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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 님의 서재입니다.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딸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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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하요.
작품등록일 :
2019.12.25 22:45
최근연재일 :
2020.03.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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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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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
글자수 :
33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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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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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6화 - 아무 말도

DUMMY

공원에서 회사로, 다시 회사에서 소연씨의 집으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말고, 서로 종종 눈을 마주치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렇게 주저하기를 3번 할 정도의 시간만 걸렸다.


“오피스텔... 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지요?”


오랜 침묵이 깨진다. 소연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소한 것이었다. 그녀는 작은 5층짜리 건물 앞에 멈춰서야 그 사소한 말을 꺼냈다.


“오피스텔이라기보다는...”

“다가구 주택? 뭐라고 하면 좋을지 애매하네요”


아하하. 웃으면서 무마하는 소연씨. 그녀의 눈길을 따라 본 건물은, 이 동네에는 어울리지 않게 작고 조금 낡아 있었다. 1층은 상가 건물로 내주고, 4층까지는 방을 내준 형식의 작은 건물.


“이 동네가 재개발되기 전부터 있었던 건물인가 봐요”

“그래서 이질적이군요”

“정확히는 재개발할 거로 생각하고 지었던 건물 같은데... 지금처럼 완전히 휘황찬란한 도시가 될 줄은 몰라서 적당히 지었던 모양이에요”

“잘 아시네요?”

“부동산 아저씨가 이것저것 설명해주더라고요”


보통은 그런 설명, 들어도 다 까먹을 텐데요.


“그 덕분에... 저렴하게 방을 잡았어요. 원룸이긴 해도 있을 건 다 있고, 제법 편하고 좋은데도“


휙. 소연씨가 한 손으로 손가락들을 펴 보인다.


“월세는 겨우 이 정도”

“확실히, 싸네요”

“그렇죠?”


그리고 둘은 입을 닫았다. 멈춰버린 발걸음처럼 너무나 쉽게 말은 끊겼다.


“유광씨는... 어디 사세요?”

“저는...”


왠지 저기 좋은 아파트에 산다고 말하기 주저하게 된다.


“하긴 같이 사는 사람도 많으니 제법 넓은 집에 사시겠네요”

“뭐, 그게, 네... 그냥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아파트? 와! 이 동네에서 아파트면 저거랑 저거 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소연씨가 손으로 휙휙 가리킨다. 그 방향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보인다.


“엄청 좋은 아파트잖아요”

“네”

“와... 유광씨는 진짜 뭐에요?”


신기하다는 듯 의문을 표하는 소연씨.


“여자 4명이랑 같이 사는데 부인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거기다가 사는 곳은 엄청 좋은 집인데 돈이 많아 보이지는 않고... 회사 월급이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회사 월급으로는 저런데 못 살죠”

“그렇죠? 그럼 대체 뭐에요!”


마음 같아서는 설명해주고 싶었다. 소연씨에게는 내 사정을 말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다. 소연씨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신님이 무슨 짓을 할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

“이 정도는 그냥 대답해주지~”


내 마음을 모르는 듯, 소연씨는 뾰루퉁거린다. 쩨쩨하긴, 불평하며 나를 본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뿐이었다.


“......”

“......”


다시 둘 사이의 말이 끊겼다.


“좋아요”


한참을 조용히 하고 있다가, 소연씨가 입을 열었다. 계속 그녀가 먼저 입을 열어준다.


“복잡하고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 잘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는 소연씨. 그 눈동자가 확고하다.


“물어볼게요, 솔직하게만 대답해주세요”

“물론이죠”


오늘 밤은 그녀에게 진실만을 대답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그럴 것이다.


“유광씨는 저에게 마음이 있나요?”

“네”

“그 마음은 무슨 뜻인가요?”

“...개인적으로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대답하지 말고요~”


괜히 나를 괴롭히는 소연씨.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줄 수밖에 없다.


“좋아해요”

“어떤 의미로요?”

“연애 대상으로요”


말로 꺼내니 쑥스러워졌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소연씨는요?”

“...저도요”


소연씨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이에요”

“네”

“지금 당신이 말해주지 못하는 거, 말해줄 수 없나요?”

“......”


없다.


“......”

“......”

“...없군요?”

“...네”


그 말에 소연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보고 좀 더 설명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려는 찰나, 소연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말을 자신의 말로 막아버린다.


“저는요”


급하게 말을 꺼낸 덕분에, 한마디 하고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는 다시 잇는다. 마치 나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좋아요”

“......”

