는 범위야. 그 어떤 게임도 플레이어의 결정까지 정해버릴 수는 없단다. 그 어떤 게임도 플레이어가 게임을 포기하면 그때부터는... 플레이어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어.

그래서였구나. 그 말을 듣고 별님이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부디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 별님이에게 가능한 최고의 수단.


“...하아, 하아!”


별님이가 다시 쓰러진다. 누워서 안정을 취해도 힘들 텐데, 그 몸을 가지고 몸을 세워서 간절히 기도하니 안 쓰러질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제 이 세상 따위 아무래도 좋아진 나를 위해서 계속 기도해주다니.


“......”


자, 이제 떠나야지. 그렇게 마음먹은 찰나, 별님이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그 덕분에 마음이 다시 잡혔다.

아.

그런 거였구나. 이제야 이해했다. 별님이가 나를 붙잡고 있어서, 내가 지금 떠나지 못하고 계속 잡힌 거구나.

자, 그러면 이 아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자. 마지막 인사를 해서, 이 기도를 끊어내야 내가 갈 수 있겠구나. 작별을 고하고, 건네줄 걸 건네주고.

건네줄 거...?

그러고 보면, 별님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그래서 뭔가 생고생을 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고통이 느껴진다. 전신을 압축시키는 느낌, 무언가 강력한 힘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기분. 세상이 발하는 중력의 느낌.

뭘 전해주고 싶었지? 뭐더라...

아, 맞아, 엘릭서. 근데 나 엘릭서 없고, 어떤 건인지도 모르는데... 왠지 지금이라면 그 엘릭서가 어떤 건지 또 알 거 같기도 하지만.

왜 알 거 같지?

왜냐하면 지금 내 영혼에 직접 스며들고 있으니깐.

내 영혼에 엘릭서가 스며들어?




눈이 떠졌다.

아니, 영혼이 떠졌다고 표현해야 하겠다. 영혼이 다시 깨어나는 기분. 잠들 리 없는 존재가 잠에서 깨니 이질적일 뿐인 이상한 느낌.


“아빠!”

“뭔...”


단아랑 태화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아가 울면서 나를 부른다. 태화씨가 울면서 놀란 표정을 짓는다. 울어? 둘 다? 태화씨가 왜?


“찾아가지”


태화씨가 울음을 바로 그치면서 한 마디 내뱉는다. 찾아가요? 뭘요?

되물을 틈도 없이 이번에는 영혼이 끈적끈적해지는 기분과 함께, 의식이 다시 날아갔다.




또 눈이 떠졌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눈이 떠졌다. 눈앞에는 낯선 천장이... 보이기 전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광씨?”

“유광씨?!”


두 여자가 나를 보고 놀란다. 보솜씨와 소연씨다. 반가운 얼굴들에 내 표정이 풀리는 게 느껴질 정도다.


“아...하하...”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웃음부터 나왔다. 기쁜 마음은 그렇게 멋대로 터져나오는 모양이다.


“괜찮아요?”

“......”


소연씨가 상태를 묻는다. 보솜씨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나를 내려다보기만 한다.


“어... 뭐... 그런 거 같아요...”


몸이 말도 안 되게 나른하다. 움직일 수가 없다. 마치 내 몸이 아닌 것만 같다. 말하는 것조차 어색해서, 난생처음 들어본 외국어를 겨우 소리만 흉내 내는 것 같았다.


“유광씨...”


내 말이 신호라도 되는 듯, 보솜씨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걸 소연씨가 다독인다. 울지 말라고 말린다. 그러면서 소연씨도 울 듯이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다.


“...그...”


내가 힘겹게 말을 꺼내자 두 여자가 멈춘다. 울던 걸 훌쩍거리며 참는다.


“...별님...이는요?”

“일단 쉬세요”

“벼, 병원이니깐... 바로, 그, 바로, 옆 방에...”


그 말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결코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몸이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 서둘러야 할 것이 있다. 그런 생각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아, 안정부터 취해요! 갑자기 쓰러졌단 말이에요”


소연씨가 말리는 걸 뿌리친다. 소연씨는 격하게 막으면서도 쉽게 비켜주었다.


“소연씨 말대로 안정부터...”

“잠...시만요...”


보솜씨는 나를 부축해주면서도 소연씨랑 같이 말린다. 나는 그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나버렸다.

계속해서 두 여자가 나보고 누우라고 한다. 나는 대답할 기운도 아껴야 해서 말은 하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무언가 이상하다. 분명히 몸에 기운은 가득 차 있는데, 움직이는 것이 힘들다. 억지로 쌀 포대를 옮기는 것만 같다.


“......”


겨우 나간다. 복도를 걷는다. 짧은데 긴 거리를 겨우 걷는다. 문을 연다. 방에 다시 들어간다.

별님이가 보였다.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던 그 아이는, 나를 보자 놀라서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버지?”


나는 별님이에게 걸어가 그대로 그 아이를 안았다. 그리고는 쓰러져서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말

곧 일단락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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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 대면 20.03.09 181 1 12쪽
» 60화 - 기도 20.03.06 136 3 11쪽
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60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5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3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6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61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6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9 2 12쪽
46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8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1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5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1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60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9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3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4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8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8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4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7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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