“물론 당연한 소리이긴 하지만, 신뢰야말로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본인 만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연애... 에서도요”


소연씨가 나에게서 등을 돌린다.


“그래서 제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기로 했어요. 옛날에 정했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거예요”


등을 돌린 덕분에 소연씨의 목소리가 조금 작게 들린다.


“그리고 말해줄 수 없는 게 있는 사람은...”


그게 아니에요.


“...믿기 힘들겠지요?”


그게 아니에요, 나는 단지...


“...알겠나요?”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보는 소연씨. 다시 나랑 마주친 그 눈동자는, 조금 전과는 달리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결에 휩쓸려 발버둥 치는 나비의 날개처럼 떨고 있었다.


“......”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렇군요”


그녀는 내 무언을 하나의 대답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저하는 낌새도, 무언가 덧붙이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짓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잡고 싶지만 잡을 수도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이 너무 없었다.


“......”


바보 같다. 답답한 것도 안다. 무엇보다 내가 답답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


한참을 건물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다. 긴 시간이 지나서 몸이 추워져도 계속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기를 한참, 겨우 발길을 돌려 나도 집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로비가 있다. 1층에 마련된 그 장소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어, 사람들이 쉬거나 대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공간이다. 매일 그 자리를 그냥 지나쳤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별님아”


그곳에 별님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에는 공책과 책들이 놓여 있었다. 별님이는 그 위에 엎드려서는 잠들어 있었다. 슬쩍 본 시계는 11시, 별님이에게는 늦은 시간이다.


“별님아, 별님아”

“으응...”


별님이를 흔들어 깨우지만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데서 자면 감기 걸려”

“으응...”


별님이답지 않게 잘 일어나지 못한다.


“자자, 일어나자”

“...아버지?”


겨우 일어나는 별님이. 나는 별님이를 꼭 안아준다.


“아빠가 미안해”

“응...?”


약속해놓고는 깨버렸다. 먼저 할 말은 사과밖에 없다.


“다녀오셨...어요...?”


하지만 별님이는 비몽사몽 한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인사한다. 이 와중에도 예의가 바른 게 별님이 답다고 해야 할지.


“많이 늦었지?”

“아니... 에요...”


후아...

하품을 크게 하는 별님이. 나는 그런 별님이를 내 품에 안는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책들을 한 손으로 챙긴다.


“자, 집에 들어갈까?”

“네...”


짐까지 다 챙긴 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별님이는 착한 아이다. 언제나 순순하게 내 말을 들어준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착한 아이인데, 나는 이 아이와 한 약속을 어기고 있다. 수애나 단아를 보살피는 것조차 이 아이에게 맡기고 있다.

자격 실격이다. 게임 플레이어로서 실격이고, 아버지로서도 실격이다. 이게 프크였다면 이미 아이가 반항적으로 되거나, 불량해져서 가출하거나, 병에 걸려서 드러누웠을 것이다.


“많이 추웠지?”

“아녜요...”

“아니긴, 다음부터는 집에서 기다리렴”

“그렇지만...”


별님이가 손을 꼼지락거린다.


“오늘은 아버지랑... 약속도 했고...”


그걸 내가 제대로 어겨버렸지.


“그래서 꼭... 같이 숙제 보고 싶었으니깐...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쓰다듬기만 했다. 내가 쓰다듬어주자 좋다는 듯이 받아주는 별님이의 모습에, 죄책감이 더 커진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면서도 계속 그 아이를 쓰다듬어주었다.


“일단 오늘 밤은 늦었으니깐 자려무나”

“그렇지만... 숙제는 내일 제출...”

“다른 숙제를 같이 봐줄게. 꼭 숙제가 아니더라도, 같이 무언갈 해도 좋겠지!”

“정말요?”

“응, 내일은 꼭 별님이부터 챙길 테니까“

“네”


약속을 깬 다음에 같은 약속을 하는 건데도 순순히 믿어준다. 이렇게 착한 아이한테 내가 참 못 할 짓을 했구나.

집에 들어가서 별님이와 함께 화장실로 간다. 손을 씻기고 세수를 시키고 토닥거려주며 방으로 들여보낸다. 이미 자는 아이들 옆에 가서 눕는 별님이를 다시 쓰다듬어준다. 애들이 깨지는 않게, 하지만 별님이는 확실히 챙겨주면서. 별님이는 금세 눈을 감았다.

나도 내 방으로 돌아간다. 보솜씨가 따라와 여러모로 걱정했다고 말한다. 별님이나 아이들에 대해 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내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이다. 머릿속에 소연씨의 일이 가득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왜?

세 가지 질문은 계속 떠오른다. 소연씨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그 전에,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런데 나는 왜 이 생각을 하고 있지? 왜 소연씨에 대해서 무언갈 해야 하는 거지?

온종일 바보같이 지낸 덕분인가? 멍청한 질문만이 떠오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리석게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누군가가 흔드는 손길에 눈이 떠졌다.

그런데 지금 나를 깨우는 건 누구지? 두통과 감각이 비슷한 피로, 그리고 어두운 방 안. 본능적으로 아직 새벽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어... 음...?”


손길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수애야?”

“아빠...”


수애가 나를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왜 그러니?”

“별님이가 아파요”

“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슨 소리니?”

“옆에서 자는데... 이상한 소리를 내고 그래서... 보는데 괴로워 보이고...”


더 설명을 듣지 않는다. 수애를 데리고 바로 아이들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불을 켠다. 침대에는 별님이 혼자 누워 있었다. 그리고 한 눈에도 아주 아픈 걸 알 수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새빨간 얼굴로 괴로워하고 있다.


“별님아, 별님아”


부르면서 이마에 손을 대본다. 뜨겁다. 사람 이마가 이렇게 뜨거운 건 처음 만져봤다.


“별님아, 정신 차려봐”


별님이를 토닥이며 불러본다. 하지만 별님이는 괴로운 기색만 보일 뿐, 대답하지 못한다.


“언제부터 이랬니?”

“모르겠어요... 자는데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봤더니...”


자는 사이에 아파진 모양이군.


“무슨 일인가요?”


어느새 보솜씨가 도착해서 묻는다. 보솜씨와 함께 단아도 같이 방에 들어온다. 단아는 보솜씨를 깨워서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저도 지금 왔는데”

“설마 오늘 밖에서 기다리다가”

“이유는 어찌 되었든 병원 갑시다”


나는 바로 별님이를 들쳐 엎고 밖으로 향한다. 그 뒤를 보솜씨와 수애, 단아가 따라온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42 박격포
    작성일
    20.02.18 01:24
    No. 1

    음;;;
    답답하네
    최소한 알면 당신이 위험할 수도 있어서 말 못한다 정도는 얘기해도 될텐데
    그리고 신이 그걸 말하는걸 굳이 막을꺼 같지도 않고
    그리고 애 키우기인데 애들도 너무 소홀히하고 흠...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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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화 - 단아의 바람 20.03.05 138 4 11쪽
58 58화 - 정령계로 20.03.04 160 1 11쪽
57 57화 - 고백 20.03.03 145 2 13쪽
56 56화 - 지랄 말게 젊은이 20.03.02 143 1 11쪽
55 55화 - 꼬이는 단판 20.02.28 145 4 12쪽
54 54화 - 수애, 소연씨 +1 20.02.27 243 2 12쪽
53 53화 - 신님과 대화 20.02.26 156 1 12쪽
52 52화 - 보솜씨랑 대화 20.02.25 201 2 11쪽
51 51화 - 첫 단계부터 20.02.24 159 2 11쪽
50 50화 - 발견 20.02.21 153 2 11쪽
49 49화 - 가출 +1 20.02.20 166 2 11쪽
48 48화 - 동시다발적 폭발 +1 20.02.19 162 4 12쪽
47 47화 - 순수하다는 문제 20.02.18 189 2 12쪽
» 46화 - 아무 말도 +1 20.02.17 168 3 12쪽
45 45화 - 스무고개 +1 20.02.14 211 6 12쪽
44 44화 - 꼬이기 시작 +2 20.02.13 185 5 12쪽
43 43화 - 목격, 두 번째 +1 20.02.12 201 3 13쪽
42 42화 - 목격 +3 20.02.11 259 5 11쪽
41 41화 - 재미없다 +2 20.02.10 228 5 12쪽
40 40화 - 계획대로 +2 20.02.07 232 5 11쪽
39 39화 - 크루즈 파티 +2 20.02.06 234 5 12쪽
38 38화 - 수확제의 결과 +2 20.02.05 232 7 12쪽
37 37화 - 보솜씨와 쇼핑 +1 20.02.04 237 6 12쪽
36 36화 - 신보솜씨 +2 20.02.03 258 6 13쪽
35 35화 - 태화씨 +1 20.01.31 253 6 11쪽
34 34화 - 늦은 저녁, 그리고 반성 +1 20.01.30 269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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